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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상이란 무엇인가? (출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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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이란 무엇인가? (출 20:4~6)
 
 
얼마 전 EBS TV의 창사특집 자연 다큐멘타리 [잡초]라는 프로그램을 본 일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왜 그렇게 잡초들이 왕성한 생명력을 가지고 번성해 가는지 그 비밀을 알게 됐습니다. 한 마디로 ‘잡초’들의 놀라운 생존 전략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나 초식동물들에게 먹히거나 뽑힌 잡초들은 비상사태를 선포한답니다. 자신 안에 있는 모든 역량을 뿌리로 보내서 미생물들이 좋아하는 물질들을 흙속에 분비하게 한답니다. 미생물들이 모여들어 활발한 생리활동을 하게 되면 뿌리 주변에 많은 영양분들이 만들어지게 된답니다. 그리고 나면 이제 미생물들을 죽이는 물질을 분비해서 미생물 죽은 것까지 영양분으로 빨아들이게 된답니다. 그래서 다른 식물들보다 잡초들이 급속하게 성장하게 된답니다.

바로 농부들이 힘겹게 잡초들과의 전쟁을 치러야 하고, 이 전쟁에서 이기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영적전쟁도 이와 같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우리 마음 밭에 원치 않는 우상들이 자리 잡습니다. 애써서 제거하면 없어진 것 같다가도 이내 다시 나타납니다. 바쁘거나 게을러서 잠시 신경 쓰지 못하면 이내 자라서 우리 마음 밭을 점령해 버립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우리의 영적전쟁은 우상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출 20:4-6은 십계명 제 2 계명입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한 마디로 우리의 마음속에 우상을 두지 말고, 또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얼핏 이 말씀은 어폐가 있어 보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고 우상의 땅 애굽을 떠나 시내광야에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매일 만나가 내려오는 것을 먹고 있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마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자기들 위를 뒤 덮고 있습니다. 어디를 봐도 저들의 마음속에 우상이 나타날 상황이 아닙니다. 저들이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우상의 끈질긴 생명력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상의 놀라운 생존 전략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긴장을 늦추고 철저하게 대비하지 않으면 언제 어떤 형태로 우상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런 우려가 사실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주시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아래 시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을 섬기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은 잡초처럼 우리 마음속에 생겨납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 마음속에도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겠다고 결단하고 헌신하는 사람들 마음속에도 나타납니다. 경계를 늦추고 안일하게 대하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을 장악해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토록 힘주어 우상숭배를 경계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상숭배는 결코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닙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금 내가 우상숭배를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언제라도 내가 우상숭배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우상이란 무엇일까요? 

시 115:4절 이하에서 우상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적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한 마디로 말하면 우상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아무런 능력도 없고, 아무런 권위도 없고, 아무런 의지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것에 대단한 권위가 있다고 떠받듭니다. 나아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놀라운 능력이 있다고 인정합니다.

다음으로 겔 14: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우상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자기만의 우상을 들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상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눈에 보이는 우상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세워놓은 우상을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속에 들인 우상을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세워놓은 일은 하나님 보실 때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우상을 만들어 세우는 일은 금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우상이 될 수 있는 것들은 치워야 합니다.

그런데 더 문제는 우리 마음속에 들인 우상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더 문제 삼으시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데 그것을 의지합니다. 아무런 권위도 없는데 그것 앞에 절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 자리에 대신 들어앉은 것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드는 일도 하나님 앞에 큰 죄이지만 우상을 섬기는 일은 더 큰 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떤 형태의 우상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형태의 우상도 마음속에 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로 우상은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상은 무엇이 문제일까요? 

하나님께서 왜 우상을 만들지 말라 그리고 섬기지 말라 하셨을까요? 도대체 우상은 무엇이 문제일까요?

첫째,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선 우상이 문제가 되는 것은 잘못된 믿음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상 앞에 설 때 그 우상이 하나님인 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우상을 믿고 의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출 32:4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금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 이것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금송아지 형상을 실제로 여호와로 알고 그 앞에 제단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이 앞에서 실제로 절기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알고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속는 것입니다. 헛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금 송아지 사건에서 보듯이 어처구니없게도 금 조각이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아무런 힘이 없는 금 조각이 마치 전능한 신인 것처럼 숭배를 받게 된 것입니다. 어리석게도 사람들이 금  송아지에게 자신의 인생의 문제를 맡기는 것입니다.

북한을 가보니 낯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이 곳곳에 서 있는 김일성 동상입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건물마다 김일성 사진이 걸려있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김일성 뺏지를 달고 다닙니다. 마치 죽은 김일성이 신처럼 숭배되고 있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집에 걸려있는 김일성 사진과 마주칩니다. 길거리에 나서면 김일성 동상과 마주칩니다. 그리고 일터에 가면 또 김일성 사진과 마주칩니다. 그래서 김일성은 죽은 것이 아니라 우상이 되어 북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지금도 김일성이 살아서 자신들을 돌봐주고 보살펴준다고 믿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김일성 우상화라고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은 그것을 섬기는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있게 됩니다. 그리고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을 지배하게 됩니다.
현대에 들어오면 과거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우상들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돈입니다. 돈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서 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명예가 또 어떤 사람에게는 권력이 우상이 됩니다. 청소년들에게는 연예 스타가 우상이 되어 그 마음을 지배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자리에 우상이 자리를 잡습니다. 하나님 대신 믿음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 대신 사람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통치합니다. 우리가 그래서 우상을 척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삶의 문제입니다.

우상이 문제가 되는 다른 하나는 잘못된 삶을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상 앞에 설 때 자기의 간절한 소원을 품고 섭니다. 모든 관심이 우상이 가진 초월적 능력으로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것에 모아져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삶을 돌아보거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다짐과 결단은 없습니다.
사 40:19-2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느니라” 한 마디로 말하면 우상은 사람이 만들어 세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상은 사람이 자기들이 필요해서 만든 만들어진 신일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상의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필요해서 하나님을 만든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하나님, 내 필요를 채워줄 하나님을 만들어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도권은 내게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내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언제라도 바꿔치울 수가 있습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새로운 우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섬기기 힘들면 다른 우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결국 나는 변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숭배에는 나의 변화는 없습니다. 내 삶이 새로워지거나 성숙해 지는 일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상숭배에는 윤리성과 도덕성이 없습니다.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렘 10:3-5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 나라의 풍습은 헛된 것이니 삼림에서 벤 나무요 기술공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나니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매어야 하느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고나 복을 주지 못하니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한 마디로 우상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또 다른 우상의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가십니다. 그러나 우상은 말하지 못합니다. 벙어리입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새롭게 창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새롭게 변화시켜가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회개를 모릅니다. 자기의 잘못을 돌아보고 무엇이 잘못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앞으로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할 줄 모릅니다. 계속 잘못된 삶을 살면서 소원만 빌 뿐입니다. 그래서 삶의 변화도 없고 인격의 성숙도 없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화목도 발전도 없습니다. 우상을 척결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셋째, 예배의 문제입니다.

우상이 문제가 되는 또 하나는 잘못된 예배를 드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요 4:24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존재를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참된 예배는 영적 예배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상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들어 세워놓고 그 앞에 절하게 되면 그것은 그 자체로 영적 예배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예배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종교적인 동물입니다. 그래서 예배 또는 제사를 드리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가장 어려운 것이 보이지 않는 신을 섬기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대 사람들이나 현대 사람들 모두에게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고안해 낸 손쉬운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그 결과 모든 민족의 제사 풍습에 우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종교에 다 우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4-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어 예배드리는 것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만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어려서 불신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제사지내는 것을 지켜봐왔습니다. 어려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제사상에 음식을 차려놓는 것입니다. 음식을 차려 놓으면서도 까탈스럽게 예법을 따집니다. 흰 쌀 밥을 뫼라 하면서 한 숟가락 떠서 물에 타놓고는 숟가락을 고추 세워놓습니다. 어른들 말씀이 혼령이 와서 잡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도 누군가가 먹어서 음식이 줄어든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사 끝내고는 둘러서서 그 음식을 제사 지낸 사람들이 맛있게 나누어 먹습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이런 생각까지 해 본 일이 있습니다. “결국 제사상은 제사 끝내고 우리가 먹으려고 차리는 것이구나 그럴 거면 우리가 먹고 싶은 것 올려놓으면 좋을텐데... 자장면, 햄버거, 바나나 등”
그렇습니다. 우상의 문제는 바로 예배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자기들 좋아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은 척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상숭배는 인간이 타락한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에게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탄이 마치 잡초가 논이나 밭에 자라서 농사를 방해하는 것처럼 우상을 만들어  올바른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우상은 우선 우리의 믿음을 왜곡시킵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믿고 의지하게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의 삶을 왜곡시킵니다. 욕심과 소원만 붙들고 살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예배를 왜곡시킵니다. 사람이 만족할 예배만을 드리게 합니다. 이 우상을 척결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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