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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따르는 삶 (마 16: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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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따르는 삶 (마 16:21~28)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는 언제나 주님을 생각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능력만 가지고는 예수님을 절대로 따를 수 없습니다. 요6장에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하루 종일 또는 몇날 며칠을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하시는 일 특히 병자들을 고치는표적과 기사를 보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때 벳세다 광야에 모인 사람들이 숫자는 장정만 오천 명이라고 했으니까 부녀자들까지 합치면 족히 만 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바라보고 또 그것을 보기위해 찾아왔습니다. 바로 이때에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 빌립을 부르셨습니다. “빌립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왔는데 저 사람들이 온 것은 기적을 보기 위해 온 것 아니겠느냐?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에게 떡을 주고 싶은데 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어디서 떡을 구하겠느냐?” 이 질문의 의도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기 위해서 찾아오는데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는 빌립 자신도 예수님이 행하는 기적을 바라보고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시장이 어디 있고 돈이 지금 얼만큼 있느냐를 묻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요6:6에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다 마음속에 두고 계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려는 기적을 마음에 품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품고 계시면서 빌립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서, 소위 예수를 잘 믿고 예수 안에 산다는 우리에게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어디서 떡을 사서 너와 네 가정이, 이 민족이 먹게 할 수 있겠느냐”

빌립은 이에 대해 대답합니다. “예수님 이들에게 조금씩 주어도 이백 데나리온으로도 부족 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기적을 베푸신 최초의 기적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2장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같이 가나에 혼인잔치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포도주가 다 떨어져서 잔치를 계속 할 수 없게 되자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저들이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 줄 수 없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때 물이 변하게 하여 양질의 포도주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빌립은 지금 말하기를 조금씩 주어도 이백 데나리온도 부족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안드레는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그 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먹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빌립의 말은 굉장히 똑똑한 말 같았고, 상황판단을 잘 하는 말 같았지만 아무런 역사를 이루지 못하고 허공만 치고 말았습니다. 

경상도 할머니 한 분이 미국에 놀러 갔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오랫동안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미국 할머니 한분이 옆에 왔습니다. 이때 버스가 멀리서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경상도 할머니는 “왔데이~” 하면서 버스가 오는 것을 알렸습니다. 이에 미국 할머니는‘What day? 음 무슨 요일이냐구?' 라고 알아들으면서 “Monday!”라고 대답했습니다. 경상도 할머니는 ‘아니 버스도 모르나?’ 하면서 “뻐스데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또 미국 할머니는 ‘Birthday!아 오늘이 생일이라구. 축하해 줘야지’하면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고 합니다. 이 두 할머니는 뭔가 말을 많이 하긴 했는데 허공만 쳤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을 많이 한다고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말이 아니라 행함입니다. 믿어야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를 따르는 일에 무엇이 필요한 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지식이나 명예가 아닙니다. 수많은 재물도 아니며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여러분의 믿음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프랜시스는 제자들을 뽑을 때 꼭 시험을 치루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학입시의 수능이라든지 취직시험처럼 배경이나 지식의 수준을 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시험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배추가 여기 100포기가 있는데 너는 이 배추를 심어라 그런데 조건은 뿌리가 밑에 있고 잎사귀가 위에 있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을 거꾸로 심어라”

제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 얘기를 듣고 그대로 행하려 하니 얼마나 한심한 행동이었겠습니까? ‘아니 정말 저 사람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인가 나에게 시키는 일이 겨우 이게 뭔가’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선생님이 시키는 일이니 내가 한 번 해 보아야지’ 하면서 거꾸로 심었다고 합니다. 이에 그렇게 행한 사람만 성 프랜시스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이렇게 위대한 하나님의 종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도 내 생각이 아니라 순종이 필요하다면 이 세상을 구원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제자가 되려고 하고 그분을 따르려고 한다면 마땅히 주님의 말씀에 따르는 순종이 필요할 줄로 믿습니다. 순종이 최고입니다. 

우리나라의 88올림픽 때 육상 단거리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인 ‘그린피스 조이너’에게 MBC방송국의 기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잘 달리는 선수인데 달리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합니까?” “나는 달릴 때 다른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달립니다.” 그녀는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도 아니고 명예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며 이것은 다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운동장에서 조차 그녀는 생각과 말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때 인줄로 믿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내 생각과 내 경험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과 하나님의 기적을 이루는 길에는 언제나 시련이 있고 고통이 있음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평탄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평탄하다고 하는 말은 사탄의 유혹입니다. 찬송가에도 있지 않습니까?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 하시니 ~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예수님이 인도하셔도 “무슨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 뿐만 아니라 나쁜 일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 때에 만사형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게 될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를 탔습니다. 바다에 풍랑이 일어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찾아 “주님 우리가 다 죽게 되었는데 왜 주무시고 계십니까?”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람아 파도야 잔잔하라”하시니 바다의 파도와 풍랑이 다 잠잠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말했습니다. ‘도대체 저분은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도 파도도 순종하는고’

여러분 아브라함의 인생 속에도 가뭄으로 시험이 있었고 다윗의 인생 속에도 정욕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 사람들은 그럴 때 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가지고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에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단순히 듣고 흘려버리도록 가르치시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알아듣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통을 받고 장로들과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살아나야 될 것을 저희에게 가르치시니”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죽으신다는 것과 또 하나는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신앙인은 죽음만 보지 않고 죽음 이후에 오는 부활까지 봐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보십시오. “예수님 죽으시면 안 됩니다.” 사실 제자로서 주님의 죽으심에 대해 방관할 수는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안 된다고 말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대답에 대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말하셨습니다. 

 사람은 능력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죽는다고 하면 두려운 마음밖에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똑똑하고 능력이 있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죽음 앞에 다 두려워 떨 수 밖에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얼마나 복을 받았습니까? 그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것을 거져 주셨습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까? 단지 하나 선악과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와서 유혹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동산을 너희에게 주셨니?” 이에 하와는 선악과만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사탄은 또 말합니다. “그 이유는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되기 때문이야”

 사탄이 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크고 놀라운 은혜를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어려움과 내가 가지지 못한 그것을 자꾸 보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게 하지 못하고 자꾸 불평하게 하는 것이 사탄의 일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많이 생각게 합니다. 결국 아담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짓게 되고 에덴 동산,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에서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성도를 넘어뜨리는 자입니다. 부활의 기쁨 보다는 십자가의 고난을 보게 해서 망하게 하는 자인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를 물으러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하나님말씀을 잘 지켰는지를 물으니 그 청년은 잘 지켰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가진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 그때 부자 청년은 근심하고 돌아갔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옆에 있던 제자들도 동감이었다고 생각했는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다 어렵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아무리 지혜로워도 하나님의 어리석음 보다 못하고 사람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의 약함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제 목숨을 예수님을 위해 바치게 되면 주님께서 다시 살게 하신다는 말씀을 우리에게 또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려면 이러한 영적인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영적인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 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 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 라야 분변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기를 영적인 깨달음을 위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위해 늘 사모하고 기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동차를 타고 오는 중에 기독교 방송을, 간증을 들었습니다. 가난한 노부부가 노후에 예수를 믿겠다고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교회 나온지 얼마 안 되어서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그나마 뺑소니 교통사고였습니다. 가난한 집에 할아버지의 병원비를 대느라 고생을 하면서 한 달 동안 백여만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이 날도 삼 만원을 빌려 할아버지는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전화가 왔는데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였습니다. 할머니는 병원으로 달려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나’ 병원에 도착해보니 할아버지는 심하게 다치지 않고 살짝 다쳤습니다.

 그런데 교통사고를 낸 운전기사가 얼마나 좋은 분인지 “할아버지 살짝 다치셨지만 병원에 입원하셔서 옛날에 다치셔서 치료 받지 못한 것 까지 다 치료 받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운전기사는 “그리고 할아버지 제가 가진 것은 얼마 없지만 이것 받으시고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하면서 봉투를 내밀었는데 그 안에는 백만 원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할머니는 돌아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님 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다고 생각하니 앞으로 어떻게 살까 염려가 안 되고 마음이 놓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한번이라고 알면, 이런 일을 한번이라도 겪게 되면 두려운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지금도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고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고난 중에도 기쁨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기 때문 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기쁨으로 여기고 은혜롭게 감당하는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믿음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승리에는 고난의 과정이 있습니다. 신앙의 실패에는 고난의 거부가 있을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미 꽂을 볼 때 꽃의 아름다움을 봐야지 가시를 봐서는 안 됩니다. 참 신앙인은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지 사람의 일을 바라보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이 어러운 때에 우리가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 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어렵다는 그 자체가 우리에게 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울 때에 정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고 여기에 기적이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물질의 자기 십자가를 지기 바랍니다. 김익두 목사님이라는 유명한 부흥사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이 황해도 재령읍교회에서 부흥회를 하셨는데 특히 이분은 병 고치는 은사가 있으셔서 이때 많은 병자들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한사람 한 사람이 안수기도를 받는데 그 교회에 정찬효 장로님이 안수받기 위해 무릎을 꿇었을 때 목사님은 물었습니다. “장로님 무엇을 원하십니까?” 이에 장로님은 “저는 십일조의 축복을 받기 원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전에 ‘교회가 어렵지만 돈이 있어야 바치는 것이지 없으면 어떻게 바치나? 그러나 이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오시는데 이분에게 내가 안수를 받아야 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김익두 목사님은 깜짝 놀라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까지 많은 교회를 다니며 병 고쳐 달라는 안수는 했지만 십일조 축복을 위한 안수는 처음입니다”

 너무나 감격스러워 자신의 속 두루마기 주머니를 뜯어주며 말했습니다. “십일조의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수입의 십일조를 넣어 바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안수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으로 놀라왔습니다.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었지만 황해도에서 가장 많은 헌금을 하는 장로님이었고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는 사회사업가로 알려진 하나님의 종이 되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물질에 시험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갈 때에 주님은 물질의 십자가를 통해서도 놀라운 역사를 일으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시간의 십일조를 바치시기 바랍니다. 미국 역사의 초창기, 말을 타고 다닐 때입니다. 부자들이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말을 타고 다닐 때입니다. 말굽을 만드는 가난한 대장장이에게 한 부자가 찾아왔습니다. “내 말고삐와 말굽을 월요일까지 만들어주시오” 그랬더니 대장장이는 월요일은 안 되니 화요일에 해 주겠다고 합니다. “월요일까지 필요해서 그런데 가난한 당신은 왜 일 하지 않소?” 이에 대장장이는 대답했습니다. “내일은 주일이기 때문에 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화요일까지 해 드리겠습니다”

이에 부자는 화가 나서 옆집으로 갔습니다. 옆집에 있는 대장장이가 “고맙소 당신 때문에 내 일이 더 많아 졌으니 ..”라는 얘기를 할 때에 주일을 지키려는 사람은 얼마나 갈등이 많았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한 군인이 찾아와 말했습니다. “당신이 바로 주일에는 일하지 않는다는 염치없는 사람입니까? 내 친구를 거절하며 보낸 사람이 당신이요?” 이에 대장장이는 “그렇습니다. 저는 손님이 원하는 대로 일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 때문에, 돈 때문에 신앙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군인이 말했습니다. “당신에게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선택할 자유가 있으니 이해합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정부의 사업 때문인데 누구에게 정직하게 일을 잘 할까를 생각했을 때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면 나라를 위해서도 정직하게 일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나라 일을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그 가난한 대장장이에게 일을 맡긴 사람은 다름 아닌 다우닝 장군이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고통이며 괴로움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하나님이 살게 하시는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마땅히 아버지가 계실진대 그 아버지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적은 것이고 그 영광은 크다는 사실을 믿으면서 예수님을 따르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크고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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