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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의 새 출발 (마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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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새 출발 (마 6:5~8)


오늘 이렇게 벌써 3월 첫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봄입니다. 좋은 계절에 참으로 좋은 일들이 많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기도의 새출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특히 오늘은 3. 1절 기념주일이고 지난 수요일부터 사순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참으로 지난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전국민이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던 함성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나라를 위한 기도의 함성이 울려 퍼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생각하며 깊이 기도하는 기간이 되었으며 합니다.   
지금 우리 교단에서는 총회적으로 "기도한국"이라는 기도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교회나 개인적으로도 정말 기도를 많이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로 이루어 져야 합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진실로 새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도가 새롭게 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본문 말씀을 따라서 기도의 새출발에 대한 기본적인 몇 가지 사항을 살펴보고 앞으로 계속해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강해하면서 기도의 열기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1.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기도란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주님께서는 "너희는 기도할 때에 어떻게 어떻게는 하지 말고 이러 이러하게 기도하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실 당시에도 사람들이 기도를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쉬지 않고 제사를 드리고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 같은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도 시간만 되면 땅에 엎드려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보시기에는 그런 기도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시고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기도를 해도 바르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기도란 무엇인가?"하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기도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저마다 다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디엘 무디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어느 교회에서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집회를 하면서 
"여러분! 기도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자기가 대답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냥 손을 들고 해보려는 것이겠지 하면서 한 아이에게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아이가 대답하기를 "기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감사함과, 아울러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무디는 대답을 잘 못할 줄 알았는데 너무도 또박또박 대답을 잘 하는 것에 놀라서 "네가 스코틀랜드에 태어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지식적으로는 대답을 잘했는데 그 사람들이 과연 실제로 기도를 잘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지금까지 기도가 무엇인지를 나름대로 정의해 놓은 것이 많습니다. 
어떤 시인은 "입 벌려 말하든 입 다물어 침묵하든, 기도는 영혼의 간절한 소원, 가슴 속에 떨리고 있는 숨은 불꽃의 움직임"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의 신비주의자는 "기도는 하늘과 땅이 서로 입 맞추는 순간이다"라고 했고, 
트랜치 대주교는 "기도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고하신 뜻을 붙잡는 것이다."라고 했으며 
브라더 로렌스는 "기도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체험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요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에 대한 나름대로의 말할 수는 있지만 어느 누구도 한마디로 "기도는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기도로 논문을 써서 소위 "기도박사"가 된 사람은 없습니다. 
그만큼 기도란 한마디로 말할 수 없지만 그 마음은 정립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기도란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란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이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순수히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들어 올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기도하시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여 마지막 생명까지 맡기셨던 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목사에게 찾아와서 기도가 무엇이면 어떻게 하며 잘 할 수 있느냐고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청년을 데리고 강가로 가더니 갑자기 청년을 물에 밀어넣어 버리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청년이 "아니 왜 이러십니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데.." 
그러자 다시 목사님은 그를 더 깊이 밀어 넣어버립니다.. 
청년이 또 허우적대며 나와서 "목사님 정말 왜 이래요?"화를 내고 달려들었습니다. 
이제는 아예 청년을 덜어 물 깊은 곳에 던져 버립니다. 
그때 청년은 "목사님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목사님은 그를 건져 주고는 "그렇게 하는 것이 기도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아는 비결은 직접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냥 기도 하십시오. 그러면 기도가 무엇인지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 


2. 기도의 자세는 형식화되거나 외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께서 "너희는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라"고 하신 것은 바른 자세를 가지고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할 때에 장소나 시간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기도를 하되 바른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외식으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길거리에서 외식적으로 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은밀하게 하나님께 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세인과 서기관 같은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도 시간이 되면 길에 서서 손을 들고 기도하거나 땅에 엎드려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렇게 많은 기도를 한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렇게 하지 말고 바른 자세로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많이 외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기도를 많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만 기도를 하면서도 너무 형식화되고 외식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금식기도를 얼마나 했는지를 명함에 기록해서 선전하고 다닙니다. 
교회에서도 기도를 하면서 너무 이벤트성으로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교계에도 기도회를 하면서 인원 동원을 하고 몇 명이 모였느냐를 자랑합니다. 
기도회의 순서를 누가 맡느냐를 가지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몇 년 전에는 교회들이 서로 앞 다투어 기도원을 거금을 들여 지어놓고 지금은 그것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서 곤란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도 기도를 많이 해야 하고 또 바르게 잘 해야 하겠습니다. 
정말 잘 하는 기도는 하는지 안하는지 남이 모르지만 많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너무 안하니까 특별기도회를 하고 참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전성도가 다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국가적인 일을 위해서도 함께 동참해서 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인위적으로 하거나 이벤트성으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기도를 하시면서 수시로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시고 밤새워 기도하시고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외로이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요 과학자인 아이작 뉴턴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망원경으로 수백만 마일 떨어진 우주공간 속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망원경을 옆에 내려놓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채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이 땅에 있는 모든 망원경이나 다른 것들을 다 동원해서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 즉 천상의 것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으며 하나님께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이요 깊은 대화입니다. 
기도를 통해 진실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는 자는 기도의 형식이나 방법이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도를 잘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기도를 안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더 많이 하고 더 바른 기도를 하기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우리 모두가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 아버지께 진심으로 깊은 기도를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3. 기도의 내용은 중언부언이 아니라 분명한 의사소통이어야 합니다. 

7절에서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당시에 바알 신을 섬기는 자들이 많은 시간을 들이고 오랫동안 주문을 외우면서 발광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에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들으시는지 어떤 지에는 관계없이 자기 할 말만하고 자기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기도드리는 주님이 자기 앞에 서 계시는데도 몰라보고 오히려 그 주님을 미쳤다고 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이 기도를 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미신적이거나 다른 종교에서 하는 것을 보면 그런 것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주술적 기도는 남묘호랭개교를 계속 반복하거나 불교에서 남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같은 말을 계속하는 것이 중언부언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불교식 기도는 자기 내면의 세계를 극대화해서 발산시키려는 것이고 주문식 기도는 외부적인 어떤 힘을 끌여 들여서 자기의 힘으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불교나 미신이나 결국은 자기 중심적인 기도입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들기도 하고 부숴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도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 중에도 기도를 하면서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계속 꼭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오랜 시간을 들여서 입산수도 하듯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도는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의 쌍방향적 대화입니다. 
기도는 우리와 하나님의 영적 교제요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또 묻고 대답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것을 실천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내 소원을 아뢰고 이루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것에 순종하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공중 기도나 대표 기도를 하면서 주의해야할 것이 많습니다. 
대표 기도는 자기 개인의 의사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전체와 성도들의 사정을 아뢰고 하나님의 뜻을 깨우쳐주시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서 자기 주장을 말하거나 다른 사람을 송사하거나 어떤 사람들이 들으라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하면서 누구를 책망하거나 욕하는 자들도 있고 기도로 자기를 은근히 자랑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기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런 자들은 이미 상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자기마음대로 일을 다 처리 해버렸기에 하나님이  어떻게 하고 말 것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기도하면서 심판하고 상도 주고 받고 다 해버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의 내용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주기도문을 강해하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월 포드 목사님이 작사한 찬송가364장의 가사 내용을 보면 기도의 내용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명의 그리스도인은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에서 "우리가 기도하면서 우리의 영혼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향하게 하면 마치 꽃이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피는 것과 같이 우리의 영혼도 거룩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꽃을 피우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바른 기도를 함으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의 꽃을 피우고 믿음의 열매를 많이 맺어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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