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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여! 나의 내면을 아름답게 하소서! (요일 4: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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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나의 내면을 아름답게 하소서! (요일 4:16~18)

 
지난 주 화요일에 제가 학교에서 학생들이랑 점심을 먹으러 어느 식당에 갔었습니다.  마침 옆자리에 할아버지 두 분이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는데, 한 할아버지가 맞은편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이봐, 나 보청기 새로 샀어.  엄청 비싼 거야."라고 자랑을 하시는 겁니다.  맞은편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가 부러워하면서 물었습니다.  "그래, 얼매고?"  보청기를 하셨던 할아버지가 손목시계를 보시더니 이렇게 대답을 하시는 겁니다.
"12시!"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을 밝게 하십시오.  언제나 복 받을 생각을 가지면 복을 받습니다.  은혜로운 생각을 가지면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그 생각에 복을 주십니다.  생각이 밝은 사람은 밝은 옷을 입고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를 붙들고 '이제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을 고치고 그 마음의 생각이 바뀌면 결국 그 생각이 그의 삶과 일생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늘 좋은 생각을 심어야 합니다.  기쁜 생각을 심어야 합니다.  감사한 생각을 심어야 합니다.  염려와 불평의 생각을 버리고 먼저 좋은 생각을 심으십시오.  그러면 좋은 행동을 거둘 것입니다.  좋은 행동을 심으면 좋은 습관을 거둘 것입니다.  좋은 습관을 자꾸 심으면 좋은 성격이 나옵니다.  좋은 성격을 계속해서 심으면 좋은 신의가 나옵니다.  좋은 신의를 심으면 결국 사람이 돕고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생각에서 옵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좋게 하십시오.  생각을 바꾸면 행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적극적으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 생각을 믿음에 넘치게 해야 합니다.  그 생각에 언제나 생기가 넘치게 해야 됩니다.  우리의 생각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넘치게 가져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내 삶이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닥쳤다고 할지라도 절망적인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비관적이고 패배자의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못할 뿐이지 주님이 못하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사실 지금 일어난 기적도 어제까지는 나에게 암담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안 되었다고 영원히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든 인생에 정지 표시는 없습니다.  돌아가든지 넘어가든지, 뚫고 가든지 밀고 가든지….  밀어붙여서라도 결국 갈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어떠한지 그 생각을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 안에서 바꾸십시오.  그래야 성공이 일어나고 인생에 보람이 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나간 과거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면서 오늘에 최선을 다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안 되는 이야기만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되어질 이야기만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매사에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고 만족해합니다.  결국 생각의 차이입니다.  생각의 차이가 인생의 차이를 불러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절대로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는 '예'만 있고, '아니오'는 없다고 했습니다.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그 마음에 있습니다.  약한 마음은 사람을 약하게 만듭니다.  이 시간 성령의 능력으로 약한 마음을 다 버리고 강하고 담대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언제나 행복한 생각을 가지십시오.  언제나 긍정적이고 하나님 안에서 감사한 생각을 가지십시오.  만사를 하나님께 다 맡기는 생각,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십시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의 기적은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높은 하늘에 기러기 떼들이 아름답게 떼를 지어 V자형으로 날아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저 태평양 한 가운데나 아니면 큰 산맥을 넘어갈 때는 대단히 힘있게 소리를 지른다고 합니다.  많은 경험과 많은 힘을 가진 부모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앞장서고 어린 새끼들은 뒤에 서면서 뒤에 있는 새끼들이 "할아버지! 잘 가세요. 어머니! 용기를 내세요. 힘을 내세요."  서로 격려와 칭찬과 사랑을 나누면서 가면 대단한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폭풍을 지나가고 산맥을 넘어간다고 합니다.  반대로 평원을 지나갈 때는 경험이 없는 새끼들을 앞장 세워서 지도력을 키운다고 합니다.
"너도 잘 날아가는 구나! 너도 잘 하는구나!"

격려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이래서 중요합니다.  격려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과 공동체를 든든하게 하는 기초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집에 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의 격려를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십시오.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할지라도 함께 살아가는 데는 또 다른 기술이 필요합니다.  무작정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함께 살아가는 어떤 기술이 필요합니다.
 
좋은 사람들이 만났으니까 잘 살겠지,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만났으니까 좋은 부부가 될 거야.  좋은 자녀들이 만났으니까 좋은 가정이 될 거야.  절대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 만났어도 더 잘 살기 위해서는 함께 살아가는데 다른 기술이 필요합니다.  바로 사랑이 필요하고 격려가 필요합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들에게는 더 많은 사랑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사랑이 무엇일까?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심에 대한 표현입니다.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서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이 표현의 기술! 이 표현력!  그래서 사랑의 기술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아들을 통해서 표현한 것처럼 나는 내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까?
 
기억하십시오.  일을 언제나 망치는 것은 환경이나 여건이 아닙니다.  나쁜 사람도 아닙니다.  나쁜 시대도 아닙니다.  이 시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언제나 일을 망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편견입니다.  내 안에 있는 선입관입니다.  이 선입관을 깨고 사랑과 격려와 용기로 가득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희망과 믿음으로 그득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어떤 편견을 가지고 이 자리에 왔든, 어떤 선입관을 가지고 여기까지 왔든 하나님의 큰사랑에 짓 눌려서 하나님의 저항할 수 없는 사랑에 정복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모든 편견과 그 모든 독선으로부터 해방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를 받고 모든 편견과 선입관으로부터 자유하는 감격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자유하는 감격을 누리게 되면 이 전에 올 때의 발걸음과 갈 때의 발걸음이 다릅니다.  올 때의 눈빛과 갈 때의 눈빛이 다릅니다.  올 때의 표정과 갈 때의 표정이 다릅니다.  무엇보다도 올 때의 마음과 갈 때의 마음이 다르단 말입니다.  "아! 되겠구나!  나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나도 희망이 있다!  나는 문제없다!"  이 담대함과 자유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전을 나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과 격려는 영혼의 산소와 같은 것입니다.  지금 들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풀들이 햇볕을 받고 산소를 먹으면서 살아나고 있습니다.  전혀 생명력이 없을 것 같았던 풀들이 따뜻한 기운을 받으면서 파릇파릇 살아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매 한가지입니다.  격려를 받고 믿음의 산소를 먹으면 살아납니다.  따뜻한 칭찬과 격려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이 시간 묻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내 영혼에 연결된 격려의 생명 줄이 있습니까?  아무리 새 차를 가졌어도, 아무리 좋은 차를 가졌어도, 아무리 값비싼 자동차를 가졌어도 기름이 떨어지면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고철일 뿐입니다.  그런데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으니까 달려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험난한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갈 때에 내 삶에 격려의 공급처가 있습니까?  사랑의 공급처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사랑의 공급처를 남편에게서 찾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내에게서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생명보다 귀한 사업체에서 찾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식에게서 찾습니다.
 
그렇지만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들은 내가 영원히 의지할 것이 못 됩니다.  직장이 무너지면 끝납니다.  살겠다 못살겠다 싸우고 나면 다 끝납니다.  자식도 품안에 있을 때 자식입니다.  그 자식이 장성해서 떠나가면 끝납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유한한 것이고,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것들이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영원한 격려와 사랑의 공급처는 내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서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게서 위로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산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고 사는 인간의 존재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돌멩이입니다.  돌덩어리입니다.  사람의 최고의 능력이 무엇일까?  돈 버는 능력, 집 짓는 능력, 무슨 능력... 다 귀한 능력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최고의 능력은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사랑의 능력 이상 위대한 능력은 없습니다.  한 인간의 진보의 척도, 한 인간의 성장의 척도, 한 인간의 성숙의 척도, 한 인간의 성공의 척도는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 주위를 가만히 둘러보십시오.  회사는 기가 막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돈을 기가 막히게 엄청 벌었습니다.  사회적 명예도 누구 못지 않게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부터 "에이! 저 원수, 저 노랭이, 저 형편없는 사람..." 그렇게 말을 듣는다면 그것이 성공입니까?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요즘 인터넷 시대를 맞아 누구나 다 고독해 합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민족이 일어난 이래 가장 잘 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고독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고, 불면증에 걸려서 밤을 지새웁니다.  우리가 20세기까지는 굴뚝 문화에서 바쁜 생활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21세기 정보산업화 시대는 이제 바쁜 게 아니라 고독하다, 외롭다, 허전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빠요!" 하던 사람들이 "외로워요!"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 외롭습니다.  인간의 가슴 깊은 곳에는 사랑 받고 싶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누구나 사랑 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어합니다.  이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이 허전함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합니다.

요즘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채팅을 합니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방으로 들어가서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채팅을 하려고 할까?  그 많은 사람들이 왜 인터넷에 접속을 하면서 사이버 공간을 헤매고 있을까?  사랑의 손길을 잡아 보려고 채팅을 한다는 겁니다.  어딘가에 사랑의 손길을 한번 잡아 보고 싶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에게서 사랑을 제거하면 무엇이 남을까요?  인간이 사랑의 대상을 상실하면 무엇이 남을까?  하나님은 인간의 가슴속에 무엇을 채웠을까?  그 인간의 마음속에는 정말 무엇이 있을까?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말은 사랑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사랑이 있을 때 살맛이 납니다.  사랑이 있을 때 기쁩니다.  사랑이 있을 때 감격스럽습니다.  사랑이 있을 때 보람이 있습니다.  감격과 자기의 가치와 자기의 희열과 자기의 그 놀라움은 사랑을 발견할 때입니다.  내 속에 사랑이 움틀 거릴 때입니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사는 동물입니다.  빵은 육체의 양식이지만 사랑은 마음의 양식입니다.  영혼의 양식입니다.  정신의 양식입니다.  빵은 겉 사람의 양식이지만 사랑은 속 사람의 양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린아이들에게 육신의 양식인 우유를 먹이고 빵을 먹이면 자랍니다.  그런데 안 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속 사람은 영의 양식을 제대로 먹이지 않으면 제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사람들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향기 없는 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요즘 맛이 간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어느 모임에 가보면 자기 나름대로는 번지르르하게 입고 오긴 왔습니다.  그래도 뭔가 브랜드를 걸치고 왔습니다.  그런데 보면 맛이 갔습니다.  거기다 바르고, 찍고, 그리고, 난리 쳤는데 맛이 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서는 맛이 살아나기를 축복합니다.  얼굴이 살아나기를 축복합니다.  심령이 살아나기를 축복합니다.  인간 관계가 살아나기를 축복합니다.  맛을 잃어버린 영혼들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맛이 살아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땅에 가장 심각한 병은 사랑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가 사랑을 사실했습니다.  이 땅의 정치가를 가리켜서 사랑이 있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말 바꾸기는 있어도 사랑은 없습니다.  교육도 사랑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문화, 그 매스컴들이 사랑이 있습니까?  그 매스컴들은 출연료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돈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기업도 사랑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우리 나라의 첫 여성 교정 서기관이 되었던 최효숙 씨는 교도소에서 여자 감방을 30년 지키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전엔 애정관계 때문에 남편이나 애인을 살해했는데, 요즘은 돈 때문에 남편을 죽인대요.  단순히 경기침체 탓으로만 해석해선 안 됩니다.  황금만능주의 영향으로 정신병에 가까울 만큼 돈에 집착하고 욕심을 부립니다."  오늘 이 땅의 가정은 황금만능주의로 인한 돈 때문에 사랑을 놓쳤습니다.

최효숙 씨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가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성장 과정이 중요합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면 윤리 교육을 제대로 받았겠죠.  그런데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 물욕뿐이라면 아무리 부자 남편을 만나도 결과는 마찬가지예요.  사치와 허영으로 결국 빚더미에 앉게 되겠죠.  또 부모에게 사랑을 못 받고 자라면 타인을 정상적으로 사랑하지 못합니다.  가정다운 가정을 못 느껴본 사람은 가정을 우습게 압니다.  어머니가 흔들리지 않고 가정이 깨지지 않아야 사회 전체적으로 범죄가 줄어듭니다."

지난 주간에 KBS 라디오를 들으니까 어릴 때 가정에서 정신적인 상처를 입고 자란 아이는 성장해서 자살할 확률이 다른 사람들보다 배나 높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릴 때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폭언과 욕설과 정서적인 압박을 받고 자란 아이가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은 그만큼 낮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사랑하는 방법을 보여주십시오.  사랑도 기술입니다.  사랑도 훈련입니다.  사랑도 습관입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사랑을 못 받고 자라면 그 아이는 결코 다른 사람을 정상적으로 사랑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라도 자기 자신조차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그 영혼에게 비극입니다.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런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산비탈 옹달샘의 샘터에 샘물이 철철 넘치는 모습을 말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 정겹습니다.  시원합니다.  아름답습니다.  그 조그마한 데서 물이 퐁퐁퐁 나오면서 한없이 솟아지는 것이 신비롭기만 합니다.  저 물줄기가 도대체 어디서 나올까?  저 물줄기의 공급처가 어디일까?
 
과거에 제가 시골에서 목회를 할 때에 그런 옹달샘이 있었습니다.  차를 운전해서 1시간 반정도 골짜기를 돌고 돌아서 가면 거기에는 조그마한 옹달샘이 있는데 거기에는 탄산수가 한없이 솟아나옵니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은 솟아나옵니다.  도대체 저 물이 어디서 나올까?  그 옹달샘 깊은 곳에는 암벽이 있는데, 그 암벽 안에서 샘물이 터진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땅속 깊은 곳에 암벽이 있듯이 하나님의 형상을 타고 이 땅에 태어난 우리 모든 심령의 깊은 곳에도 샘물이 있습니다.  그 샘물을 가로막고 있는 암벽을 터트리십시오.  성령의 도우심으로 터트리십시오.  터트려서 여러분의 심령 깊은 곳에 있는 우물물이 힘차게 솟아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심령에 생수의 강이 철철 흘러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일평생 움직이고 삽니다.  우리는 일평생 행동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행동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행동입니다.  우리의 행동에 사랑이 빠지면 삶은 곧 삭막한 사막과 같이 되고 맙니다.  사랑에는 나이가 없습니다.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도 없습니다.  사랑을 안 해서 문제이지 사랑해서 안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은 불과 같습니다.  너무 멀리 하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지만, 장난을 하면 파멸과 비극을 불지릅니다.  사랑은 인생의 지극한 축복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서 아름다운 기도를 배우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 가운데 들어갈 때 얼마나 깊은 기도가 나옵니까?  얼마나 감격스러운 기도가 나옵니까?  얼마나 고마운 기도가 나옵니까?  우리는 깊은 사랑을 통해서 숭고한 삶의 희생도 배웁니다.  우리는 깊은 사랑을 통해서 생명의 신비도 압니다.  우리는 깊은 사랑을 통해서 황홀한 감사의 체험도 합니다.  우리는 깊은 사랑을 통해서 생명의 존엄성도 깨닫습니다.
 
그런고로 사람은 사랑을 통해서 삶의 온유와 겸손을 배웁니다.  정말 진실한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온유합니다.  겸손합니다.  사랑을 통해서 결국은 삶을 배우고 인생을 배웁니다.  사랑은 끝없는 하나님의 계시와 영감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놀라운 계시자입니다.  사랑하면 도저히 그 사람의 머리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봐도 모르는 아름답고 황홀한 말들이 막 나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시인이 되어 버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무서운 상상력이 나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마어마한 창의력이 나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깜짝 놀라는 작가가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목소리도 아름답습니다.  어느 날인가 그 사람이 갑자기 목소리가 좋아 졌거든 "오라! 사랑에 빠졌구나!"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사랑하면 그곳에 사랑의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습니까?  그 어느 때인가 그 언젠가 깊은 사랑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요즘 사랑에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사랑의 날보다 이 땅에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모든 생명의 영원한 주제는 사랑입니다.  모든 생명이 끝없이 힘을 얻는 곳이 사랑입니다.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은 힘이 있습니다.  사랑을 받는 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힘이 없습니다.  예배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 정복되는 겁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큰사랑,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생포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목사인 저는 오늘도 생명의 소중함을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다는 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힘입고 다시 인생을 힘차게 도전할 수 있는 길, 그것은 사랑만 받으면 됩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사랑에 빠져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해 보십시오.  사랑을 받으면 그 내면이 아름다워집니다.  사랑을 하면 그 내면이 아름다워집니다.

지금 현대를 사는 모든 현대인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가 배웠든, 그가 건강하든, 그가 지식을 가졌든, 그가 어떤 권좌에 있든 현대인들은 다 두려움이라고 하는 이 공포에 싸여 있습니다.  더구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오늘 많은 사람들은 내일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이 두려움의 돌파구를 어디서 찾을까?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만이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붙잡혀 보십시오.  우리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과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능력을 회복시킵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만 있다고 하면 얼마든지 능력은 회복됩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받는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을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아름답게 변화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의 사랑 안에서 나타나는 인생의 갑작스러운 심령의 변화를 놓치지 마십시오.  우리의 습관이 변한다거나, 사회의 시스템이 변한다거나, 내 환경이 변하는 것은 서서히 변합니다.  그러나 천하보다 귀한 내 심령이 변하는 것은 '갑자기'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는 순간에, 하나님 말씀을 받는 순간에, 찬양하는 시간에 우리의 심령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물밀 듯이 밀려오는 순간입니다.  내 영혼에 밀려오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이 지친 영혼에 하나님의 사랑의 품이 보여지기를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험난한 세상에는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인생에는 새로운 기회가 보여질 것입니다.  내 삶의 새로운 기회가 보여질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을 찾는 존재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사랑을 찾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 어두운 영혼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지어다! 
그 가정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할지어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생명을 소생케 합니다.  최악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면 살 길이 있습니다.  오늘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들에게 비취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십니다.  사랑의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사랑의 예수님만 붙들면 살 길이 있습니다.  고통과 낙심의 자리에서 계속 누워있기를 거부하고 나온 여러분, 실망과 두려움을 거부하고 하나님 앞에 나온 여러분, 강권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서 모든 삶의 분노와 미움으로부터 자유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장애인들을 보면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기 속에 심리적인 장애에 대해서 안타까워 해본 적이 있습니까?  육신의 장애보다 더 불쌍한 것은 그 영혼의 장애입니다.  영혼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언제나 현실에 대해서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그 심령에 분노가 떠나지를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분노에 대해서 생각해보십시다.  나는 분을 낸다, 그런고로 존재한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소리를 지르면서 분을 냅니다.  그렇지만 분노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분을 내서 얻은 것이 뭐가 있습니까?  분노는 오히려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분을 자꾸 내는 사람은 무기력해집니다.  인생은 행동에 대한 보상입니다.  어떤 행동을 했느냐에 따라서 보상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분노의 행동에서 얻는 보상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분노란 일종의 사건을 보는 방식에서 오는 겁니다.  오늘 분을 낼 수 있지만 그 다음에 보면 그렇게 보지 않는 방법도 있었는데 하고 생각합니다.  분노로 시작하는 일은 거의 부끄러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예배하는 자신의 심령들을 한 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눈을 뜨고 지금 내 속에 있는 노여움과 분노가 과연 어떤 짓궂은 일을 하고 있는가를 보십시오.  그 무서운 분노가 얼마나 내게 짓궂은 짓들을 하고 있는가를 보십시오.  그런 분노가 나를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분노가 나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값어치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관계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인간의 감정 중에 가장 파괴력이 큰 것은 분노입니다.  분노는 죄를 짓게 합니다.  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사랑할 수 있는 권리는 주셨지만 분노할 수 있는 권리는 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실 분노의 결과를 자세히 보면 자기 마음가짐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남에게 주는 겁니다.  속에 짜증과 불평과 원망이 가득 차 있는 사람은 그것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사랑과 회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이런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면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그 심령에 절대로 분노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신령한 것들을 채우시옵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거룩한 것들을 채우시옵소서.
주여! 나의 내면을 주의 사랑으로 아름답게 하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태초에 예정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에 따라서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부모님과 이웃의 사랑을 먹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에서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사랑함으로 행복해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갈까요?  우리는 정말 이 땅에 유산을 무엇으로 남기고 갈까요?  사랑을 남기고 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떡을 남기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의 자취를 남기는 것입니다.  사랑의 발자국을 남기는 것입니다.  사랑의 그림자를 남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덕목입니다.  사랑이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신비한 향내가 납니다.  그 생명에 사랑이 들어가면 신비한 힘이 흐릅니다.  그 생명에 사랑이 들어가면 신비한 보약을 먹게 됩니다.  사랑은 인간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는 아둥바둥거리면서 죽자살자 합니다.  정말 일의 중독자, 돈의 중독자가 되다시피 살아갑니다.  이 다음에 자녀들에게 무엇으로 유산을 남기시겠습니까?  재산을 남기시겠습니까, 사랑을 남기시겠습니까?

"얘들아, 우리 부부는 이렇게 만나서 이런 어려운 과정을 이렇게 넘어가면서 너희 엄마 아빠와 손잡고 같이 이 가정을 이만큼 남겼다.  이것은 우리의 사랑이다."

사랑을 남기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유산, 사랑이 없는 재물, 사랑이 없는 남겨진 집,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무엇이 있습니까?  이 땅에는 사랑의 힘으로 정복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의 힘에 정복되지 않을 것도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존엄하고 신성합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고, 하나님이 사랑이 나타남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냐?  하나님이 사랑의 표현입니다.  나는 누구냐?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고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힘있게 뻗어 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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