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주일] 다시 다신 예수님 (마 28:1~10)

  • 잡초 잡초
  • 234
  • 0

첨부 1


다시 다신 예수님 (마 28:1~10)

    
설교내용       
오늘 아침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마음에 오시길 기원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생명의 기운을 주고 축복을 주는 모든 기능들이 부활하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축복이 있습니다. 부자 되는 것, 출세하는 것, 오래사는 것, 재능이 많은 것, 그러나 부활의 축복 받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은 일시적인 것이요. 허무한 것입니다. 인물이 잘나서 좋은듯하나 그것을 잃을 땐 그 잘난 것 때문에 더 허무한 것입니다. 

언젠가 저희마을에서 아주 똑똑 하고 인물이 잘 생긴 형이 있었는데 그 어머니가 고생, 고생하면서 그 아들 뒷바라지를 하고 대학을 보냈습니다. 그때 대학생들은 교복이 있었는데 그 교복을 입고 방학 때 내려오는 것을 보면 얼마나 멋지든지 모두가 부러워했는데 고향친구들과 물놀이 갔다가 사고를 당했어요. 어머니가 얼마나 울어 대는지, 동네 사람들이 어쩌면 좋아 아까운사람 죽었다고, 그 어머니 딱해 죽겠다고, 잘난 것이 더 큰 슬픔을 가져오고 똑똑한 것이 더 큰 허무감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에 미련을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기에 1년이라도 더 살아야겠다는 것이지요. 하루라도 더 살아야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욕망이 더 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쌓아 놓은 것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누리는 것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잘난 사람들입니다. 세상사는 것이 지겹도록 힘들고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 견디기 어려운 사람은 세상에 큰 미련이 없어요. 모든 것을 어서 빨리 끝장 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모두가 허무한 것이고 모두가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죽지 않는다. 죽어도 다시 산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이것을 알고 이것을 믿고 사는 사람은 세상을 사는 맛이 달라집니다. 하루하루가 지겹지만 희망이 있습니다. 다시 살면 이 지긋, 지긋한 고생도 끝날 것이기 때 문입니다. 죽음이 다가오는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리지 않으니 하루가 평안해집니다. 사는 것이 힘이 납니다. 여유가 생깁니다. 그래서 자기를 돌아 보고 다른 사람도 돌아보게 됩니다. 사는 맛이 생깁니다.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죽어도 살고 영원토록죽지 않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믿기지 않는 사실을 성경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성경을 믿습니다. 성경에 있는 이야기들이 사실인 것을 믿습니다. 지금까지 성경대로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성경대로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믿음은 자유입니다. 아무도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지난 한 주간 우리는 나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대속해 주신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되새기면서 한 주간 합심기도를 드렸습니다. 모두가 은혜를 받고 힘을 얻었고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끝났다면 우리의 기도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다시 사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모든 일이 예수님의 기일이 되어서 세상 사람들이 하듯이 제사 지낸 것 밖에 되질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주님의 고난에 참여 한 것은 주님과 함께 부활에 참여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오늘성경은 그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이른 새벽입니다, 아직 날이 밝기도 전에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무덤을 찾았습니다. 무덤에 가까이 간 여인들 앞에 무섭고 놀라운 광경이 벌어진 것입니다. 큰 지진이 나고 주의 천사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습니다. 무덤을 지키는 자들은 무서워 떨며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천사가 여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무서워 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 나셨느니라, 와서 그 누우셨던 곳을 보라.”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사셨습니다. 할렐루야.

당시 반대자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 대제사장, 장로들이 모여 의논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은폐하려고 경비병들에게 돈을 주며 거짓말을 하라고 당부하며 온갖 수단을 동원 하였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사실을 막을 수 있습니까? 자기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사람이 살아 돌아다니는데 아니다 거짓말이다. 그는 죽었다. 제자들이 그 시신을 훔쳐갔다, 말이 됩니까? 
요새 아이들 말로 웃기지도 않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우리 신앙은 부활신앙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도덕적으로 바로 되라는 것은 예수를 믿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르침이 있습니다. 세상을 참되게 살고 바르게 살아라, 하는 교훈은 성경이 아니고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오직 여기에만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죄 사함도 구원도 영생도 없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신비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든 것이 신비입니다. 인간이아무리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큰소리쳐도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 가운데 지극히 작은 부분 먼지 같은 부분을 발견하고 좋아 하는 것입니다. 지금 봄이 오고 있습니다. 봄이 오니 모든 만물이 되 살아 나고 꽃이 피고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여러분 봄은 왜 오는 것입니까? 지구가 돌아서요. 지구는 왜 도는데요. 신비입니다.

씨앗을 심으면 그 씨는 죽고 썩는데 신비하게도 그 속에서 새로운 싹이 나오고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어떤 씨앗은 자라서 나무가 되고 어떤 씨앗은 풀이 되고 어떤 씨앗은 채소가 됩니다. 신비 아닌가요. 하나님만이 하시는 신비입니다. 부활도 신비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신비입니다. 과학으로 설명이 안 되고 사람의 상식으로 설명이 안 되는 신비입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몸은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덤에 가고 썩어 없어 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몸을 입고 다시 살아 날것입니다. 그때는 지금 몸이 아닌 영광스런 몸으로 살아 날것입니다. 그러므로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살고, 육으로 심고 신령한 것으로 다시 산다고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15장) 

하나님은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가 부활하게 될 것을 믿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도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논 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부활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논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나셔서 혼자 계시다가 홀로 하늘로 올라 가셨다, 해도 우리는 여기서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가 보다 하면 끝이 납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그분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 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 니하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죽은 자가 말했다면 그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그런데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하신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하는 말씀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습니까? 죽어도 다시 살아 날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 난 것처럼 우리도 다시 살아 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도 부활 할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인도에서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노방전도를 하고 있는데 이슬람교도 한 사람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못 가진 것 하나를 가지고 있소” 그래서 스탠리 존스 목사가 물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메카에 가면 마호메트의 시체가 들어있는 관이 있어서 우리는 정말 그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당신네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에 가도 빈 무덤밖에 볼 수 없지 않소?” 이 말에 스탠리 존스는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것 이 당신네 이슬람교와 우리 기독교의 다른 점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셨기 때문에 무덤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계 종교사상 그 종교의 창시자가 죽었다가 부활한 예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도 복음도 구원도 다 헛된 거짓이 되고 맙니다. 

부활한 우리들은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보좌우편은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요 14장에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할렐루야!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 우리도 있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 하게 될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사셨습니다. 천사의 소리를 들은 여인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얼마나 기뻤을까? 얼마나 감격했을까? 여자들이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합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이 온 장안에 퍼집니다. 원수들은 그것을 막으려고 가진 수단을 다부립니다. 그러나 어찌 막겠습니까? 수백명, 수천명이 예수를 믿고 예수님을 죽인 도시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교회가 세워집니다. 

거기 못 가두네 예수 내 구주, 우리를 살리네 예수내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 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다시 사셨네 

우리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아직도 죽음의 두려움에서 떠는 자에게 소망이 끊어져 고통 받는 자에게 절망과 죄절에 빠진 자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다시 사셨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