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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거룩한 믿음을 가진 자 (유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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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믿음을 가진 자 (유 1:20) 

(유 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캠벨 목사는 자신의 17년 동안의 목회와 전도생활이 거친 광야 생활 같은 그야말로 아무런 반응도 없고 별다른 성과도 없는 고달픈 생활이었다고 느꼈으며 지칠 대로 지쳐 버렸다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비로소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시원한 생수를 마시며 회복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서재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손과 청결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풍성히 공급을 할 만한 자원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캠벨 목사의 경험은 1949년도 영국 루이스와 스웨이 지방의 부흥운동으로 연결되었다. 캠벨 목사는 루이스와 스웨이 도서 지방에도 자기가 찾아가기 전 이미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고 계셨다고 느꼈습니다. 그 지방에서는 몇몇 남자들과 두 노파가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절히 도우심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와 복음 선교를 위한 인간의 계획과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지방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까지 1주일에 3, 4일씩 밤을 새워가면서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갔으나 아무런 징조도 변화도 일어나지 않던 중, 1949년 어느 날 아침 교인 중 한 젊은이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시 24:3-5])라는 말씀이 마음에 떠올라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기도한다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말하는 그도 목메어 울고 함께 기도하던 사람들도 애통해 하고 회개하며 눈물을 흘려 참회하는 가운데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다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가만히 정지해 있는 정체적 삶이거나, 혹은 퇴보적인 삶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발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삶입니다. 
   
선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은 자기의 삶을 거룩한 믿음 위에 건축한다고 말씀합니다.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터, 곧 기초입니다. 기초가 잘못된 집은 쉽게 무너지거나 파손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땅을 깊이 파고 기초를 튼튼히 세운 후에 집을 짓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신앙인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의 기초를 어디에 두고 출발하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집을 짓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생을 목표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삶을 건축하는 재료를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초를 영원히 변함없는 것 위에 세워야 합니다. 세상에는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도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이 영원한 것이라고 속이며 성도들을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참 진리는 개인의 사견이나 주의 주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는 오직 예수님으로만 말미암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사도들과 교회에 의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진리를 믿는 믿음 위에 삶을 건축해야 합니다. 만약 개인의 의견이나 주장에 자기 삶을 건축한다면 그 주장을 낸 사람이 썩어짐과 함께 그의 삶도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지만 지혜로운 자는 반석 위에 자기의 집을 짓습니다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이 말 곧 성경말씀 중심해서 지혜로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티코미로프는 소년 시절에 부모와 함께 농업하기에 좀더 유망한 곳을 찾기 위해 유럽에서 시베리아로 이주해왔습니다. 오랜 여행 끝에 그의 부모는 콜레라로 죽었고 그 소년도 쓰라린 고생 끝에 도적 떼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8년 간 그들은 농사짓는 이웃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어느 날 그 일당은 두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모든 소유를 가져가버렸는데 그 중엔 두 책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신약성경이었습니다. 

그날 밤 숙소에 누워 로마서 3:15, 18을 들쳐 읽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신약성경의 앞면에 씌여진 글을 주시했습니다. “1898년 5월 15일 주님께 회개함으로 중생을 체험하다. 그날 주님은 내 죄를 용서하시고 그의 거룩한 보혈로 나를 씻어주셨다.”그는 읽고 또 읽었습니다. 누가복음의 십자가의 두 강도의 이야기는 그를 강하게 사로잡았고 그는 죄악 된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다른 일곱 명도 그와 함께 자수하는데 동의했습니다. 그 후 이 도적들은 10년의 중노동형을 받았고 그는 시베리아에 있는 백칼 해 건너편으로 보내졌습니다. 

몇 년이 지나 국가의 경축일에 그는 사면을 받았습니다. 그는 걸어서 소련에 돌아갔습니다. 오는 도중에 그는 많은 신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간증한 장소에서는 부흥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께 돌아왔습니다. 그는 소스노우카에 돌아와서도 계속하여 복음 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련 성직자들의 반대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는 다시 구속되었고 1년간 감옥에서 감옥으로 전전했습니다. 그 후 다시 그는 이단을 믿는다는 이유로 2년간 시베리아로 귀양 보내졌습니다. 여기에서도 다시 그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죽였던 사람으로부터 얻은 신약성서의 첫 페이지에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를 용서해주시오. 내가 죄 속에 빠져 있었을 때 당신을 죽게 했소. 주님께서 나를 용서해주시고 나에게 새 생명을 주셨소. 그의 죽으심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영생으로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오. 이 성경은 나의 굳어진 마음을 생수같이 부드럽게 해주었소. 그것은 내 목마름을 달래고 계속하여 흐르면서 다른 영혼에게 생명을 주며 활기를 띠게 하고 있소. 이로 나는 그대와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오. 아멘.”

나아가 성령안에서 거룩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하시는데 거룩한 생활을 영위하기가 불가능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런 삶을 명령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거룩함이란 하나님을 향하여 구별되었음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것에서 분리되어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빌 만이라는 성가 가수가 어느 날 놀라운 연주를 했습니다. 관중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번 앙콜에 응답한 뒤에 분장실로 들어왔는데, 한 여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귀머거리였고, 벙어리였습니다. 거기에다 전혀 볼 수 없는 소경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녀는 빌 만의 음악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분장실가지 찾아온 그녀는 피곤한 그에게 부탁을 합니다. 바로 자기 앞에서 한 곡 해달라고 말입니다. 빌만은 기꺼이 그리고 우렁찬 소리로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하고 흑인영가를 불렀습니다. (찬송가 136장) 그녀는 그의 목에 손을 대고 감각으로 노래를 듣고 있었습니다.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그녀는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통역하는 이는 노래가 계속될 동안 말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네' 그 말을 받아 헬렌 켈러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광경을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주가 죽을 때 그리고 살아날 때, 한 때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지만 이제 나는 성령의 소원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살아 숨쉬는 동안 나는 이 거룩한 욕심을 따라서 살 것입니다. ' 라고 다짐하면서 말입니다. 이 여인이 바로 헬렌 켈러 였습니다. 그녀는 삼중고의 아픔을 딛고 성령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장엄하게 싸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형체를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을 알 듯이 열매로서 서로를 압니다.

더욱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구원을 받아 거룩한 믿음을 갖게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자라가면 점점 더 그를 닮아갈 수 있습니다.
현대인에게 가장 무서운 병은 조급병이라 합니다.  “조급함은 마귀적인 것이 아니라 마귀다”(리처드 포스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서서히 성장하는 것보다 급성장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결코 한 순간에 이룰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거룩한 영성입니다. 하나님은 귀히 쓰시길 원하는 사람마다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여 철저하게 훈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정금 같이 쓰시기 위해 13년 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게 했습니다. 모세를 훈련시키기 위해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했습니다. 여호수아를 쓰시기 위해 모세의 시종으로 40년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존귀하게 쓰시기로 작정하실수록 거룩한 삶을 위해 많은 준비를 시키십니다. 

어떤 버섯은 6시간이면 자란다합니다. 호박은 6개월이면 자란다합니다. 그러나 참나무는 6년이 걸리고 건실한 참나무로 자태를 드러내려면 100년이 걸린다합니다. 참나무와 같은 인물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조급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거룩한 신분이 됩니다. 그러나 그 거룩을 완성하는 데는 평생이 걸립니다. 

거룩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매일 기도와 말씀 묵상이라는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구원은 은혜와 믿음으로 받지만 거룩은 은혜의 수단인 영성 훈련으로 완성됩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룩에 대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화장하는 여인들은 그리는 눈썹도 마음대로 안된다고들 합니다
  
독일의 어느 조각가가 예수의 초상을 볼 마음이 생겨 시작한 지 4년 만에 완성했습니다. 그는 만족하여 주일학교 학생을 불러서 자기가 조각한 것을 보여 주며, '이것이 누구와 같으냐?'라고 물었습니다. 학생은 '어떤 유명한 사람과 같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작업에 들어가 6년 만에 예수의 초상을 조각한 후에 그 학생에게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놀라며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하신 예수님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만족하였습니다. 그 후 이 소식을 들은 프랑스에서 국신(國神)인 비너스 조각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 손은 예수를 조각한 거룩한 손이므로 당신 나라의 더러운 신의 초상을 조각할 수 없소.'라고 거절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고, 공부하고, 그에게 기도드리고, 그의 본을 따라가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그를 닮게 됩니다. 
즉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그를 향하여 세상과 분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거룩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의 원래 이름은 크리스토퍼 콜롬버스입니다. 크리스토퍼는 '그리스도를 지고 가는 자' 란 뜻입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일생 동안 그리스도를 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황금을 지고 다녔습니다. 그의 눈은 황금 찾기에 혈안 되었습니다. 

결국 콜롬버스는 인생이 끝나가고 있을 때 괴로워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주님, 내 이름은 그리스도를 지는 자인데 지금까지 저는 헛된 것만 지고 다녔습니다. 이제부터 그리스도를 지고 가는 크리스토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콜롬버스는 그 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만 지고 가는 거룩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자기를 부정하게 됩니다

하와이의 모로카이 섬은 나병에 걸린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주된 곳입니다. 신부 다미엔이 복음을 들고 찾아갔으나 아무도 그의 말을 믿고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들을 사랑하신다' 고 말하면, 문둥병자들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우리를 이렇게 나병에 걸려 죽게 하시느냐고 빈정대었습니다. 결국 데미안은 자신도 나병이 들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얼굴에 반점이 피어나는 자신을 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게 나병이 걸리게 해주시다니요'하고 기도했답니다. 그리고 '형제들이여, 이제 나도 당신들처럼 나병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며 나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전도하자 많은 병자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나병에 걸린 지 4년 만에 세상을 떠난 다미엔은 모로카이의 성자로 알려졌습니다. 그리스도를 지고 가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자들이야말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십년 전의 삶과 지금의 삶의 모습이 현저하게 달라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욕망이나 행동의 동기가 그에게 더 가까워져가는 만큼 점점 더 거룩하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완전한 거룩을 이 지상에서 다 이룰 수는 없다며 아예 경건의 훈련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영적인 방종을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실 리 없습니다

1920년대에 미국을 휩쓸던 아더 배리라는 유명한 도둑이 있었다합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저명한 사람들의 돈과 보석을 훔치는 지능범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아더 배리는 강도질을 하던 중 3발의 총알에 맞았습니다. 총알에 맞은 눈에 유리 조각이 박혔기 때문에 그는 심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는 “앞으로는 절대로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18년간의 감옥 생활 후에 그는 한 작은 마을에 정착하여 모범적인 시민 생활로, 지역 주민들은 그를 지역 재향 군인회 회장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에 대한 미담이 사방에 퍼지게 되었고 전국에서 기자들이 그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로 와서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어느 기자가 “아더 배리 회장님! 당신은 도둑질을 할 때 부자들의 재산을 많이 훔쳤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누구의 재산을 가장 많이 훔쳤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아더 배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예, 말씀드리지요. 내가 가장 많은 재산을 훔친 사람은 바로 이 아더 배리입니다. 나의 능력을 선용했더라면 성공적인 사업가나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도둑이었기 때문에, 나의 성인 생활 중 3분의 2를 감옥에서 낭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더 배리는 ‘거룩한 도둑’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의식적 ‘거룩한 도둑’은 아닌가요?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라고 이르셨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라고 합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되 믿음에 굳게 서서 보배로운 믿음 큰 믿음 마귀를 대적하는 믿음 인정 받는 믿음 거룩한 믿음으로 나아가며 영광돌리고 사명 감당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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