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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듬지 않은 돌 (신 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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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지 않은 돌 (신 27:1~8)

(신27:1-8)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로 더불어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이미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이 돌들을 에발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철기를 대지 말지니라.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을 쌓고 그 위에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명백히 기록할지니라.

1. 구약 시대에 아론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장이 되어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성소의 등불을 끄고 켤 때(아침에는 등불을 껐다가 해가 지면 다시 등불을 켜야 한다.) 향을 살라 바쳐야 했습니다. 이 때 향을 태우는 불은 반드시 번제단의 불만을 사용해야만 했습니다.(출30:7-9)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제사장이라는 특권 의식에 빠져 임의대로, 자기들 편리한대로 번제단의 불이 아닌 다른 불을 가져다가 향을 살랐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 앞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삼켜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레10:1-2)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이들은 레위기 10:9-11 말씀을 추론해 볼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셔 취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사건 직후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레10:9-11)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이들은 성전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셔 취한 상태가 되어 거룩하고 속된 것,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할 수 없는 지경에서 무분별하게 제멋대로 ‘다른 불’로 향을 사르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나 하나님의 거룩한 직분을 감당할 때는 인위적인 모든 방법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말씀에 따라서만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더 이상 가감할 것이 전혀 없는 완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계시록 22:18-19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계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사도 바울 역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복음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받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갈1:6-9)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2. 오늘 분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위해 철 연장을 사용하지 말고 다듬지 않은 돌(자연석)로 제단을 쌓고 하나님 여호와께 불로 태워 바치는 번제를 드리라.”(5,6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제단을 쌓는 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단을 쌓을 때는 반드시 다듬지 않은 돌로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23-25을 보겠습니다. 

(출20:23-25)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다듬지 않은 돌로 단을 쌓고 그 위에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라.” 는 말씀에서 “번제”는 백성들의 죄 사함을 받기 위해 동물을 죽여 불로 태워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다듬지 않은 돌로 만들어진 단”은 백성들의 죄 사함을 받는 곳, 수많은 제물이 죽임을 당한 희생의 피가 얼룩진 곳, “번제단”을 말합니다. “번제단”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한 동물이 심판받아 희생되는 곳이 번제단입니다. 동물이 제물로 희생되는 이유는 인간의 죄값을 대신하기 위해서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죄값을 치루기 위해서는 희생되는 제물이 있어야만 합니다. 번제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희생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야만 합니다. 모든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를 흘린다는 것은 희생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피를 흘렸기 때문에 그 피가 사람의 죄를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17:11과 히브리서 9:22을 보겠습니다.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히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둘째는, 희생되는 동물은 흠이 없어야만 합니다. 반드시 깨끗한 제물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두 가지 조건을 완전하게 갖춘 희생 제물로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요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세상에 소개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되는 희생 제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거룩하고 흠이 전혀 없는 희생 제물이시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전혀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희생되어 피 흘리셨다고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얻어 하나님 앞에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9:12,28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온 인류가 단번에 영원히 죄 사함을 얻게 된 것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지금 온 인류의 죄 사함을 위한 “번제단”입니다. 그러면 “번제단”의 돌, “다듬지 않은 돌”은 무엇이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번제단을 쌓을 때 다듬지 않은 돌로 하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번제단”의 “다듬지 않은 돌”은 바로 흠과 티가 전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다듬지 않은 돌로 단을 쌓으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 예배드리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하나님 앞에 예배드려 죄 사함을 얻어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또한 “다듬지 않은 돌로 단을 쌓고 그 위에 번제를 드리라.”는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세를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다듬지 않은” 모습, 있는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가 예배드리라는 뜻입니다. “번제”란 희생제물을 불에 태워서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레위기 1:1-9을 보면, 희생 제물을 번제단 위에서 전부를 불살라 드리는 예배를 “화제(火祭)”라 부르며 번제단 위에서 제물이 불타며 나는 냄새를 두고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 했습니다. “향기로운 냄새”가 나야 “향기로운 예배”입니다.

(레1:9)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로 하나님 앞에 열납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것 중 중요한것은 레위기 1:4,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는 말씀에 따라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될 제물의 머리에 안수(按手)하라, 즉 그 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으라는 것입니다. 희생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무엇을 하라는 것입니까? 머리에 손을 얹고 자신이 지금까지 지은 죄를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므로 고백한 죄가 모두 희생 제물에게 전가(轉嫁)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행위, 다시 말해 죄를 회개하는 행위가 없이는 속죄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예수 믿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때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회개하는 고백이 반드시 있어야만 죄를 불태우는 “향기로운 냄새”가 되어 하나님 앞에 열납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의로운 것처럼, 가장 깨끗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더러운 죄로 가득 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두고(마23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눅18:9-14)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스스로 깨끗하다며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회개 없는 바리새인의 기도는 “향기로운 냄새”로 열납되는 “향기로운 예배”, “다듬지 않은 돌로 단을 쌓는 번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멸시받는 세리는 너무나 죄송스러워서 성전에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회개하므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의 회개하는 기도가 죄를 태우는 “향기로운 냄새”, “다듬지 않은 돌로 단을 쌓고 드리는 번제”로 하나님 앞에 열납된 것입니다. 회개의 고백이 없는 기도와 찬송, 위선적이고 가식적이며 형식적인 예배, 그리고 회개하라는 설교를 듣기 싫어하는 예배는 결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향기로운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다윗 왕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만이 아니라, 언제든지 자신의 죄를 지적하여 회개할 수 있도록 거룩한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을 때까지 곁에 두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미국 어느 도시에 사는 남매 메리와 존이 주말에 시골의 할머니 댁에 놀러가게 되었습니다. 존은 삼촌이 선물로 사준 고무총을 가지고 가서 이것저것 쏘는 연습을 하며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오리가 걸어오는 것을 본 존이 고무총을 겨누고 오리의 머리통을 명중시켜서 오리가 그만 그 자리에 푹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존은 겁이 났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죽은 오리를 큰 나무 밑에 파묻고 낙엽으로 가리워 놓았습니다. 감쪽같이 가리워 놓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두근거리고 두려워서 할머니께서 잘 준비하신 저녁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밤에 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눈만 감으면 할머니가 보이고 죽은 오리가 눈에 선하게 나타납니다. 할머니를 보면 공연히 무섭기만 하고 도무지 괴로워 살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존은 결심했습니다. 어차피 잘못한 바에는 할머니께 말씀드려서 벌을 받아야 마음이 편하겠다고 생각한 존은 할머니 방에 들어갔습니다. 할머니는 인자하신 음성으로 “존,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존은 용기를 내어 모든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을 듣고 계시던 할머니는 존을 안아주시면서 “존, 착하다. 내가 네 잘못을 다 용서해주마. 사실은 어제 오후에 이층에 있으면서 네가 하는 일을 다 보았단다. 그래서 네가 이렇게 나에게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아무 걱정 말아라. 내가 다 용서했다.” 이처럼 죄인인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오기만 하면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약속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먹고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아담에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지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기를 기다리며 물으신 것입니다.(창3:8-9) 가인의 마음에 품은 생각과 그의 행동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은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지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기를 기다리며 물으신 것입니다. “다듬지 않은 돌로 단을 쌓는 예배”, 자신의 죄를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묻지도 아니하시고 기억도 하지 아니하시고 도말해버리십니다. 

(사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예수 앞에 끌려온 여인을 두고 율법에 따라 저마다 돌멩이를 들고 쳐 죽이고자 했을 때,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하나같이 들었던 돌멩이를 모두 내려놓고 그 자리를 떠나갔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그 여인에게 묻습니다.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느냐?’ 아무도 없다고 하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요8:1-11) 

이처럼 어떤 모습과 처지로든 예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예수께서는 지은 죄를 묻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셔서 생명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향기로운 예배”는 “상한 심령”,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하나님은 멸시치 아니하시고 “향기로운 냄새”로 열납하시는 것입니다.

(시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바로 “다듬지 않은 돌로 단을 쌓고 드리는 번제”입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어떤 유명한 화가가 인생의 진솔한 모습을 그리고자 모델을 물색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어떤 지하도를 지나다가 한 구걸하는 남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를 보자 남루한 모습이지만, 그의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나온 진실을 발견하고는 그를 그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화가는 걸인에게 가까이 가서 말하기를 “내가 당신을 모델로 삼고 싶으니 내일 우리 집으로 와 주시오” 하고는 명함과 함께 얼마간의 돈을 주었습니다. 그 걸인은 그러한 제의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더구나 자기를 모델로 삼겠다고 한 그 화가는 당대에 제일가는 화가였습니다. 그래서 그 걸인은 생각하기를 ‘내가 비록 거지라 빌어먹기는 해도 인물이 괜찮은가 보다’하고는 ‘이왕 그릴려면 더 나은 모습을 하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화가가 준 돈을 갖고 맨 먼저 간 곳이 목욕탕이었습니다. 목욕탕에서 말끔히 씻고 나온 그는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손질했습니다. 그리고 시장에 가서 새 옷을 사 입고는 마지막 남은 돈으로 구두를 사 신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말쑥한 신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정식 모델이 되면 많은 돈을 받으리라 생각하여 있는 돈을 다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곧 그는 명함에 적혀 있는데도 그 화가의 집에 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 거지는 자기의 달라진 모습에 화가가 크게 기뻐하리라 생각했고 자기가 매우 자랑스러웠습니다. 이윽고 화가가 나와서 그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문간에 서 있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그 거지는 화가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이상히 여기고는 자기가 그 지하도에서 구걸하던 걸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그 화가는 말할 수 없이 실망하고는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있는 그대로 왔으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 말하기를 “당신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고는 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처럼 의롭지도 않으면서, 의로운 체 하거나, 깨끗하지도 않으면서 가장 거룩한 것처럼 자신을 꾸미고 위선적인 사람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다듬지 않은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므로 예배드리는 사람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맞아 “다듬지 않은 돌로 단을 쌓고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는” 신앙생활로 경건의 능력이 충만하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 향기롭고 복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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