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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크리스챤 라이프 스타일 (살전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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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챤 라이프 스타일  (살전 1:1~10)


1. 요즘 세계 어느 나라를 가나 경제가 어렵습니다. 어제 아침 TV 뉴스를 보니까, 그렇게 잘 나가던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도 세계적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아 직원을 1/3이나 감축하여 도요타 공장이 
있는 나고야시 전체의 경제가 휘청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도 도시 인근에서 텐트생활하는 서민 중산층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쫓겨나서 주택대출을 갚지 못해 집을 빼앗기고 
길거리로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말이 텐트생활이지, tv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오고, 추운 날씨에 텐트에서 잠을 자고 밥을 해먹는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중국에서도 농촌에서 일자리를 구
하러 도시로 올라온 젊은이들이 갈 데가 없어 인력회사의 임시 거주지에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유럽도, 호주도, 지구촌 어디에도 힘들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런 뉴스를 자꾸 접하다 보니까, 사람들은 지갑을 더 열지 않습니다. 여간하면 돈을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시장이나 마트는 더 장사가 안 되고, 기업은 더욱 어려워지고, 실직자는 늘어나는 등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이런 불황이 얼마나 오래 갈까? 얼마나 돈을 더 저축해두어야 안심이 될까?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성경말씀에서 해답을 찾으십시다. 마태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신다고 합니다. 이런 불황기일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돈에 대한 염려보다 도리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방인들과 다른 점입
니다. 우리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미래를 위하여 저축만 하는 개미같은 존재가 되지 마십시오. 이런 때일수록 호주머니를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
다. 

2.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즐겨 쓰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서 <신당서>에 나오는 말입니다. 
사소이위즉안(思所以危則安), 위험이 닥친 이유를 생각하면 안정을 찾는 길이 보이고, 사소이난즉치(思所以亂則治),  혼란해진 이유를 생각하면 국가를 잘 다스리는 법을 찾을 수 있으며, 사소이망즉존(思所以亡則存) 망한 이유를 생각하면 생존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아무리 어려워도 길이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난불난(知難不難), 어려운 일도 어렵지 않다 여기고
영난이상(迎難而上),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 나가며
지난이진(知難而進),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뛰어들고
영불퇴축(永不退縮), 절대 위축되거나 물러서지 않으며
불언실패(不言失敗),  결코 실패를 말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사람도 어려운일도 어렵지 않다 여기며, 위축되거나 물러서지 않는데, 천지의 창조주 하나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전능하신 엘 삿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섬기는 우리가 좀 어렵다고 벌벌 떨면서 염려하며 살아야 되겠습니까?

다들 어렵다고 하는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찾아보다가 데살로니가전서의 말씀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주일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강해하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약 1900여년 전, 데살로니가에 살고 있던 기독교인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신앙을 유지하며 믿음 위에 굳게 서서 담대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2차전도여행 지도보기)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요, 로마제국의 속령 마게도냐 주의 수도이며 총독의 거주지였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로마제국의 동서를 잇는 에그나티아 대로변에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바울이 개척한 교회입니다. 
바울은 실라(본문에서는 실루아노)를 데리고 안디옥을 출발하여 루스드라에 왔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데리고 소아시아 서해안 지역으로 전도하러 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바울을 브루기아의 북서쪽이자 비두니아 남쪽 무시아로 인도하셨습니다. 항구 도시 드로아에서 바울은 성령께서 주신 환상을 보고 유럽지역인 마게도냐로 갑니다.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빌립보교회를 세우고 데살로니가로 왔습니다. 바울사도 일행은 데살로니가에서 3주간 밖에 없었습니다. 그 짧은 기간동안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시내의 깡패들을 동원하여 바울 일행이 머물고 있던 야손의 집을 공격했습니다. 바울 일행을 찾지 못한 깡
패들은 야손과 그의 형제들을 붙잡아 관리들에게 끌고 갔지만, 그들은 보석금을 받고 야손 형제들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날 밤에 바울 일행은 더 이상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수 없어서 베뢰아로 피신을 했습니다. 바울이 베뢰아에서도 왕성하게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베뢰아에까지 가서 소동을 일으키고 바울일행을 방해하였습니다.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베뢰아에 남겨두고 혼자서 배를 타고 아테네로 갔습니다. 바울은아테네에서 베뢰아에 있던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로 보냅니다. 
믿은지 얼마되지 않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바울은 아테네에서 열매가 없어 고린도로 내려갔는데, 디모데와 실라는 이 때 고린도로 내려와 바울사도와 합류합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돌아온 디모데는 바울사도에게 보고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몹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믿음을 잘 지키고 있고,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주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신앙생활을 너무나 잘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디모데의 보고를 들은 바울 사도는 고린도에서 기쁨과 감사로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그것이 주후 50년경에 쓰여진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3. 1절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 이 말씀에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신감을 갖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근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데살로니가 지역에 살고 있으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주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았던 성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대구에 살면서 동시에 하나님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근거지는 이중적입니다. 눈에 보이는 도시에 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품 안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렵더라도 어렵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 품안에 있습니다. 아무리 불안한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불안하지 않습니다. 주님 품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2절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바울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때문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7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본이 되었느니라.” 8절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신앙생활한지 몇 달 되지도 않은데,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의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만 아니라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
에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로 퍼졌습니다. 그래서, 바울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울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2:19) 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교회도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본이 되는 교회, 믿음이 소문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떤 면이 있기에 그런 칭찬받는 교회가 되었을 까요? 아무 문제가 없는 완벽한 교회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완벽한 교회가 없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문제가 있었습니
다. 윤리적인 문제가 있었고, 주님의 재림에 대한 신앙이 확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회가 다른 교회에 본이 되는 이유가 세 가지 있습니다. 

3절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믿음과 사랑과 소망- 이 세가지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구체적인 삶으로 연결시키면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됩니다. 이 세 가지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크리스챤의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일합니다. 어렵다고 지하 벙커 속에 숨어버리지 않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믿음으로 행동합니다. 

9절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이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그들은 바울사도로부터 복음을 듣고는 그동안 그들이 섬겨온 수십가지 우상을 버렸습니다.  데살로니가 밑의 올림푸스산에는 제우스와 그 아내 헤라, 바다의 신 포세이돈, 사랑과 풍요의 신 아프로디테, 예술의 신 아폴론, 지혜의 신 아테나, 술의 신 디오니소스 등 그리스의 12신이 살고 있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렇듯,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여러 신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문화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수십년간 섬겨온 우상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결단이요 행동이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이렇게 행동이 따르는 것입니다. 

교회 바로 옆에 있는 수퍼마켓 주인은  최근 그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 “설교를 너무 너무 잘한다” 고 가게에 오는 손님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손님이 수퍼마켓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이번 주일에는 그 목사님이 무슨 설교를 했습니까 ?”

그러자 주인은 “글쎄요, 무슨 설교를 했는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손님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니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입니까? 그러면서 당신은 무슨 근거로 그 목사님의 설교를 그토록 칭찬하는 거죠?” 그러자 빙그레 웃으며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전에는 외상값을  제때 갚지 않는 걸 예사로 알더니만 목사님이 새로 오신 다음부터는 외상값을 아주 잘갚지 뭐예요”' 크리스챤의 라이프 스타일 첫째, 어려울수록 믿음으
로 살라.  

4. 크리스챤의 두 번째 라이프 스타일은 사랑의 수고입니다. 
여기의 “수고”는 지칠 때까지, 녹초가 되도록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에는 땀과 눈물과 희생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피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내어주는 것, 이것이 사랑의 수고입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몸이 으스러지도록 일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사회로부터 왕따당하고 무시당하는 어려움을 이겨낼수 있었던 힘은 서로를 위하여 희생할 줄 아는 사랑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수고를 낳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수고를 합니다. 
우리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를 위하여 몸이 지치도록 일을 합니다.  교구별로 돌아가면서 교회당 청소를 합니다. 주일 하루 쉬는 날이지만, 아침부터 오후까지 봉사하고 섬깁니다. 이런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가 본이 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사랑의 수고가 있습니다. 참 좋은 교회입니다. 

크리스챤의 라이프 스타일 두 번째,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라. 

5. 크리스챤의 라이프 스타일 세 번째는 소망의 인내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심각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로마 황제를 섬기지 않는다고 고소를 당했습니다. 그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생활에 
많은 애로가 있었습니다. 취직을 한다든지, 사교모임에 나간다든지, 친인척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아마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0절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지금 힘들어도 앞으로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소망이 있으면 견뎌낼 수 있습니다.  소망이 없으면, 포기합니다. 

어느 집의 아들이 공부를 너무 안 하니 아버지가 가정교사도 두고좋은 조건을 다 갖추어 주었습니다. 그래도 아들의 성적이 올라가지 않으니 아버지가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이놈아, 이번에도 성적이 안 오르면 너하고 나하고는 이제 인연을 끊을 거다. 너는 내 아들이 아니고 나는 네 아빠가 아니다.” 그래도 아들이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시험을 쳤는데 성적이 또 내려갔습니다. 성적표를 갖고 온날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야, 너 성적 어떻게 됐어?” 그러자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아무리 힘들어도 소망을 버리지 마십시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다 이루지 못한 것들은 주님 재림하실 때 다 이뤄질 줄 믿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소망을 걸고, 인내하면서 달려갑시다. 반드시 주님으로부터 상 받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챤의 삶의 스타일 셋째, 소망 가운데 인내하라. 

6. 시대가 아무리 급변하여도, 크리스챤의 삶의 스타일은 동일합니다. 믿음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수고하고, 소망 가운데 인내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점진적입니다. 믿음은 크리스챤의 삶의 출발
점입니다. 믿음으로 일하되, 지치도록 일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입니다. 이것이 2단계입니다.  지치도록 일하면 다시는 그 일 하기 싫은 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지치도록 힘들게 일하면서도 인내
하면서 다음에 또 다시 그 일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상 받게 되리라는 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 가운데 인내하는 것, 이것이 최종단계입니다.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우리 그리스도인은 더욱 돋보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로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기를 원합니다 . 그래서, 힘들다, 안된다, 어렵다 등 모든 
부정적인 생각을 일소하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변화시키는 이 땅의 진정한 리더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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