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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나의 첫 표적 (요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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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의 첫 표적 (요 2:1~11)


현대인들은 기적이라는 단어를 쉽게 소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문명의 발달이 우리에게 기적이라는 단어를 생소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상 문명의 발달은 역으로 인간에게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를 안겨 주었습니다.우리 주변에는 도저히 해결하기 어려운 국가간의 문제,환경 문제,인종 문제와 같은 골칫거리들이 산재해 있습니다.우리는 이와 같은 난관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과 한계를 절감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기적을 필요로 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만약 당신이 기적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면,그것은 아마 당신에게 문제 의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특별히 영적인 문제에 둔감하다면 그 결과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성령이 우리 마음에 역사할 때 제일 먼저 깨닫는 것은 영적 위기에 대한 자각입니다.내 삶이 절망과 가난함에 허덕이고 있음과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십니다.

아직 이런 성령의 깨우침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기적을 바라지 않습니다.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역사하실 때 비로소 기적을 요청합니다.그러나 주님의 기적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기적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의 특성은 세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위한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선전하는데 기적을 이용하지 않으셨습니다.오히려 기적을 행하시고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마8:4/9:30).물로 포도주를 만드실때도 잔칫집 주인에게 통보하지 않으셨습니다.심부름을 한 하인들 말고는 아무도 이 기적을 알지 못했습니다.요란한 선전문구와 함께 공연되는 오늘날의 마술과 비교할 때 예수님의 기적은 그 근본에서부터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께서는 가장 필요한 상황에서만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기적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을 합니다.그리스도인은 이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음을 알 것입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기적은 어느때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어머니 마리아에게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4절)

예수께서는 원하시면 언제라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말 필요할 때 기적을 행하기 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기적이 없어서는 안 될 가장 필요한 순간에만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셋째로 예수께서는 기적을 통해 영적인 교훈을 주실 수 있을 때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주님의 기적은 ‘기적’(miracle)이 아니라 ‘표적(sign)입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표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표적이 가리키는 최종 목적이 더 중요합니다. 도로 표지판이 길 안내를 잘하고 있음을 보고 기뻐서 그 자리에 서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도로 표지판을 따라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목적지를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딛는 것이 정상인의 행동입니다. 마찬가지로 표적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병든자가 고침받는 그 자체에만 놀랍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에 기록된 기적들은 표적들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멧세지가 더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20장 30,31절을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에서 사도 요한은 표적의 목적을 두가지로 밝혓습니다. 
   
첫째,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영원한 생명을 얻게하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표적의 대부분은 육체와 관련된 것입니다. 병든자를 고친다든지 배고픈 군중들을 먹인다든지 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해야 할 것은 육체의 필요를 채워 주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예수께서 그보다 더 중요한 인간의 영적인 필요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이점이 표적을 행하시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사이에 오간 대화는 물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대화의 결론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4절)는 말씀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의 오병이어 기적도 예수께서 배고픈 군중을 먹이신 것이 초점이 아니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35절)라는 말씀에 표적의 핵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인류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표적에 담긴 메시지들은 바로 인류를 구원할 열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표적들을 세가지 질문을 통하여 그 내용을 이해할 수가 있는데 첫째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둘째는 무엇이 문제입니까? 셋째는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해야합니까? 입니다.오늘은 세가지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가나에서 베푸신 기적의 의미와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화학 변화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대답은 단 한 가지입니다. 예수께서 창조주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신 분이므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를 만드신 분이므로 우리를 고칠 수 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미국 디트로이트에 사는 자동차 정비공 한사람이 자기 차를 몰고 출근을 하다가 차가 고장이 나서 길에서 수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쩔쩔매면서 고생하고 있는데 어떤 노신사가 차를 멈추더니 도와주겠다고 자청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노인을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자동차 뚜껑을 열고 몇 군데 만지더니 시동을 걸어 보라고 했습니다. 차가 움직여서 깜짝 놀라 쳐다보니 그 노신사는 명함 한 장을 주고 사라졌습니다. 명함에는 헨리 포드라고 씌여 있었습니다. 바로 그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을 만드신 분이 우리를 고치사 새롭게 하십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가나의 혼인 잔치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신 다음 꼭 사흘 뒤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빌립, 안드레, 나다나엘, 베드로가 예수를 좇았는데 (요1:40-45), 그들 마음 속에는 많은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인생을 걸고 예수를 따라 나섰는데 과연 그 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의심이 갔을 것입니다.
   
마침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혼인 잔치에 가셔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결과는 11절 말씀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가나에서 행한 기적은 제자들을 위한 기적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기적을 보면서 예수께서 우리도 변화시킬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되심을 믿게 합니다.

둘째로 무엇이 문제입니까?
   
혼인 잔칫집에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잔치에 가장 중요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물이 대단히 귀하기 때문에 물대신 포도주가 가장 흔한 음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잔칫상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점입니다. 
그들에게는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 순간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마리아는 문제를 알았습니다. 뿐만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방법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단순히 자신의 아들이 아닌 능력을 가진 존재임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을 예수께 알렸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인간에게 모자람이 없었다면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신(神)으로 착각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에 부딫칠 때마다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부족함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찾게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를 도우실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그분을 신뢰하게 만든다면 우리의 약함이 도리어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너무 건강하고 똑똑하고 부유해서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느낀다면 그러한 요소들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반대로 병약하고 생활이 어려워 하나님을 갈급하게 찾는다면 그런 생활의 악조건이 복된 역할을 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문제들은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게 만드는 전환점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문제 해결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에 해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9절)
   
하인들은 어리둥절한 상태였지만 아마도 마리아의 권고를 따라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한 듯합니다.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지만, 시키는 대로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자들도 하인들도 이 기적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이뢰었을 뿐입니다. 그때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그분이주시는 교훈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났을 때 잔칫집 주인과 손님들은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기쁨은 주님이 어떤분인가를 알게 된데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는 기쁨은 그 무엇에 비길 수 없는 기쁨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표적을 통하여 진정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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