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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요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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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요 13:38) 
 
 
오늘은 3.1운동 90주년기념일입니다.  3.1 운동은 일본제국에게 우리 민족이 국권을 강탈당한지 9년 만에 자주독립, 공화주의, 비폭력의 기치를 내걸고 태극기 하나 달랑 들고 맨주먹으로 일어선 세계사에 길이 남을 민족 독립운동입니다. 3.1운동 때 일제는 수원 제암리에서 교회에 불을 질러 20여명을 죽이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고 그리고 수많은 곳에서 수 많은 목숨을 빼앗아 갔습니다. 3.1운동을 일으키셨던 선열들에게는 민족과 국가의 자주독립이 목숨만큼이나 소중했습니다. 아니 목숨보다 더 소중한 가치였습니다. 그래서 민족의 독립을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유로 생각했습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는 한 목숨 아낌없이 바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3.1운동에 참여 했던 사람들은 다 그런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장난 삼아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서 자기 자신의 목숨을 조금도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그분들의 희생을 통하여 오늘 우리가 이 만큼이나마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하고 자신에게 진지하게 질문해보신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혹시 누군가로부터 "당신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하고 질문을 받아보신 적이 있으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질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간단 명료하게 대답이 되던가요? "목사님! 먹고 살기도 바쁜데 그런 질문을 왜 해야하지요? 골치 아프게"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골치만 아프지 않게 살아가면 돼는 것이 인생이면 그냥 살아가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단지 생존을 위한 그냥 살아 있으니까 살아가야 하는 그런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이 질문에 신실하게 답을 해야 합니다. "당신이 살아가는 궁극적 이유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그리스도인은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위해서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소중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하는 이 질문에 바로, 즉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이유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말고는 다른 답이 있어서는 안되는 줄로 믿습니다. 
왜 그렇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고난 당하시고 죽으셨습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보혈이 율법으로 인하여 죄인에게 선포하는 정죄의 판결과 영원한 죽음의 형벌에서 자유를 얻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고후 5:21에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하신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저주를 대신 담당하여 완전히 청산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으로 오셨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으니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며 한없이 감사한 일입니다. 또 한 가지 놀랍고 감사한 것은 죽음에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주님께서 지금도 성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여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8장 34절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하였습니다. 

본문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는 질문으로 베드로에게 도전을 주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고 질문하고 계십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할지 모르겠습니다. "막상 닥쳐보기 전에는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나 그때가서 어떻게 되든 지금 주님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를 이 시간 결정해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질문하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질문하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사실 예수님께서 묻기도 전에 대답한 사람입니다. 37절에서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정색을 하시면 이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경솔함과 준비 없이 용기 있는 체하는 것에 경종을 울리시고 차근차근 그때를 위해서 준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비로소 이 질문을 신중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 생명을 필요로 하실 때 드릴 수 있도록 예수가 내 생명보다 더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린 많은 신자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은 사도행전 7장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바울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그는 자신이 로마 정부의 손에 곧 죽을 것을 가리켜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딤후4:6)라고 묘사했고 그렇게 순교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도 한결같이 순교했습니다. 히 11:37절에 보면 돌에 맞아 죽거나 톱에 켜져 죽거나 칼에 죽은 이름 모를 영웅들에 대해서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교회사는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신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합니다. 
AD. 117년경 교회 지도자인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콜로세움에서 잔인한 짐승들에게 먹히기 위해 로마로 압송되고 있었습니다. 그는 행렬이 쉴 때마다 여러 교회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그 편지 가운데 하나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순전한 떡이 되기 위해 맹수의 이빨에 갈리는 하나님의 고기"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그나티우스는 황제의 조롱과 군중의 멸시를 겪은 후에 사자들과 마주 섰습니다. 그는 자기 팔을 사자의 입에 밀어 넣었으며, 자신의 뼈가 으스러지자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이제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시작했다!" 

로마의 마지막 박해 가운데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죽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겠습니까? 우리에게도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지킬 만한 그런 믿음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고 이 시간 묻고 계십니다. 아멘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막 10:29~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 약속하셨습니다. 
누가 주님과 및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이런 것들을 버릴 수 있습니까?주와 복음에서 내 생명도 내 재산도 내 지혜도 모든 것을 던질만한 가치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주와 복음에서 생명을 던질만한 가치를 발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선교의 역사의 순교의 역사입니다. 
민주주의도 그렇고 자주독립도 그렇고 누군가가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고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사랑하고 가꾸고 지켰기 때문에 주어진 것입니다. 

행20:24 바울사도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궁극적 이유가 무엇일까?" "누구를 위하여 천하보다 더 귀한 내 생명을 조금도 소중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버릴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조금도 망서림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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