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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깨어 있으라 (마 26: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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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으라  (마 26:36~46)


할렐루야!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 사람들이 자신의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베어 펴면서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 ”(요 12:13) 라며
소리 지르던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처럼 / 개선장군처럼 환영했지만
예수님은 고난의 길, 죽음의 길을 향해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한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강단 꽃장식도 고난주간을 나타내는 보라색을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경건하고 엄숙하게 보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고난 주간을 맞이해서 미디어 금식을 하자고 했습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상생활 중에 평균 8시간 20분 동안 인터넷과 모바일 등 
디지털 미디어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수면과 식사 등 필수시간 7시간 39분을 제외한 
16시간 21분을 일상 활동 시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8시간 20분이라는 시간은 
전체 일상 활동 시간의 50.4%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반면에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은 전체 일상생활의 18.6%에 불과합니다.
<연합뉴스 2009.3.26 기사 참조>

우리가 TV, 컴퓨터, 전화하는데 얼마나 시간을 뺏기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걸고 받는 전화가 정말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 보세요.
죽어도 무덤에 가져가고 싶은 것 2위가 TV, 1위가 휴대전화라고 합니다. 
학생들은 휴대전화만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요즘 휴대전화는 TV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제 미디어는 밥보다 더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 미디어 사용을 절제함으로 
고난 주간에 예수님의 고난과 사랑을 묵상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미디어 금식만 하려고 오늘부터 휴대전화를 껐습니다. 
e-mail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매번 고난주간에 아침 금식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고난주간에는 미디어금식만 하려고 했는데 …
집에서 아침금식을 한다고 밥을 안준다고 합니다. 꼼짝없이 아침금식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주간을 고난주간답게 경건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들과 “고난주간답게 보내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며 인사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앉아 있으라 … 깨어 있으라 …

오늘 본문에 보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수님은 겟세마네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 병든 자를 고치시고 …
자연을 지배하는 기적을 행하셨던 그분 하나님의 아들로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셨지만 그분은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가르치신 대로,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 자기와 싸워 이기기 위해 특별한 기도가 필요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난 후에야
십자가를 질 수 있다고 직접 가르치셨습니다. (막 8:34, 눅 9:23)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기 위하여 …
자기를 이기기 위하여 …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제자들과 함께 가셨던 것입니다. 
어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겟세마네에 갔습니까? 모두 가지 않았습니다.
12명 중 한 명은 예수님과 함께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예수님을 따랐던 그 한 명은
예수님을 팔기 위해 … 예수님을 배반하려고 …
예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마 26:47)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 예수 믿는 사람은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 쉬지 말고 기도하라 ”는 말씀의 뜻은 
언제든지, 어디에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예수 이름으로” 하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예수 이름으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14:13~14)
여러분은 범사에 기도하며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예수님 잘 따라 다녔던 유다는 예수님이 가시는 겟세마네에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에베소서 6장 24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 6:24)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함없는 믿음 … 변함없는 사랑 …
변함없는 순종으로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팔아
은 30냥 같은 것을 챙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유혹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예수님 따르는 것을 팽개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분명 사탄이 틈탄 때입니다. 그런 때도 넘어지지 말고 …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에 가신 예수님은 어떤 제자들에게는 앉아 있으라 하시고
어떤 제자들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11명 중 8명에게는 
‘앉아 있으라’고 하셨고 (마 26:36) 베드로, 요한, 야고보 3명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마 26:38) 37절에,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 ”(마 26:37) 가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초입에 “앉아 있으라”고 하신 여덟 제자들에게 가만히 앉아서 쉬고 있으라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고
좀 더 데리고 가신 3명에게도“깨어 있으라”하시며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열 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리 배정 하시는 대로 따랐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 세 사람은 예수님이 기둥과 같이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갈 2:9)
그래서 예수님은 가끔 3명만 따로 불러서 다니셨습니다. 
- 변화산에 올라갈 때 … (마 17:1~)
-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가실 때 … (막 5:37~)
- 감람산에서 … (이 때는 3명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심)(막 13:3~)
이번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3명만 따로 불러 가셨습니다. 

특별히 선택 받지 못한 8명의 제자들은 상대적인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8명의 제자들은 왜냐고 묻지 않고 ‘앉아 있으라’는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자리 때문에 바보 되고 … 원수 되고 … 한심해 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큰 자리를 주면 능력이 없어 감당을 못하고
작은 자리를 주면 시시해서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회장을 하라고 하면 하지만, 회계를 하라고 하면 안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내가 있고 싶은 자리, 내가 앉고 싶은 자리, 내가 오르고 싶은 자리에 있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에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38절에, 예수님은 고통스런 자신의 심경을 세 제자들에게(베드로, 요한, 야고보) 말씀하시고
“ …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 ”(마 26:38) 
기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기도해 주기를 원하셨는데
저 같이 약한 목사는 당연히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모세의 두 팔을 아론과 훌이 받쳐 주었던 것처럼 저도 여러분들의 기도가 필요한 목사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까?
먼저 여러분 자신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속회, 선교회 … 등에 봉사하며 어울리라고 권하는 이유는
사람을 사귀라는 뜻도 있지만 같이 위하여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는 뜻도 있습니다.

전도서 4장 12절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고 했습니다. 
중보기도는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이가 일으켜 주는 것과 같습니다. 

현수교는 다리 양쪽에 타워를 세워 타워에 연결된 케이블(굵은 밧줄)이
다리 상판을 지지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다리 상판에 묶여 있는 케이블은 하나의 강한 철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수 천 수만 개의 굵은 철사로 만들어진 케이블이
무거운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하나의 기도는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강한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

우리들이 쉽게 생각하기를 내가 세게 기도하면 다 될 것 같지만
우리가 연합하여 기도하는 것이 더 큰 역사를 이룰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에게 기도를 명하신 예수님은 돌 던질 만큼(눅22:4)의 거리로 조금 더 나아가셔서
- 무릎을 꿇고(눅 22:41)
- 땅에 엎드리어 (막 14:35)
- 얼굴을 땅에 대시고 (마 26:39)
-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눅 22:44)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도 먼저 자기중심적인 기도를 하셨습니다. 
본문 39절에, “ …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 ”(마 26:39)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받아든 잔, 마셔야 할 잔, 감당해야 할 십자가를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 …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마 26:39)
이 기도는 하나님께 복종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맞추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기도 후에 ‘그러나’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낙망하지 않는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똑같은 기도를 3번이나 반복해서 하셨습니다. (마 26:39, 42, 44)
응답 받기 원하며 십자가를 앞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 … 하나님의 답을 듣고자 하는 기도 … 그 기도를 3번씩이나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아 낙망하지 않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시편 40편 1절에,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 40:1)고 했습니다. 
우리도 “ … 기다리고 기다리는 … ”기도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최선을 다해 기도하신 예수님에게 하늘로부터 사자가 나타나 도왔습니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눅22:43)
우리도 기도할 때, 우리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 …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 ”(시 118:6)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고 했습니다.
손을 가슴에 얹고 따라합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예수님이 열심히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흘리며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을 보니 육신이 약하다는 이유로 … 피곤하다는 이유로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부름을 받은 소명감도 … 부름 받은 감격 / 감동도 … 
예수님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갔다는 기쁨도 없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다닐 곳도 많고, 이 곳 저 곳 많이 다니고, TV에서 좋은 장소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는 소풍 가는 전날 밤, 잠이 안 왔습니다.
자다 깨고 자다 깨고 혹시 늦잠자서 못 갈까봐 잠을 못 잤습니다.
그때는 소풍이 최고였습니다.  못 가본 곳을 가는 것도 좋았고, 잘 먹지 못하던 시절에 
유일하게 김밥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이야 곳곳에서 김밥을 사먹을 수 있지만 …
그때는 소풍갈 때만 먹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소풍가는 날만 기다렸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좋은 곳에 가기로 약속되어 있는 전날 밤에는 잠을 잘 못잡니다. 
중간에 자다 깨기를 반복합니다. 왜 그럴까요? 감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격이, 기쁨이, 흥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가자고 특별히 선택한 제자들이 
그때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부름 받은 기쁨과 택함 받은 감동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 ”(마 26:41)고 하셨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큰 이유는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무너질 때 / 실패할 때 / 절망할 때가 언제 입니까?
시험에 들 때입니다. 
시험은 우리에게 무시무시하고 큰 폭풍과 같이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시시하고 별 것 아닌 작은 일들이 시험으로 다가와 우리를 크게 망가뜨립니다. 
별 볼일 없는 시험 거리들이 기도를 막고, 사랑을 막고 … 
하나님 말씀 듣는 귀를 막고 … 결국 믿음을 빼앗아 갑니다. 

대부분 사람이 시험에 드는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4~15)고 했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드는 시험의 대부분은 욕심이 / 사심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의 시험도 있습니다. 
그것은 죄에 빠지게 하기 위한 유혹이 아니라 연단을 위한 시련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2~3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2~3)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했고
야고보서 1장 13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 1:13)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 된 자녀들의 믿음을 연단하기 위해 시험(test)하고 시련(trial)을 주시지만
유혹(temptation)하여 우리를 덫에 빠지게 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가 주는 시험에 걸려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양의 탈을 쓴 이리가 우글거리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도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우리의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것, 쉽게 지치는 것, 피곤한 것, 부족한 것 등은 죄가 아닙니다. 
부끄러운 것도 아닙니다. 운동을 장려해서 체력을 기르는 일은 좋은 것입니다.
요즘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우리나라 교육제도 중에 마음에 안드는 점이 있었습니다.
체력장 시험을 봐서 점수를 주는 것입니다. 
유난히 잘 뛰는 학생이 있고, 태어날 때부터 뛰지 못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점수에 차등을 두면 어떻게 합니까?  체력을 단련해야 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유난히 잘 뛰고, 씩씩하고, 건강한 아이들에게는 점수를 잘 주고
허약한 아이들에게 점수를 안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연약한 것은 죄가 아닙니다. 부끄러운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연약함 때문에, 부족함 때문에 더 기도하고 더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한 시간 동안 …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연약하기 때문에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는 명을 받은 제자들은 어땠습니까? 자고 있었습니다. 깨우던 예수님도 세 번째는 “이제는 자고 쉬라”고 했습니다.(마 26:45)
마가복음 14장 41절에,
“ …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 ”(막 14:41)고 했습니다. 
깨우고 깨워도 안 일어나니까 ‘그냥 자라 자’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대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함께 깨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기대하신 시간은 긴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한 시간 동안”(마 26:40)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냥 잤습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들에게 ‘깨어있으라’고 하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했고
누가복음 21장 36절에, 
“ …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 ”(눅 21:36) 했고
로마서 13장 11절에, 
“ …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 13:11)고 했습니다. 

잠시 한 순간 깨어 있는 것이 반복되다 보면 하루가 되는 것이요, 
그 깨어있음이 반복되면 한 달이 되는 것이고 그 것이 반복되면 일 년이 되는 것입니다.
늘 깨어있는 삶을 살면 하나님 마음에 합한 깨어있는 심령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깨어 있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근신하여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처럼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이번 고난주간에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자는 것도 ‘깨어 있자’는 뜻입니다.
새벽시간에 교회에 나와 기도하고, 멀리 사는 이들은 인터넷에 접속하고, 
그것도 어려운 사람은 집에서라도 깨어 기도하라고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고난주간입니다. 모든 생활을 새벽기도회에 참석할 수 있게 맞추셔야 합니다. 
나눠드린 묵상집을 통해 받은 말씀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40여년을 산 독수리는 그대로 죽든지, 30년을 더 살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더 살려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 무뎌진 부리와 발톱, 날개를 뽑는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새 털이 나고, 새 발톱, 새 부리가 날 동안의 고통을 견뎌야만 30년을 더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독수리가 새 날개를 펴고 새롭게 날아야 30년을 더 살 수 있다는데 …
우리도 지금까지 익숙했던 지난 날 삶의 털을 뽑아내고,
지금까지 익숙했던 발톱을 뽑아내고, 부리를 뽑아내고 …
새 날개를 펴고 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기 원하지 않으십니까? 
우리 모두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자리에 있기 원하여 깨어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고난주간을 아무 의미 없이 보내는 자가 아니라 독수리가 자기의 발톱, 털, 부리를 뽑아내는 것 같은
자기반성의 기회로 삼아 새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부활의 아침을 맞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시되 
아무렇게나 살다가 끝내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늘 백성으로 살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고난 받으시고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구원의 길을 내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고난당하신 고난을 기억하며 고난주간을 지내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삶이 되기 위하여
지금까지 익숙했던 발톱을, 익숙했던 부리를, 익숙했던 날개를,
뽑아내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에 살며 땀 흘려 애써 모은 물질을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드리려 합니다. 
성도들의 정성된 예물을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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