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개천을 많이 파라 (왕하 3:13~18)

  • 잡초 잡초
  • 608
  • 0

첨부 1


개천을 많이 파라

(왕하3:13-18)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이스라엘 왕이 저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 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붙이시리니...

1. B.C.850년경, 유다와 이스라엘, 그리고 에돔 이 세 나라가 연합군을 만들어 모압 정벌에 나섰습니다. 모압을 정벌코자 하는 이유는 다윗 왕 때부터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조공을 바쳐오던 모압이(삼하8:2) 아합 왕이 죽은 후부터 이스라엘의 세력에 약화되자 조공을 중단하고 이스라엘을 배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날로 국력이 약화된 이유는 한 마디로 우상숭배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우상숭배는 아합 왕과 왕비 이세벨에 의해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광적(狂的)으로 시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아합이 죽자 그의 아들 여호람이 등극했습니다. 그는 국력 약화의 근본 원인이 우상숭배에 있었음을 깨닫고 국력 쇄신을 위해 부친의 우상숭배 정책을 개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전국에 걸쳐 바알 신상들을 제거했지만 바알 숭배의 악습을 철저히 타파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이스라엘에 바알 숭배를 퍼트리고 이스라엘을 바알 숭배화시킨 열렬한 바알 숭배자 이세벨이 그의 딸 아달랴와 함께 여전히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최고의 악녀 코드로 손꼽히는 모녀가 그 잔존 세력과 더불어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알 숭배의 제사장들이 여전히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활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호람은 모압 정벌을 위해 군대를 소집하고 유다 왕 여호사밧에 원조를 요청합니다. 여호람의 원조 요청에 여호사밧 왕은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모압 정벌에 가담하게 됩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남 유다나 북 이스라엘이 본래 한 나라 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왕의 우상숭배로 인해 그 사후 나라가 분단되어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남쪽 지역은 남 유다 왕국,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북쪽 지역은 북 이스라엘 왕국이 되었습니다. 여호사밧 왕이 볼 때, 분명 한 형제 나라들이기 때문에 아합 왕이 통치하는 북 이스라엘과 동맹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과 아합의 딸 아달랴와 정략적으로 결혼시켰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합 왕과는 사돈지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합의 아들 여호람의 원조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다윗 왕 버금가는 왕으로 평가받을 만큼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정직하고 진실하며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신앙과 말씀으로 통치하는 아주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통치에 흠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나라의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했을 때, 국력을 더욱 더 공고히 하고자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자,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는 우상숭배자 아합을 가까이 하여 그와 연혼관계를 맺어 사돈지간이 된 것입니다.

(대하18:1, 19:2)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보다는 혈연관계와 자신의 정책을 우선했던 것이 그의 통치에 흠집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합 왕이 길르앗 라못 정벌 전쟁에 혈연관계를 내세워 여호사밧 왕에게 지원 요청을 하고 여호사밧 왕은 이를 거절치 못하여 함께 전쟁에 나갔지만 전쟁에서 패배하여 아합은 죽고 여호사밧은 겨우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선지자 예후를 통해 준엄한 하나님의 책망을 받게 됩니다. 

(대하19: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가로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또 한 가지 경제 동맹을 요구해온 북 이스라엘의 아사히야(여호람 왕의 형) 왕과 결탁하여 무역선을 건조했던 그의 경제 정책이 실패로 돌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해도 불구하고 우상숭배하는 왕과의 경제 동맹 정책을 강행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애써 건조한 무역선을 띄워보기도 전에 파선시켜 버렸습니다.

(대하20:36-37) 두 왕이 서로 결합하고 배를 지어 다시스로 보내고자 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지었더니 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하여 예언하여 가로되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는고로 여호와께서 왕의 지은 것을 파하시리라 하더니 이에 그 배가 파상하여 다시스로 가지 못하였더라

2.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지 아니하고 혈연관계를 앞세우거나, 자신의 정책을 우선하는 일은 결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함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동족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 역시 거룩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0:26을 보겠습니다. 
(레 20:26)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하다’는 뜻입니다.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듯이,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빛과 어둠을 구분하듯이 하나님께서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시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B.C.538년경 바사 왕 고레스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포로민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돌아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도록 조서를 내렸습니다. 왕의 조서에 따라 스룹바벨이 총독이 되어 귀환코자 하는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 재건에 착수합니다. 이 소식이 제일 먼저 인근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도 유대인으로 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기며 산다며 성전 재건에 기꺼이 동참할 의사를 밝힙니다. 그러나 스룹바벨 총독과 더불어 족장들이 한결같이 그들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스4: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하신대로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사마리아 사람들의 성전 재건 참여를 거절한 이유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혼혈민족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할 때 앗수르가 아람족과 메소포타미아 족들을 사마리아 성에 강제 이주시켜 함께 살도록 했습니다. 그 후로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방 민족들과 결혼하여 혼혈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방 종교를 수용해서 우상숭배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는 종교적 혼합주의 신앙형태를 가지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유대인 피만 혼합된 것이 아니라 신앙까지 우상숭배와 혼합되었기 때문에 정통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시하며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전 재건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사마리아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아니하고 홀로 건축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사마리아 사람들과 ‘구별’을 선포한 것입니다. 솔로몬이 거룩한 성전 안에 이방 우상숭배까지 허용하므로 나라 민족이 멸망당하게 된 것을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해 뼈아프게 체험했기 때문에 성전 구별을 위해 사마리아 사람들의 성전 재건 동참을 단호하게 거절했던 것입니다. 만약 사마리아 사람들의 동참을 허용했더라면 성전 재건은 너무나 수월하게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인력 동원이나, 물질적인 자원 지원 면에서 훨씬 더 많은 후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단호히 거절하고, 힘들고 더디고 어렵더라도 구별의 길, 거룩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활면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22:5,9-11)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이 빼앗김이 될까 하노라.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요즈음 흔히 들어볼 수 있는 단어 ‘유니 섹스(unisex)’ 혹은 ‘모노 섹스(monosex)’가 있습니다. 이는 의상이나 머리 모양 따위에서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복장(服裝)에 남녀 차가 없어지는 현상, 또는 남녀를 구별하지 않는 패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패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계를 초월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옷을 사러가서 “여자 옷이냐? 남자 옷이냐?”라고 물으면 “다 입을 수 있어요.”라는 답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경계가 사라지고, 연령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속옷과 겉옷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전문적으로 경계가 없어지는 것을 ‘보더리스’(borderless), 나이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을 ‘에이지리스’(ageless), 성의 구별이 없는 것을 ‘안드로제너스’(androgynous)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성(聖)과 속(俗)의 경계가 무너지고 그 구분이 없거나 모호해지는 것을 가증히 여기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애초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여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순수한 것을 기뻐하시고, 깨끗한 것을 원하십니다. 이것저것 혼합된 것은 더러움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면서 그들과 더불어함께 살도록 하지 않으시고, 왜 가나안 족속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멸절시키라고 하셨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별되게 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의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혼합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란 말은 세상에서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람들로 구별된 무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거룩한 피로 구별하신 무리,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 하나님 앞에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후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는 거룩하게 구별된 삶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오늘 본문에서도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모압 원정에 참여하여 우상 숭배하는 여호람과 에돔 왕과 군사 동맹하는 일 등은 결코 선하고 거룩한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앞서 혈연관계를 앞세운 아합 왕과의 군사동맹, 그리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 왕과의 경제동맹 등이 하나님의 개입으로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사밧 왕은 또 다시 혈연관계에 연연하여 여호람 왕이 모압 정벌에 지원을 요청했을 때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나서게 됩니다.(왕하3:7) 

이처럼 한 번 잘못 맺은 혈연관계가 집요하게 여호사밧 왕에게 올무로 작용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여호사밧 왕은 과거의 뼈아픈 실패를 뒤로 한 채, 또 다시 여호람 왕과 함께 모압 정벌에 나서게 됩니다. 모압은 사해를 중심으로 사해 동편에 있고, 유다는 사해 서편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북 이스라엘은 사해 북서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모압을 정벌코자 하면 남 유다 지역으로 내려와 사해 남단을 돌아 에돔 사막(에돔 광야 길)을 거쳐 모압을 공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전략이었습니다. 게다가 에돔은 남 유다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여호사밧 왕이 모압 정벌에 가담할 경우 쉽게 에돔도 가담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남 유다, 북 이스라엘, 에돔 3개국이 연합 대군을 만들어 에돔 광야 길로 모압 정벌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모압 정벌에 나선지 7일째가 되었는데도 공격 루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 모압과 에돔 경계지역인 ‘아시 골짜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골짜기는 사시사철 계속 물이 흐르는 강이 있어서 그 골짜기에 도착하기만 하면 충분히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3개국 대군이 도착했을 때는 가뭄이 한창이어서 강이 말라 그 바닥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에돔 광야 길을 7일째 물없이 진군하다가 겨우 ‘아시 골짜기’에 도착했지만 물 한 방울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광야의 개천은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乾川, wady)이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 시기에는 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골짜기에 이르기만 하면 병사나 육축을 위한 충분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는데 예기치 않은 상황, 강바닥까지 드러낸 물의 고갈 상황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모압 정벌을 앞두고 가장 치명적인 상황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람 왕은 이러한 환난은 우상숭배를 깨끗이 청산하지 아니한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깨닫고 이렇게 절망적으로 외칩니다.

(왕하3:10)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 왕의 손에 넘겨 주시려고 이 곳까지 불러내셨구나!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찾는 믿음을 보여 줍니다.
(왕하3:11-12) 여호사밧이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여호사밧 왕은 늦었지만 여호람 왕의 의견은 아예 배척해버리고 참된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하나님의 선지자를 찾은 것입니다. 연합 대군이 멸절 위기에 처했지만 오직 살 길은 하나님의 뜻에 있음을 믿고 선지자를 찾은 것입니다. 신하 중 하나가 이곳 가까이에 선지자 엘리사가 있음을 보고하자 여호사밧은 그야말로 참된 선지자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바른 뜻을 알려줄 수 있다며 여호람 왕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엘리사를 찾아 갔습니다. 엘리사가 이들 가운데 이스라엘 왕 여호람을 보자 호되게 책망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버린 당신이 어찌 선지자를 찾아왔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선지자와는 상관하지 안찮습니까? 당신의 부모인 아합과 이세벨이 찾았던 거짓 선지자나 찾아가시오.”(13절) 

그리고 옆에 함께 찾아온 여호사밧 왕을 보며 말합니다. “내가 섬기는 살아 계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지만 유다의 여호사밧 왕만 아니었더라면 내가 당신을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여호사밧 왕만 이 자리에 없었더라면 여호람과 에돔 왕을 골짜기에 그냥 묻어버렸겠지만, 여호사밧 왕이 우상숭배를 철저히 타파하고 참된 선지자와 제사장들을 바로 세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그 말씀대로 살도록 한 선행이 하나님 앞에 기억되어 진퇴양난의 위기를 맞은 연합군을 구원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선지자를 찾아온 여호사밧 왕의 믿음과 그의 과거 선한 통치를 정상 참작하여 구원하시고 승전하도록 축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그들에게 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른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그리하면 비를 동반한 폭풍우를 너희가 보지 못할지라도 너희가 판 골짜기마다 물이 가득히 채워져 너희와 너희 모든 짐승들까지도 충분하게 해갈하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 “이런 일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압 사람들을 당신들에게 넘겨주실 것이며 모압을 완전하게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는 전승(戰勝)의 축복까지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이른 아침에 예배를 드릴 때 에돔 서편에서부터 물이 흘러 내려오기 시작하여 개천을 판 만큼 그 땅에 물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멀리 에돔 산악 지대에 쏟아져 내린 폭풍우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이 보지 못했지만 그 빗물이 흘러 ‘아시 골짜기’, 개천에 차고 넘치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이 예배를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4. “개천을 많이 파라”고 말씀하셨을 때, 비가 내릴 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을지라도 여호사밧 왕은 믿음을 가지고 많이 팠습니다. 그리고 많이 판 만큼 개천에 물이 채워졌습니다. 이러한 기적은 이 사건 직후 선지자 생도의 미망인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선지자 생도 중 하나가 빚을 잔뜩 진채 두 아이를 남겨두고 죽었습니다. 이 과부가 엘리사를 찾아가 이렇게 호소합니다. “저의 남편은 죽었습니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그 사람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선지자의 생도였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돈을 좀 빌려 쓴 것이 있는데 돈을 갚지 않는다고 빚장이가 와서 내 아들 둘을 데리고 가 종으로 삼겠다고 합니다.” 

엘리사가 그 과부에게 “내가 당신을 위해 어떻게 하면 좋겠소? 당신의 집에 무엇이 있는지 말해 보시오.”라고 말하자 “저의 집에는 작은 기름 한 병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 대답합니다. 이에 엘리사가 “당신은 이웃집에 가서 빈 그릇을 빌려 오시오. 빌려 오되 조금 빌리지 말고 되도록 많은 그릇을 빌려와 당신의 두 아들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 차는 대로 옮겨 놓으시오.”라고 했습니다. 

그 과부는 엘리사의 말 그대로 순종해서 이웃들에게서 빌릴 수 있는대로 그릇을 빌려와 문을 걸어 잠그고 그릇마다 한 병 남은 기름을 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릇마다 기름을 부어도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빈 그릇들을 다 채웠습니다. 빌려 온 그릇마다 기름이 다 가득하게 채워지자 흐르던 기름이 곧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 과부는 엘리사의 말대로 그 기름을 모두 팔아 모든 빚을 다 갚고 남은 돈으로 두 아이와 함께 넉넉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왕하4:1-7) 

이 과부가 만약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그릇 몇 개만 빌려왔더라면 빚을 갚지 못하고 두 자식이 종으로 팔려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께서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인들이 그 항아리 아구까지 물을 채우자 채워진 만큼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각이나 판단에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또한 기적이 일어날 징후가 보이지 않더라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아람의 군대장관이 문둥병에 걸려 소문을 듣고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엘리사는 사환을 시켜 요단강에서 7번 목욕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래도 이웃 나라 장관인데 나와 영접은커녕 종을 시켜 명령만 하달하자 몹시도 자존심이 상하여 그냥 돌아가고자 합니다. 엘리사의 태도가 불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분하기 그지없지만 신하들의 만류에 억지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자 신기하게도 문둥병이 깨끗이 치유되었습니다.(왕하5장) 

믿음이 없더라도, 억지로라도 하나님 말씀은 그대로 순종하기만 해도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은 믿음으로 순종할 때 성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메마른 개천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팠을 때, 판 만큼 물이 가득하게 된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 일이라”(18절)했습니다. 

더욱 큰 기적은 모압을 완벽하게 정복하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모압 왕은 연합군이 에돔 광야 골짜기에서 공격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갑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군대로 소집해서 최전방 방어에 임했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모압 병사가 적진을 살피던 중 연합군 진영에 붉은 피로 가득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골짜기에 가득 채워주신 물이 아침햇살에 붉게 물든 것을 연합군 내부에 내분이 생겨 서로 살육하여 피가 홍수처럼 흐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모압 군대는 방어 태세를 풀고 병사들마다 “이것이 피가 아니냐! 저 왕들이 자기들끼리 싸워 서로 죽인 것이 틀림없다! 자, 가서 그들의 진지를 약탈하자!” 하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이내 공격무기를 버려두고 노략하기 위해 연합군 진지로 달려갔습니다. 

이에 연합군은 무장 해제된 모압 군대를 식은 죽 먹듯이 괴멸시키고 계속 진군하여 모압 성을 정복하여 회복불가할 정도로 완전히 초토화시켜버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골짜기를 판 만큼 채워진 물이 연합군에게는 해갈의 축복만이 아니라 적군으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들어 완벽한 전승의 축복까지 가져오게 한 것입니다. 속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신앙생활로 하나님 앞에 기억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환난을 당하거나 역경에 처했을 때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이성(理性)이나 경험보다 하나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들이 성취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