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주일] 사망권세 이기신 주님 (사 25:6~8)

  • 잡초 잡초
  • 661
  • 0

첨부 1


사망권세 이기신 주님 (사 25:6~8)

 
2009년도 부활절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첨단 과학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이 예수님의 부활을 별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합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것도 제자들이 본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온전한 생명의 사건입니다. 다만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학 지식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설명에 대해서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 에둘러 말하지 말고 똑떨어지게 설명해 봐라! 우리가 죽었다가 다시 산다는 거냐 만다는 거냐?'
그러나 신앙의 세계는 똑떨어지게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나라를 똑떨어지게 말씀하시지 않고 다만 비유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만큼 조금씩 알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만민을 위하여 연회를 베푸시되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유난히도 잔치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던 아하수에로 왕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가 잔치를 베풀었습니까? 백팔십 일 동안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려고 잔치를 베풀었다고 에스더 1장 4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대체로 사람들은 뭔가를 자랑하고 뽐내려고 잔치를 베풉니다.

그러나 오늘 선지자가 소개하는 하나님의 잔치는 내용과 질에 있어서 사람들이 베푸는 잔치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어디서 연회를 베푸실 것이라고 합니까? 그렇습니다! 이 산에서 연회를 베푸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산이란 시온 산을 가리키는 것이며 오늘에 우리에게 있어서는 바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지난 화요일 저녁 때 친구  장로의 초대를 받고 고급 호텔에 가서 호사스러운 만찬을 즐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연회장 입구에서 안내하는 사람들이 손님을 맞는데 약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무슨 문제냐 하면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이 와서 자기도 들어가겠다고 떼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은 입장이 전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분위기도 좋았고 음식도 맛이 있었지만 입구에서 본 실랑이 광경 때문에 제 마음은 많이 무거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베푸는 잔치에는 초대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잔치에는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외치지 않습니까? 이사야 55장 1절 말씀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하나님께서는 목마른 자들을 오라고 부르십니다. 돈 없는 자도 얼마든지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잔치에는 누구나 올 수 있고, 누구나 와서 먹을 수 있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초대를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의 초대도 무시하면 초대한 사람이 매우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초대를 무시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섭섭하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이어지는 7절, 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리개와 덮개를 제하실 것이라고 선지자 이사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슬픔과 고통을 벗겨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냥 있어도 벗겨 주신다는 말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16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하나님께 돌아가면 슬픔과 고통을 벗겨 주신다는 말입니다. 수건이 얼굴을 덮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간 사람은 얼굴에서 수건이 벗겨지기 때문에 볼 수 없었던 모든 것을 환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잔치에 참석하면 슬픔과 고통 때문에 밝은 빛을 볼 수 없었던 사람들도 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초대에 응하기만 하면 빛을 볼 수 있고 빛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어둠이 지배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사람들을 덮고 있는 가리개와 덮개를 벗겨 주셨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성령의 조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성령이 빛을 비추어 주셔야 비로소 우리가 눈을 뜨게 되고 가리개와 덮개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됩니다.

오늘 선지자 이사야는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사 25:8)
주전 587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이스라엘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궁핍과 고통과 슬픔을 겪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모든 수치를 말끔히 없애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과 그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밝히 들어내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말씀을 이루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왕 노릇하던 사망이 주님의 부활로 멸망을 당했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사망이 공격조차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망은 단지 가리개와 덮개가 덮여 있는 죄인들 앞에서 왕 노릇했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았습니다. 때문에 사망은 더 이상 왕 노릇할 수 없습니다. 사망은 무덤이 주님을 삼킬 줄 알았지만 오히려 주님은 그 무덤을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사망은 아직도 죄를 쏘고 있지만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모든 죄를 벗어버렸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많은 슬픔과 고통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근심하고 걱정합니다. 또 때로는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 슬픔과 고통을 다 아시고 친히 우리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사망의 문제까지도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슬픔과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마땅합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는 이 세상을 이기신 주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망이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도 우리는 주님과 함께 개선가를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신 주님과 함께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복된 하늘 잔치에 참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