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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속자에 대한 욥의 (욥 19: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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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자에 대한 욥의  (욥 19:25~26)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에서 부활을 제외하면 세상의 쓸모없는 다른 여타 종교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5:16-19). 
그리스도의 탄생과 생애, 십자가에서의 대속적 죽음, 장사,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다 중요합니다. 거기에 그리스도의 역사적이며 육체적인 부활은 기독교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복음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생명의 위협과 위험을 무릅쓰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높이 외쳤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부활에 대한 확실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구약 성경 욥기에 나오는 성경 말씀을 읽었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내가 안다 』라는 말씀은 "나는 압니다."라는 말인데, ① 지식적으로 안다, ② 직접 보고 확인하였으므로 안다는 체험적인 지식, ③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옳고 그른 것을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다는 의미와 ④ "확실히 믿는다."고 하는 신앙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구속자에 대한 욥의 신앙이라는 말씀으로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1. 욥은 "구속자"가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본문 25절에 "구속자"라는 말은 『가알, gawal 』이라고 하는 히브리 동사에서 온 말입니다. 이 『가알 』이라는 동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다시 사낸다"는 뜻입니다. 
어쩔 수 없이 토지나 가옥이 팔렸을 때, 그것을 다시 사서 원주인에게 되돌려 놓는 경우에 이 말을 사용하였습니다(레 25:25, 33; 룻 2:20; 3:9, 12; 4:1, 3, 6, 8, 14,;왕상 16:11…). 
이 경우 성경은 "기업을 무른다."고 하였으며, 돈을 지불하고 사는 자를 가리켜 "기업 무를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경우에 중요한 것은 가장 가까운 가족, 친척이 그 일을 하였습니다. 

2) "속량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방인에게나 동족에게 어쩔 수 없이 종으로 팔렸습니다. 
그 때에 형제나 친척이 상당한 돈을 지불하고 그를 다시 사내어 자유자가 되게 할 수 있었습니다(레 25:47-55). 이 경우에 중요한 것은 상당한 대가(代價)를 지불하고 사내는 것입니다. 이때 지불되는 돈을 속전(贖錢)이라고 합니다(레 27:13, 15 참조). 

3) "보수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죽임을 당할 만한 이유가 없는데 타인에게 고의로 죽임을 당하였을 때 그의 가족이나 형제, 또는 친척은 고살자에게 고의로 죽은 자의 피를 갚을 수 있었습니다(민 35:16-34; 수 20:3, 5; 신 19:6, 12). 
이 경우는 "피를 보수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원수가 한 것만큼 그에게 갚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4) "구속한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사에서 있을 수 있는 일에 사용되던 단어 『가알, gawal 』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 사역에 고용되었다고 하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인 구원이나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바벨론에서의 해방 등을 말할 때 동사 『가알 』과 명사 『고엘, gwoel 』이 사용되었습니다(시 103:4; 호 13:14; 애 3:58; 출 6:6; 15:13; 시 74:2; 77:15; 78:35; 사 43:1; 44:22, 23; 48:20; 62:9; 63:9; 미 4:10,…). 
인생이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구원하여 주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시편 103장 4절을 보시면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원하시고… 』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을 파멸로부터 구원하실 자는 하나님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Ⅱ. 욥은 그 구속자가 살아계심을 믿었습니다. 

본문 25절에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나의 구속자 』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구속자"는 '나를 구속하시는 자'라는 말입니다.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라고 하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1) 나의 구속자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나의 하나님 외에는 나를 구속할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의 구속자인 것을 자주 자주 말씀합니다(사 41:14; 43:14; 44:6, 24; 47:4; 48:17,…). 
호세아 13장 14절에는 『내가 저희(이스라엘)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음부의 권세에서 이스라엘을 속량할 수 있는 자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2) 나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다고 하는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을 나타내는 고백입니다(출 3:15; 약 1:17; 히 13:8). 
(3)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내 안에서, 또는 자기 백성 가운데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과거의 구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과거의 구원 역사는 현재의 구원과 미래에 완성되어질 구원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Ⅲ. 욥은 그 구속자가 "땅 위에 서실 것"을 믿었습니다. 

본문 25절에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 『땅 』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아파르, awfawr 』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은 "지구" 또는 "마른 땅"을 뜻하기도 하지만 성경의 많은 구절에서 "티끌" 또는 "진토"라는 말로 번역되었습니다(사 29:4; 47:1; 욥 16:15; 40:13, 시 119:25; 113:7). 창세기 2장 7절과 3장 19절에서는 "흙"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구속자이신 하나님이 진토와 같고 티끌과 같은 이 땅에 서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땅 위에 서신다"는 말씀은 무슨 말입니까? 
① 구속자이신 하늘의 하나님이 욥이 살고 있는 땅 위에 오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② 구속자이신 하나님이 욥을 살려주시기 위하여 욥이 처한 고통의 현실인 진토 위에 서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③ 잠시 후 욥의 육체는 그 본래인 땅의 티끌과 먼지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그때에 구속자이신 하나님이 욥의 육신을 다시 살리시기 위하여 티끌로 돌아가 버린 자신 위에 서실 것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④ 그때에 자기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땅의 티끌로 돌아가 버린 자기 위에 서실 것을 믿었습니다. 
욥은 이렇게 하늘에서 땅에 오실 구속자이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Ⅳ. 욥은 그 구속자를 "육체 밖에서 만날 것"을 믿었습니다. 

욥은 본문 26절에서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그를 보리라 』고 하였습니다. 
확실히 욥은 자신의 육체는 썩어져 티끌로 돌아갈 것을 알았습니다. 인생은 모두 흙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생명이 끝날 때, 영혼을 담고 있던 그릇이었던 육체는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창 3:19). 그리고 영혼은 하나님 품으로 갑니다(눅 16:22; 23:43; 전 12:7). 
그렇게 되면 육체 밖에서, 육체를 벗어나 구속자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욥은 이것을 믿었습니다. 
본문 27절을 보면 욥은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 눈으로만 읽고 알았던 하나님을 이제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 시대에 욥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동방에서 큰 부자였으며 의인이었습니다. 그는 순전하고 정직한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그에게는 훌륭한 열 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그는 다복(多福)한 삶의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하지만 욥의 생애에 뜻하지 않은 폭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일곱 아들들과 세 명의 딸들을 하루아침에 모두 잃었습니다. 그의 수많은 재물들(양, 소, 약대)도 어느 날 모두 잃어 버렸습니다. 
얼마 후 자신의 몸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얻었습니다. 욥은 재 가운데 앉게 되었습니다. 기와 조각으로 굳어버린 그의 피부를 긁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연속적인 사건을 그때까지 지켜보던 사랑하는 아내가 그에게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할 만큼 그의 형편은 처참하였습니다. 

이렇게 욥의 육체는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진펄이 되어버린 육체 가운데서 욥은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욥은 그 하나님을 "나의 구속자"라고 불렀습니다. 욥은 "나의 구속자는 살아계신다"고 말하였습니다. 욥은 "그 구속자가 후일에 땅 위에 서실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욥은 "그 구속자를 육체 밖에서 만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 앞에 서 계신 구속자를 아십니까?
그는 저와 여러분의 구속자가 되시기 위하여 저 하늘 먼 곳으로부터 땅에까지 달려오셨습니다. 

그는 저와 여러분의 구속자가 되시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속전으로 내어 주셨습니다(막 10:45; 벧전 1:18; 19; 요 10:11, 15…).
그는 저와 여러분의 영원한 구속자가 되셔서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그가 땅 위에 서셨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땅에 오시고 서셨습니다.
그는 병든 자를 치료하기 위하여, 주린 자에게 생명의 떡과 생명의 물을 주기 위하여 땅 위에 서셨습니다.
그가 부활의 생명을 나사로에게, 청년에게, 소녀에게 주시려고 그들 곁에 서셨습니다.
그가 자기를 주기 위하여 대제사장 가야바와 안나스, 총독 빌라도의 재판석에 서셨습니다. 
그는 자기 생명을 우리 대신, 우리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주시기 위하여 저 갈보리 위에 서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활을 증거하고 믿게 하려고 제자들 곁에 와서 서셨습니다. 
그는 저 하늘로 승천하시기 위하여 감람산 위에 서셨습니다.
그는 이제 하늘로부터 이 세상으로 다시 오셔서 서실 것입니다. 
그때에 그는 티끌인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목청껏 불러 부활의 새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그 이름 나의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주님을 나의 구속자라고 믿고 고백합니다. 그 주님이 살아계시다고 고백합니다. 그 주님을 육체 밖에서 만날 것을 기대하고 고백합니다. 그 주님은 우리에게 결코 낯 선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귀한 신앙의 어머니 엄분연 권사님도 진토와 같은 육체 가운데서 이러한 신앙고백을 하고 살았던 분입니다. 이제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주님을 육체를 벗어나 만나 뵙고 주님의 즐거움에 참예하고 있습니다. 
이런 위대한 신앙의 고백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의 구속자", "우리의 구속자"되신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간 신앙의 선배들을 함께 그 날에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그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이런 신앙의 고백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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