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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재물의 노예인가? 청지기인가? : 제8계명 (출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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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의 노예인가? 청지기인가? : 제8계명 (출 20:15)
 
돈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제 81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8개의 상을 받은 ‘슬럼독밀리어네어’라는 영화를 시사회에서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인도 빈민가 출신의 18살의 고아인 ‘자말’이라는 청년과 그의 형이 겪는 인생 드라마가 아주 빠르고 흥미 있게 전개됩니다. 영화에는 인도 사회 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어린이를 팔아넘기는 인신매매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강제로 어린아이를 장애인을 만들어서 거지와 도둑질과 매춘을 하게 하는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30~40년 전 가난했던 한국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입니다. 
  
형제 중 형은 사랑보다는 현실적인 돈을 택합니다. 그러나 ‘자말’이라는 이름을 지닌 동생은 어릴 때 만난 ‘라티카’라는 소녀와의 사랑을 꿈꾸며 끊임없이 연모하고 있습니다. 자말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퀴즈쇼에 참가를 합니다. 이 퀴즈를 풀어가면서 인생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그런데 자말이 답을 너무 잘 맞추자 경찰은 그를 의심하고 체포합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돈의 단위가 올라갈 때마다 환호하면서 열광합니다. 거액의 상금에 열광하는 모습과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한 사랑을 하는 모습이 서로 대비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과 물질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 더 가치 있는 것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돈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유대교 격언에 ‘돈으로 열리지 않는 문은 없다.’ 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돈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가를 경험했습니다. 우리의 삶의 어디에도 돈과 관계없는 현장은 없습니다. 
  
탈무드에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첫째는 정신적인 고뇌로 내면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방황하면서 어떻게 살지 때로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뒤척이며 지냈던 고뇌가 있습니다. 이것도 인간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마음에 큰 상처를 주는 두 번째는 인간관계의 다툼입니다. 이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쏟아 낼 수 없는 분노가 솟구칩니다. 사람의 가슴에 엄청나게 큰 상처를 주는 것이 인간관계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보다 더 크게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세 번째는 빈 지갑입니다. 내 지갑이 비면 마음속에 큰 상처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은 마음에 의존하는데, 마음은 지갑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돈의 힘이 막강하기에 사람들은 돈에 인생의 목을 맵니다. 지갑이 비어있으면 주눅이 들고 자신감도 없어지고 당당하게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인간관계도 파산이 됩니다. 자본주의 시장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빈 지갑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선물로 받았습니다.  
 
십계명의 제 8계명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속에 거부감이 들 것입니다. ‘내가 언제 남의 물건에 손 댄 적이 있는가? 내가 남을 해롭게 한 적이 있는가? 나는 세금도 정확히 계산해서 내고, 예배드릴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십의 일조 헌금도 했는데 왜 제 8계명이 내게 문제가 될까?’ 
  
그러나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어떻게 얻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어떻게 얻었습니까? 인생에는 세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첫째는 누군가 선물로 주어서 얻은 것입니다. 작은 것은 친구나 친지로부터 얻습니다. 차 한 잔 대접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한 끼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사랑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또 영화 한편을 보면서 우정의 선물을 나눕니다. 여기에 소소한 인생의 기쁨과 따스한 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작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보다 큰 것을 받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 입는 것, 지금까지 교육을 받고 여기까지 온 것은 부모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공짜의 은혜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어려서 부모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큰 고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생에서 얻는 큰 축복을 받지 못한 고아들을 불쌍히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보다 더 엄청나게 큰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기와 물과 모든 환경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 생명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총을 공짜로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선물로 받은 것이 인생의 대부분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인생의 선물을 숨겨두시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수고하고 땀 흘리려 일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울 때 어떻게 하면 자녀들에게 노동의 가치와 일하는 복을 알려주면서 자라나게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언젠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자녀들의 경제관념을 주제로 이야기 한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경제 상담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10살인 딸이 한 달에 20달라 씩 달라고 하는데 그것을 용돈으로 주어도 되겠습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2~3만원 되는 돈입니다. 아마 10살 난 자녀가 돈을 달라고 하면 대부분의 부모님은 줄 것입니다. 

그런데 경제 상담가는 아주 단호하게 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용돈을 공짜로 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먹고 입고 잠자고 공부하는 모든 것이 공짜인데 거기에다 용돈까지 공짜로 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용돈은 일 한 대가로 주어야한다고 말합니다. 아마 이 점은 한국의 부모님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은혜를 많이 베풉니다. 장성한 자녀들에게까지 은혜를 베풀려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또 한 가지 질문을 합니다. “아이가 상을 타왔는데 용돈을 주어야 하나요?” 상담가는 그것도 안 된다고 대답합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일등하면 무엇을 해 주겠다고 많은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돈을 주지 말고 사랑을 주라는 것입니다. 한 번 더 껴안아 주고 “너는 귀한 딸, 귀한 아들”이라고 말해주라고 합니다. 
  
성경은 어떻게 말씀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수고해라. 일해라. 땀 흘려라.’ 하나님께서 주신 이 땅에서 노력하여야 받아야할 것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데살로니가후서 3:10) 

여러분, 먹으려면 땀 흘려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는 것, 수고하는 것,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인생을 사는 축복인지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선물로 받은 것, 또 하나는 일하고 수고하며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예외적으로 받는 것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것을 훔쳐서 얻는 도둑질입니다.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이라고 말합니다. 선물로 받는 것, 그리고 일해서 받는 것은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도둑질해서 얻는 것은 불법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 앞에서도 범죄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인간의 다양한 도둑질이 나와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도둑질의 종류가 여러 가지 있는데 오늘 우리들이 사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첫째, 부정직한 상거래에 대해 하나님께서 분노하십니다(레위기 19:35). 재판할 때나 길이나 무게나 양을 잴 때 불의를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1kg를 주어야 하는데 800g을 주고 1kg의 값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량형이 정확하고 기준이 명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재판할 때도 거짓된 거래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다른 사람에게 돈을 꾸고서 갚지 않는 것은 도둑질 한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악의는 꾸고 갚지 아니하나” (시편 37:21) 

교회 안에서 돈을 꾸어주고 꾸는 상거래가 없어야 합니다. 돈을 꿀 때는 열심히 꾸다가 갚지 않으면 누가 고통을 받을까요? 돈을 꿔준 사람이 고통을 받습니다. 돈을 꿔준 사람이 죄인이 됩니다. 그때는 돈도 잃고 친구도 잃고 인간관계도 잃고 하나님께서 주신 신앙과 축복도 잃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에게 꾼 것이 있으면 갚아야 합니다. 
  
셋째, 함께 일하고 있는 동역자, 노동자, 그리고 산업근로자의 삯을 떼어먹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야고보서 5:4)

넷째, 높은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업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출애굽기 22:25)

성경에서는 고리대금업을 통하여 남을 억압하면 그것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섯째, 부당한 뇌물을 받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출애굽기 23:8) 

선물과 뇌물은 다른 것입니다. 선물은 주는 자와 받는 자가 기쁩니다. 그러나 뇌물은 대가가 있어서 받는 자의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뇌물을 받으면 받을 수도 삶의 축복이 사라집니다. 
  
탈무드를 보면 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 문에 들어설 때 천사가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너 교회 열심히 다녔냐? 너 기도 많이 했냐? 너 이웃 고통 받는 사람 구제 많이 했냐?” 라는 질문을 하기 전에 중요한 질문 하나를 한다고 합니다. “너는 세상에서 상거래 할 때에 정직했느냐?” 세상에서 살 때 정직했는지를 묻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 랍비들은 거리 상점을 돌아다니면서 상품의 무게와 크기, 품질과 가격 등을 조사하면서 거짓된 가격을 만들어 과도한 이익을 남기는지 조사를 했습니다. 소비자 운동의 선구적인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거래에서 부정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하는 자라고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도 도둑질이 곳곳에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예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중고차를 살 때 겁을 먹습니다. 왜냐하면 사려는 차가 사고가 난 차인지 아닌지를 쉽게 구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차가 3만 km를 달렸다고 하는데 진짜 3만 km를 달렸는지 13만 km를 달렸는지 잘 모릅니다. 집을 사고 팔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5억 짜리 집인데 이것저것 트집을 잡으면서 자꾸만 값을 싸게 사려고 합니다. 반대로 3억이면 살 수 있는 집을 5억, 10억을 부릅니다. 교회가 산다고 하면 몇 배의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녀를 데리고 놀이동산에 들어가는데 초등학생은 반값을 받고 유치원학생은 공짜라고 하면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자녀에게 잠시 부탁을 합니다. “얘야, 오늘 놀이공원 들어갈 때 유치원생이라고 하자.” 이처럼 우리는 알게 모르게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하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관공서나 기업들이 물품을 구입할 때 공개 입찰을 하는 이유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수고하고 땀 흘리는 모든 국가 공무원들은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 충성 하며 애쓰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몇몇은 종종 세금을 도둑질 하다가 적발이 된 것을 지상파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도박과 로또 복권 판매도 일종의 국민들에게 도둑 근성을 키우는 잘못된 행태입니다. 속임수로 많은 사람의 돈을 모아서 몇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사람들에게 사행심을 불러 일으켜 요행을 꿈꾸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집 주위 가게에 외상 장부를 깔아 놓고 자기는 이리저리 다니면서 여행을 즐기고 자기 할 것을 다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신앙인들도 있습니다. 내가 꾼 것은 열심히 갚도록 수고하고 땀 흘려야 합니다. 어쩔 수 없어 파산당하는 것은 내게 주어진 몫입니다. 그러나 수고하고 애쓰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셨을 때 삭개오라는 부자를 만났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 순간에 자기 실존을 깨닫게 됩니다. 이웃에게 잘못한 것이 그의 머리에 들어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누가복음19:8) 

가장 무서운 도둑질은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입니다. 

믿음은 회개를 요청합니다. 회개는 변화된 삶을 낳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씀 드린 것보다 더 크고 무서운 도둑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훔치는 것입니다. 게으르게 사는 것입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젊음을 허랑방탕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주신 삶을 통하여 열 중의 아홉은 쓰고, 열 중의 하나만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십의 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로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내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도둑질이라는 것은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옆에 와 있습니다.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만 도둑질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들키지 않은 도둑질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돈과 재물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돈과 재물에 전체를 걸며 집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과 은혜, 생명을 배반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의 위험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돈이면 다 되는 것으로 압니다. 돈만 있으면 부정과 부패를 그대로 놔둬도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의 십일조를 드립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돈 보다 더 소중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사랑과 생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의 삶이 변화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의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민족사도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생명과 돈도 맡기시고, 재물과 달란트도 맡기시고, 기술과 지식도 맡기셨습니다. 내가 가진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맡기셨습니다. 
  
우리교회에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십의 일조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도 십의 일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재능과 달란트, 직업도 하나님께 십의 일조로 이웃을 위해서 드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있지만 특히 의사 분들이 시간을 내어 선교와 봉사로 섬기는 것은 너무너무 귀해 보입니다. 사실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는 분들은 의사 분들 뿐만이 아닙니다. 곳곳에서 성도님들이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 가질 때 우리의 삶이 변화가 될 것입니다. 
  
도둑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이 땅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서 축복해주는 성도들과 백성들이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다시 축복해주시고 바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이 세계 역사 속에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귀한 나라와 국민들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갖고 있는 것 중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것인 양 자랑하고 가진 것으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조롱할 때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잠시 맡겨주신 재물과 시간과 달란트를 하나님과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서 사용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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