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능력 받아 주의 몸된 교회를 세우라! (행 2:1~13)

  • 잡초 잡초
  • 384
  • 0

첨부 1


능력 받아 주의 몸된 교회를 세우라! (행 2:1~13)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심령의 내면적인 계시를 사모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있으면 속된말로 내 손에 장을 지져라"  이렇게 그릇된 열정에 미쳐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박해하는 일에 생명을 걸고 좇아 다니는 한 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당대에 그 유명한 사울이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얼마나 못 됐는지 오늘처럼 예배하는 곳이 있으면 찾아가서 사람들을 죽이는 그런 못된 일을 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잘못된 것은 열정을 가지기는 가졌는데, 그릇된 열정에, 잘못된 열정에 자신을 내 걸었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신의 힘을 다하여 그릇된 열정을 이루기 위해서 가다가 다메섹이라고 하는 곳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빛이 쏟아졌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저 하늘의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사울에게 쏟아졌습니다.  그 내면적 계시를 받는 순간에 사울이라고 하는 당대의 망나니가 변하여 사도 바울이 됐습니다.  하나님의 내면적 계시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들에게는 이런 놀라운 세계가 있습니다.

오늘 주님의 전에 찾아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중요한 시간에 왔다가 앉아서 발 도장만 남기고 구경만 하고 가지 마시고, 그 어두운 세계에 햇빛 보다 더 밝은 하나님의 신령한 빛이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그 때에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심령을 향해 던지시는 이 한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영혼에 빛이 있을지어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곳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이곳에서 말씀을 듣는 가운데 하나님의 기도의 역사를 우직하게 믿고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지금 말씀을 들으면서도 마음으로 기도를 하십시오.  구해야 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와 금식 이외에는 아무런 능력도 일어나는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구경하지 마시고 잘하는 기도든, 못하는 기도든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인생 길 최악의 순간에도 기도만 일어나면 반드시 뭔가 잡을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고르는 것처럼 그렇게 까다롭지 않습니다.  인간은 선물을 줄 때 선물을 주는 대상에 따라서 구별해서 줍니다.  그래서 이것 저것 따지고 고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물은 은혜라고 하는 것인데 인간이 사람을 고르는 것처럼 그렇게 유별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까다롭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대단히 골고루 공평하게 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 속에 나는 종교성이 전혀 없다거나, 나는 성령을 제대로 못 받았다거나, 나는 일주일 내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하나님 앞에 죄뿐이라거나, 나는 내 스스로 보고 내 옆을 봐도 정말 하나님 앞에 주장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거나….  그런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더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이 더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여러분의 심령 깊은 곳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계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사모하는 만큼 그 심령에 하나님이 계시가 임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먼저 마음을 바꾸겠다는 자기 결단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먼저 마음을 바꾸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마음을 바꾸셔야 합니다.  사람은 환경을 선택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인생을 살면서 '아! 내 환경과 저 환경, 저 사람의 환경에 내가 산다면, 저런 사람의 상황과 환경 속에 내가 산다면…'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지금 내 환경을 당장 바꿀 수는 없습니다.   또 내 여건을 당장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환경에 대처하는 내 마음만은 내가 당장 바꿀 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깊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은 환경을 바꾸려고 하면 낙심합니다.  환경을 바꾸려고 하다가 싸움이 일어납니다.  인간은 환경을 바꾸려고 하면 자포자기하고 말 겁니다.  기억하십시오.  내게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환경은 내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환경에 대처하는 내 마음만은 지금 당장 바꿀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마음을 바꾸어 보십시오.  마음을 다시 강하고 담대하게 가지십시오.  그러면 크고 기이한 하나님의 역사를 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하는 내 삶에 일어난 일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어난 일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느냐 하는 그 마음 자체가 더욱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똑같이 일어나지만 여유를 가지고 웃으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찬송하면서 이겨 나가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무 여유도 없이, 믿음도 없이 소망도 없이 사랑도 없이 포기하고 화를 내며 혈기를 부리며 기분적으로 살다가 막 떠내려갑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무릇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을 바꾸어야 됩니다.  마음을 바꾸십시오.  죽고 사는 권세가 그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이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무슨 능력, 무슨 능력해도 마음을 극복하는 능력 이상 큰 능력이 어디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최대의 관심은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한 번도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한번도 실패하지 않게 하시고, 한번도 어려움이 없게 하옵소서."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주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무너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수치를 당한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넘어진 그 곳에서 말씀을 붙잡고, 하늘의 은혜를 덧입고 다시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단순한 철학이 아닙니다.  믿음은 단순한 사상도 아닙니다.  믿음은 단순한 견해도 아닙니다.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도 아니고, 감상도 아니고 명상도 아닙니다.  믿음은 능력입니다.  믿음은 보람입니다.  믿음은 생기입니다.  믿음은 감격입니다.  믿음은 힘입니다.  그것 때문에 살맛이 나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인생의 보람이 있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지금까지 달려온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무너집니다.  그러나 믿음은 생기였고, 능력이었습니다.
 
우리는 앞서 가는 사람들의 믿음의 소리를 들으면서 힘을 얻습니다.  저들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들으면서 어떤 절망과 나락에서부터도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힘은 절망의 힘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힘은 낙심의 힘보다 강합니다.  믿음의 힘은 어떤 대항의 힘보다도 훨씬 강합니다.  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태풍이 불어오면 그 태풍으로 인한 피해만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태풍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태풍이 없는 자연은 저주라고 말합니다.  태풍이 불어왔을 때에 입게 되는 피해보다 그 태풍으로 누리게 될 자연적 혜택이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태풍은 바다를 죽이는 적조현상을 몰아냅니다.  대기의 오염을 날려버립니다.  바닷물을 뒤집어서 바다를 정화시키고 바다의 생명력을 높여 줍니다.  그래서 고기들이 몰려옵니다.  태풍이 오면 하늘도 바다도 다시 한번 새로워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들의 심령에도 성령님이 일으키시는 강력한 태풍이 불어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성령의 태풍이 다락방에 모여 있는 120명의 성도들에게 불어왔습니다.  이 엄청난 성령의 태풍이 제자들을 사로잡고 있던 불안과 낙심과 절망감을 몰아냈습니다.  모든 걱정과 염려와 비겁함을 날려버렸습니다.  제자들과 성도들을 하늘의 사람으로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오합지졸과 같았던 초라한 그들의 모임의 공동체를 온 성을 뒤흔드는 능력의 공동체로 만들었습니다.

이날 그들 가운데 불어왔던 성령의 강력한 바람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비린내나 풍기던 어부들을 역사의 주역으로 바꾸었습니다.  저들은 강력한 나라의 강한 황제들도 하지 못했던 세계 정복의 꿈을 펼쳤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에는 거룩한 영적 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하찮은 계집종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던 베드로는 더 이상 겁에 질리고 초라한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다락방에 모여 방문을 꽉 걸어 잠그고 생명을 염려하며 두려워 떨던 갈릴리 시골 마을의 어부들이 방문을 걷어차고 거리의 한복판으로 달려나왔습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목이 터져라 외쳐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때로부터 300년이 채 흐르기도 전에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가 그들이 전했던 복음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 이 엄청난 일을 가능하게 했습니까?  무엇이 갈릴리 시골 마을의 어부들을 이토록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까?  무엇이 역사의 흐름을 뒤흔들어 놓았습니까?  바로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은 자, 그들이 바로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주인공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직접 함께 생활하면서 수많은 기적들을 눈으로 직접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신앙교육을 누구보다 잘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직접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그들보다 더 확실하게 제자훈련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십자가 앞에 서자 예수님을 부인하고 숨어버렸습니다.  결국은 예수를 팔아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3년 동안이나 직접 훈련을 받았던 저들도 그러했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제자 훈련을 잘 받았다고 모든 것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에 제자 훈련을 위한 프로그램은 넘쳐나고 있습니다.  제자 훈련을 받지 못해서 제자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훈련과 교육을 받지만 오히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는 진정한 헌신과 섬김을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결국 종교 훈련만으로는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 믿어야 합니다.  제대로 믿어야 합니다.  보람되게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성과 경험으로 그분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을 제한합니다.  성령님을 부인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성령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성령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 오늘 신앙인들의 문제입니다.  자기의 얄팍한 이성과 경험 안에서만 성령님을 인정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제한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런 종교인들은 사역을 하고 싶지만 사역할 힘이 없습니다.  사랑을 하고 싶지만 사랑할 힘이 없습니다.  용서를 하고 싶지만 용서할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힘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역사가 바뀌어집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그의 인생이 바뀌어집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몸된 교회는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하심으로 세워졌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교회가 성령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능력을 받았을 때 세상을 정복하는 참다운 능력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령님을 무시하고 그분의 능력을 제한했을 때에 교회는 타락하고 세상 속에서 조롱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이 없이는 진정한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부흥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님을 사모하셔야 합니다.  성령님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을 간절히 사모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절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우리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사랑하는 여러분,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다는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이는 곳에 나타납니다.  기독교 공동체가 힘써 모이는 곳에는 역사가 일어나게끔 되어 있습니다.  성냥불 하나는 콧바람에도 꺼집니다.  그러나 불길이 모이고 커지면 태풍도 그것을 끌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바람이 강하면 강할수록 불길은 마을을 삼키고 산야를 태웁니다.
 
기억하십시오.  잘 모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힘입니다.  우리가 힘써 모일 때 주님은 일하십니다.  모임을 등한히 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이기를 사모하십시오.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일을 사랑하십시오.  힘들고 바쁠 때일수록 더 모이기를 즐거워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였더니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에스라 시대의 부흥 운동도 고국으로 돌아온 백성들의 모임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오순절에 일어난 성령의 역사도 성도들이 모이는 그곳에서 폭발되었습니다.  이 땅의 평양 대부흥운동도 성도들의 모임에서 일어났습니다.

구세군 창설자 부츠 대장은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소홀히 생각하지 마라.  주의 성령도 주의 제자들이 모일 때 임했고, 주의 재림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임하게 될 것이다.  성도들의 모임은 생명과도 맞바꾸어야 할만큼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초대 오순절에 일어난 강력한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그렇습니다.  기독교의 역사와 성령의 능력은 바로 여기,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인 그 자리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다같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주경가 바클레이는 이 말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 몸, 한 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었다."  단순히 공간적으로 한 곳에 모여 있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몸도 마음도, 죽고 사는 문제도 하나가 되었습니다.  소위 생명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들의 모임은 세상 친목회와는 다릅니다.  단순한 군중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대중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성도들의 모임은 모임 하나만으로도 능력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주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성령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세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 할지라도 모임을 소홀히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더구나 그 모임이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로운 자리 일 때에 그 값은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시간보다 우선할 값어치가 있습니다.  사탄도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마음에 모이기를 싫어하는 가라지를 심어주려고 발악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이름으로 모이기를 사모하십시오.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일을 사랑하십시오.  그 모임을 즐거워하십시오.  잊지 마십시오.  모일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모일 때 주 성령 임하리 / 우리 모일 때 주 이름 높이리
우리 마음 모아 주를 경배 할 때 주님 축복하시리"♬

사랑하는 여러분, 그들이 모여서 무엇을 했을까요?  그들은 모여서 3가지 일을 했습니다.

첫째,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죽어도 말씀에 순종해보고 죽겠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성령은 여기 순종의 자리에 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이는 것도 순종이 필요합니다.  순종하는 신앙이 없으면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먼저 모이면서 순종하는 훈련을 배우십시오.  모이기를 힘쓰는 것은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둘째,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합하여 전심으로 함께 기도했습니다.
사모하고 매달리는 곳에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품위 있는 기도가 아니라 몸부림을 하며 매달렸을 것입니다.  우리도 모입니다.  그러나 세상 잡담이나 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려고 모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흉이나 보고, 신세타령이나 하려고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주님께로 향하여 기도하려고 모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일 때 힘써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셋째, 기도 중에 갑자기 베드로가 일어나 예언을 합니다.
그들의 공동체 속에 상처로 남아 있던 가롯 유다의 문제를 정리하라는 겁니다.  곪은 상처를 도려내고 맛디아를 사도로 선택하고 조직을 새롭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기도하며 기다리라고 하셨을까요?  그들은 왜 기다려야 했을까요?  성령이 그들에게 당장 임할 수는 없었을까요?  그렇습니다.  무엇인가 우선되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먼저 그들은 공동체 안에서 한 마음과 한 뜻으로 결속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다락방에서 함께 생활했습니다.
 
이들의 다락방에는 회의도 세미나도 없었습니다.  이들이 함께 한 시간동안 그들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이들이 함께 나눈 그 기간은 그들이 서로 얼굴만 아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의 가족이 되도록 도우시는 방법이었습니다.  진정한 하나됨의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함께 지내면서 서로가 모두 깊은 친밀감 가운데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생활과 가족생활, 예수님과 만난 이야기들을 나누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들의 고통과 마음의 상처, 자신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함께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이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더 가까이 다가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제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때 본문 2절은 놀라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 2절을 오늘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다같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다락방! 그곳에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120명의 성도들, 그들은 생활 습관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들 중에는 배운 사람도 있고 못 배운 사람도 있었습니다.  온유한 사람도 있었고 성질이 괴팍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있었고 이방인들도 있었습니다.  황색인종이 있었는가 하면, 흑인들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적으로는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의하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성령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이미 그곳은 은혜의 공동체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잘 타는 장작불 속에는 생나무를 넣어도 잘 탑니다.  마찬가지로 은혜가 충만한 자리에는 믿음이 약한 사람이 함께 있어도 쉽게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옛말에 쑥 하나도 길가에서 자라면 제멋대로 구부러지지만, 삼밭에서 자란 쑥은 삼처럼 덩달아 곧게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공동체가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은혜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나 한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나 하나가 가롯 유다가 될 수도 있고, 나 하나 때문에 우리의 교회와 목장이 성령의 충만을 경험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와 목장이 성령이 충만한 은혜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은혜로운 공동체가 되기 위해 나부터 먼저 애쓰고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는 성령의 역사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성령의 바람이 2천년동안 돌고 돌아서 오늘 이 강산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오늘 이곳, 주님의 몸된 성전에서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이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 3절을 보십시오.  성령이 각 사람 위에 임하였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했습니까?  3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무엇을 보았습니까?  불이 내려온 것이 아니라 불처럼 타오르는 신비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불은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성전에서 이사야에게 나타난 불은 숯불로 이사야의 입술을 태웁니다.  모세는 불붙는 떨기나무 곁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운 밤에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갈멜산 엘리야의 제단에는 하나님의 불이 떨어졌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죄를 태우고 사탄 왕국을 소멸시킵니다.  성령의 역사는 오늘도 말씀의 강단에서 불같이 역사합니다.  냉랭한 심령을 뜨겁게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불 가운데서 부르고 계십니다.
 
어디에 내 생애를 불사를 것인가?  성령의 불을 받으십시오.  성령의 불을 받아야 소명을 압니다.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하나님의 일을 힘있게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보십시오.  성령은 눈을 열어 보게 하는 역사로 나타납니다.  젊은이들의 눈을 열어 꿈을 갖게 합니다.  늙은이들의 눈을 열어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합니다.  눈이 열려야 교회의 비전이 보이고 사업의 비전이 보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불이 여러분의 눈을 열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불이 여러분의 사명을 새롭게 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불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꿈을 갖고 비전을 품게 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일찍이 사도 바울은 인류 역사상 여행을 가장 많이 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여행 중에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그 많은 글 가운데 단 한번도 로마의 건축 양식이나 고린도의 유행이나 에베소의 풍습을 기록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도무지 그의 눈에 보이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죽어 가는 영혼이 보였고 해야 할 일거리가 보였습니다.  섬겨야 할 교회가 보였고 부지런히 역사 하는 성령의 역사가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아 눈이 열려지고 나면 지금까지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예수의 눈으로 사람을 보고 예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성령이 임하시면 죽어 가는 영혼이 보입니다.  불타는 지옥에서 고통받을 불쌍한 내 형제와 이웃들과 동포들이 보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눈에도 지옥에 갈 불쌍한 영혼들이 보여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역사는 입이 열려지는 역사로 임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불의 혀같이 갈라졌다"고 했는데 원어의 뜻을 살펴보면 "굳어졌던 혀가 풀려졌다"는 뜻이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입이 열려집니다.  제자들이 성령 받기 전에는 복음전파의 혀가 굳어져서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들의 혀는 서로 높은 자리를 탐하는가 하면, 예수가 잡힐 때에는 도무지 모른다고 부인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게 되자 저들의 입이 달라졌습니다.  능력 있는 혀가 되었습니다.  죽음을 무릎 쓰고 저들이 죽인 예수가 구세주라는 말을 거침없이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말에 3천명, 5천명, 허다한 무리가 주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가끔 우리는 성령의 뜨거운 임재를 경험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느 집회에 참석했더니 가슴이 불같이 뜨거워지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물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은 성령이 임하시는 방법 가운데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으로 끝나버린다면 그것은 진정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아닙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척 하는 겁니다.
 
기억하십시오.  성령이 임재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리로 나가서 내가 믿는 예수가 구주라는 사실을 외쳤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십시오.  성령의 역사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거리로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묻습니다.  여러분의 혀는 풀려있습니까?  여러분의 입은 열려 있습니까?  복음에 대하여 말입니다.  전도에 벙어리는 아닙니까?  오히려 하지 말아야 할 말, 필요 없는 말에 지칠 줄 모르고 움직여 대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충만을 받고 나면 기형적으로 굳어진 혀가 풀어집니다.  닫혀진 입술이 열려집니다.  그 혀로 기도하게 되고 그 혀로 기뻐 찬양하게 됩니다.  그 혀로 이웃을 축복하게 되고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성령의 능력은 한 마디로 입술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세기 다락방의 성도들! 그들은 성령 충만을 체험한 다음에 홀로 산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각자 혼자서 뿔뿔이 흩어져 기적을 행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여 예배하는 예배의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았던 그들을 통해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혀서 거리마다 골목마다 영적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집집마다 영적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날마다 거룩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성전을 생각하면서 똑같은 꿈을 꾸고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가 거룩하게 세워 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꿈의 보금자리가 되고, 이 땅에 하나님의 거룩한 꿈이 실현되는 통로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러분, 모이기를 힘쓰십시오.  세상이 악해지고 삶이 힘들어 질수록 성도들은 함께 모여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모임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그리고 그냥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이름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찬양하십시오.  무릇 마음이 흩어지면 안됩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모이는 그곳에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몸된 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저는 우리가 모일 때마다 진정으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참된 신앙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천국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 아름다운 공동체를 통하여 지역 사회를 섬기고 민족을 섬기는 섬김의 공동체로 세워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