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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세와 하나님과의 만남 (출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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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하나님과의 만남 (출 3:1~12)

    
설교내용       
모세가 이드로의 양 떼를 돌보고 있던 때 서쪽으로 양 떼를 몰고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산인 호렙 산에 이르렀습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모세야, 모세야!” 부르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더 가까이 오지 마라. 네 신발을 벗어라. 너는 지금 거룩한 땅 위에 서 있느니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통 당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또 이집트의 노예 감독들이 내 백성을 때릴 때에 그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들을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구해 주려고 내려왔다. 나는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해 내고 그들을 넓고도 좋은 땅으로 인도하여 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너를 파라오에게 보내려 하니, 가거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어라!”

성지순례 길에 시내산에 가면 캐더린 수도원안에 이드로의 우물이라는 곳과 그 옆에 떨기나무가 있습니다. 그 떨기나무가 모세 때 있었던 것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이런 떨기나무 있는 곳에서 만나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지구상에는 65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나라 인구 4700만명 중에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오늘 우리가 하나님은 만난 것이 축복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먼저 하나님은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성지 순례를 갑니다. 성경의 장소들을 찾아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만남입니다. 성지 순례를 수천 번을 한다 해도 하나님은 만나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성지에 가면 가이드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이드를 해서 성지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성지에 대하여 잘 안다 해도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다면 그 인생에게서 이루어질 무한한 가능성을 그는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성지 박사라 해도 하나님을 만나 적이 없는 사람은 아는 것 같지만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난 자리가 있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가시나무 떨기 옆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만났고 야곱은 벧엘에서 만났습니다. 요셉은 꿈속에서 만났고 다윗은 들판에서 만났고 저는 시골 조그마한 교회한쪽 구석에서 만났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난 자리는 어디입니까?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리로 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곳이 소명의 자리요, 축복의 자리요, 

사명의 자리요. 치유의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곳이든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은 아무데서나 만날 수가 없습니다. 만나는 장소가 따로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아무데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간절히 사모 하는 자를 하나님은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칼타코의 성녀 마더 테레사 수녀가 다르질링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앉아서 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삼류기차라 사람들은 바글바글 대고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술 마시고 취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온통 시장 바닥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럼에도 테레사는 조용히 묵상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세미하게 들려옵니다. 

테레사야! 여기에서 5마일만 가면 50만명의 거지들이 길거리에서 나서 길거리에서 살다가 길거리에서 죽고 있다. 너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살아 있을 때에는 잠자리를 주고, 죽으면 무덤을 주거라. 테레사는 조용히 수도원을 떠날 준비를 하였습니다. 1948년 8월 8일 그는 로레토 수녀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등에 나무로 조그만 십자가를 달아 놓은 수녀 복입니다. 그는 십자가를 지고 수도원을 떠나면서 일기를 남겼습니다.

주님! 나는 오늘 밤 어디에서 잘 지 모르고 떠납니다. 주님! 나는 내일 아침 무엇을 먹을지 모르고 떠납니다. 주님이 떠나라고 하셔서 떠나니 지금부터 내 일생을 주님이 책임져 주시옵소서! 그리고 칼타코로 들어가 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기차 안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자리가 차안이 될 수도 있고 안방일수도 있고 교회 안일 수도 있고 그곳이 여러분의 기도 자리라면 어디이든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데나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주 비싼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놓고 아주 비싸게 받는 고급 음식점이 있었습니다. 싱싱한 연어 회를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 먹을 만큼만 가지고 가십시오.” 조금 떨어진 곳에 더 비싼 요리 랍스터 요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누가 장난으로 그 옆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마음껏 가지고 가십시오. 하나님은 연어를 지키시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하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과의 만남이 깊이 이루어지려면 신을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깊어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지 않는 이유는 신발을 벗지 않기 때문입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벗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을 벗으라고 하는 말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신을 신고 있다는 말은 갈 곳이 있다는 말입니다. 방향이 있습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을 벗는 것은 일의 끝남입니다. 이제는 쉬는 것입니다. 다 잊어야 합니다. 하던 모든 것을 다 잊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친구에게 말합니다. 나 요즈음에 힘들어. 그러면 친구는 “신발 벗고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은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자기가 하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에게 물어 본적도 없습니다. 제 고집대로 살았습니다. 제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는 살인을 하고 도망치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합니다. 이제 큰일을 그에게 맡기는데 제 멋대로 하면 안 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생각으로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버려야 하나님과 가까워 질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고집, 지금까지의 가치관 다 벗어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요구 하는 것입니다. 

이력서란 말이 있습니다. 밟을 이(履) 신발바닥 력(歷) - 자기 신발이 걸어온 경로란 말입니다. “네 발에 신을 벗어라” 땅의 이력서를 내려놓고 하늘의 이력서를 쓰기 시작하라는 뜻이지요. 천국은 땅의 이력서 가지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늘의 이력서가 있어야 합니다. 천국은 땅의 신발을 벗은 자들만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신발을 벗는 곳입니다. 신발을 벗은 자가 교회의 일꾼입니다. 

신발을 벗으세요 이제는 편안하게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아버지 집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쉼을 얻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자랑도 내려놓고, 실패도 내려놓고 이력서 내려놓고 하나님의 자녀로만 서십시오. 은퇴가 영어로 retire, 이 말은 re - 다시, tire - 타이어를 갈아 끼운다. 는 말이지요 세상을 달리던 타이어를 내려놓고 이제는 하늘가는 타이어로 바꿔 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마음껏 쓰임 받으시기 비랍니다. 

3 하나님과 만남이 깊어지려면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그런데 모세가 거절을 합니다. 5 번이나 거절을 하지요. 사실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안다면 거절 할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주의 일을 하는 자격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직분 받은 것이 자격이 있어서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죄송합니다. 거절 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가 거절을 합니다. 나는 힘이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도 모릅니다. 그들이 내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말을 잘 못합니다. 보낼 만 한자를 보내소서입니다. 자기를 아는 것은 중요 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쓰고자 하는 분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모세를 쓰고자 하시는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자기만 보았지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겸손은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이 자기비하가 되면 비굴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자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비굴해지는 것은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화를 내십니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능치 못 할 일이 없습니다. 나 같은 것이 부름 받고 쓰임 받는다. 깨달으면 행복할 것입니다.

평생을 한번도 쓰임 받지 못하고 마치는 그릇도 있습니다. 여러분 집에 있을 것입니다. 매일 쓰이는 그릇도 있고 어쩌다 쓰이는 그릇도 있고 보물처럼 잘 싸여져서 보관만 되어 있다가 유행이 지나고 별 쓸 일이 없어서 버려지는 그릇도 있습니다. 아무리 화려 하면 무엇 합니까? 그릇은 쓰여 져야 합니다. 저 어려서 할아버지가 밥을 잡수시던 은수저가 있었습니다. 수저가 얼마나 사용했는지 닯고 달았습니다. 어린마음에 그 수저가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그 수저만 보면 할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그릇이 쓰여 져야 귀하듯이 하나님의 사람들도 쓰여 져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귀하게, 귀하게 쓰여 지기를 바랍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오랜 만에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모세야! 홍해를 지금도 가를 수 있니? 한번 해보겠습니다. 모세가 기도하고 지팡이를 홍해에 내밀었습니다. 역시 갈라졌습니다. <지금도 그 때 영력이 그대로 있구나! 놀랍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물으셨습니다. <엘리야아! 지금도 갈멜산 기적처럼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할 수 있니?> <해보겠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하고 손을 하늘을 향하여 쳐들었습니다. 불이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칭찬하셨습니다. <놀랍다.> 그 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지금도 물위로 걸으실 수 있으세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한번 해보겠다. 그리고 물위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런데 물속으로 빠져 버렸습니다. 예수님! 어쩐 일이십니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못자국으로 구멍이 나서 물이 샜다”. 이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헌신한 증거다. 못자국은 쓰임 받은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깊이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신발을 벗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부름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 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귀한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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