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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가 희망입니다 (마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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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희망입니다  (마 15:21~28)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벌써 3월 첫 주일입니다. 저만 그런지는 몰라도 어쩐지 금년에는 시간이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3월은 만물이 소생하고 새 학년이 시작되어 흔히 ‘희망의 계절’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어쩐지 아직 스산한 분위기입니다. 문득 이런 말이 생각납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어도 봄과 같지 않다”는 말이죠. 그도 그럴 것이 작년 말부터 몰아닥친 경제 위기가 점차 거세어지는 느낌입니다. 환율이 계속 상승하고, 기름 값도 오르고, 금값은 또 왜 그리 오르는지 요즘 금값이 금값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월급이 깎이고 취직도 안 되고 실업자가 늘어나고 ... 3월 위기설 운운 하는 루머도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치인들은 이전투구를 일삼고, 북한은 미사일을 쏘네 마네 하면서 으름장을 놓고 ... 온통 뒤숭숭한 이야기뿐입니다. 봄이 오는지 마는지 사람들의 마음이 얼음장처럼 녹을 줄을 모릅니다. 요즘 분위기를 살펴보면 ‘춘래불사춘’이란 말이 딱 알맞은 표현입니다. 

인생사는 게 늘 어렵지만 요즘 같은 때는 정말 사람들의 마음이 착 가라앉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진부한 것 같지만 희망을 이야기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실망하고 포기하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어려울수록 희망을 이야기하며 힘을 내야 합니다. 

어느 잡지에서 읽은 글입니다. 글쓴이가 지하철을 탔답니다. 그런데 문이 열리면서 한 아저씨가 큰 가방을 들도 들어옵니다. 물건을 파는 분이었습니다. 중간에 서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좋은 물건 하나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게 무엇일까요? 예~ 칫솔입니다. 이걸 뭐하려고 가지고 나왔을까요? 팔려고 나왔습니다. 하나에 200원 5개 묶음입니다. 얼마일까요? 예~ 천원입니다. 뒷면 돌려 보겠습니다. 영어로 써 있습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 무슨 뜻일까요? 수출했다는 겁니다. 수출이 잘 됐을까요? 망했습니다. 자, 그럼 여러분에게 하나씩 돌려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하나씩 돌리더니 이어서 말합니다. “여러분, 제가 몇 개나 팔 수 있을까요? 여러분, 궁금하시죠? 저도 궁금합니다. 잠시 후 알려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돌렸던 칫솔과 돈을 거둬들입니다. 그리고 또 말합니다. “자! 여러분, 4개 팔았습니다. 얼마 벌었을까요? 4천원 벌었습니다. 제가 실망했을까요? 예, 실망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기서 포기하겠습니까? 아니요. 다음 칸으로 갑니다!” 이렇게 말하고 유유히 다음 칸으로 가더랍니다. 웃음이 나왔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는 글입니다. 

그 아저씨가 신앙인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희망을 갖고 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아름답고 복된 것은 어려울수록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그럴 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나오는 여인이 그런 사람입니다. 절망 가운데 있었지만 기도함으로 희망을 만들었던 신앙인입니다. 이 여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기도하면 희망이 있음을 교훈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희망입니다!” 아무쪼록 이 시간 말씀을 통해 기도로 희망을 만들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가나안 여인이 처한 상황 : 절망의 벽 

본문에 보면 가나안 여인이 나오는데, 그 여인이 처한 상황은 한 마디로 절망이었습니다. 막막한 상황입니다. 불가능의 벽이 자기 앞에 버티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도저히 희망이 없는 상황입니다. 구체적으로 그 여인은 어떤 문제 앞에 있습니까? 22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자기 형편을 어떻게 설명했습니까? 자기 딸이 귀신들렸다는 겁니다. 그것도 흉악하게 ... 아마 이랬을 겁니다. 귀신이 들려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몸도 아프고, 때때로 발작도 하고 ...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희망이 없습니다. 절망 그 자체입니다.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얼마나 한심했을까? 얼마나 답답했을까? 우리가 아무리 상상해 봐도 그 여인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할 겁니다. 

대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모든 것을 포기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소리 질러 기도합니다. 이게 바로 그 여인이 찾은 희망의 돌파구입니다. 마치 가로막힌 암석을 파고 들어가는 굴착기처럼 절망을 뚫고 나아가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기도라고 하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문제가 가로막아도, 아무리 큰 벽에 부딪혀도 결코 절망할 수 없습니다.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62:5,8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오직 하나님만이 희망입니다. 그러므로 전능자 하나님께 수시로 나아가 마음을 쏟아놓고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피난처이십니다!

2.  가나안 여인이 만든 희망 : 큰 믿음의 기도 

가나안 여인은 자기 앞에 있는 불가능과 절망의 벽을 뚫고 나아가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녀의 기도는 절망에서 희망을 만드는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신 예수님께서 마침내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라고 칭찬하셨나요? 큰 믿음의 기도라는 겁니다. 본문 28절 보시죠.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여기 보면, “네 믿음이 크도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성경 원어 헬라어로 “메갈레 수 헤 피스티스”(megavlh sou hJ pivsti")입니다. ‘피스티스’(pivsti")는 ‘믿음’이란 뜻으로 여성 명사입니다. ‘메갈레’(megavlh)는 형용사로 ‘메가스’(μεγας)라는 단어의 여성형입니다. ‘피스티스’가 여성 명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단어는 ‘위대한’ ‘큰’(great) 이런 뜻입니다. 

이 단어에서 영어의 ‘메가’(mega-)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메가’는 무슨 뜻인가요? 10의 6승 즉 백만을 의미하는데, 엄청 크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엄청 크다는 겁니다. 메가톤급 믿음이란 겁니다. 

여러분, 믿음에 크기가 있나요? 그렇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이 크다, 적다 이런 표현들이 나옵니다. 믿음의 크기는 어떻게 측정될 수 있습니까? 어려운 시련이 닥쳐 올 때 알 수 있습니다. 시련이 큰데도 약해지지 않고 믿으면 큰 믿음입니다. 시련이 온다고 의심하고 낙심하고 포기하면 적은 믿음입니다. 

그러면 시련이 점점 커질 때 어떻게 하면 될까요? 믿음의 크기를 키우면 됩니다. 예를 들어 메가톤급 믿음으로 흔들릴 정도의 시련이 닥쳐오면, 기가톤급 믿음을 가지면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기가(giga-)는 10의 9승 즉 10억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매가보다 훨씬 더 큰 단위입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이제 새 학기가 되는데,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공부 잘 하는 아이와 못 하는 이이어 어디서 차이가 날까요?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태도가 중요합니다. 시험 보고 나면 두 부류로 나눠집니다. 한 부류는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고 투덜거립니다. 다른 한 부류는 조금 더 공부했으면 성적이 좋았을 텐데 하고 아쉬워합니다. 같은 시험 문제인데 태도가 다릅니다. 문제가 어려운 게 아니라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다 공부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의 환경이나 문제가 어려운 게 아니라 나의 믿음이 적은 겁니다. 

그러므로 자주 말씀드리지만, 잘 생각해 보면 문제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문제를 바라보는 나 자신의 믿음이 문제입니다. 그 문제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지면 문제는 이미 문제가 아닙니다. 

본문을 잘 보면,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얼마나 큰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딸을 위해 기도했을 때 예수님의 반응을 살펴보십시오! 23절~24절.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처음에 어떻게 하셨다고요? 한 마디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무반응입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그래도 여인은 더욱 소리 질러 기도합니다. 믿음의 기어를 올립니다. 속력을 내기 위해 자동차 기어 올리듯이 믿음을 더합니다.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전후 문맥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제자들이 귀찮아졌어요. 시끄러우니 보내라고 요청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예수님! 저 여자 한 푼 줘서 보내요!” 이런 투로 말한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입을 여시는데 뜬금없이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아주 냉정합니다. 이스라엘 사람 외에는 관심 없다는 겁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의 본심이 아니고, 그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고 단련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선교 전략 상 이스라엘을 먼저 챙기신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잘 보면 이방인들에게도 분명히 복음을 전하시고 구원해 주셨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속마음은 여인의 믿음의 크기를 달아보시고, 더 나아가 믿음을 키워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어쨌든 그 여인의 입장에서 보면 섭섭하기 짝이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결코 물러서지 않습니다. 25절.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여기서 ‘절하며’ 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헬라어 동사에는 크게 두 가지 시제가 있습니다. 완료 시제와 미완료 시제입니다. 완료시제는 1회로 종료된 행동을 묘사합니다. 반면 미완료시제는 지속적인 상태나 반복되는 행동을 묘사합니다. ‘절하며’라는 단어가 바로 미완료 시제로 표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여인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매달려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26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 하니라” 이번에는 아예 모욕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물론 여기서 ‘개’라는 단어는 들개가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래도 개는 개죠.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을 개나 돼지로 취급했습니다. 왜곡된 선민의식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선민 이스라엘을 놔두고 이방인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모욕적인 언사입니다. 물론 이 말씀도 이스라엘의 왜곡된 선민의식을 비판하면서 여인의 믿음을 연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또 어떻게 응수합니까? 마치 장군 멍군 하는 식으로 응수하죠. 이 정도로 말씀하시면 시험에 들어 버릴 텐데 그녀는 달랐습니다. 27절 보세요!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여인은 개라고 해도 좋다며 사정합니다.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는 법이니 부스러기 은혜라도 베풀어 달라는 겁니다. 정말 대단한 믿음의 기도입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큰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28절. “ ...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 ” 원문을 보면 “여자야!” 라는 “오!”(Ω)라는 감탄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감동을 받으신 겁니다. 바로 그 때 그 딸이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즉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절말 놀라운 믿음입니다. 시련이 커도, 방해가 있어도, 모욕을 당해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 믿음을 키우는 모습입니다. 이와 같이 큰 믿음으로 기도하니까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기도할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 이런 기도를 가리켜 뭐라고 하죠? 강청기도(强請祈禱)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눅18:1~8에 나오는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입니다. 어떤 도시에 가난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억울한 일이 있어서 재판장에게 호소합니다. 그런데 그 재판장은 사악한 자였습니다. 사람 차별을 합니다. 그 여인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아가서 졸다대니까 결국 어떻게 합니까? 귀찮아서라도 들어줍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들면서 눅18:1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눅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그리고 비유를 마치시면서 이렇게 교훈하십니다. 눅18:7~8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믿음이 큰 자가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만큼 큰 믿음의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런 믿음으로 강천하는 기도를 가리켜 일명 ‘진드기 기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큰 믿음의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로 응답하십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생깁니다. 사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사막에 강이 생기는 것처럼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또 렘33:2~3을 보면 유명한 말씀이 있죠.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전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을 하나님이 만들어내십니다. 원더플! 이렇게 감탄할 만한 일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앞에 높은 장벽이 버티고 있습니까? 그래서 눈앞이 캄캄합니까? 

그럴 때 믿음을 키우세요! 낙심하지 말고 큰 믿음으로 기도하세요! 복음송 가운데 이런 노래가 있죠.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 마지막 후렴을 보면 어떻게 되어 있죠?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니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세요”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큰 믿음의 기도로 불가능의 벽을 뚫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우리가 만들어야 할 희망 : 나, 가족, 이웃, 나라를 위한 기도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떤 기도로 희망을 만들어가야 할까요? 나 자신을 위한 기도, 가족과 이웃을 위한 기도, 더 나아가 나라를 위한 기도로 우리 앞에 있는 절망을 하나하나 희망으로 바꾸어가야 합니다.

① 나를 위한 기도 :

첫째로, 나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 성경을 보면 대표적으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 수 있습니다.(왕하20:1~11) 그는 중년에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죽음 앞에 괴롭지만, 아직 아들도 없고 나라도 위태롭습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그는 벽을 향해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심정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15년간 수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심지어 그 증표로 해시계 그림자가 뒤로 10도 물러갔습니다. 태양이 뒤로 갔다는 겁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옛날 미국에 목재회사 직원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출근해 보니 책상에 해고 통지서가 놓여 있었습니다. 황당하고, 배신감으로 분노가 끓어올랐습니다. 그는 자포자기했고, 끝내 가출합니다. 한참 방황 끝에 귀가했지만 여전히 괴로웠습니다. 아내에게 대못을 박는 말을 합니다. “여보, 죽고 싶소! 하는 일마다 하나도 되지 않고 ... ” 그러자 아내가 눈물로 호소합니다. “여보! 한 가지 안 해 봤잖아요! 기도요!” 그 순간 그 말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는 감동을 받고, 아내와 함께 회개하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러자 분노와 복수심이 녹고, 의욕이 생겼습니다. 집을 담보로 융자를 얻어 사업을 시작합니다. 5년 만에 작은 건축회사를 갖게 됩니다. 그러던 중 한번은 가족들과 여행하다 고급 호텔은 너무 비싸고, 저렴한 호텔은 분위기가 안 좋아서 불편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적절한 가격대에 좋은 호텔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렇게 시작된 호텔 사업이 하나님의 은혜로 날로 번창합니다. 미국 전역에,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체인을 갖게 됩니다. 유명한 할러데이 인(Holiday Inn)의 창업자 케몬스 윌슨의 이야기입니다. 

② 가족과 이웃을 위한 기도 : 

두 번째는, 가족과 이웃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는 한나의 기도입니다.(삼상1:9~20) 그녀는 자식이 없어 괄시 천대 받았습니다. 날마다가정 불화로 괴로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결국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아들을 얻었죠. 사무엘입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H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두 아들이 있는데, 나란히 음대를 보냈습니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음대에 보내려면 돈이 꽤나 들 텐데 어떻게 하셨나 ... ? 어느 날 심방 중에 조심스럽게 여쭈었습니다. 그리고 궁금증 풀렸습니다. 직접화법으로 소개해 드리죠. “제가 교수님 찾아가서 이렇게 사정했어요. 저 과부라서 돈이 없어요. 그런데 이 아이가 몹시 음악 공부를 하고 싶어 합니다. 레슨비 조금밖에 못 드리지만 꼭 가르쳐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했죠.” 사람에게 강청하고 하나님께 강청 기도하고 그게 바로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OMF 선교회에 내려오는 유명한 간증입니다. 어느 선교사가 선교비를 들고 역으로 가는데, 강도떼가 그를 에워쌌습니다. 너무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강도들이 돌아서더니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갑니다. 사방을 살펴봐도 영문을 몰랐습니다. 그 후 강도 중 하나가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일을 알고 선교사가 왜 돈을 강탈해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회개한 강도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군인들이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혼비백산 도망한 겁니다."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는 선교사는 더욱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파송교회에 가서 간증을 했을 때 모든 의문이 풀렸습니다. 바로 그 시각에 기도후원 그룹이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는데, 강도들이 본 군인의 숫자가 기도후원자들의 수와 일치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남을 위한 중보기도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③ 나라를 위한 기도 :

세 번째, 나라를 위한 기도입니다. 나라가 잘 돼야 개인도 잘 됩니다. 그러므로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요즘 같은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는 에스더의 기도입니다.(에4:1~17) 바사 왕국(바벨론 후신)에 포로 되어 있던 유대인들이 간신 하만의 흉계로 학살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그 때 모르드개가 에스더 왕비에게 통지하여 왕에게 나아가 해결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당시 왕실의 규칙으로 왕비라 하더라도 왕이 부리지 않으면 스스로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만일 이 규칙을 어길 시 잘못하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벌써 한 달 넘게 부르지 않았으니 왕의 심사가 어떤지 알 수 없었습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결단합니다. 기도하고 나아갔고 결국 승리합니다. 

종교개혁 시대에 스코틀랜드 장로교 창시자 존 낙스의 말입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 그는 핍박자 메리 여왕도 벌벌 떨게 했던 기도의 사람입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는 이렇게 강력한 것입니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절망할 일들만 보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기도가 희망입니다! 롬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시126:5~6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부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로 희망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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