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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수 5:9~12, 마 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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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여전히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수 5:9~12, 마 28:20)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수 5:9-12)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야구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야구 역사상 가장 빠른 볼을 던진 사람은 놀란 라이얀(Nolan Ryan)선수였답니다. 얼마나 빠른 속공을 던지는지 날아가는 볼을 볼 수 없을 전도였습니다. 신출내기 심판(a rookie umpire)이 처음으로 게임의 주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잔뜩 긴장하고 심판석에 선 풋내기 주심은 전설적인 속공 투수 놀란 라이얀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놀란은 큰 모션을 쓰더니 공을 던졌습니다. 주심은 공이 날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포수(catcher)가 공을 잡고 나서야 공이 이미 날아왔음을 알았습니다. 풋내기 심판은 몸이 얼어붙는 듯 했습니다. ‘스트라이크’(Strike), 풋내기 주심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타석에 서있던 타자가 뒤로 물러나더니 심판에게 대듭니다. 주심의 어깨를 가볍게 떠밀면서 “기분 나빠하지 마십시오. 나도 공을 보지 못했습니다.” 

공이 얼마나 빠른지 타자도 보지 못했습니다. “스트라이크”를 준 주심에 대한 항변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읽은 제렌 로웰(Jeren Rowell)이라는 작가는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나는 때대로 세상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풋내기 주심과 같이 느낄 때가 많이 있다. 세상이 보이지 않는 투수의 빠른공처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습니다. 변하는 시기를 ‘전환기’라고 하는데 우리는 날마다 전환기(a time of transition)에 살고 있습니다(We live in a time of transition).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를 미국의 예를 들어보면 실감이 날 것 같습니다.

100년 전의 미국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47세였습니다. 지금의 평균수명을 80세로 보면 배나 더 오래 살게 되었습니다. 100년 전에는 미국에도 집안에 목욕탕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14%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100%샤워장이 있습니다. 100년 전에는 미국 전체에 자동차 숫자가 8000대였고 포장된 도로도 144mile정도였습니다. 그때의 자동차 최대속도는 10마일정도(10mph)였습니다. 

지금은 인구밀도가 제일 작다는 알라바마, 미시시피, 아이오와, 테네시가 캘리포니아보다 더 많은 인구밀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시간당 22센트를 월급으로 받았습니다. 90%이상의 의사들이 그때는 대학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여자들은 한 달에 한번정도 머리를 감았고, 샴푸대신 보락스(borax)나 달걀노른자위를 갖고 머리를 감았습니다. 사망원인은 폐렴이나 독감이 1위였고, 다음이 폐결핵, 그리고 3위가 설사병이었습니다. 지금 큰 도시를 이루고 있는 Las Vegas에는 오직 30명 정도가 살고 있었습니다. 전체 인구의 6%정도가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년에 230건의 살인사건이 미국 전체에서 일어났습니다.

100년이 지난 미국은 지금 어떻습니까? 인구가 3억을 육박하고 있고, 자동차는 식구마다 한 대씩 갖고 있습니다. 제트 비행기가 지구를 일일 권으로 묶어 놓고 있습니다. 세계는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10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원시적 삶을 살았습니다. 자동차는 한두 대 있었을 것이고, 이씨조선 말기의 한국은 참으로 비참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에서 11번째로 무역량이 많을 만큼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컴퓨터로 매일 세계를 누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하루의 변화속도는 100년, 200년 전에는 몇 십 년은 걸려야 해냈을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급격히 변하는 전환기(a time of transition)입니다. 전환기에는 옛것이 사라지고 새것이 등장하는 혼란의 시기이기도 하고, 가치관이 급격히 바뀌어 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성경 말씀도 출애굽역사의 대전환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40년의 여정 마지막 부분입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전 이스라엘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진을 치고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거기서 농사를 지은 소산물을 먹었고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습니다. 여리고 평지에서 생산된 소산물로 무교병을 만들어 먹고 볶은 곡식을 먹은 다음날 지금까지 그들의 주식이었던 만나가 그쳤습니다. 다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나를 먹지 못하였고 그때부터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광야의 유목민 생활이 끝이 나고 정착된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약속된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은 전환기(a time of transition)를 맞이한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손에 의해 공급되던 만나가 중지되었습니다. 더 이상 광야의 방랑자가 아닙니다. 이제는 농부가 되었고 집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도시를 건설하고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city builders and city dwellers)이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 힘든 시기에 접어든 것입니다. 도전의 시기를 접하게 된 것입니다. 수 십 세대를 걸쳐 성취해야 할 전환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로 전환기가 어렵고 힘들어도 변해가야 합니다. 언제까지 만나만 받아먹는 이스라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자립하는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젖만 먹고 자라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유식을 거쳐야 합니다. 물론 전환기는 옛 것으로부터 새것으로 바뀌는 시기입니다. 낮은 단계에서 한 단계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시기입니다. 그러면서도 역시 전환기는 어렵고 힘든 시기입니다. 헌것과 새것의 혼란 때문이요, 가치관의 전환 때문에도 어렵지만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렵고 힘듭니다. 그 두려움을 몰아내고 변해가야 성장합니다. 

100년 전 우리나라는 급격한 서양문물의 유입으로 매우 혼란스런 전환기를 맞습니다. 기독교를 서양귀신으로 몰아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상투를 자르는 일이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자식이 상투를 잘랐다고 아버지가 자살을 했고, 상투를 자르라고 했다 해서 목숨을 끓으며 항거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날도 컴퓨터라는 것이 등장하면서 나이든 사람들이 컴맹의 열등감에 빠져 스스로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GM회사는 4년마다 한 번씩 전 사원을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재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재교육을 받지 않으면 여지없이 낙오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이것을 ‘innovation training’이라고 합니다. 변하는 세계 속에서 스스로 자기를 쇄신하지 않으면 쉽게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톰 피터스(Tom Peters)라는 컨설던트(Consultant)가 R.D.A라는 단어를 숙지하게 했습니다. 그 의미는 “Rapidly Depreciating Asset”(급격하게 평가가 절하되는 자산)이라는 말입니다. 현대사회는 성장하지 않으면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고 맙니다. 변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으면 쉽게 쓸모없는 폐물(Obsolete)이 되고 만다고 Tom Peters는 강조합니다. 때문에 R.D.A를 R. I. P로 대처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 R.I.P는 무엇입니까? “Rest in peace”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이는 죽으라는 말입니다. 공동묘지에 가면 비석에 제일 많이 쓰여 있는 문장입니다. R.I.P는 “Renewal Investment Plan”, 즉 새로운 것을 배우며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여 잘 설계된 계획을 말합니다. “투자갱신계획”은 변화에 민감해야 하며 예지력을 갖고 대처해야 합니다.

톰 피터스는 매우 중요한 것을 제안합니다. 매주 우리 자신에게 한 가지를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간에 나는 어떤 새로운 것을 배웠나?”(What new thing have I learned this week?). 해야 할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으라(Look for new projects to do). 만나야 할 새로운 사람을 찾으라(Look for new people to meet). 읽어야 할 새로운 책(Look for new books to read), 가보아야 할 새로운 곳(Look for new places to go) 등등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것을 배울 때마다 우리는 renewal investment plan을 더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빨리 변하는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어렵다는 것입니다. 직업유지, 사업, 가정생활, 심지어는 부부간의 신뢰나 부모와 자식 간의 이해력도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환기는 언제나 어려운 법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성장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환기에는 힘들어지지만 특별히 어려워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변화를 거부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들은 전환기가 더 힘듭니다. 젊은 사람들은 변하는 세계 속에서도 잘 적응해 갑니다. 그들은 자꾸만 성장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컴퓨터가 up grade되는 속도는 거의 빛의 속도 다음이라고 할 만큼 빨라져서 주머니에 돈이 남아나지 않게 합니다. 20대 이하는 걱정 없습니다. 쉽게 up grade시킵니다. 그러나 40이상, 50-60대들은 적응이 느립니다.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부터 앞서곤 합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는 사람은 전환기에 더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거부하면 더 힘듭니다. 세월은 결코 뒤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선교사가 미개국에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그들은 돌로 칼을 만들어 쓰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한 부인에게 쇠로 만든 칼을 선물했습니다. 놀라울 만큼 날카로운 쇠칼은 곡식은 물론 나무를 자르는데 효과적이었습니다. 짐승들을 잡는데도 돌칼보다 훨씬 좋은 무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칼을 든 여인을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남편도, 아이들도, 동네 사람들도 무서워합니다. 마침내 이 칼 때문에 온 동네 사람들로부터 추방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 부족들은 칼을 든 여인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변화는 늘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때로는 급격한 변화는 우리의 삶을 붕괴시키고, 가족을 붕괴시키고 사회를 붕괴시키곤 합니다. 변화를 부정적으로 받아드리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드리는 비법이 있습니다. 

셋째로 결코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붙들고 있으면 됩니다. 변하는 세상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여기에 나오신 분들은 모두 이 변하지 않는 것을 붙들고 있기에 여기 나오셔서 예배를 드리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면서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They were dependent on God). 하나님은 만나를 그들에게 매일 아침 신선하게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약속의 땅에 도착해서 농사를 지은 소산물을 먹게 되자 만나가 그쳤습니다. 아마 두려웠을 것입니다. 어떻게 먹고 사나? 이제 누구를 의지하며 사나? 새로운 시대에 접어드는 출애굽 백성들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 계셨었습니다.

이번에 어머님 생신 때문에 시골에 내려갔다가 죽마고우의 모친을 40여년 만에 뵈었습니다. 대대로 농사만 짓던 가문이었습니다. 20여 년 전에 대대로 농사짓던 땅을 정부가 수용을 하여 연구도시를 세우게 되었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는 것입니다. 생명줄과도 같은 농토를 다 내놓고 도시로 이사를 오니 큰 걱정이 앞섰답니다. “이제 뭘 먹고 사나?” 농사밖에 모르던 분들이 여간 걱정이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 말씀이 “그래도 굶지 않고 지금까지 살고 있어. 하나님 감사하지 뭐!” 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변하는 것을 보면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거기에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God is still with us).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God is still with you). 3000년 전 출애굽 광야에서 헤매던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던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과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세상이 급하게 변해가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때로는 두렵고 떨립니다. 불안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지금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노인양반들을 모시고 훌로리다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월드를 갔습니다. 효도관광차 모시고 갔습니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는데 별천지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입을 다물지 않으신 채 신기해 하셨습니다. 고속철도를 탔습니다. 아래위로 굴곡이 심한 레일 위를 고속으로 질주하다가 아래로 내려오는 놀이 기구인데 정상에 이르렀을 때 훌로리다 온 천지가 다 보이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전속력으로 내려 올 때는 사방이 쏜살같이 뒤로 사라지면서 장관을 이룹니다. 할머니들이 먼저 타셨습니다. 기암을 지르며 무서워하셨습니다. 내려온 다음에 전경이 어떻더냐고 물었더니 “하나도 못 봤어요. 무서워서 눈감고 있었어요. 너무 손잡이를 꼭 잡았더니 손이 쥐가 난다”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못 본 채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급속히 지나가는 그 아름다운 것들을 보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 할머니들을 안심시켰던 것은 손잡이였습니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꼭 잡았는지 손가락이 쥐가 날 정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견고한 손잡이가 있었으니 탈 용기도 생겼고 그것을 붙잡고 있었으니 심방마비도 안 걸리고 타고 내려왔습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다 변합니다. 사람도 변하고, 제도도 변하고, 정치도 변하고, 친구도 변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 변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있으면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뉴 햄프셔(New Hampshire)에 가면 명물하나가 있습니다. The Old man of the Mountain이라는 바위입니다. 천연바위인데 노인의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200년 전에 나다니엘 호돈(Nathaniel Hawthorne)이라는 작가가 “The Great Stone Face”(위대한 바위 얼굴)이라는 글을 써서 더 유명해진 바위입니다. 뉴햄프셔 주는 자동차 번호판의 배경 그림으로 이 바위를 그려 넣어서 주의 엠블럼으로 삼을 정도였습니다. 아마 수천 년 내려온 바위일 것입니다. 그런데 2003년 5월1일과 2일 사이에 무거운 안개가 끼어있던 날인데 700톤이 넘는 이 바위가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진 것입니다. 주민인 Steven Heath라는 사람은 그 바위는 자기들의 삶의 일부분으로 영원히 서있는 것이었는데 그 바위가 떨어지다니 믿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바위가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가족이 죽는 것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셨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답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히 서있을 것 같은 바위도 때가 되면 떨어집니다. 그러나 영원한 반석 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예수님이십니다(Jesus Christ, the same yesterday today and forever).

성경 안에는 약 7000여개의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 7000개의 약속들은 우리가 처한 어떤 상황이라도 다 적용되고도 남는 약속들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몇 번의 위기를 만나게 됩니까? 몇 가지의 상황에 접하게 될까요? 다 합해도 7000번은 넘지 않는답니다. 어떤 위기를 만나도, 어떤 상황에 처해 있어도 하나님은 거기 계십니다.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약속을 들고 거기 계십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 을 채우시리라”(빌 4:19)

지금 우리는 급변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이 전환기입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할수록 변하지 않고 굳건히 잡고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어도 하나님은 거기 계십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마28:20)

출애굽 광야에서 만나를 주시고 바위에서 샘물을 솟아나게 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 지금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쓸 것을 채워주십니다(God is still with you. God will supply our needs as surely as God supplied their needs). 믿읍시다. 발견합시다. 그리고 만납시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God is still with you and me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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