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순절] 새 언약의 중보자 (히 8:6~13)

  • 잡초 잡초
  • 754
  • 0

첨부 1


새 언약의 중보자 (히 8:6~13)


우리는 수많은 약속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계약을 맺고 약속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약속과 사회적인 규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산다, 집을 사고 팔 때에 쌍방 간에 계약을 맺습니다.  자기의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고 법적으로 책임지겠다고 약속합니다.  

성숙한 사람, 용기 있는 사람, 위대한 사람은  어떤 약속이든지 그것을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영국 속담에는 “약속은 늦게, 실행은 빠르게”라는 말도 있습니다.  약속이란 신중하게 해야 하지만, 한번 약속하였으면 반드시 실행해야 합니다.  

옛글에 공자의 제자 중에 증자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나가려고 하는데, 아들이 뒤를 좇아 울고 나왔습니다.  엄마 따라가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집에 있어라.  시장 갔다 오면 돼지를 잡아 맛있는 고기를 줄께”라고 달래서 아들을 떼어놓고 시장에 갔습니다.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다녀왔더니, 남편 증자가 돼지를 잡으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아내가 증자에게 “아니, 농담으로 한 얘기예요. 아이를 달래느라고 한 말인데, 돼지를 잡으면 어떻게 해요”라고 소리쳤습니다.  증자는 진지한 말로 “아이들에게 그런 농담을 해서는 아니 되오.  부모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는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면 그 애들이 거짓말을 배우게 되는 게 아니겠소.  거짓말한 줄 알면 어머니인 당신도 믿지 않으려 할 것이 아니오?”라고 하고는 아이와 약속한 대로 돼지를 잡아 구워 먹였다고 합니다. 

저는 시간에 대한 약속은 철저히 지키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결혼식에 참석하거나, 주례를 맡아보면, 시작 시간이 되었는데, 식장 안에 들어와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사회를 맡은 사람이 들어오라고 소리쳐도 밖에서 서성거리며, 사람들을 만나 인사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정각에 식을 시작하면 왜 그렇게도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많은지, 들어와 자리에 앉으라고 여러 번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음악회에 참석해보면 시작시간 전에 들어와 앉는 사람들이 아주 적습니다.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면 그제야 들어오느라고 시끄럽습니다.  음악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자리가 많이 비었습니다.   교통이 막히는 것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두어 곡이 끝나고,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하여 문을 열어주면 그 때에 수십 명이 들어옵니다.  한번 문을 닫으면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영상으로 보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무슨 돈을 납부하라는 고지서를 받으면 돈 보내는 일은 기간을 어기지 말고, 성실하게 납부해야 합니다.  그 정한 기간은 우리 사회의 약속이요, 절대적인 약속입니다.  법적인 공과금은 납부기한이 반드시 있습니다.  자동차 보험을 생각해보십시오.   정해진 날자와 시간이 지나면 즉각 보험 효력이 정지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동차보험은 특별히 그렇습니다.   그 몇 시간 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미국은 다인종이 모여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미국 뉴욕의 도로교통법은 자동차 보험이 효력을 상실하면 그 차주의 운전면허도 따라서 그 즉시 정지됩니다.  운전면허가 정지된 이유로 체포되는 사건이 세계의 어느 인종보다 많은 것이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미국 법원에 형사사건의 피의자로 경찰에 체포되어 오는 한인들의 사건 중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건이 운전면허정지 위반이고, 그들의 대부분은 보험료를 제 때에 납부하지 않아 면허가 정지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약속을 잘 지키고 준법정신이 강한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조금 있다가 내지”, “조금 늦으면 누가 뭐라나” 이러한 말이 사라져야 합니다. 

오늘은 새언약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저 좋은 언약-새 언약의 중보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언약, 계약, 약속 이런 말은 거의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속한 관계는 약속이라는 말로 사용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속한 관계를 말할 때에는 언약, 계약이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구약과 신약이라고 합니다. 구신약이라고 해야 하는데, 신구약이라고 말합니다.  구신약이라는 발음이 좋지 않기 때문에 신구약이라는 말을 합니다. 구약과 신약이라고 할 때에, 약이라는 말은 약속, 언약을 의미합니다. 구약은 옛 언약, 신약은 새 언약이라는 말이 됩니다. 

고대 셈족의 사회는 엄숙한 구속력을 가지는 언약의 개념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상호간에 맺은 언약은 엄숙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들으신다고 생각하였고, 말에 신용이 없으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창조하셨다고 믿으면서, 말에는 힘이 있고, 책임이 따르고, 구속력이 있다, 반드시 지키고 행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고대 셈족 사회에서는 큰 책임을 동반하는 언약은 혈맹의 언약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피를 마시므로, 형제가 되었고, 한 민족이 되었다는 그런 언약이었습니다.  언약을 맺은 당사자가 서로 협력하며 교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그런 깊은 구속력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는 언약이라는 말은 ‘베리트’라고 하여, ‘자른다’, ‘가른다’는 말입니다. 언약을 비준하는 의식을 거행하는데, 그 자리에서 짐승을 잡아 두 세 조각으로 나누어 한 조각씩 가지고 가고, 그 중의 한 조각을 음식과 함께 구워 먹었습니다.  짐승을 잡아 ‘쪼개고’, ‘나누는 것’, ‘자르고 가른다’는 말이 언약이라는 말이 되었습니다.  짐승을 자르고, 가르면 죽게 됩니다.   계약의 당사자 중에 하나가 계약을 어기고 파기할 때에는 어떠한 죽음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런 심각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이렇게 생명을 걸고 죽음을 각오하고, 혈맹관계에 들어갑니다. 

고대문서에 나오는 계약 과정을 보면 계약을 맺을 때에는 양이나 소를 세 부분으로 나누고, 그 중의 일부는 한 부분은 태우고, 일부는 서로 나누어가졌다고 합니다.   만일에 계약을 위반한다면 이렇게 짐승이 죽는 것처럼 죽일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계약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과 계약을 맺으셨는데, 이것이 시내산 계약이었습니다.    모세는 아론과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시내산으로 올라가 여호와께 나아갔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멀리서 경배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으면 백성들에게 나와서 그 말씀을 전달했습니다.  모세는 십계명과 그 외 일반법에 대한 상세한 말씀을 들었고, 십계명의 두 돌판도 받았습니다.   

모세는 언약체결의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출애굽기24:1-8에 자세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열두 지파를 나타내기 위하여 12개 기둥을 세웠습니다.  모세는 청년들로 하여금 소를 잡아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모세는 소의 피를 여러 양푼에 담아 가지고 절반은 제단에 부어드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여 듣게 하니, 백성들이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서약하였습니다.  모세는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선포하였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운 언약의 피니라”고 외쳤습니다.  언약 체결식을 마치면서 모세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들 칠십인을 데리고 시내산에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습니다.  이것으로 언약체결의식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구약, 시내산 언약은 피로 맺은 언약이었습니다.   제단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모세는 중보자요,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먹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면서 계약의 보증으로 율법,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십계명의 첫 단추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능력 있는 신이 아니고, 피조물에 불과한 것을 하나님 옆에 갖다놓고는 그것도 신이라고 하나님과 비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누구와 비교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우리에게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만들지 말고,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하신 것은 마치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결혼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부부관계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한 여자의 남편과 같이 언약을 지키고 최선을 다하여 이스라엘을 보살피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정결한 아내로서의 그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이 우상숭배는 하나님 앞에 간음하는 죄악이었습니다.  그래서 첫 언약은 파기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새언약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기자는 구약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하신 말씀을 인용하면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렘31:31)라고 하셨습니다.  새언약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새 언약을 맺을 것을 예언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6절 말씀에서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참으로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는데,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받은 직분보다 더 아름다운 직분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하나님 전에 들어가시는 대제사장의 직분이었습니다. 

첫 언약이란 구약이요, 시내산 언약입니다.  그 언약보다는 새 언약은 더 좋은 언약입니다.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두 번째 새 언약을 주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새로운 언약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옛 언약이 불완전하였음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언약도 참으로 좋은 언약이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율법이란 사람을 속박하는 것으로 알고, 버렸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것이 좋은 일인데, 우상을 숭배하고, 다른 신들을 사랑하였는데, 마치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따라가는 음녀와 같았습니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주시면서 율법을 지켜고, 언약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고, 그 언약에 머물러 있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우상숭배에 빠져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떠나고 아프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 고심하신 하나님은 새로운 계약을 주시는데, 이것은 은혜계약이요, 옛날 언약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언약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8)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새롭게 체결하려는 새 언약은 옛 언약과 비교할 수 없는 은혜의 언약입니다.  

새 언약을 맺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맺으리라”는 말씀은 새 언약을 세우시겠다는 말씀으로 모세의 율법을 폐하시겠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맺으리라는 말은 이룩하다, 성취한다는 뜻이 있어 옛 언약을 완성한다, 완전케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예수님이 오신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셨습니다.   마5:17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새 언약은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세우는 언약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새 언약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는 옛 언약을 가지고는 구원받을 길이 없었고, 옛 언약에는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옛날 언약에서는 십계명의 말씀을 돌비에 새겨 주셨지만, 이제는 마음판에 새겨주셨습니다.  마음판에 기록하신다는 말씀은 잊어버리지 않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인격적인 변화를 주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말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우리 마음에 새겨주시어 새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구원해주신 보증으로 성령님을 보내어주셔서 우리를 성전 삼고 항상 거하시고 상주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11절입니다. “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11)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말씀을 다 해석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우리 주님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므로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무서우신 심판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으로 깊은 교제가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이 죽으심으로 이루어질 새 언약을 말씀하셨습니다.  눅22:19-20에서 성만찬을 제정해주시면서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피 흘려 돌아가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우리의 더럽고 추한 모든 죄는 용서받았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새로운 언약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은 새 언약의 보증으로 흘리시는 피였습니다.    고전11:25에는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12절입니다. “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님,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죽게 하실 때에, 주님 안에서 모든 사람을 용서해주시는데, 그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유명한 찰스 스펄젼 목사님은 “언약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석사학위를 주지 말라”고 하셨답니다.  언약에 대한 말씀은 성숙한 사람들,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깨닫는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가 예수님에게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그의 독생자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대표요, 사랑하시는 주님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고전15:22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모시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의 죄는 기억하지도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사야43:25에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도말한다는 말은 씻어내다, 닦아내다, 지워 없애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의 목록을 씻어버리고, 닦아내시고 지워 없애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버렸습니다. 

시103:12에는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라고 하셨습니다.  동과 서는 영원히 만나지 않습니다.  

사38:17에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등 뒤로 우리의 죄를 던져버리시고 다시는 뒤돌아보시지 않습니다.  

미가서7:19에는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는 깊은 바다에 던지셨습니다.  깊은 1만미터나 되는 해연에 던져버리시고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8:12에서는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전에 지은 죄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회개하시고 다 잊어버리세요.  하나님도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왜 우리가 죄의 안개, 죄책감에 사로잡혀 앞을 향하여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까?  죄의식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좋은 자동차를 타고 나가는데,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고 왜 차가 나가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예약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마중 나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살 집도 예비해놓고 기다리신다고 하셨습니다.  마침내 천사장의 호령과 나팔 소리에 맞추어 신랑 예수님이 신부된 성도와 교회를 데리러 오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하나님이 되어주신다는 약속, 우리 안에 말씀을 주시고, 성령을 보내주셔서 새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면서 우리의 죄는 기억지도 않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높여드려야겠습니다.  새언약의 중보자이신 주님 안에 들어와 구원받은 감격을 새롭게 하시고,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