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주일] 예수 부활 우리의 희망 (고후 4:7~11)

  • 잡초 잡초
  • 396
  • 0

첨부 1


예수 부활 우리의 희망 (고후 4:7~11)


청룡기 고교 야구 결승전이 열렸습니다. 9회말 타자가 홈런을 치므로 역전승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때 관중석에 앉아있던 부산에서 올라온 한 아주머니가 환호를 지르며 너무 기뻐서 꾸뻑 넘어가버렸습니다. 
주위 관중들은 홈런 타자의 어머니인 줄 알고 얼마나 좋으면 저렇게 꾸뻑 넘어갈까? 했는데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홈런 타자의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아들은 후보 선수였지만 홈런 타자로 말미암아 청룡기 대회 우승하므로 
자기 아들이 대학에 들어갈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내가 친 홈런은 아니지만 예수 부활은 
우리 인생에 대 역전 드라마를 안겨다 준 인류 역사 최대 홈런사건입니다.
예수 부활 사건은 인류 역사뿐 아니라 내 인생에도 역전 드라마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대학 정도가 아니라 천국갈 길이 우리 앞에 열렸습니다.
할렐루야 예수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사망의 권세에서 승리했습니다. 
예수 부활은 바로 우리의 부활이요 우리의 승리요 우리의 희망입니다.
예수 부활 바로 대구의 희망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 사람들은 예수 부활의 사건을 꾸며낸 이야기 픽션이라고 합니다.
허구라고 합니다. 신화라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역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고린도서의 저자 사도 바울은 고전15장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인생 최대의 선물, 복음의 화운데이션 - 근본으로서
성경이 말하는 예언적 사건이요 역사적 사건이요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현재적 사건이라고 변증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부활의 생명을 믿기 때문에 
오늘 본문말씀의 바울의 고백처럼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라 합니다. 

예수 생명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예수 생명 부활의 생명이요 역동적인 생명이기에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합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꺼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고 우장춘 박사의 장례식 후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책상 서랍에서 쪽지 하나가 나왔습니다. < 아무리 짓밟혀도 다시 피어나는 민들레 처럼 >
제일교포로서 일본 학교에서 조센찡이라 하며 멸시 천대를 받을 때마다 그래 아무리 짓밟아라 
그래도 나는 민들레처럼 다시 피어날꺼야! 그렇습니다.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는 역동적인 생명을 가진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1947년 2월 8일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의 백주년 생신 기념일 날, 
축하 행사로 에디슨이 죽었을 때 잠가 놓았던 그의 책상 서랍을 열었습니다. 
거기서 나온 물건 중에 특별하게 보이는 종이가 한 장 있었습니다.
그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캄캄한 곳에 떨어졌을 때는 요나를 생각하여라 
요나는 그 캄캄한 뱃속에 떨어졌지만 끝내 아무 이상이 없이 살아났다 ]
우리도 부활신앙으로 삶의 문제들을 풀어나가시기 바랍니다. 
삶이 고통스럽습니까? 고난 가운데 좌절하고 낙심하고 있습니까? 
대구 경제가 너무 어렵다고 합니다.  
대구의 거리가 너무 어둡다고 합니다. 
대구 교세는 전국 최하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하던 대구의 영광이 어디로 갔습니까?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문호 <솔제니친>이란 분이 있습니다. 
<수용소군도>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어 이름은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러시아에 공산혁명이 일어나 레닌이 정권을 잡았을 때 솔제니친은 어린아이였습니다. 
매일 수십 명, 수백 명씩 끌려가 학살 당하고 시베리아로 추방당하는 가운데 
온 나라가 공포 분위기에 빠지고 온 땅이 아수라장으로 변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 솔제니친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지만 러시아 혁명사를 공부했으며. 
오늘날 그는 그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로 존경받고 있는 지성인입니다. 
그가 수십 년 동안 러시아 혁명사를 연구한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불과 반세기 만에 6,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던 
참담한 악마 같은 공산주의 혁명의 비극이 왜 러시아에서 일어났을까?」 
1983년 미극 템풀톤에서 강연을 하였을 때 

그는 여기에 대한 결론을 의외로 간단하게 내렸습니다. 
솔제니친이 어릴 때 
이러한 재난 속에서 어른들이 앉아서 주고받는 말들을 들었습니다. 
그 말들이 너무나 인상적이라서 어른이 되어서도 그 말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야,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야.” 
바로 이 말이 그가 템풀톤 강연에서 들려준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하나님 떠난 인생 파멸과 고생 밖에 없습니다. 
요15:5절에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고 합니다.
혹 대구 교회가 하나님을 떠나고 있지 않습니까?
   
대구 교회가 예수 생명만 붙들고 있다면 반드시 대구가 회복될 줄 믿습니다. 
예수 생명 부활의 생명 역동적인 생명이기에 
예수 부활은 바로 대구의 희망임을 믿습니다.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내 속에 예수 생명, 부활의 생명이 있다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것 다 놓쳐버리고 잃어버린다 해도 
예수 생명만은 꼭 붙들고 있기를 바랍니다. 
홍난파 장로의 봉숭아란 가곡 아시죠? 3절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과 환생키를 바라노라 
예수 생명만 곡 붙들고 있으면 때가 되면
이렇게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줄 믿습니다. 

가슴 속에 생명이 약동한다는 것은 꿈이 있다는 말입니다.
약동하는 생명에서 나오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맙니다.

26살난 청년이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며 청천 다락원 정상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살려 달라고 부를짖었습니다. 
정상에서 보면 정면은 바로 대구 스타디움 쪽이고 대구 수성구 쪽이 보입니다.
그러데 살려달라고 부르짖는데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들고 
당시 대구가 120만 인구였는데 대구의 120만 영권 달라고 부르짖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인기척이 나니 손이 절로 내려와버렸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 아~ 아까운 청년 한 사람 버렸군 ” 하지 아니할까 이 생각이 더니
손이 절로 내려와 버렸습니다. 

그러나 또 살려달라고 기도하다가 손이 올라가 대구의 120만 영권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부르짖다가 부르짖다가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죽지 않고 35년 만에 대구 스타디움 중심에 섰습니다.
예수 생명 붙들고 꾼 꿈은 반드시 이뤄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수 부활의 생명 붙들고 대구의 희망을 꿈꾸는 대구 교회가 되시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예수 생명 부활의 생명 역동적인 생명입니다.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꺼구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부활의 생명 즉 역동적인 생명을 덧입을 수 있습니까? 

1. 부활의 주님을 높여야 합니다. 주의 이름을 높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다시 사셨다는 것을 믿고 
부활의 신앙을 믿는다면 우리에게 부활의 신앙고백이 터져 나오고          
나아가 우리의 삶의 문제를 부활의 신앙으로 풀어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국 설교가 <생스터> 목사의 이런 글이 있습니다. 
그는 고령에다 전신마비로 말도 제대로 못한 체 부활절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곁에 있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오늘 부활주일이구나! 부활절 아침에 일어나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큰 소리로 한번 외치고 싶은데          
아무리 부르짖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기가 막히는구나.          
그러나 딸아, 이 보다 더 기가 막히는 사실이 있단다.          
그건 목소리가 있는데도 「예수 부활하셨다」며 
소리치고 싶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란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눅24:에 나오는 고향으로 낙향하는 두 제자와 같이 
예수님 부활하셨는데도 삶에 문제 앞에 낙심하고 있다는 것 
또한 더 기가 막힌 일인 것입니다. 
행17:에 보면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를 보고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이란 세상을 뒤집어 놓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바울과 실라만 그렇게 불러 진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의 별명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세상을 바뀌어 놓을 수 있었던 저력은 
바로 저들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시다. 라는 고백과 외침이었습니다. 
예수 부활하셨다 ! 고백하고 전하고 외칠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십자가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10절 [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라 ] 무슨 말입니까? 

바로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라고 합니다. 즉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의 신앙을 가진 자라는 말입니다. 
십자가의 신앙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1) 먼저 고통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25시의 저자 의 잠수함 토끼 이야기처럼 
먼저 고통할 줄 아는 자가 바로 십자가의 신앙을 소유한 자입니다. 
2) 주를 위해 고난의 댓가를 치를 각오를 말합니다. 
영국 성경학자 <마쉬>란 분이 성경을 연구하다가 귀한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왜 예수님의 제자들이 십자가 사건 후 뿔뿔이 흩어졌느냐? 한 가지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 한가지 사실이란 눅24:25 [미련하고 선지자의 말한 것을 을 드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을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먼저 고난이 있어야 영광이 있다는 것 바로 성경의 흐름입니다. 선고난 후영광 ! 
골짜기가 높으면 뫼가 높습니다 ! 우리는 고난의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하고 주님을 따를 때 
영광의 날이 닥가올 줄 믿습니다.

<결론>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 자에게 
질그릇에 담긴 보배같은 부활의 생명, 역동적인 생명을 주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역동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역설적인 진리의 수호자가 되어 세상을 바꾸어 놓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까?
1. 예수의 이름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예수 부활하셨네 ! 
2. 십자가를 지고 주님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먼저 고통할 줄 아는 자, 주를 위해 고난의 댓가를 치를 각오를 하시기 바랍니다.
        선고난 후영광에 눈이 뜨여지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