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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갈증을 해결하려면! (요 4: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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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갈증을 해결하려면! (요 4:13~26)


요3장은 예수님이 유명하고 고상한 사람 니고데모와 나눈 대화이다. 예수님은 거듭남의 비밀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요4장에는 예수님이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나누셨다. 물을 길러 온 여인에게 영원한 생수에 대해 말씀에 주셨다. 
두 사람은 신분의 차이가 크다. 니고데모는 최고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사마리아 여인은 가장 실패한 사람이다. 니고데모는 영혼의 갈증을 가진 사람이다. 자기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이다. 예수님은 그런 니고데모를 만나 주셨다. 
사마리아 여인은 진리에 무관심한 사람이다. 인생의 갈증을 느끼면서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먼저 찾아가서 만나 주신 사람이다. 
예수님은 두 사람 다 눈높이를 맞춰서 만나주신다. 둘 다 예수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사실은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이 필요하다.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든, 못 느끼는 사람이든...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주신 예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시길 바란다. 

예수님이 속히 유대를 떠나기로 하셨다.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기로 결심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던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왔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이 마음이 상하지 않게 하시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속히 유대를 떠나신다. 상처를 주지 않고 배려해 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이다. 

세례 요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요한의 제자들이 불평을 했다. 선생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다 예수님에게로 몰려간다고. 그러자 요한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람이다.’ 세례 요한은 자기 신분 정확하게 인식하는 사람이었다. 자기 신분에 맞는 사명 감당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이렇게 말했다. 요3:29-30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뼛속까지 예수님을 생각하는 충성스런 종의 고백이다. 

예수님도 세례 요한을 깊이 배려하신 것이다. 정말 멋진 주님, 멋진 종의 모습이다. 
인간적으로 30살 청년 예수, 동갑나기 청년 선지자의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리 안에 이런 아름다운 믿음의 관계들이 세워지길 간절히 원한다. 

일부러 사마리아로 찾아가시는 예수님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이 유대, 사마리아, 갈릴리 세 지역으로 되어 있었다.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지름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두 배나 먼 길인 요단강 동쪽 길로 다녔다. 앗수르 침략 후 북 이스라엘이 망하면서 인종적으로 혼혈, 종교적으로 혼혈이 되었다. 그 중심 지역이 사마리아이다. 그 이후 유대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천박한 사람들로 대했다. 지역 갈등. 인종 갈등. 종교 갈등이 아주 심했던 것이다. 9절에 보면 유대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아예 상종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사마리아를 지나 갈릴리고 가기로 하셨다. 
예수님은 인종차별, 지역차별 전혀 안하신다. 학력차별, 외모차별 생각도 안하신다. 
예수님이 안 하셨으니 예수 믿는 우리도 이런 건 전혀 하지 말아야 한다. 

사마리아 여인과 의도적인 대화. 
예수님이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에 도착하셨다. 동네밖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에 쉬셨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동네에 들어갔다. 12시쯤 되었는데, 사마리아의 한 여인이 우물가로 물을 길러 나왔다. 먹을 물이 필요한 사람이다. 목이 마른 사람이다. 
보통은 선선한 저녁 무렵에 물을 길러 나온다. 그런데 이 여인은 사람들이 없는 한 낮에 물을 길러 나온 것이다. 사람이 두려운 사람이다. 소외된 사람, 왕따 당하는 사람이다. 뭔가 인생의 갈증을 가진 사람이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인생갈증이 해결되어야 할 것을 아셨다. 

육신의 갈증을 해결할 물도 필요하다. 예수님도 목이 말라 이 여인에게 물을 부탁하셨다. 
*가뭄으로 물 부족이 심각하다. 강원도 지방에서는 물고기들이 수백만 마리씩 말라 죽어간다. 사람들도 마실 물이 없어 매우 고생을 하고 있다. 물 보내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육신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많다. 
취직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너무너무 고생한다. 정규직 취직 갈증은 더욱 더 크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먹고사는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몇 년씩 가족을 떠나 고생고생을 한다. 
탈북하는 새터민들을 먹고 살길을 찾아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온다. 

다 육신의 갈증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갈증을 해결하기가 쉽지가 않다. 
또한 사람은 육신의 목마름만 해결된다고 해서 인생의 갈증까지 해결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오늘도 사마리아 여인 같은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생수를 주시려고. 

인생의 갈증을 가진 사람들을 향하여 
물을 달라고 부탁하는 예수님을 보면서 여인이 매우 놀란다. 사람을 피하여 한 낮에 물을 길러 왔는데 거기서 남자를 만났다. 그것도 유대인 남자를 만났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혐오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런 유대인 남자가 자기에게 물을 달라고 한다. 

가만히 보면 예수님이 단지 물을 달라고 부탁하는 것만이 아니다. 물 한잔 얻어먹으면서 사마리아 여인의 인생의 갈증을 해결해 주신다. 전도를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에게서 전도자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부드러운 태도, 공손한 태도로 여인에게 부탁한다. 도움을 받을 사람처럼 정중하게 부탁한다. 

*국민일보에서 노숙자를 위한 쉼터 운영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88개 중에서 기독교 54곳(62.8%). 불교(9.3%). 천주교(5.8%). 기타 22%란다. 기독교가 정말 많이 봉사한다. 
그런데도 왜 기독교는 그렇게 비난을 받을까? 겸손하지 못한 것 같다. 예수님은 겸손하신데 왜 기독교인은 겸손하지 못하단 말인가? 
예수님이 그렇게 겸손하게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주신다. 친절하게 만나주신다. 
상처를 주지 않으시려고, 무안당하지 않게 하시려고 겸손하고 예의바르게 말씀하신다. 
감사하게도 예수님은 우리도 그렇게 만나주신다. 
그냥 물에서 영원한 생수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주시려고 하신다. 10절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영혼의 생수를 주시고 싶으신 것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알아듣지 못한다. 계속 우물 얘기를 한다. 예수님은 책망하지 않으신다. 계속 알아듣도록 말씀하신다. 13-14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인이 그런 생수를 달라고 말한다. 아직도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무엇이 인생의 갈증을 해결해 줄 생수인지를! 

인생의 갈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어야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의 인생의 갈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신다. 
사마리아 여인은 육신의 목마름만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인생의 갈증을 가지고 있다. 
이 여인은 전에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다. 이제는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다. 그런데 남편은 아니다. 여섯 번째 남자와 살아도 인생의 갈증이 해결되지 않는 여인이다. 어떻게 인생의 갈증을 해결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생수를 찾고는 있지만 그 생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여인의 인생의 근본적인 갈증을 다루어 주신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인이 깜짝 놀라 자기 문제를 회피한다.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문제를 알고 계셨다. 회피하는 여인의 문제를 직면하신다. 
우리의 문제를 다루시는 주님의 직면을 받아들이라! 회피하지 말라. 주님의 손에 내려 놓고 맡겨 드리라. 

인생의 갈증을 찾아 여섯 번째 남자를 찾은 여인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생의 갈증을 쾌락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명예, 권력에서 갈증을 해결하려고 한다. 
학생들은 시험 점수의 갈증에 허덕인다. 목회자는 교인 숫자의 갈증에 헐떡거린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외모의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지? 
인정, 칭찬의 갈증에 고민하는 사람도 많다. 

인생의 갈증은 영혼의 목마름이 해결되어야 한다.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지 못하면 육신의 갈증에 더 매달리게 된다. 인생의 갈증은 하나님과 만나야 해결된다. 하나님과 만나는 길은 예배이다.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는 길- 예배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고백한다. 19절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그리고 예배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관심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예배를 드리고 싶은 새로운 갈증이 생긴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은 영적 갈증이 생긴 것이다. 인생의 본질에 대한 갈증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인생의 본질적인 갈증을 해결하는 길은 하나님과 만나는 예배이다. 

사람들 속에는 본능적으로 예배하고 싶은 영혼의 갈증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누구에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신을 만들어 놓고 빌고 하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도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질문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누구에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이것이 중요하다.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어떤 예배를 원하시는 하는 것이다.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는 어떤 예배인가? 
23-24절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래서 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성령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영으로 찬양해야 한다. 영으로 기도해야 한다. 영으로 설교도 해야 한다. 성령의 감동으로 찬양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설교도 해야 한다. 성령의 감동으로 봉사도 해야 한다. 그냥 내 생각대도 감정대로 하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아니다.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진리이신 예수님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진리이신 말씀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성령과 말씀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야를 만나기를 사모했다.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여인을 만나주신다. 드디어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야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드디어 인생의 본질적인 갈증이 해결되었다. 영원한 생수를 마시게 되었다. 드디어 변화된 삶을 살기 시작했다. 

맺는 말 
예수님은 인생의 갈증을 해결해 주시려고 찾아오신다. 사마리아 여인같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영혼의 생수를 주신다. 영원한 생수를 주신다.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성령님을 마셔야 한다. 그 길이 예배이다. 
예배 때 마다 영원한 생수의 물을 마시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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