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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십자가 위의 명패 (요 19: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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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위의 명패 (요 19:17~22) 
  

사순절을 보내면서 십자가에 관한 말씀을 연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말씀으로 ‘십자가 위의 명패’에 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혹시 러시아 정교회의 십자가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십자가(라틴 십자가)와 다른 모양입니다. 잘 보시면, 십자가 위쪽에 가로 막대가 달려 있고 아래쪽으로 비스듬하게 또 한 개가 달려 있습니다. 가지가 8개라 ‘8단 십자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같은 기독교라도 교파마다 다양한 모양의 십자가를 갖고 있고, 그 나름대로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 러시아 정교회의 십자가는 어떤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교부들의 증언에 따르면 초대교회에서 이런 십자가 모양이 많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맨 꼭대기의 가로 막대는 십자가에 부착되었던 ‘명패’를 상징합니다. 또 아래쪽에 비스듬한 가로 막대는 십자가의 ‘발받침’인 동시에 ‘구원의 방향’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이 처형될 때 그 양쪽에 강도 둘이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는데, 그 중의 한 명(오른쪽으로 추정)은 회개하고 천국에 갔습니다. 회개한 강도만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래쪽 가로 막대의 오른쪽(우리가 보기에는 왼쪽)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 내용이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17절~19절을 보시죠. “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힌 곳은 ‘해골’(skull)이라 불리는 언덕입니다. 멀리서 보면 그 모양이 마치 해골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또 그곳에 해골이 많아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해골이란 말이 히브리어로는 ‘골고다’입니다. 그래서 흔히 골고다 언덕이라 부르죠. 로마어(라틴어)로는 ‘갈바리아’(Calvaria)인데, 이 말에서 영어의 ‘갈보리’(Calvary)가 유래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비참한 곳에서 못 박혀 죽은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 좌우편에 강도 두 사람이 못 박혔는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 중 한 명만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갔습니다.(눅23:39~43 참조)   

그런데 여기서 놓치기 쉬운 한 가지는 십자가 위에 패를 써서 붙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패(Sign, Title, Notice)는 쉽게 생각하면 ‘간판’입니다. 그 위에 십자가형에 처해진 죄수의 이름을 적고 죄명을 적어 넣습니다. 그래서 ‘명패’(名牌) 혹은 ‘죄패’(罪牌)라고 부릅니다. 

  
[1] 십자가 위의 명패 : 십자가 복음의 선포 

이 명패는 당시 관습대로 부착한 죄패였지만, 역설적으로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는 귀중한 방편이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의 고소로 예수님을 심문했지만, 무죄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수차례 풀어주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기어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고 데모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민란이 일어나겠고, 자기의 권좌까지 흔들릴 것 같은 압박을 느낀 빌라도는 마침내 타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목입니다.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고 해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말씀이 맞지만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분개했고 신성모독죄라고 정죄했습니다. 그들의 정죄에 의하면 사형입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 정부는 다른 것을 몰라도 사형에 관한 문제는 자치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관계로 유대인들은 부득불 로마 총독에게 예수님을 끌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로마법으로는 신성모독죄가 성립되지 않고 사형시킬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았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다른 죄목으로 고소합니다. 백성들을 충동질해서 민란을 꾸몄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반역죄를 지었다고 뒤집어 씌웠습니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로마 정부 차원에서도 중대 사안이요 사형에 해당됩니다. 빌라도는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 혐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자 무죄 석방을 하려는 빌라도와 예수님을 어떻게 해서든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들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빌라도가 타협했고 사형선고를 내렸는데, 그 죄목을 ‘유대인의 왕’이라 적었습니다. 자기로서는 당연한 조치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죄없는 사람을 죽이는 모순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법을 존중하던 로마의 통치자로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예수님의 명패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란 죄목이 기록되었습니다. 참으로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의 궤계를 역전시켜서 당신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바꾸시기도 합니다. 잠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흰 도화지에 장난꾸러기가 낙서를 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화가는 그 위에다 그림을 그려서 명화로 만들었습니다. 낙서 자체는 잘못이지만 그것을 멋지게 바꿔 놓은 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빌라도와 유대인의 갈등으로 빚어진 일을 변화시켜 십자가 복음의 도구로 사용한 겁니다. 

그 과정이 성경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죠. 먼저 요18:38~40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의 무죄 사실을 확인하고 석방하려고 애를 씁니다. “38 빌라도가 ...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40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유월절 명절에 특별사면 제도를 통해서라도 석방하려고 유도한 겁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저항합니다. 정 그럴 거면 강도 바라바를 풀어주라고 요구합니다. 

당황한 빌라도는 혹시 다른 죄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해서 예수님을 다시 심문합니다. 그래도 역시 무죄였습니다. 요19: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그가 얼마나 곤혹스러웠을지 짐작이 됩니다. 다시 석방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어떻게 나오죠? 요19: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의 총독 자리를 위협하면서까지 반대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입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빌라도에게 더 깊은 갈등이 생겼습니다. 한참 재판을 하고 있는데 그의 아내로부터 전갈이 온 겁니다. 마27: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빌라도의 아내는 꿈자리가 뒤숭숭했으니 예수의 일에 절대 상관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나 도저히 손을 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자기 권좌와 바꿔야 할 처지입니다. 갈등 끝에 그는 자기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손을 씻는 제스처를 합니다. 자기는 잘못이 없다는 겁니다. 마27: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그렇다고 그에게 죄가 없는 게 아니죠. 자기 자리 때문에 무죄한 사람에게 사형 성고를 내리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결국 사도신경에 기록되어 대대로 정죄되고 있습니다. 

이래서 빌라도가 자기 합리화를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유대인들에게 항의하는 뜻으로 예수님의 죄목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은 겁니다. 이렇게 되자 이번에는 유대인들이 죄목을 갖고 시비를 겁니다. 본문 21절~22절을 보시죠. “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22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그대로 적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의 명패가 부착되었습니다. 본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관습이었지만,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때는 유월절이라 많은 순례객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왔습니다. 골고다 언덕을 성문 밖 바로 앞에 있는 언덕이라 잘 보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까요? 유동 인구가 2백~3백만은 됐을 겁니다. 지방이나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돌아가 전파하기도 했을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사방에 전파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 셈입니다. 


[2] 명패에 새겨진 복음 :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그러면 그 명패에 새겨진 복음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시죠.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이 말 자체가 십자가 복음의 내용입니다. 

① 나사렛 : 

나사렛은 예수님의 출신지를 표시한 겁니다. 나사렛은 변두리 산골 동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으로, 그것도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목수의 아들로 베들레헴 마구간에 오셨고, 어릴 적부터 나사렛 동리에서 자라셨습니다. 인간으로서 더 이상 낮아지기 어려울 정도로 가장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신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가장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십자가 사형 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빌2:6~8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렇게 예수님이 낮아지심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줍니까? 누구든지 예수님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 중에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보다 높아질 수 없습니다. 또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 달린 그 분보다 낮아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녀노소 빈부귀천 하 것 없이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올 수 있는 겁니다.

십자가 위의 명패가 3개국어로 기록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20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히브리어, 로마어(라틴어), 헬라어 등으로 기록했는데, 당시 로마 제국 안에 있는 전 세계인이 볼 수 있도록 섭리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인간이 아무리 다양한 조건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 앞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스스로 높다고 생각해서 체면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스스로 낮다고 생각해서 소외감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못합니다. 모두 잘못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오신 분입니다. 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내 모습 이대로 예수님께서 받아주십니다. 그러므로 나 같은 사람도 예수님이 받아주시고 구원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먼저 믿는 우리들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② 예수 :

다음으로, 예수라는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그 이름은 어떤 의미입니까? 마1:21에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나오죠. 예수님이 잉태되었을 천사가 와서 전해준 이름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Savior)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라는 이름은 한 마디로 인간을 죄와 사명에서 구원하는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지만 실제로 구원받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요3:16~18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오직 믿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믿지 않으면 이미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뜻에서 이미 심판받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선언합니다. 무조건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만인 구원이 아니라, 선택된 자만이 믿는 자만이 구원받는 제한속죄(制限贖罪, Limited Atonement)가 맞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습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세에 들어갑니다. 천국이냐? 지옥이냐? 지옥은 가만히 있어도 누구나 들어가는 곳입니다. 노비자(No Visa)입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십자가 대속의 복음을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살 동안 믿음으로 미리 예약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천국 비자인 셈입니다. 

우리가 외국 여행할 때 입국하려면 입국 심사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국 문에서 입국 심사가 이뤄집니다. 계21:12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천국의 새 예루살렘 성의 광경입니다. 그 성곽이 크고 높다고 했습니다.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외부 세력이 침투할 수 없음을 상징합니다. 그 성에 문이 12개 있는데, 그 위에 12지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12지파는 혈통적인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예수 믿고 ‘새 이스라엘’ ‘영적인 이스라엘’이 된 성도들 전체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 백성 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천사들이 천국 문에서 그 사실을 일일이 확인한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론상으로는 예수님이 모든 인간을 위해 피 흘려 죽었지만, 실제로는 십자가 대속을 믿는 개개인에게만 구원의 은총이 임하는 것입니다. 옛날 학창 시절 극장 문 앞에 ‘미성년자 입장 불가’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무슨 프로인가 궁금해서 사복 입고 가발 쓰고 드나든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천국 문 앞에는 ‘죄인 입장 불가’라는 간판이 붙어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십자가 피로 씻음 받은 성도들은 당당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개개인이 믿음을 준비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가정에서 매 주일 아침 이런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교회 가자고 권하는 부인에게 남편이 늘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당신 혼자 갔다 와! 우리 집 대표로 당신만 가면 되지, 뭐!”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꿈을 꾸었습니다. 죽어서 아내와 함께 천국을 향해 갑니다. 드디어 천국 문 앞인데, 천사가 검문을 합니다. “당신들 부부 맞나요?” 남편은 득의양양하게 대답했습니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부인 이름만 있네요.” “우리 집은 이 사람이 대표로 예수 믿었거든요!” 천사가 대답합니다. “아! 그랬군요! 어쩐지 ... 그러면 부인만 대표로 들어가세요!” 믿음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임을 설명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천국 비자 준비 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습니까? 여러분 각자의 마음 속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이 사순절이 다시 한번 점검하시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늘 당당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③ 유대인의 왕 :

맨 마지막으로, 명패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비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유대인의 왕이실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왕이십니다. 빌2:9~11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우주와 모든 인간의 왕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가리켜 “나의 왕!” “나의 주!” 이렇게 부르는 겁니다. 이게 곧 예수님의 왕권(Kingship)이요 주권(Lordship)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왕이시면 나는 무엇입니까? 백성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시면 나는 무엇입니까? 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과연 어떤 겁니까? 눅9:23에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부인(自己否認 Self-Denial)이라 함은 주인 노릇 하지 말라는 겁니다.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자기 십자가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내 뜻을 버리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하면서도 때때로 주종전도(主從顚倒) 현상이 일어납니다.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살다가 아쉬울 때만 하나님을 찾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주인을 종 취급하는 겁니다. 내가 종인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왕으로 인정하고 그 뜻을 헤아리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합니다. 모든 일을 우리가 스스로 하려고 하니까 꼬이는 겁니다. 그리고 어려울 때나 주님을 찾는 얄팍한 신앙에 머무는 겁니다. 

어느 선교사의 간증입니다. 선교지에 처음 갔을 때 너무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아침 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모든 것을 주님께 물어보고 움직였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하나님의 예비하신 축복과 승리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한국에 있을 때는 모든 게 익숙하니까 주님을 제쳐 놓고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게 깨달아졌습니다. 그래서 자기 안에 갇혀져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구나 하는 회한이 뒤늦게 생겼다는 겁니다. 

정말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주님으로 모시고 그 뜻대로 살면, 그 영광을 위해 살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고전6:19~20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십자가 피값으로 우리를 사셨으므로 우리 각자는 주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장 잘 되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건축회사 사장이 있었습니다. 창업 초기부터 함께 일하던 직원이 자기 사업을 하겠다고 통보합니다.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던 직원이라 몹시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집 한 채만 최고로 지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이미 마음이 떠난 그 직원은 마지못해 대답하고 대충 대충 집을 지었습니다. 예상 기한보다 한 달이나 빨리 완공했습니다. 그는 사장을 찾아와 열쇠를 주며 떠나겠다고 말합니다. 그때 사장이 손을 덥석 잡으며 말합니다. “자네, 그동안 너무 수고했네. 이 집은 자네 몫이야. 내 성의로 알고 받게!” 

그 직원의 얼굴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겁니다. 주님만을 위한 게 아니라, 결국은 내 인생의 집을 짓는 겁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십자가 위의 명패에 적힌 말씀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을 꼭 기억하시고 이 사순절에 십자가 신앙을 다시 한번 정립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쪼록 구원을 확신하시고, 주님을 왕으로 모심으로 항상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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