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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본받을 만한 사람 (고전 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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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을 만한 사람 (고전 4:14∼16)


오늘날 미국의 상징이 된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의 조각가[바르톨디]가 만든 작품으로써 미국과 프랑스 국민들 간에 친목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작품입니다. 처음 이 조각물을 세우기로 할 때는 프랑스 정부가 4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으나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바르톨디]는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하며 20년이나 걸려 이 작품을 조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시작할 때 한 가지 걱정이 더 있었습니다. 바로 이 여신상의 얼굴을 누구를 모델로 삼아 조각할지가 문제였습니다. 여러 유명한 사람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바르톨디]는 많은 고심 끝에 자신을 낳아 기르고 사랑해주신 어머니를 모델로 삼기로 결정했습니다. 존경할만한 어머니, 사랑의 마음이 넉넉했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그 얼굴을 모델로 하여 이 자유의 여신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뉴욕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이 자유의 여신상은 바로 [바르톨디]의 어머니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인 우리를 인생모델로 삼고 살아가고 싶을 만큼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의 인생에 어느 한 가지라도 모델이 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닮아가고 싶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소망입니다. 특히 존경하는 사람일수록 그 열망은 더할 것입니다.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목을 끕니다. 이것은 아마 어려울 때 일수록 더할 것입니다. 그 중에 특별히 전문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기만의 롤 모델이 있다고 합니다. 나름대로 존경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모델로 삼아서 본받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누구를 본받기 원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라진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런고로 무엇을 배우느냐 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로부터 배우느냐라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누군가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웠고 지금도 배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운다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입니다. 우선은 말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단지 만남이라는 것이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전부입니다. 종일 말만 듣고 헤어집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지식의 전달에 불과한 이런 배움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가슴으로 가르치고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소위 정서 교육이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꼭 말이 있어야만  교육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없어도 감정의 교류가 있고 교육의 분위기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과 가슴에서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또 하나는 본을 받는 겁니다. 아마 교육의 가장 큰 효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본받는다는 것은 존경과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직업적인 교육자만을 한정해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 전반에 모든 사람이 교육자가 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에서 우리가 고민하는 겁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존경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신뢰할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가끔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거짓말을 합니다. 그때그때 자기 편리한대로 행동합니다. 이랬다저랬다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끝까지 믿을 수가 없는데 여기에 무슨 존경이 나오겠습니까? 공무원들은 정직하지 못한 모습들로 배신감을 느끼게 합니다. 물론 다는 아닙니다. 

올해 들어 양천구청 8급 공무원이 26억 원이나 횡령해서 고급승용차에 호화스런 생활을 하다가 발각 되었습니다. 갑자기 돈을 펑펑 사용하는 것을 이상히 여겨 물었더니 로또 맞았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용산구청 공무원 1억, 해남군청 7급 공무원이 5년 동안 10억, 부산 2개 구청에서 기초생활수급권자 지급 돈 2억 원, 공군부대에서도 부대복지 금 1억 원 횡령...이게 모두 우리나라 복지 예산이 도둑맞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낸 세금이 그리고 우리교회가 구제헌금을 해서 보내주었던 돈이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을 칠 노릇입니다. 

뒤 늦게 신문을 보니까<복지예산이 새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특집으로 다루고 있습디다만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이 땅에 공무원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젊은이들이 그래 뭘 배우겠습니까? 어디서 배우란 말입니까? 존경과 신뢰를 통해서 교육은 이루어지는 것인데 신뢰가 무너지는데 무얼 어떻게 배우라는 것입니까? 가장 효과적인 교육, 어쩌면 가장 무서운 교육이 바로 지식 이전에 삶을 통한 교육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배우는 것, 저절로 배워지는 것, 무의식중에 배우는 것, 이게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가슴 깊이 뿌리박혀서 한평생의 운명을 좌우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랑하며 배웁니다. 그리고 존경 하면서 닮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사람은 이상하게도 미워하면서 닮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무서운 겁니다.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시어머니의 고된 시집살이에 한탄하면서 시어머니를 미워하던 며느리가 30년 후에는 정작 자신이 시어머니의 악행을 답습하고 있다거나 자라면서 아버지의 폭력을 증오하던 아들이 나중에 아내와 아이들을 때리는 아버지가 되어있습니다. 미워하면서 나도 모르게 배운 겁니다.

<상호각인(Cross Imprinting)현상>이라는 게 있습니다. 오리나 거위 같은 조류들이 부화 뒤 알을 깨고 나오면서 만난 최초의 대상을 엄마로 인식하는 현상입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청소기든 상관없이 알에서 나오면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을 엄마로 알고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이 현상은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이자 비교행동학자인[콘라트 로렌츠(1903~1989)]에 의해 밝혀진 현상으로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각인효과를 증명하기 위해서 어떤 학자가 너구리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던 중 발견한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너구리가 자신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은 당연히 생각했던 일이었지만 더 재밌는 사실은 자기도 은연중에 너구리의 행동을 모방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확실히<상호각인 효과>를 입증했다고 합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이렇게 상호적이라는 것을 볼 때에‘미워하면서 닮는다.’는 속설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지요. 여자들이 임신 중에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이가 그 사람을 닮는다고....상호각인효과에 비춰 본다면 왜 굳이 미워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을 닮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어떤 집에 아들 셋이 있다면 대게 맏아들은 남편을 닮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둘째아들은 어머니 닮고요. 그러면 셋째 아들은 누구를 닮는지 아십니까? 누군지 모를 사람을 닮는답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첫째아들 때는 열심히 연애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사랑했기 때문에 남편을 닮았지만 둘째아들 낳을 때쯤은 별로였어요. 그래서 그냥 자기 닮은 거고 셋째는 별 생각 없이 낳았답니다. 그래서 누구 닮았는지도 모른답니다. 웃는 얘기요. 집에 가서 따지지 말고 웃고 넘깁시다. 

어쨌거나 우리는 나도 모르게 미운 사람을 배우고 있습니다. 미운 사람을 내가 닮아가고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얘기입니까? 그래서<모델 라이징(modelizing)>이 참 중요한 겁니다. 무엇을 표본으로 삼느냐 그 말입니다. 

자, 이제 이 본받는다는 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전인적 교육이요, 가장 효과적 교육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본받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본받을만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사느냐 입니다. 남이 나에게서 본받을 만한 것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말입니다. 어느 누구를 향해서라도“나를 본받으라.”고 자신 있게 말한 만한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말입니다. 그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습니다. 정말 인생 잘 살아 온 사람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신앙에 있어서 마지막에 자녀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 정말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자,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한 사람 사도 바울이 감히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16절을 보세요.“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여러분, 이게 쉬운 것입니까? 그리고 여기서 깊이 생각할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남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할 수 있으려면 먼저 자기에 대한 만족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기본적 신앙고백이 있고 기본적 철학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내 삶에 대한 만족이 없는데 나처럼 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신앙이 올바르지 못하면서 나처럼 믿어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는 자기만족입니다. 그렇게 되고 나서야 남에게도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스스로 만족하십니까? 만약에 내 생활에 만족하고 내가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여러분도 행복하고 주변사람들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에 신세타령을 하고 팔자타령을 하고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하는 사람하고 살면 그 옆에 있는 사람까지 다 운명이 삐뚤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전도자의 삶은 행복해야 됩니다. 아니 의지적으로 행복한 전도자가 되어야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받아라 말라 할 것 없이 우선 내가 만족한 행복을 느끼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6장 29절에 보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생사를 가늠하는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사도바울이 여러 사람 앞에서 이런 말을 하지요.“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생각할수록 대단한 이야기입니다. 바울의 심정은 이렇습니다.‘내가 남을 부러워 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나로서 만족하고 행복합니다.’여러분, 자기만족이 없는 사람은 많은 사람을 괴롭히며 삽니다.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사는 것입니다. 보세요. 그만하면 됐는데 아직도 뭔가를 더 이루어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까지 괴롭게 합니다. 처음부터 나의 목적이 선했다면 목적에 만족할 줄도 알아야합니다. 결과를 떠나서 내 선택에 만족합니다. 아니 더 현명한 사람은 선택 자체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말할 때“내가 한일 가운데 최고로 잘한 것은 네 어머니를 만난 것이다.”어떻습니까? 괜찮지 않습니까? 그 정도의 가정이면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런데“내 일생 가장 큰 실수는 너희 엄마를 만난 것이다.”이러면 운명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처음부터 신중하지 못했었습니다. 어쩌란 말입니까? 또“내 일생에 후회 없는 선택은 이 교회를 선택한 것이다.”이러면서 죽을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내 평생 후회는 이놈의 교회 나온 것이다.”이런다면 그 후손이 복 받기는 틀린 것입니다. 

여러분,“내 목적, 내 선택, 내 과거, 내 현재, 내 미래, 내 운명, 하늘나라의 약속까지 다 확실히 잘했고 나는 만족하다.”그리고 마지막에도“나는 잘 살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내 노력, 내 수고, 유감이 없다.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이럴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 한참 뒤에 고린도전서 11장 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결국 바울이 본받으라고 하는 것은 다른 면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으려고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애쓰는 그것과 그의 고난에 동참하고, 십자가를 본받아 부활에 이르려는 그의 마음을 본받으라는 것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는 부분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믿음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본받을 것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젊은이들의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부모는 표본이 아니요, 참고서일 뿐이다.”라는 인식입니다. 바로 여기에 오늘의 불행이 있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세상이 이렇게 되어 가는지를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부모 된 내가 먼저 무엇을 가르치고 보여줄 것인가를 선택해야합니다. 말로서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신앙에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알게 모르게 배우고 또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의 나됨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 서 책임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나 하나만의 세계가 아닙니다. 나 하나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 “나를 본 받아라.” 떳떳하게 말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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