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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한알의 밀 (요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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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알의 밀 (요 12:24)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사람들은 자기 희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가정법원에 이혼 청구 소송 가운데 이혼사유에‘감자’라고 적혀 있는 서류가 있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판 때 유심히 이야기를 들어 보았는데, 어느 휴일, 부부가 감자를 쪄서 먹으려고 하다 싸움이 시작되었다합니다. 부인이 찐 감자와 함께 설탕을 가져오자 남편이 “감자를 설탕에 찍어 먹는 사람이 어디 있냐?”하며 소금을 찾았고, 이에 질세라 부인은“우리 집은 어렸을 때부터 설탕을 찍어 먹었다.”고 반박하였다합니다. 그러자 평소에 처가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남편이“설탕을 찍어 먹으니까 집안이 그렇지.”하고 대꾸했고, 부인은“우리 집안이 어때서? 당신 동생 교육이나 잘 시켜.”하며 싸움이 시작되어 결국 가정법원까지 오게 되었다합니다. 감자 먹는 데 설탕이나 소금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요? 그것이 부부생활을 끝낼 정도로 심각한 문제인가요?

하찮게 보이지만 죄의 문제는 우리의 영혼을 황폐화시킵니다. 이 세상의 문제의 뿌리에는 죄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잘못된 사랑을 하고, 잘못된 거래를 하며, 잘못된 삶을 살아가는 모든 것은 언제나 죄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러한 결과는“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화하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어떤 가능성도 보이지 않으며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비극을 이야기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바라보시며 제자들에게 자신이 영광을 얻을 때가 왔음을 밝히시면서 밀알이 썩어서 열매를 맺는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자신이 죽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자신을 섬기려는 자는 자신과 같이 생명을 버려야 영생을 얻게 됨을 교훈하셨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부활의 영광을 받으심과 같이 예수를 따르는 자들도 고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게 됨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존경과 영예를 얻는 높은 인물이 되고자 하는 생각이 지배적인 세상에 썩어지는 한 알의 밀이 되라는 가르침은 분명히 놀랍고도 도전적인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며 지배자가 되려는 세상에서 자기희생을 자원하시는 주님의 교훈은 사람의 가슴에 분명히 신선한 충격을 주시는 진리였습니다.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죽는 주님의 길은 진리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안겨 주신 것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철저히 자기를 부정하고 종으로 사신 예수님을 깊이 이해한 사람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6, 7)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생애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하나님으로서의 위엄이나 능력 행함이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사랑과 자기희생의 태도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을 위한 종이 되셨습니다. 겸손과 복종과 헌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모두가 지배하기를 원하는 세상에서 그는 지배하기를 원치 않으셨고 오직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자신의 모든 영광을 버려 많은 사람의 행복을 찾아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려 놓는 일을 잘 못합니다

1845년 잔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영국 황실 해군의 후미 부대의 제독이었습니다. 그는 대서양에서 북극을 거쳐 태평양에 이르는 항로를 발견하는 영광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 당시 미국은 한참 발전해 가고 있던 신생국이었고, 파나마 운하는 아직 생기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동양으로부터 갖가지 보물들과 물자들을 수송해 오려는 모든 유럽 탐험단들과 상인들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서 오거나 남 아메리카를 빙 지나서 항해해 와야 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동양으로 가는 지름길을 발견한다면 그 자신이 크게 유명해지고 영광을 받게 되엇습니다. 아무튼 프랭클린은 그가 원하던 바대로는 아니었지만 널리 기억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유명하게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오는 도중에 죽었습니다. 40여 명의 탐험대들이 그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고, 왜 그러한 죽음을 맞게 되었는가를 규명해 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공식적으로 프랭클린 일행은 영양실조에 걸렸으며 그들의 탐험 일정을 위해서 적절한 양식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들이 항해 전에 내린 잘못된 결정 때문이었습니다. 

프랭클린과 그의 승무원들은 생각했습니다. 그 항해가 여러 달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보일러를 위해서는 석탄을 12일치밖에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석탄을 실을 만한 방이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찾아 나섰던 탐사대들은 50건반이 넘는 오르간도 발견했고, 1,200권이 넘는 책도 발견했습니다. 고위직 사람들에게 선물할 본 차이나 디너 그릇들도 발견했습니다. 아름다운 크리스탈 그릇들과 은으로 만든 무거운 식탁 물품들도 발견했습니다. 모든 장교들이 그들의 가족을 위해서 식탁 물품들을 다 싣고 있었습니다. 그 항해는 빨리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석탄이 없는 것을 발견했고, 그들은 북극에서 얼어 죽었습니다. 프랭클린은 배의 간판에서 얼어 죽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던 것 같았습니다. 몇 사람들은 북극 지방의 원주민 마을에 찾아가서 겨울을 보내면서 그들의 본국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일 년 후 추위 때문에 그들은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첫 겨울 그곳에서 생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조선을 타고서 돌아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 구조선에는 그들이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오르간과 식탁 물품들, 무거운 책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오늘을 위해 성공의 대가를 지불하고 성공을 만들어 가야 하는 사람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4)고 하셨습니다.
마치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게 되듯이 예수님의 종 된 희생의 길은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길이 되셨습니다.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하는 한 알의 밀의 교훈은 겸손의 깊은 진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알의 밀처럼 희생의 길을 기꺼이 가신 주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라'(막 10:43)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큰 자가 되려고 한다면 이 세상은 싸움뿐이고 피차 멸망하고야 말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구원하러 오신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 '인지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막 10:45)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스승 예수의 모습에서 우리는 참된 겸손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부끄러워할 뿐입니다

[요 13:4-5]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섬기는 것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과 같이 자기를 희생하지 않고는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섬김의 자세는 자신은 비록 고되고 힘들지는 몰라도 많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 섬김의 길이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소망이 넘치는 구원의 길이 되었습니다.  섬김의 길은 곧 예수님이 가신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 합니까

한 살인범이 어떤 한 재판에서 사형 언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살인범의 형이 공직에 있는 동안에 아주 많은 공로를 세워서 잘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형은 주지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동생을 사면해 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주지사는 동생을 위하여 탄원하는 형의 잊혀질 수 없는 공로를 참작하여 그 동생의 죄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양복 안주머니에 주지사의 사면장을 받아 넣은 형은 곧바로 감방 안에 갇혀 있는 동생를 찾아갔습니다. 동생을 만나 본 형은 물어 보았다. “ 만약 네가 사면을 받고 살아 나간다면 너는 무엇을 하겠니?” 

그러자 동생은 안면을 찡그리더니 즉시 대답을 했습니다.“만약에 내가 살아서 감방을 나간다면, 첫째로, 나에게 사형 언도를 내린 판사를 찾아 그 놈을 죽이는 일이고, 그 다음에는 내 재판에서 증인으로 섰던 놈을 찾아서 그 놈을 쏘아 죽이는 일이야!” 형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습니다. 형무소 문을 나서는 형의 양복 안주머니에는 주지사로 부터 받은 사면장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마음이 용서와 사랑으로 채워져 있지 않으면 가지고 왔던 축복을 전달할 길이 없었습니다.(앨리스 휘톤의「용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한 알의 밀의 교훈의 진수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비로소 많은 열매를 맺게 되듯이 자신의 희생의 죽음을 통해서만이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사명을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처럼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도리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빌 2:9),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행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은 즐겨 쓰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그것이 정작 사람들을 위한 종까지 되어야 하는 길인 것을 알지 못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

그렇습니다. 종의 길은 발을 씻기듯 날마다 낮은 자세에서 남을 섬기는 길인데 스승이신 주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그의 제자들인 우리 모두야 더 말하여 무엇하겠습니까?
   
한 알의 밀의 교훈은 자기희생, 자기 부인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죽는다 해도 주님처럼 대속의 제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죽음이 다른 사람들의 죄를 속하여 줄 수 있는 죽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길은 자기희생, 자기 죽음을 통해서만 주님의 진리와 사랑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눈물 없이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처럼, 자기희생 없이는 복음이 전파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된 바 있는“승자와 패자”라는 영화는 미국의 북부 지방인 몬타나 주 일대에 살고 있던 인디언, 네즈 페르세(Nez Perce)족의 추장을 모델로 한 실화 영화라 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추장의 본명은 힌마튼 얄라크티트(Hinmaton Yalaktit)로서 미국의 역사에는 조세프 추장(Chief Joseph)이라고 합니다.

‘황야의 여우’로 불리던 조세프 추장이 하워드 (Oliver O. Howard) 장군의 추적(追跡)을 받는 데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합니다. 하워드는 남북 전쟁 당시에 한 팔을 잃은 역전의 용사로, 조세프 추장의 체포를 필생의 과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집념의 사나이였습니다. 하워드 장군의 추적이 날로 심해지자 조세프 추장은 끝내 캐나다의 국경을 넘기로 결심했습니다. 조세프는 부족들을 이끌고 몬타나의 국경에 이르렀지만, 그는 또 다른 기병대장인 마일스(N. A. Miles) 장군으로부터 최후의 일격을 받았습니다. 이 전쟁에서 치명적인 패배를 당한 조세프 추장은 스스로 투항하지 않으면 부족의 멸망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자기 하나만 희생되면 자신의 부족이 무사히 캐나다로 이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부족의 만류와 사랑하는 처자식의 몸부림을 물리치고 1877년 10월 5일, 스스로 마일스 장군에게 투항하고 말았습니다. 

조세프 추장이 위대하다는 것은 바로 이 마지막 순간의 결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부족들에게 다음과 같이 작별의 연설을 합니다. “광야의 인디언으로 태어나서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처럼 비굴한 일은 없다. 이미 늙은 부족은 늙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서도 죽음이 아쉬울 것이 없는 것이고, 젊은 투사들은 동족을 위한 죽음이니 그 또한 원통할 것이 없다. 그러나 보라! 저 어린 것들을……. 저들은 누구를 위해서 죽어야 한단 말인가! 우리가 위대한 부족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길은 저 어린 것들이 살아남는 일이요, 저들이 번영하는 길이다. 하워드 장군이 원하는 것은 추장인 나 하나뿐이니 나는 평생토록 포로의 몸이 될지언정 한이 없으리라…….”

이리하여 일생을 통해 백인과의 싸움에서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조세프는 내일의 부족의 번영을 위해 처자식을 버리고 백인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후 그는 26년 동안 워싱턴의‘콜빌 인디언 보호 구역’에 살면서 1904년, 죽는 날까지 캐나다로 건너간 부족의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의 이와 같은 고매한 인격은 미국 정부의 지도자들을 감동시켰고, 그는 끝내 워싱턴의 미국 의회에 출두해서 인디언의 인권을 호소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평생을 조세프와 싸웠던 하워드 장군은 그 후 퇴역하여 하워드 대학을 세워 그 학교의 총장으로 일생을 마쳤으며 자기의 적이었던 조세프의 뒷바라지를 위해 아낌없이 노력했습니다. 그는 만년에 회고하기를, “나는 내가 생전에 만난 사람 중에서 단 두 사람을 존경하는데, 한 사람은 남군(南軍) 사령관인 리(H. Lee) 장군이요, 다른 한 사람은 조세프 추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족들을 살리기 위한 그의 대가는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예수를 환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구세주로, 이스라엘 왕으로 고백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때에 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데 이는 구약의 메시야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그러나 이 길은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 위해서 몸이 상하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를 기념하며 떡과 잔을 나누는 성찬을 행합니다.
한 알의 밀이 도신 주님의 희생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종려주일을 지키고 성찬에 참여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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