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십자가의 도를 아십니까? (고전 1:18~25)

  • 잡초 잡초
  • 425
  • 0

첨부 1


십자가의 도를 아십니까? 
  

18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할렐루야! 
  
사람은 자기가 관심을 갖는 분야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집니다. 신발 가계를 하는 분은 길 다닐 때 사람들이 신은 신발에 관심을 갖게되고 식당을 하시는 분은 길가에 어떤 식당이 있나가 보이게 됩니다. 미용실을 하시는 분은 사람들의 머리 모양을 보게 된답니다. 

저는 뭐가 보일까요? 저는 교회 십자가가 눈에 보입니다. 어딜 가면 교회가 어디 있나? 그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어딜 가면서 교회가 몇 개가 보이는가 세면서 가 본적도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보면 반갑습니다. 여행을 하다가 시골에 교회 십자가를 보면 얼마나 반가운지요. “야! 이 마을에도 교회가 있구나! 주님 감사합니다!”하게 됩니다. 왜 그렇죠? 그 마을에도 구원받은 성도가 있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국을 가면 좀처럼 십자가를 보기 어렵습니다. 가정교회는 십자가를 달지 도 못하고 삼자교회는 십자가를 세우긴 하는데 우리나라처럼 네온으로 해 놓은 곳은 연변 지역 이외에서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십자가를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 수원노회에 어느 목사님은 아파트 상가에 건물을 얻어 개척했는데 제가 가보니 교회 종각을 못 세웠습니다. 이유를 물어 보니 상가 주민들이 반대를 해서 세우지 못하였답니다. 

또 어떤 교회는 십자가 탑을 세우긴 했는데 주민들이 난리를 쳐서 십자가 네온을 못 켠다고 합니다. 주민들이 켜지 말라고 진정을 하고 관리 사무실에서 난리랍니다. 아파트 주민이 밤에 창문 밖으로 붉은 십자가가 보여 싫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데 그 아줌마가 십자가 목걸이를 하였기에 반가워 ‘어느 교회 나가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교회를 안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그 십자가 목걸이를 했냐고 물었더니 그냥 멋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가가 장식품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과거에 서울에서 올림픽 기간 동안에 교회 십자가를 켜지 못하게 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 각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 김포 공항에 내리다 보면 십자가 네온이 무수하여 한국을 기독교 나라로 오해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중동국가들이나 다른 종교국가가 한국과 교류를 하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일부러 하루 종일 십자가를 켜놓았습니다. 
십자가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게 보여도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의 사인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십자가는 구원의 표시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고 믿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살인은 큰 죄입니다. 간음도 큰 죄입니다. 그러나 그런 죄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악한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고 십자가를 바라보면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18절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아멘입니까?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의 핵심이 십자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십자가의 도는 어떤 것입니까? 
오늘 봉독한 말씀을 살펴보면 몇가지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줍니다. 
  
1.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18절을 보세요.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23절도 보세요.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보는 시각이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멸망하는 사람들이 누굽니까?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십자가의 진리가 미련해 보입니다. 교리가 바보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유대인들은 거리끼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구원의 언약을 모르니 미련해 보이는 것입니다. 
  
17세기에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중에 볼테르라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없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책을 쓰고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기독교가 오랜 세월에 건설되었지만 나는 앞으로 50년 만에 기독교를 허물겠다. 그리고 앞으로 100년 안에 성경이 한 권도 없도록 만들겠다.”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요? 그의 집을 <스위스 성서공회>에서 사들여 성경 창고로 사용하여 그 집의 방과 마루에는 성경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또 그는 노년에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아!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 받았다. 나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지옥으로 떨어진다.”하며 두려워 떨다가 죽었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핵심인 기독교는 겉으로 보면 미련한 것 같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무너트릴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십자가의 도에는 생명의 신비가 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죽어도 다시 살게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들은 죽을 때 그런 두려움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3절에 말씀하십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할렐루야! 예수님을 믿으면 살 동안에도 복이 있고 죽을 때도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를 모르는 사람들은 죽음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자도 죽음을 면하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죽습니다. 
중국의 진시황제도 그랬고 세계적인 인물들 허다 한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프랜시스 뉴톤이라는 무신론 학자도 “나는 하나님께 저주받아 무서운 저주의 고통, 죄의 고통을 당하는구나.”하며 떨다가 죽었습니다. 

사람은 이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 무기는 사단이 갖고 있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세력은 늘 죽인다고 협박합니다. 성경에도 당시 종교지도자들 뿐 아니라 악한 세력들은 예수님과 그를 섬기는 사람들을 늘 죽이려고 애를 씁니다. 
  
사단은 죽이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기에 다 포기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자기들이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마치 자살골을 넣은 겪이 된 것입니다. 
그 십자가가 사단의 세력을 멸하는 것인 줄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 십자가는 창세기 3장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뱀의 후손이 여인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고 여인의 후손은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했습니다.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이 십자가 죽음입니다. 그러나 여인의 후손인 주님은 부활하시어 사단의 사망권세를 이기시어 그들의 머리를 박살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기에 십자가만이 사망 권세를 이길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아멘? 

  
2.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은혜가 주어지나요? 먼저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죄 짐이 벗겨지게 됩니다.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등산해 보셨나요? 가다가 중간에 휴계소에서 내려놓으면 날아갈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수고하고 무거운 죄 짐이 벗겨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무거운 죄 짐이 벗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과거 우리 교회 나오시던 어떤 집사님이 병원에서 후두암일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큰 병원에 빨리 가서 검사해 보라 해서 갔더니 조직 검사를 하자고 하더랍니다. 일주일 후에 오라하니 그 일주일동안 완전 초죽음이 되더군요. 새벽기도도 나오시더라고요. 결국 일주일 후에 의사가 암이 아니라고 했답니다. 그때 제게 전화를 해서 소식을 전했습니다. “목사님! 살았어요.” 
저도 그 소식 듣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암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도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는데, 우리를 영원한 심판에 몰아넣는 죄에서 해방을 받으면 그 기쁨은 한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의 짐을 벗는 방법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23~24절을 보세요.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아멘? 
  
전주시 화산동에 가면 외국인 묘지가 있답니다. 거기 가보면 군산 영명고등학교 학생들이 성금을 모아 세우 기념비가 있습니다. 
바로 ‘데이비스’ 선교사의 기념비입니다. (사진) 
본명은 ‘린니 데이비스 해리슨’으로 한국에 파송되어 최초로 순교한 여자 선교사입니다. 
그녀는 1896년 한국 땅에 와서 군산에서 주로 어린 아이들과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했습니다. 후에 결혼하여 전주에서 선교하고 있을 때 서문 밖에서 약방을 개설하고 환자를 치료하면서 선교를 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를 파송한 선교부가 이곳에 병원을 짓고 본격적인 의료선교를 하게 됐는데 그곳이 바로 전주 예수병원입니다. 
  
이 데이비스 선교사는 누구보다도 전도의 열정이 강했습니다. 그는 전북지역을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전도했는데 한해에 1885명을 전도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분은 몸을 돌보지 않고 전도하는 일에 목숨을 바쳤습니다. 특히 이분은 어린이를 사랑해서 혼신을 다해 어린이 환자를 돌보았습니다. 
전주 예수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린이들을 정성을 다해 돌보다가 약해진 몸이 열병에 전염이 되어 41세의 나이로 1903년 6월 20일 이 땅에서 순교했습니다. 
그 기념비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바쳐 선교한 여장부” 
  
이분이 이렇게 충성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릴 적에 어머니에게 배운 십자가의 사랑 때문이었답니다.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가르쳐준 십자가 사랑에 감격하여 전도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선교사가 되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충성을 해도 끝까지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죽기까지 주를 따르고 헌신하고 충성할 만한 능력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를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면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우리에게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토록 사악했던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킨 것은 무엇입니까? 학식입니까? 돈입니까? 권력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 복음이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사도 바울은 학식으로도 남부러울 것 없는 자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베냐민 지파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주님을 만난 후 다른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갈 6:14를 보세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나는 오늘 여러분도 이런 구원의 기쁨과 구원의 감격을 맛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기쁨, 이 감격은 돈으로 사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을 때만 오는 기쁨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3. 십자가의 도는 천국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저는 이슬람교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면서 깜짝 놀란 일이 있습니다. 
모슬렘 경전인 ‘코란’(꾸란)에 “예수를 믿으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코란에서 참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예수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기록을 살펴보면, 성경에 나오는 것과 거의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과 그 복음을 믿어야 한다고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놀라운 기적을 베푸신 것도 사실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것과 다시 재림하실 것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이슬람교는 유대교보다 우리 기독교에 더 가까운 종교라고 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자칫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충분히 대화가 가능한 종교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저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생략하거나 무시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기 직전에 도망쳐 샘이 흐르는 곳으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교는 예수를 구세주가 아니라 알라가 보낸 위대한 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예수를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 하며 기독교를 적대시하고 공격합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가 결정적인 기준입니다. 
십자가가 빠진 예수는 참된 예수가 아닙니다. 아무리 예수의 기적을 믿고, 예수의 말씀을 따르고, 예수의 탄생과 승천까지 믿는다고 해도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가 빠지면 그것은 헛된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의 십자가를 부인한다면 아무리 예수를 치켜세우고 심지어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해도 그들은 적그리스도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성자로 인정합니다. 예수님을 치켜세우고 존경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들이 말하는 예수 안에는 십자가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구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가 없으면 죄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다. 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구원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를 부정하면 천국 길은 없는 것입니다.
 
요 14:6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즘 우리 기독교 안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닮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말씀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생략합니다. 오늘날 강단에서 십자가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능력이 없습니다. 
알맹이가 빠진 기독교는 죽음의 종교에 불과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를 통과한 종교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는 누구도 구원이 없습니다.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거기 흘린 보혈로 정케 하옵소서.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넌 후 무한 영광일세 (새찬송가 439장) 
  
우리를 에녹처럼, 엘리야처럼 죽지 않고 데리고 가시면 좋겠지만, 우리는 다 죽습니다. 반드시 죽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음의 관문을 통과할 때 두렵지 않습니다. 참 평안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영국에 중병으로 죽게 된 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일곱 살 먹은 어린 딸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자 그 아빠가 말했습니다. 
“딸아, 죽는 것 때문에 걱정하지 마라. 아빠는 네 예쁜 얼굴을 보지 못해서 섭섭하지만 너는 이 집보다 엄청나게 더 좋은 하나님의 집에 가서 예수님과 같이 살게 되니 기뻐해야 된단다. 그리고 훗날, 아빠도 너를 만나러 네가 있는 곳에 가게 된단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그랬더니 어린 딸이 물었습니다. 
“알았어, 아빠. 그런데 죽는 것이 뭐야?” 
“응? 죽는 것?” 
이때 아빠가 지혜롭게 대답했습니다. 
“얘야, 며칠 전에 네가 이 소파에서 잠들었지?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뜨니 네가 어디에 있었지?” 
“2층 내 방에.” 
“어떻게 그리 되었을까? 여기에서 잠들어 있는 너를 아빠가 안고 네 방으로 옮겨 주었기 때문이지. 죽음도 그와 똑같은 거야. 네가 여기에서 눈을 감고 죽으면 하나님께서 너를 안고 천국의 네 방으로 옮겨 주시는 거야. 그래서 눈을 뜨면 예수님을 보게 된단다.” 
“야! 좋겠다.” 
그리고 나서 그 아이가 평안하게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집에서는 일곱 살 먹은 딸이 죽으면 그 부모의 가슴이 찢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면 죽어도 천국으로 가니 소망이 있지 않습니까? 
다 같이 죽음의 잔을 마셔도 십자가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이렇게 큰 차이가 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신다면 십자가의 은혜를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확신치 못하시는 분이 있다면 오늘 이 시간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십자가는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미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더 나아가 십자가는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 십자가를 사랑하시고 그 십자가의 주님을 사랑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