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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의 세 가지 통로 (창 3:6, 마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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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세 가지 통로 (창 3:6, 마 4:1~4)
 
 
❚먹고 싶은 욕심

꽤 오래 전입니다만 ‘최불암 시리즈’라는 유머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기억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최불암 씨가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진짜 아닙니다. 또 진짜인 줄 알고 집에 가서 “여보, 배우 최불암이 죽었대” 하고 소문 내지 마세요. 그런데 시체 옆에는 독약이 든 병 하나만 발견되었습니다. 그걸 먹고 죽은 것입니다. 자살할 이유가 없는데 왜 자살을 했을까? 진실은 이랬습니다. 최불암 씨가 출출해서 뭐 먹을 거 없나 찾고 있는데 어떤 병에 영어로 이렇게 쓰여 있는 것입니다. “단거.” 그래서 단 것인 줄 알고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어 낱말이 “Danger” 즉, 위험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말을 “단거”로 읽고 먹었다가 죽은 것입니다. 
아직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나중에 옆에서 웃은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왜 “Danger”를 “단거”로 읽었는지 말입니다. 그냥 옛날에 한 때 유행한 우스갯소리입니다. 그런데 이 실없는 우스갯소리 속에 아주 중요한 교훈이 숨어 있습니다. 실제로 “단 것은 위험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먹는 것, 특히 단 것, 맛있는 것에 정말 약합니다. ‘로큰롤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엘비스 프레슬리는 전 세계에서 음반을 1억 4천 만장 이상 팔았습니다. 대중 음악가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가수로 이 엘비스 프레슬리를 주저 없이 꼽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천재 가수는 겨우 마흔 두 살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77년 8월 16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그 원인은 비만과 약물 과용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한 주간에만도 모 탤런트와 트로트 가수가 연속으로 자살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됐는데 그만큼 연예인은 겉으로 화려한 직업인 것 같아도 그 내면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든 직업입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은 술과 방탕으로 그 고통을 달래고 어떤 사람은 약물로, 또 심하면 자살까지 가는 것입니다. 사망 즈음에 엘비스 프레슬리는 지나치게 뚱뚱해져서 비만에 시달렸습니다. 그 까닭은 도넛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단 음식을 절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만 받으면 마구 먹고, 그래서 뚱뚱해지니 더 스트레스 받고 잠이 안 오니 온갖 약물을 남용한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이런 고민 하는 분들 많을 것입니다. 살은 찌는데, 그래서 먹는 것을 줄여야 하는데, 다 아는데 자꾸 손이 가고 먹게 되고 말입니다. 특히 단 것이나 지방이 많은 음식은 절대 금물인데 자꾸 손이 가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먹을 것에 대한 욕심은 무섭습니다. “양약은 입에 쓰다”는 속담처럼 입에 달콤하고 맛있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독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단 것 조심하세요. 먹을 것도 잘 조절하셔야 합니다. 목회자들도 잘 먹으면 성도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지나치게 잘 먹고 폭식하다가 심각한 성인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먹을 것 조심해야 합니다. 입에 단 것은 몸에도 안 좋지만 우리의 정신과 특히 영혼에도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의 첫 번째 통로

지금까지 먹는 욕심에 대해서만 말씀드렸지만 인간의 감각에 의해 유혹을 받는 경우는 이뿐만 아닙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배고픔이나 식욕에 의한 유혹이기 때문에 설명한 것뿐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인간의 감각에 의해 유혹 받는 경우가 이만저만 많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읽은 창세기 말씀에서 하와가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했다는 말은 인간의 오감(五感) 즉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감각을 통해 죄가 들어오는 것을 뜻합니다. 시각으로 유혹 받는 경우 많습니다. 눈으로 보면서 욕심 생기고, 눈으로 보고 정욕이 생기는 경우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했나요? 안 보면 괜찮은데 보니까 욕심 생기는 것입니다. 청각, 즉 듣는 것으로도 얼마나 유혹을 많이 받습니까? TV를 통해 끊임없이 들려오는 광고와 CM송들은 마치 우리가 그 물건을 안사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인 것처럼, 뭔가 무능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또 귀로 남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나 악한 말들을 많이 듣습니다. 냄새나 맛으로 느끼는 식욕 또한 보통 유혹이 아니고 만져보고 욕심 생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러분, 대형마트 자주 가시죠? 가보면 상품이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것 같지만 실은 아주 고도로 계산된 방법으로 전시된 것입니다. 이것을 요즈음 ‘비주얼 엠디’(Visual MD), 즉 ‘비주얼 머천다이징’(Visual Merchandising)이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하면 눈으로 상품을 보면 반드시 사게 만들도록 매장을 잘 꾸미고 배치하는 기술입니다. 요즈음 미대나 디자인 전공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바로 이 비주얼 MD입니다. 백화점마다 대형마트마다 다 이 일을 담당하는 직원이 있어요.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뭐냐? 이마트 같은 데 가면 식품이나 생필품 코너를 매장 맨 안쪽에 두거나 가장자리로 둘러서 소비자 동선을 최대한 늘립니다. 
그래야 오래 돌면서 견물생심이 생겨 꼭 필요하지 않은 식품이나 원래 살 마음 없던 것도 사게 되지요. 특히 식품매장 입구에는 항상 형형색색 과일을 맨 앞에 진열합니다. 소비자의 후각과 청각을 자극해서 더 사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 2~3년에 한번은 ‘리뉴얼’이나 ‘MD 개편’이라는 이름으로 상품 진열 위치를 완전히 바꾸어 버립니다. 소비자가 매장에 익숙해지면 여기 가면 뭐가 있는지 알아서 자기가 본디 살 계획이 없는 물건 앞에는 안 가기 때문이지요. 또 계산대 옆에 껌이나, 초콜릿 같은 군것질거리를 두는 것도 소비자의 시선을 마지막까지 끌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마트나 백화점에는 시계나 창문이 없습니다. 쇼핑하다가 시간 많이 간 사실을 알면 안 되니까요. 
제가 너무 많은 정보를 누설했나요? 보세요. 이게 다 소비자의 오감, 감각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자극하고, 시식코너를 수없이 둬서 꼭 손해 볼 것 같지만 우리의 코와 입을 자극해서 기어코 사게 만들고, 괜히 큰 소리로 “떨이”니 “마감 세일”이니 외쳐서 우리 귀를 자극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말해줘도 우리는 또다시 마트에 가서 본능적으로 충동구매를 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이렇게 오감에 정말 약한 것입니다. 그래서 느낌이나 감각에 의해 유혹을 참 많이 받고 죄도 많이 지게 됩니다. 지난주 설교를 통해 우리에게 죄가 들어오는 대표적인 통로가 세 가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첫 번째 통로가 바로 이 인간의 감각, 오감을 통해 죄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와와 예수님이 받은 유혹

하와가 뱀이 유혹할 때 선악과의 열매를 보자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제일 먼저 느낀 것은 바로 “먹음직하다”는 감각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눈이 열매를 보고 뇌에 참 먹음직스럽다는 느낌을 전달하자 뇌는 “먹고 싶다”는 감정을 생성합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입 안에 침이 고입니다. 이 놀랍고 치밀한 시스템을 만든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음식을 보고 먹고 싶다고 느끼는 것은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식욕(食慾)자체가 죄가 아니란 말입니다. 먹고 싶다는 감정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고 식욕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것입니다. 
사실 식욕이라는 욕심이 없으면 인간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최근에 큰 수술을 한 환자들을 심방해보니 공통적으로 이 식욕 때문에 고생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봐도 식욕이 안 생기는 것입니다. 전에는 이 음식을 참 좋아했는데 큰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를 받고 하면서 식욕이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의사나 주변에서 잘 먹어야 빨리 낫는다고 해도, 또 나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지만 식욕이 없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억지로 한 숟갈 입속에 떠 넣어 보지만 금세 수저를 내려놓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식욕이 없으면 우리는 이렇게 힘들어 집니다. 먹고자 하는 의욕이 없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정말 맛이 없는데 억지로 먹으라면 이보다 불행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식욕은 축복입니다. 죄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어떨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늘 지나칠 때가 문제입니다. 식욕 자체는 좋은 것인데 앞서 말한 것처럼 지나친 식욕을 억제하지 못해 비만이 되고 건강을 해치면 식욕을 넘어 식탐(食貪) 수준이 되고 맙니다. 음식 자체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고, 음식이 신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로마서 16장 18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배만 섬기는 자라고 부릅니다.

나아가 아무리 식욕이 당기더라도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있습니다. 너무 지나친 식욕으로 식탐이 되면 죄지만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먹어도 죄가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감각과 좋은 욕심이 죄가 되는 순간입니다. 식욕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감각과 욕망이 마찬가지입니다. 성욕(性慾)도 그렇습니다. 성욕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성(性)은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선물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아름다운 성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생산하는 일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홀로 지내는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 주시고 가정을 축복하신 까닭이 이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때 성욕이 죄가 됩니까? 
식욕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죄가 됩니다. 성욕이 도를 넘어 내 삶을 지배하게 되거나, 죄를 짓는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내 순간적인 쾌락을 위해 부적절한 관계로 발전되면 죄가 됩니다. 음식도 먹지 말아야 할 종류가 있는 것처럼 성도 만나지 말아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6장 15~1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창녀란 아내 외에 잘못된 성적 만남을 뜻하며 부적절한 성욕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식욕이나 성욕이나 물건을 사고 싶은 생각이나 이런 모든 감각들 자체가 죄가 아니지만 또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심도 죄는 아니지만 이 모든 감각이나 욕심이 지나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그 감각은 죄의 통로로 사용되고, 그 긍정적인 욕심은 정욕(情慾)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은 첫 번째 시험은 무엇입니까? 사십 일을 굶주린 예수님에게 마귀는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시험을 합니다. 여러분, 배고픔이 죄입니까? 아닙니다. 식욕이 당연한 것처럼 배고플 때 무언가를 먹고 싶은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어떨 때 이 배고픔이 죄가 됩니까?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뭐라고 했는지 정확히 봐야 합니다. 마태복음 4장 3절을 다시 봅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잘 보세요. 여기서 아주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그냥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말을 붙입니다. 이 말은 뒤에 나오는 두 번째 시험에도 나옵니다. 그러면 이게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아닙니까? 분명 하나님의 아들 맞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마귀가 예수님의 배고픔을 이용해 하고자 하는 일이 뭔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갖고 있는 능력, 얼마든지 돌로 떡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배고픔을 해결하라고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인 예수님에게 기적을 일으킬 능력을 주신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쓰라고 준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잘 알던 예수님도 공생애 기간 동안 한 번도 그 능력을 자기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얼마든지 돌로 떡도 만들고, 자신을 잡으러 오는 군사들도 물리치고, 십자가 위에서 조롱당할 때 내려와 조롱하는 무리들을 싹 쓸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런 유혹을 다 물리치고 오직 세상을 섬기고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만 그 능력을 쓰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사십 일이나 굶어서 정신없는 순간, 마귀는 예수님에게 그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을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기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쓰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만약 이 유혹에 따라 예수님이 돌을 떡으로 만들었다면 배고픔이 유혹의 통로가 되어 인류 구원의 역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마귀는 이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유혹한 것이고, 예수님도 그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 유혹에 안 넘어간 것입니다. 아무리 배고파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무리 성적인 유혹을 받아도, 아무리 눈에 보기 좋아 보여도, 아무리 욕심이 들어와도 그 일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배고픈데 어쩌란 말이냐?” “난 몸이 하고 싶은 대로 따라 살래” 어떤 TV 광고에 나오는 말처럼 “본능에 충실하라,” 이런 말들이 적어도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안 통한다는 말입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 아니라 사명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죄의 통로를 막는 방법

하와가 받은 유혹의 첫 번째 통로와 예수님이 받은 유혹의 첫 번째 통로가 같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이나 욕심을 통해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마귀는 하와처럼 예수님처럼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에게 죄를 들여보내려고 합니다. 우리의 오감이나 감각, 욕심을 통로로 삼아 죄를 들여보내 우리를 죄의 사람으로 만들고 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유혹을 이기는 방법, 죄의 통로를 막는 방법은 이것입니다. 바로 절제와 순종이라는 두 가지 방법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 이 두 가지, 즉 절제와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9장에서 이것을 강조합니다. 함께 찾아 읽어봅시다. 먼저 24-25절입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다음으로 27절을 읽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운동장에서 달리기선수들이 아무리 열심히 달린다고 해서 다 상 받는 것은 아닙니다. 상 받기 원하는 선수는 반드시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25절에 나온 ‘절제’와 27절에 나온 ‘복종’ 즉 ‘순종’입니다. 이 두 가지를 잘 지키면 감각과 정욕을 통한 유혹을 이겨내고 하나님께 상 받는 성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정말 훌륭한 선수 되고 상 받고 싶다면 철저하게 절제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먹고 싶어도 참고, 가고 싶은 데도 안 가고, 놀고 싶어도 참고 절제하며 자기를 관리합니다. 아무리 타고난 능력이 뛰어나도 이 절제가 안 돼서 실패한 운동선수 참 많습니다. 또 순종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코치나 감독의 지도에 순종하지 않으면 좋은 운동선수 못 됩니다. 운동선수에게 이 절제와 순종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처럼 우리 성도들에게도 절제와 순종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식욕도 성욕도, 그 어떤 감각이나 욕심도 잘 절제해서 도를 넘지만 않게 한다면 아무 문제 안 됩니다. 오히려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절제입니다. 이 절제는 우리 힘으로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 아홉 번째가 바로 절제의 열매입니다. 이 절제의 능력을 가지면 우리의 모든 감각과 욕심을 잘 컨트롤해서 오히려 축복의 통로로 만들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Amazing Grace를 쓴 존 뉴턴(John Newton)도 감성과 감각이 아주 발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젊은 시절에는 이 감각을 술 마시고 방탕하고 성욕으로 사용하다가 하나님을 만나 은혜를 받으니 그 감각을 가지고 최고로 아름답고 은혜로운 찬송을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절제의 영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이 감각의 유혹, 정욕의 유혹을 이기고 죄의 통로를 막는 또 하나의 방법은 순종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욕심이 없어서 뭘 몰라서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잘 살고 싶고 편안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도 풍성하게 살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 다 소유하며 본능에 충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욕심과 감각을 절제하고 철저하게 쳐서 하나님께 복종하게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사명’ 때문입니다. 끝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복종하고 순종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 받으실 때 그 첫 번째 시험을 이긴 것은 사명에 복종했기 때문입니다. 내게 있는 능력을 결코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쓰는 것이 내 사명인 줄 알았기에 이겨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을 읽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앞서 소개한 대로 우리 몸을 창녀와 합하여 더럽히지 말라고 하면서 성욕을 잘 절제할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뒤에 나서 말씀이 고린도전서 6장 19~20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설교의 결론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피 값으로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여러분도 내 몸을, 내 육신을, 나의 감각과 온갖 욕망을 절제와 순종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수단으로 만드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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