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주일] 아름다운 수고 (고전 15:55~58)

  • 잡초 잡초
  • 786
  • 0

첨부 1


아름다운 수고 (고전 15:55~58)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5)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7)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58)
<고린도전서 15장 55~58절>

<목회기도>
사랑의 하나님!
예수님을 십자가에 고난 받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심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님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해
믿는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죄의 종이 되어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들을
의롭게 하시고 자녀 삼아 주심 감사합니다.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를 흔들고 넘어뜨리려 하는 대적들 앞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의 주인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하고 좋은 부활절에, 은혜로운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몸이 아파 치료중이고 고통을 참는 중인 환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기억하시고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며 
천국을 향한 소망과 기쁨이 가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회복되는 기쁨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군대에, 객지에, 외국에 나가 있는 우리교회 성도들 … 
어느 하늘 아래 있든지 평안함과 은총의 돌보심으로 붙잡아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부족한 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될 때
힘 있고, 능력 있게 전해지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다”(Jesus is alive)는 말은 언제나 현재형으로 표현합니다. 
부활은 이천년 전에 있었던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에도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현재형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주인공으로 / 약속하신 성령으로 
오늘 우리와 함께 예배드리는 이 자리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고백하고 증거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얼굴에 절반 이상 화상을 입어 살이 시커멓게 된 40대 중반의 어느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갓 고등학생이 된 딸이 있었습니다. 
그 딸은 어릴 때부터 엄마의 화상 입은 얼굴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엄마와 같이 외출하기도 꺼려하고 친구들이 볼까봐 학교에 찾아오는 것을 가장 싫어했습니다. 
어느 날 집에 온 이모가 엄마에게 함부로 하는 조카를 보다 못해 엄마의 얼굴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이야기 했습니다. ‘네가 어렸을 때, 네가 난로를 붙잡고 일어나려고 했었다.
그 순간 난로가 흔들렸고 난로 위에 얹어둔 주전자가 너에게 쏟아지려고 했다. 
그 때 네 엄마가 달려들어 너를 구하려고 하다가 엄마의 얼굴이 저렇게 된 거란다’ 
이 이야기를 들은 딸은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나 때문에 엄마 얼굴이 저렇게 되었구나!’
그 사실을 알고부터 아이는 엄마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 김응국 지음, 『십자가』, 규장, 참조> 


여러분은 찌그러진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얼굴이, 꼬부라진 아버지의/어머니의 허리가 부끄럽습니까?
헛소리도 하고/했던 얘기 또 하고 … 답답한 부모님이 부끄러우십니까?
늙고 상한 몸을 가진 부모가 부끄럽습니까? 그런 자식을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마음에 담아 두시고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절은 삶은 계란을 나눠주는 날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일 년 52주 주일 중 하나’로만 생각합니다.
부활절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인사는 하지만 무덤덤하게 지내는 분도 계십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예수 믿으면서 열심히 주를 섬기지 못하고 …
신앙생활을 건성으로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해 주었는지’모르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 모두가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기도할 줄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이 글자를 모르거나 책 읽기를 싫어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어떤 사랑을 보이셨는지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어야 했는데, 나를 대신하여 예수님이 죽으셨고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내셨습니다. 
새 생명을 허락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이 부활절에 드리는 예배를 통해
구원의 감사와 부활과 영생의 소망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귀한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4절에,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4)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오늘 우리가 여기 모일 이유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전 세계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도 다 거짓입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이는 모임이 아니라 사기 당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모임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지금 강단에서 사기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당당하게 선포할 만큼 분명하고 확실하게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깨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50) 고 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의 후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 값을 죽음으로 치루시기 위해(롬6:23)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 
예수 믿는 우리 모두도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 믿는 우리의 죽음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 믿는 우리의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고 했습니다. 믿습니까?
이 진리를 믿는 사람은 이 땅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장차 자신이 들어갈 천국에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욕심이나 노력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50절에, “ …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고 했습니다. 

세상의 힘, 세상의 어떤 것을 동원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스스로 유일한 구원의 길 되신 예수님 (요14:6)
우리의 죄 값을 치루신 예수님 (롬6:23)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고 (요3:16)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되고 (요1:12)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 (빌3:20)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허무하게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우리를
멸망이 없는 영원한 존재로 변화시켰습니다. 

항상 주의 일에 … 힘쓰라

인류 최대의 문제는 죽음입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 앞에서 떨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잘 난 사람이든, 많이 배웠든, 돈을 많이 가졌든 …
어느 누구도 죽음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집사, 권사, 장로, 심지어 목사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전에 우리 교회 부흥회를 인도해 주셨던 목사님 한 분이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신호대기 앞에 차가 서 있어서 그 뒤에 여유 있게 차를 대셨답니다. 
그런데 뒤에서 벤츠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고 합니다.
얼마나 쏜살같이 달려왔으면 목사님의 차 뒤쪽은 다 찌그러지고, 
앞에 있던 차와도 부딪혀서 결국 목사님의 차는 폐차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 받으셨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회복되시고 나서 제가 만났습니다. “고목사, 나 죽을 뻔 했어”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우리교회 부흥회 인도하시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잖습니까?”
“놀리지 마, 죽을 뻔 했어. 
고목사 누가 뭐라 하든지 큰 차 타고 다녀. 좋은 차 타고 다녀.”하셨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는 살지만 죽을 뻔 한 것에 놀라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위험 앞에서 하는 말이 “죽을 뻔 했네. 죽는 줄 알았네”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죽음의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쳐 승리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신분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옷 입은 사람(갈 3:27)이 되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롬 5:1)
영생과 천국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요 3:16, 빌 3:20)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의 신분을 얻었습니다.(벧전 2:9)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요 1:12)
사망 권세를 이긴 승리의 사람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죽는 것이 안타깝고 죽기 싫어하지만 더 이상 죽음의 권세가 우리를 이길 수 없고
죽음이 우리에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극복한/죽음을 뛰어넘은 승리자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믿음이, 빛 되고 소금된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이,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58절에 
“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고 했습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왜 성경에 ‘항상’이라는 말이 있을까요? 흔들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잘 하는 것 같은데 흔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찬양대 잘 하다가 누가 뭐라고 한 마디 하면 
흔들거려서 ‘안 해’라고 합니다. 따라서 합니다. <나 때문에‘항상’이 들어있다>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 앞에서 돌멩이를 들고 큰소리 쳤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어떤 힘을 붙들고 나가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었습니다.(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어느 아빠가 아이에게 다윗과 골리앗 얘기를 들려주면서
“얘야, 다윗 참 용감하지?”라고 했더니 아이가 “아빠, 다윗이 뭐가 용감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다윗에게 덤벼든 골리앗이 용감한 거잖아요.”했답니다.
다윗이 가진 믿음은 부활을 믿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여러분의 믿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활과 영생을 믿는 우리는 두려워 할 것 없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습니다.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가진 우리는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은 한결 같음을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짝 잘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선교회 회장일 때 반짝 잘 할 수 있습니다. 잠깐 고난주간에 기도하는 것 누가 못합니까?
평상시에 늘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고난주간에 열심히 기도하고 부활절만 되면 기도하기를 방학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내년 고난주간에 기도를 개학합니다. 이제부터는 항상 기도에 힘쓰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항상 힘써야 할 하나님의 일/주의 일은 
예수님을 잘 믿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29절에,
“ …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 ”(요 6:29)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주의 일은 복음전파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 …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마 28:19~20)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주의 일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마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몸과 마음을 드리는 예배를 통해 … 
시간과 재능을 드리는 봉사를 통해 … 
물질을 드림을 통해 …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의 향기를 풍김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허물을 덮어주고 이해해주는 용서를 통해 … 
시간과 재능을 주는 섬김을 통해 … 
나눔을 통해 빛 되고 소금됨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항상 힘써 해야 할 주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안주하거나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해’, ‘더 이상 어떻게 해’
‘나 정도만 해봐, 나만큼 하는 사람도 드물어’…
이런 생각 때문에 더 열심 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지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 …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고 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주의 일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수고를 기억해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고 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죽는 그 순간에 이르러도 충성’하라는 뜻입니다. 
“ …. Be faithful, even to the point of death … ”-NIV 

‘충성’은 변함없는 것입니다. 한 번 충성하기로 다짐했다면
배신 없이 / 변함없이 하나의 주인만을 따르는 것이 충성입니다. 


‘절영지회’(折纓之會)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갓끈을 끊은 연회(잔치)’이라는 뜻입니다. 
중국 초나라 장왕이 전투에서 승리한 후 많은 장수를 불러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연회장의 등불이 꺼졌습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여인의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비명의 주인공은 왕의 애첩이었습니다. 한 장수가 어둠을 틈타 그녀를 희롱한 것이었습니다. 
왕의 애첩은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자신을 희롱한 중신의 갓끈을 잡아 뜯었습니다. 
그리고는 왕에게 “저를 희롱한 사람의 갓끈을 끊었으니 
불을 켜고 그 사람을 잡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장왕은 “불을 켜기 전에 모든 신하와 장수들은 자신의 갓끈을 끊어 던지라.”고 했습니다. 
다시 불이 키고 난 뒤 보니 모든 사람들의 갓끈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결국 왕의 애첩을 희롱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찾아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 후 몇 년 뒤 전쟁이 벌어졌을 때, 장왕은 적에게 완전히 포위되었습니다. 
그 때 적군의 포위망을 뚫고 왕을 구하러 온 장수가 있었습니다. 
그 장수는 목숨을 걸고 왕을 구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장왕이 그 장수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을 구하러 온 이유를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장수는 몇 해 전 연회 때, 
왕의 애첩에게 갓끈을 뜯긴 그 신하였습니다. 
왕이 자신을 살려준 왕의 은혜를 잊지 않고
전쟁터에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충성을 다해 왕을 구출해낸 것입니다.

그 왕은 충신을 둘 줄 아는 성군이었고 그 장수는 죽기를 각오하고 왕을 지켜낸 충신이었습니다.
‘충성’이란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예수님 때문에
내가 살게 되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은혜를 받은 사람은 살려준 분을 위해 죽기를 다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엄마의 얼굴이 창피했던 딸이 엄마가 목숨을 걸고 자신을 살리고 
얼굴이 찌그러져 한평생 살아오셨다는 것을 알고
엄마를 부끄럽게 여겼던 것을 뉘우치며 통곡했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영적인 적진을 향해 죽기를 각오하고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예수 이름 때문에 … 무시당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 앞에서
날아오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예수님을 방패로 삼으신 적은 없는지요?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 예수님 때문에, 예수 믿기 때문에 
참은 일이/고난당하신 일이 있는지요?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상처받았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 상처가 예수님을 위해 충성하다가 생긴 영광의 상처입니까?
아니면 사람끼리 부딪히며 자존심 상해서 받은 상처입니까?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충성을 다해 ‘항상’, ‘더욱’ 주의 일에
‘헛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수고’에 힘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몰라줘도 … 당장 열매를 거두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결코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 …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 ”(마 25:21) 
라는 칭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부활절의 기쁨과 감사로 예배드리는 자리에 있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항상 주의 일에 힘쓰며”, “더욱 힘써”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연약한 저희들을 붙드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의 소망을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