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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고전 15: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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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없으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고전 15:16-19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6-19)

가끔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를 연구하는 이들 가운데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무시하고 인성(人性)만을 중시하다가 중요한 신앙의 진리를 놓치는 사람들을 봅니다. 흔히 대두되는 문제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사건입니다. 그들은 XY염색체의 결합이 없이 어떻게 생명체가 만들어져서 이 세상에 나올 수 있느냐는 반항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상식 안에서만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의 사건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완전히 죽은 생명은 다시 살 수 없다는 과학의 증거를 들여댑니다. 이런 신화적 표현은 현대 문명의 빛 아래서 새롭게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류의 신학을 소위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범주 안에 묶어 분류합니다. 인본주의 신학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학문적 범주나 과학의 영역 아래에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 자체가 이미 과학의 영역을 떠난 말씀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신비의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믿는 것입니다. Seeing is believing이 아니라 Believing is seeing입니다. 믿으면 보이는 것이 신앙의 세계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은 역사적 증거가 뚜렷한 사건입니다. 
첫째는 로마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이나 히브리역사를 서술하는 사람들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무덤에 장사된지 36시간이 지난 후에 예수님께서 묻히셨던 곳은 빈 무덤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시체를 훔쳐 다른 장소에 매장하였을 것이라면서 그 시체를 찾으려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예수님의 시체는 그 이후에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셋째로 성경은 역사의 기록인데 여러 사람의 의해 예수님의 부활을 너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넷째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예수님을 목격한 부활의 증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름 없는 아낙네들로부터 예수님의 최측근 제자들까지 수 백 명에 달합니다.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면서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부활신앙이 없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부활신앙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코 부활신앙이 무시되거나 경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역사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역사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만남이 부활사건에 존재합니다. 연속성은 부활의 증거들에 의해 입증되지만 불연속성은 믿음의 세계에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3년간 주님을 따라다녔던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분명한 신앙관을 갖고 평생을 부활의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메섹 도상에서 영적으로 만난 후에 오직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으면 평생을 증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일생을 바쳐 부활의 증인이 된 까닭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사도들은 부활의 생명이 있었습니다. 당신에게는 부활의 생명이 있습니까? 사도들은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주관적 환상으로 본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세상에 선포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지금 보려고 하는 동영상은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기 위해 어떻게 살았나를 보여줍니다. 안드레는 X형 십자가에서 순교했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했습니다. 의심 많던 도마는 적대자들의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야고보는 참수되었습니다. 바돌로매는 알메니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피부가 벗겨진 채 십자가에서 순교했습니다. 마태는 에티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도끼로 참수되었습니다. 야고보는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참수되었고 빌립은 소아시아 브르기아에서 전도하다 기둥에 매달려 순교하였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트림을 당해 순교하였습니다. 부활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이런 용기가 없었을 것입니다. 부활의 생명이 있었기에 기쁨으로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암말기 환자의 호스피스 봉사자인 임윤재 집사의 간증이 국민일보에 실렸습니다. 지금 7년째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임집사의 간증은 감동적입니다. 그는 암수술을 세 번이나 받은 사람입니다. 첫 번째 수술은 2001년에 받은 방광암이었습니다. 항암치료를 8개월이나 받았습니다. 그 후 3개월이 지났을 때 다시 재발하여 수술을 받았고 2007년 2월에는 직장암수술까지 받았답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재발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제게는 그것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부활신앙이지요. 주님의 부활은 제게 더 큰 소망을 꿈꾸게 합니다.” 그는 지금도 췌장암 말기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봉사원으로 최선을 다한다며 “나는 말기암 환우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는 길동무”라고 간증합니다. 부활의 생명력을 갖고 있는 사람의 간증입니다. 

둘째로 부활을 목격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부활의 능력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겁이 많았던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두려움을 모르는 전도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예수님을 증거 하게 될 때에 변화되는 생명들을 보았습니다. 부활로 새로운 피조물이 낡은 피조물에 들어가서 새생명을 소생케 하는 부활의 능력이 제자들에게 있었습니다. 부활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영혼을 살려내는 생명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절망과 좌절 가운데 있는 이들을 소망과 함께 세움을 입게 합니다. 질병과 저주를 끊어버리고 행복과 축복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이 부활의 능력은 수많은 죄인들을 회개시켜 새사람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낭패와 실망당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갖게 합니다. 

지난 성금요 연합예배에 설교하신 이용규 목사님의 간증이 감명을 주었습니다. 부친이 한학자여서 교회를 다닌다고 어찌나 반대했던지 아들을 기둥에 묶어 놓고 매질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굽히지 않고 열심히 교회를 다녔답니다. 나중에는 부모님도 형제자매들도 모두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나서 집안에 흐르던 저주의 기운이 싹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처음엔 잘 자라다가 죽고, 집안 어른들이 사고를 당해 죽곤 했는데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그 무서운 저주의 끈들이 모두 끊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부활의 사랑이 넘쳐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사랑의 능력이 샘솟듯 합니다. 사도 요한의 고백을 들어봅시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 4:7-9) 

어제(4월11일) 우리 교회 이상래 목사님의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미국에서 오신 정광섭박사의 권설이 있었습니다. 86세의 할아버지신지라 두서없이 긴 설교를 했습니다. 그분이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가 감동적이었습니다. 42세난 메아리(Mary)라는 여자목사님의 장례식에 갔었답니다. 그 여자 목사님은 두 아이의 엄마요, 80여명의 성도가 모이는 교회의 담임목사였습니다. 췌장암과 직장암이 말기가 되었다는 진단을 받을 때 의사는 6개월밖에 못살 것이라 예견했습니다. 그런데 3개월이 되자 병세가 악화되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 여자목사는 자기가 죽기 전에 장례식을 갖기로 했습니다. 200여명의 친지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장례식을 거행합니다. 42년 살면서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산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벌리고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모두 용서합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용서합니다. 나의 잘못도 모두 용서해주십시오”라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죽기 전에 용서도 하고 용서도 받아서 평화의 몸으로 예수님께 가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저 뒤에는 카네이션 꽃송이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아직도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직도 용서를 못한 이가 있습니까? 오늘 지금 용서하십시오. 저 뒤에 있는 카네이션 꽃송이를 갖다 주며 용서한다 말하십시오. 두 명이 있으면 두 개를 가져가서 주십시오. 다섯 명이면 다섯 송이를 가져가서 용서를 하되 오늘을 넘기지 마십시오. 기독교신앙의 행위는 깨닫는 즉시 행하는 것입니다. 미루지 마십시오. 나의 장례식이 있었던 날 모든 사람의 모든 것을 용서하십시오.” 그날 수북이 쌓여있던 카네이션 꽃송이는 그렇게 다 소모되었답니다. 훌륭한 장례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부활의 생명을 가지십시오. 부활의 능력을 받으십시오. 부활의 사랑을 나누십시오. 이것이 여러분께 드리는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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