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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의 의미 (골 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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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의미 (골 1:20~23)
 

기독교는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믿습니다. 메시아는 히브리어로서 구세주를 의미하며, 헬라어로는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구세주에 대한 신앙은 기독교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세주에 대한 신앙은 유대교에 이르러서 구체화되었습니다. 선민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메시아에 대한 신앙을 그의 후손에게 계승해 주었습니다.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 성경은 주전 15세기경에 모세 오경이 맨 먼저 기록되었고, 주전 5세기경에 말라기서가 맨 나중에 기록되었습니다. 구약 성경 안에는 율법서와 역사서와 시가서와 선지서가 들어 있으며, 도합 39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39책으로 된 구약 성경의 주제는 한 가지로 정할 수 있는데, 그것은 메시아입니다. 메시아 곧 구세주가 구약 성경의 핵심 주제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조상 적부터 메시아를 기다려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는 물론이고, 초대교회 시대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대교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으며 아직도 메시아가 오시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 이것이 기독교와 유대교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기독교는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동시에 메시아라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친히 자기가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바로 그 메시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은 예수님이 메시아시며, 그것도 유일하신 메시아시라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메시아에 대한 모든 예언이 예수님에게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 몇 가지만 들면, 구약 성경 창세기 3장 15절에 메시아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라고 하였고, 이사야서 7장 14절에는 메시아가 동정녀의 몸에 잉태되어 나실 것이라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셔서 탄생하심으로 이 두 가지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11장 1절에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하였고, 사무엘하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시기를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할 것이며,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12-13)고 하셨는데, 이 예언 역시 예수님께서는 이새의 아들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기 때문에 성취되었습니다. 심지어 구약 성경 미가서 5장 2절에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까지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구약 성경에는 메시아께서 병든 자들을 고쳐주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5)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6)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 35:) 예수님께서 소경과 벙어리, 앉은뱅이, 중풍병자, 문둥병자, 혈루병자, 손 마른 자 등등 수많은 종류의 병자들을 고치셨고 심지어는 죽은 자들도 살리신 것은 이 예언의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가랴 11장에는 예수님께서 은 삼십에 배반당하실 것과 그 은이 나중에 어디에 쓰이게 될 것인지에 관해서 이렇게 예언합니다. “12)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13)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복음서를 보면,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서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넘겼는데, 예수님이 정죄 받는 것을 보고는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그 은을 대제사장들에게 도로 갖다 주고는 목매여 죽었습니다. 이에 저들이 그 돈은 피 값이므로 성전 금고에 넣어 둘 수 없다고 하여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비명횡사한 자들의 장지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실 것도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 이 예언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로마 군병이 휘두르는 채찍을 맞으셨으며, 손발이 대못에 박히셨고, 옆구리에 창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시편 16편에는 죽음에서 부활하실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10)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메시아에 대한 구약 성경의 예언들은 하나 같이 예수님에게 성취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보내심 받은 메시아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적지 않은데, 그 이유는 그들이 가진 잘못된 메시아 관에 있습니다. 그들은 죄인들의 구세주이신 메시아를 고대한 것이 아니라 유대 민족을 로마 제국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킬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메시아 관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을 앞두시고 제자들을 감람산에 모이게 하셨을 때, 제자들은 드디어 그들의 기대가 현실로 이루어질 때가 된 줄로 알고 예수님께 묻기를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제자들이 보는데서 하늘로 올리워 가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어느 다락방에 모여 열흘 동안 전혀 기도에 힘썼으며, 드디어 오순절날에 성령께서 그들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그러자 성령 충만해진 사도들은 비로소 예수님이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오신 메시아가 아니라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메시아이심을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십자가였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는 다윗 왕처럼 이스라엘을 세계 최강국의 위치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대 나라를 구해 내기는커녕 그 자신이 로마인들의 손에 넘겨져서 아무 힘도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한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라고 하니 도무지 수긍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2절 이하에서 사도 바울은 이같이 말씀합니다.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히브리인들에게 가서 자기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그들을 해방시키려고 왔다고 하였을 때, 그들은 그 말을 믿게 하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모세는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고, 다시 뱀을 집어 지팡이가 되게 하는 표적과 자기의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내니 문둥병이 발하였고 다시 품에 넣었다가 꺼내니 온전한 손이 되게 하는 표적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같이 자기를 입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하는 기적을 일컬어 표적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자 그가 그리스도인 표적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이 표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은 메시아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 믿기를 거부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라는 말을 들을 때 마음에 꺼림칙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성경을 탐구해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과도 같았지만, 실은 십자가야말로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첫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정죄와 심판의 자리입니다.

원래 십자가는 로마 제국이 도망 노예나 비 로마인들 가운데서 반란죄를 저지른 자들을 처형하기 위해 고안해 낸 형벌입니다. 십자가형은 가장 잔인한 형벌일 뿐 아니라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법은 로마 시민에게는 십자가형을 가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수치스럽고 잔인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십자가 형벌을 당하실만한 죄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고 나서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요 18:38)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강요에 굴복해서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내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신 것은 단순히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시기와 모함에 의한 것이라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른 것은 분명하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사 53:10) 하신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이사야서 53장 4절로 6절에 이 같이 말씀합니다.

“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그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고난을 대속의 고난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그 모든 고난은 실은 우리 각 사람이 당해야 할 것인데, 예수님께서 대신 당당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한 몸에 받으신 자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정죄와 심판을 당하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먼저 죄의 무서운 결과에 대하여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고 말씀합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 대신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셨으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큰소리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육신의 고통보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으시는 것이 예수님에게는 더 큰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성을 가지셨으나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야말로 죄를 모르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우리 대신으로 죄를 씌우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하기 위해서 그 같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가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의 자리임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십자가에 달려 우리 대신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정죄와 심판의 자리인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그를 믿는 우리가 죄 사함 받고 심판의 자리에서 구원의 자리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기에 우리는 정죄와 심판을 면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라는 인정을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화해를 이루신 자리입니다.

십자가는 정죄와 심판의 자리면서 동시에 화해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 온 인류의 죄 값에 해당하는 진노를 퍼부으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믿는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었기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골로새서 1장 20절 이하에 이같이 말씀합니다. 

“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하나님과의 불화를 청산하고 화목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보배로 한 것이 아니라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믿음의 길에서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생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누가 나를 대신해서 자기 목숨을 내어놓은 적이 있는가를 말입니다. 부모인들 자기 자녀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으며, 부부 간에 서로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습니까? 그런 일이 전혀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요 15:13)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희생하신 것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에는 이르기를 “7)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사랑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 목숨을 우리의 대속물로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한 데 만난 자리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불화한 사이가 되었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불화가 청산되었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께 드려진 화목 제사와 같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자손은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속죄 제사나 속건 제사를 드린 후에 이어서 화목 제사를 드렸습니다. 화목 제사는 백성이 제물로 바친 짐승의 고기를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제사입니다. 화목 제사의 제물을 분배 받은 사람은 성전 안에서 가족과 친지들과 함께 그 고기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데 대한 잔치와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성찬식을 행하면서 나누어 먹는 떡은 곧 우리의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고 잔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라는 인정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에 이르기를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이처럼 우리를 의롭게 하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했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하나님과의 화목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 꺼림칙한 것이지만,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되십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성도들을 보고 비웃습니다. 그것은 미련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기독교인 가운데도 십자가에 대하여 듣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대신 축복에 대한 설교를 듣기 좋아합니다. 그런 이유로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 가운데 축복에 대한 설교가 가장 많습니다. 신자들이 축복에 대한 설교를 좋아하므로 자연스레 축복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의 자세라고 할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지금과 달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가 가장 많이 선포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고 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 충만 받은 사도들이 나가서 전한 말씀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사도들이 언제 어디서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이 십자가에 관해서 듣기 싫어하는 또 다른 이유는 죄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호튼이라는 분은 현대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우리는 더 이상 죄인들이 아닌 구도자들이 되어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구도자는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구도자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죄인이라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필요로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먼저 자기가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이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무능한 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구도자가 아닌 죄인의 신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자기가 죄인인 사실을 뼈 속 깊이 인식해야 교만을 버리고 주님의 십자가 아래 꿇어 엎드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 같은 깨달음은 인간 스스로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그 마음눈을 밝혀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때 성령께서 듣는 자들의 심령 속에 역사하셔서 자기들이 죄인인 사실을 깨닫게 하셔서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올 수 있게 하십니다. 예수 믿고 복 받으라고 해서는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 죽은 영을 살리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율법에는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받을 저주를 대신 감당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가 당해야 할 정죄와 심판을 감당하셨기에 그를 믿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되었으며, 하나님과의 불화를 청산하고 화목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혐오스럽던 십자가가 사랑과 화목과 생명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같은 십자가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언제 어디서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있게 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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