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주일] 예수님의 부활과 나 (마 28:1~10)

  • 잡초 잡초
  • 543
  • 0

첨부 1


예수님의 부활과 나 (마 28:1~10)


오늘 말씀의 제목이 ‘예수님의 부활과 나’다. 예수님의 부활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삶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큰 복이다. 예수님의 부활로 내가 얻은 복이 무엇인가 깨달아야 한다. 

예)어떤 운동선수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 잠시의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일 뿐이다.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예수님의 무덤을 막았던 돌이 천사들에 의해 옮겨져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이 나오기 위해 열어 놓은 것이 아니다. 돌이 무덤을 막고 있다고 예수님이 못 나오실 분은 아니다. 성경에 보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여럿 있다.
예)나사로 부활, 나인성 과부의 아들, 엘리사 선지자가 살린 수넴 여인의 아들 

예수님의 부활과 사람들의 부활과 다르다. 이들은 다시 죽는다. 그리고 무덤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 그의 몸은 부활하신 신령한 몸, 영광스런 몸이다. 

그렇다면 무덤의 돌문은 왜 열어 놓으셨는가?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 열어 놓은 것이다(6절). 여기에는 대단히 중요한 영적인 의미가 있다. 무덤은 죽음의 장소를 의미하는 곳이다. 

사람은 영원히 사는 영적존재이다. 육신이 죽는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의 형벌을 받는다. 우리는 범죄한 인간들이 자기 죄로 말미암아 사망의 장소인 무덤에서 영원히 괴롬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구약의 한 사건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출애굽 사건
출 1:11-12, 애굽에서 이스라엘은 학대를 받는다. 그들은 그곳에서 종살이 한다. 자유가 없기 때문에 원치 않는 고통 속에서 죽지 못해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고통 받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무덤과 같은 애굽에서 구원해 내기 위해 모세를 보내신다. 애굽 왕을 항복하게 만든다(10가지 재앙). 너희를 보내겠다. 나가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신다. 그들은 자유를 얻게 되었다. 해방되었다. 

이때 애굽왕이 망한 것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딱 한가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받은 것이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갈 것을 허락하였다. 단지 애굽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의 장소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모세를 세우시고 그를 애굽으로 보내셨다. 모세는 백성들을 데리고 나왔다. 여기서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첫째는 자유를 선포한 것이고, 둘째는 데리고 나온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사랑이다. 

이 사건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죽으심은 힘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백성을 건지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죽음 안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죽음 안으로 들어가셔서 죽음 안에서 영원히 살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건져내시기 위해 예수님이 죽음 안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그것이 십자가의 죽으심이다. 

죄의 노예 상태에 있는 인간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죄의 종이었는가? 죄를 섬기며 살았는가? 인간의 모습.
롬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죄는 마귀로부터 온다. 사람 안에 들어와서 사람을 학대 괴롭힌다. 복을 못 받게 한다.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했다는 것은 사망의 생각으로 학대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고통을 받는가? 사망의 생각으로부터 고통을 받는다. 

사망의 생각을 품고 살아가며 따라가며 섬긴다. 죄를 따라가고, 악을 따라가고 분노를 품고, 분쟁한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한다. 영향을 받으며 괴롬을 당한다. 바로 이런 것들이 죄로부터 오고 악한 영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망의 생각에 지배를 받으며 산다. 좋을 때는 좋으나 흔들면 사망의 생각에 따라 산다. 악한 영은 자기 마음대로 사람들을 괴롭힌다. 시달림을 받는다. 죄의 멍에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절망 속에서 절규하다가 영원한 지옥의 저주 아래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태가 인간의 모습이다. 바로 이때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려고 죽음 안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무덤의 문이 열렸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들어가셨다가 나오실 수 없어서 열어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무덤에서 나오도록 열어두신 것이다. 출애굽의 사건은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사건에 대한 예표인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무덤으로 들어가시기 위한 죽으심이다. 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올 수 없는 사망에서 나를 건져 내시기 위해 무덤의 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애굽의 430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그러나 이젠 해방 받았다. 외치는 소리가 전파되었다. ‘이제는 자유를 얻었다. 이제는 나오라.’ 이 소리가 그들에게 복음의 소리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에도 똑같은 복음의 소리가 있다.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다. 

사망의 생각에 지배받다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 받게 없던 우리에게 자유를 선포하셨다. ‘자유롭게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다.’ 이것이 첫 번째 복음이다. 두 번째 복음은 롬 6:14이다.

롬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라. 

오늘날 교회마다 부활절을 거저 보내는 경우가 없다. 그러나 부활 행사는 잘 마쳤는데 또 다시 죄에게 시달림을 받는다면 부활절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자유하라고 자유를 주셨으니 이제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 자유하라고 부활하셨다. 이제는 죄의 무덤에서 나오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주셨지 하루 아침에 가나안으로 인도한 것은 아니다. 빠져 나오라 했는데 안나오면 학대를 받는다. 오늘날 혼란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이 두 말씀은 위대한 복음이 있다. ‘자유를 주었다. 주관치 못하리라.’ 

이스라엘이 출애굽했으나 애굽이 망한 것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죄의 종에서 자유함을 얻었다고 사망의 생각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다. 육신의 생각은 끊임 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분명히 달라진 것이 있다. 이전에는 끌려다녔으나 이제는 거절해도 된다. 왜 주관하지 못한다. 이제 자유를 받았기 때문이다. 

롬 6: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죄에게서 해방되었다. 사망의 생각은 그대로 있으나 마음대로 끌고가지 못한다. 그런데 문제는 따라간다는 것이다. 이제는 따라가지 말라. 

무덤에서 나오라고 문을 열어주었는데 또 다시 들어간다. 부활하신 목적 사망의 종에서 해방시켜 주셨는데 왜 유혹을 당해 따라가느냐?

오늘날 신자들의 모습, 예수님께서 끌어내셨는데 주일날만 무덤 밖에 있다가 월요일날 다시 들어간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들이 염려, 고민, 절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부활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1)자신의 신분을 알아야 한다. 
사망에서 벗어나 예수의 생명을 소유한 자이다.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1:26-27,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 죄가 우리를 주장할 수가 없다.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예수 그리스도를 먹어야 한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묵상하는 것이다. 거절할 힘을 키워야 한다. 힘이 없으면 끌려 간다.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해서... 힘을 보강해야 한다. 방법은 말씀을 먹고, 주님의 묵상해야 한다. 

히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열린 돌문! 거기에 머물지 말고 나오라. 너는 이제 자유함을 받았다. 죄의 종이 아니다. 의의 종이다. 너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려라. 우리의 진정한 자유가 되시는 예수님을 붙잡고 따라가고 묵상하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