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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칭찬의 능력 (눅 6:23, 고전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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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의 능력 (눅 6:23, 고전 11:22)


[누가복음  6: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If you love those who love you, what credit is that to you? Even sinners love those who love them.)

[고린도전서  11: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I praise you for remembering me in everything and for holding to the teachings, just as I passed them on to you.)


저는 오늘 우리 자신과 영혼에 혁명을 일으키는 <언어 위력>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만 주어진 유일한 언어능력을 너무나 잘못사용하거나 남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잘못된 언어생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아픔이 생겨나는지 모릅니다. 지금 전 인류의 3분의 1이 매일 밤마다 배고픈 채로 잠자리에 든다고 하는데, 아마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칭찬의 말을 갈망하며 외롭고 상심한 상태에서 잠자리에 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사람들은 조금만 툭! 건드리면 팍! 화가 터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자동차 운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소한 일에도 얼마나 듣기 민망한 상소리가 쉽게 나오는지 모릅니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 분노와 한이 맺혀 있는 것 같고, 칭찬 받지 못한 것과 대우받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이 배여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칭찬하는 언어사용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실제적으로 우리의 칭찬 한 마디는 비판 열 마디보다 영혼과 공동체를 살리는 훨씬 더 큰 유익과 파워가 있습니다.

칭찬은 변화시키는 혁명을 일으키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메마른 땅에 푸른 새싹을 틔우듯, 마음속에 자신감과 행복을 느끼게 해 주고 등을 돌리고 있던 서로를 화해와 이해로 꼭 껴안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칭찬은 하면 할수록 더 좋은 성과를 이루게 하며, 때로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상대는 물론 나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칭찬! 사람에게 있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에너지인 셈입니다.> 

<비상하는 날개를 꺾어버릴 것인지, 아니면 훨훨 날개 할 것인지를 좌우하는 대인관계>에 언어의 사용이 좌우합니다.

<어떻게 하면 부드럽고 활기찬 조직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관계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그 변화에 영향력을 끼치는 힘은 바로 '칭찬'에 있습니다.>

"좋은 칭찬 한 마디에 두 달은 살 수 있다"는 명언이 있습니다. <칭찬은 사기와 용기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며, 상상하지도 못할 잠재능력을 끌어내는 강력한 에너지가 됩니다. >

미국에 사는 '웨스 킹슬리'라는 분은 회사의 중역으로 회사와 가정에서의 인간관계로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올랜도' 지역에 출장을 가 있는 동안 우연한 기회에 '씨월드 해양관'에서 범고래의 멋진 쇼를 보게 되었는데,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그 쇼에서 무게 3톤이 넘는 범고래들의 멋진 쇼를 보고 어떻게 범고래로 하여금 그렇게 멋진 쇼를 하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범고래 조련사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관중들이 다 빠져나갔는데 조련사가 주위를 거니는데 범고래가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그 때 조련사는 돌고래에게 이런 칭찬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잘했다. 샴” “휴식 시간을 마음껏 즐기렴. 넌 그럴 자격이 있어” 그런데도 고래는 계속 조련사를 따라다닙니다. '웨스 킹슬리'는 신기해서 조련사를 찾아가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고래들이 쇼를 할 수 있게 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조련사 '데이브 야들리'는 웨스에게 범고래와의 관계는 인간 사이의 관계와 다르지 않으며, 멋진 쇼를 하게 만드는 비결은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과 칭찬, 그리고 격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책에서 밝힌 내용에 의하면 '고래 반응(Whale Done response)'이라 불리는 범고래 훈련법은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위한 훈련법과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고래 반응’이란

① 범고래가 쇼를 멋지게 해냈을 때는 즉각적으로 칭찬하고 
② 실수를 했을 때는 질책하는 대신에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며 
③ <중간 중간에 계속해서 격려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합니다. 
그 후에 '웨스 킹슬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칭찬과 격려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조련사 '데이브'의 말을 듣고 교훈을 얻은 '웨스'는 격려하는 법을 잘 활용하여 가정에서는 두 아이와 아내로부터 사랑받는 가장이 되고, 직장에서는 보다 높은 성과를 올려 동료들과 부하직원들로부터 존경받는 상사가 되어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의 위력>에 대하여 소개하려고 합니다. 사람은 인격적인 존재이므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누구나 인간관계에서 긍정적 관심과 칭찬 그리고 격려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가정과 직장의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긍정적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칭찬과 격려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이웃이 농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심술로 대하거나 부정적 반응으로 행복한 인간관계를 만드는데 어색합니다. 

잘 살펴보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가정과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일을 잘하고 있을 때는 무관심하지만 잘못된 일이 생겼을 때만 흥분하고 질책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부정적 반응을 '뒤통수치기 반응'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실수를 저지를 때 뒤통수를 치듯 반응한다.>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뒤통수치기 반응'에 둘러싸인 환경에서는 결코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열정을 바치지도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1. 칭찬은 좋은 변화를 가져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한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간구하였습니다. 자기 수하에 있는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고쳐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했습니다. 그 때 백부장이 8-9절에 대답하기를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백부장의 이 소리를 듣고서 예수님께서는 그 큰 믿음을 놀랍게 여기면서 제자들과 많은 무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께서는 최고의 칭찬을 하셨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이만한 칭찬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백부장의 믿음의 모습이 아름다웠고 예수님도 놀랄 만큼 큰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이 좋다고 하는 우리들도 할 수만 있으면 모셔다가 안수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안수를 받지 않아도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면 치유가 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만약 우리나라 사람이 백부장이었다면 몇 사람이 들것에 들고 가서라도 안수를 받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주님께서 말씀만 해도 낫겠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너의 병이 치료되었다"고 선포하시는 주님의 말씀만 있으면 그대로 되어 진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좋은 믿음입니까? 그래서 칭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이 말씀을 선포하시자 '즉시 하인이 나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확인해 보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시간이 이미 종의 중풍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일반적으로 몇 가지 영향력을 줍니다. 예를 들어 칭찬은?

1) 자신감을 가져 줍니다.
2) 더욱 잘 성장하도록 격려가 됩니다.
3) 모든 일에 의욕을 만들어 줍니다. 
4) 삶의 방향을 새롭게 해줍니다. 
5) 우리 주변을 밝게 만들어 줍니다.
6) 마음이 따뜻하게 해줍니다. 
7) 마음이 넓어지게 해준다. 
8) 긍정적인 삶을 살게 해줍니다. 
9) 적극적인 삶을 살게 해줍니다. 
10) 인간관계를 잘 이루어가게 해줍니다.

성경에 보면 <칭찬>이란 단어를 직접 사용한 곳은 많지 않지만 칭찬한 내용들은 많습니다. 열왕기상3장에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린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천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소원을 아뢰라고 했습니다. 그때 솔로몬이 구한 것은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는데, 자신은 작은 아이와 같기 때문에 능력이 부족하여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이 많은 백성을 어떻게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자기에게 지혜를 주셔서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왕상3:10). 

이 때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두고 이렇게 칭찬을 하셨습니다. 왕상 3장 11-13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하나님도 역시 칭찬 받을 일을 했을 때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 서신서를 읽어보면 칭찬이라는 단어는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서신 서두에 보면 인사를 제일 먼저 한 후에는 반드시 서신을 받는 자들의 믿음이나 다양한 내용들을 통해서 칭찬하는 것이 역력히 보입니다. 

빌레몬서에 보면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면서 빌레몬의 아름다운 두가지를 들어서 칭찬하고 있습니다. 5절에 보면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이라고 했고, 7절에 보면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레몬이 신앙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못하고 고발해서 감옥에 보냈다고 꾸중하거나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믿음과 사랑을 칭찬하면서 성도들이 빌레몬을 통해서 위로와 평안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도 바울 자신에게도 많은 위로와 기쁨이 되었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모가 이 서신을 읽었을 때 얼마나 마음이 뿌듯하겠습니까? 그런데 무슨 일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이뿐만 아닙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쓴 것 가운데 두 번째 편지에 보면 디모데를 이렇게 칭찬하고 있습니다. 딤후 1:4-5절 말씀에

“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거짓이 없는 믿음이 디모데 너에게도 있음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너의 눈물로 기도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너를 보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있다고 칭찬>했습니다. 

이렇듯 성도는 항상 조은 믿음을 가진 자들과 사랑이 넘치는 성도들을 칭찬해야 합니다. 칭찬을 잘하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의 지름길입니다. 성공한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 이유가 있고, 실패한 인생은 반드시 실패할 만한 이유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공적인 인생, 아니 작은 자라 할지라도 보람된 인생을 사는 자들을 보면 모든 일에 남을 낫게 여기고 작은 것이라도 칭찬을 잘해주는 사람입니다. 

어떤 가정에 '진영'이라는 6살 여자아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의 엄마는 진영이가 임신 중이었을 때 자칫 잘못했다간 유산으로 세상도 못 볼 아이였는데, 어렵게 태어난 엄마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진영이가 아주 예쁜 행동, 기특한 말을 해서 가족들을 즐겁게 해주는 화목덩이가 되었습니다. 

한 번은 할머니가 양념갈비를 사 오셔서 저녁때 다 같이 앉아서 식사하는데 진영이가 양념갈비를 먹으면서 '맛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할머니 낼도 또 해줘! 우리 할머니 참 잘 하신다~!” 그러자 진영이 가족은 순간 웃음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가족 어느 누구도 듣기 좋은 말조차도 잘 안했었던 것 같고, 무뚝뚝하지 않았었나 싶었는데 진영이가 ‘할머니 참 잘하신다.’는 소리에 오히려 다른 어른 가족들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진영이 할머니가 다시 진영이에게 “진영아! 할매가 내일 또 해줄게요~~"라고 하였더니 "할매! 잘하신다. 또 해라~”고 하여 화목을 이루는 양염처럼 행복한 가정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 입니까? <어른이라 할지라도 아이로부터 듣는 칭찬은 결단코 싫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진영이가 할머니에 대한 칭찬을 하므로 주위를 밝게 해주고 따뜻하게 해주며, 관계를 더욱 증진시키더라는 이야기 입니다. 비록 가족관계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이런 예도 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골칫덩어리 아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런 녀석이 커서 뭐가 되겠느냐?”며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한 할머니가 이 골칫덩어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는 말을 잘하고 사람들을 끄는 재주가 있어. 이런 개성을 잘 살리면 크게 될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격려의 말 한마디가 그 아이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이는 진지하게 자신의 앞날에 대해 생각하고 소질을 계발했습니다. 이 소년이 커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도자가 된 20세기 말의 세계적인 부흥사였던 '빌리그레함 목사'입니다. 

칭찬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다 같이 따라합시다. "내가 칭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잘못을 찾아내어 책망하기 보다는 장점을 찾아내어 칭찬하는 삶이 되겠습니다."  '아~멘!'

2. 칭찬은 좋은 효과를 가져옵니다.

칭찬의 중요성에 대해 잠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잠 27:21). 

즉, 은이나 금 같은 광석은 뜨거운 불 속에서 불순물들이 연기나 증기와 함께 제거됩니다. 그래서 더 정제되고 높은 가치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칭찬을 통해서도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인색한 것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칭찬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처럼 완벽하지 못합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좋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싫어하거나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잘한다고 하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남을 높여주고 남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칭찬이 인색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를 보아도 칭찬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정치인들도 보면 남을 칭찬해 주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항상 남의 허물만 찾아내어 그것으로 사람을 매장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통령의 경우를 보아도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의 겨우, 즉,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언론에서도 보면 좋은 점을 칭찬해주기 보다는 잘못된 일이나 자기들의 기준에 미달되는 일을 하게 되면 온통 문제로 삼아 정책 전부가 잘못한 것으로 질책을 하는 언론으로 몰아갑니다.

예를 들어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계실 때 '시내버스 차선을 중앙 1차선으로 변경하여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버스이용객들이 더 편리하도록 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청계천 복원사업>을 시작했을 때 '온통 죽일 놈'으로 되었다가 실제적으로 몇 년이 지난 후에는 <이명박 시장이 잘한 것은 바로 시내버스 노선변경과 청계천 복구해 놓은 것이라고 칭찬하기 시작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정확히 모르면서 함부로 평가해서 칭찬하거나 질책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진 우리는 더욱 조심하고 항상 질책보다는 칭찬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을 향하여 '돌로 쳐죽이려고 했던 무리들에게' "죄없는 자가 돌로치라"고 했을 때 정죄한 사람들이 모두 다 도망하고 예수님과 여인만 남았을 때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고 함부로 정죄치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조심해야 할 것은 함부로 평가해서 죄인 만들거나 죄인취급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예수님이 그 여인을 칭찬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남을 칭찬할 때의 마음은 바로 이런 너그러운 마음, 관용하는 마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의 마음일 때 가능합니다.>

이런 예수님과 같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때 상대방에 대해서 쉽게 칭찬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상대방으로 부터 조금 부족해도 칭찬을 받으면 그것을 더 잘하게 되고 더 잘하려고 하다보면 그 일을 크게 이루게 됩니다.

반대로 잘하는 것도 작은 허점을 들추어내어서 못했다고 하거나 ‘왜 그렇게 했느냐? 그것 밖에 못 하느냐?’라고 책망하면 주눅이 들거나 더 못하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공부하는 자녀들에게도 칭찬이 필요합니다. 자꾸만 못한다고만 하면 정말 못하게 됩니다. 

물론 칭찬의 부작용도 있기에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고민이나 진실성 없이 함부로 내뱉는 추켜세우기 식의 칭찬은 아부가 되기 십상>입니다. <상대는 더 교만해져 자신이 다 된 것처럼 안하무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부작용을 크게 보고 칭찬의 긍정적인 면을 소홀히 해왔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칭찬이 바르게 행해질 때 사람을 세우는 위력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도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칭찬과 격려는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칭찬과 격려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잘 행동하게 하며 삶을 넓히는 모험을 받아들이도록 용기를 준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좋은 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고 가져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의적절함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칭찬하라고 한다고 해서 아무 것이나 칭찬하면 안 됩니다.' 칭찬한다고 해서 잘못되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칭찬한다면 상대방을 망하게 하는 결과가 됩니다. 즉, 잘못된 사실이 분명한데도 칭찬해주면 그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공중도덕을 지켜야 할 자리인데도 그렇지 않고 고성을 지르는 아이에게 ‘네 소리 큰 것 보니까 웅변하면 잘하겠다. 한번 도 해 볼래’ 이러면 안 됩니다. 

온 벽에 낙서를 하고 다니는데도 ‘잘한다. 네가 장차 커서 화가가 될 것이다’ 물론 화가가 될 수 있으나 아무 곳에든지 낙서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놓아두면 그 아이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담을 주는 칭찬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얘, 너 좀 열심히 하니까 70점 받았잖아. 다음 달에는 80점 받아라.” 과장된 칭찬이나 ‘항상’ ‘절대로’ ‘언제나’ 등의 강조어를 지나치게 쓰는 칭찬은 옳지 못합니다. 칭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1) 칭찬할 일이 생겼을 때는 즉시 칭찬해야 합니다. 

'칭찬을 하는 것에도 타이밍'이 있습니다. 새털처럼 가벼운 칭찬거리라도 좋습니다. 발견 즉시 칭찬의 화살을 바로 바로 날려야 합니다. 칭찬의 효과는 시간이 지나면 그만큼 감소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잘한 점을 적당히 칭찬하기 보다 구체적으로 칭찬하십시오. 그래야 효과가 있습니다.

3) 가능한 칭찬은 한 공개적으로 칭찬하십시오. 

4) 거짓 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칭찬하십시오.  

그러나 비교하면서 칭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너 참 잘했다. 다음에는 누구 보다 더 잘해라” 조건을 걸고 칭찬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다음에 90점 맞으면 용돈주고 그렇지 않으면 깎아 버린다.”고 한다면 칭찬이 아니라 부담감을 주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칭찬할 때 진심으로 하는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마음에 없는 칭찬은 효과가 없습니다. 그래도 꼭 지적해 고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렇게 하십시오. 

잘하는 것을 먼저 칭찬하고 나중에 고칠 것을 말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을 보면 대부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서신 앞부분에서 칭찬의 내용을 적고 있습니다. 다음에 지적할 것이나 부탁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어느 프로 야구팀 감독이 칭찬의 효과를 말하면서 한 고백입니다.

“자네는 볼 컨트롤이 나쁘군. 공은 빠른데”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자네는 훌륭한 강속구를 가지고 있군. 거기에 컨트롤만 있으면 되겠어!”라고 말한다면 칭찬과 겨려가 된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내용이지만 듣는 쪽에서 전혀 다르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알아야 할 것은 <칭찬 후에 야단치는 것은 야단맞은 것만 기억에 남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칭찬을 잘 활용하는 지혜로운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탁합니다.

3. 칭찬도 서로가 해야 합니다. 

우리가 칭찬 하는 것으로만 잘 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이 칭찬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랑이나 봉사처럼 서로 칭찬받을 때 힘이 생깁니다. 

남을 칭찬해서 남을 세워주는 일도 중요하다면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받아서 세움을 입어야 할 필요성이 요구될 때도 있습니다. 목사가 칭찬을 잘해야 하지만 목사도 칭찬을 받는 것이 목회를 할 때 힘이 나기에 필요합니다. 

생일을 보낼 때 '카드를 받거나 전화를 받거나 작은 정성이  담긴 선물을 받았다'면 당사자는 더욱 신이 났을 것입니다. 작은 격려가 때로는 사람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칭찬이란 아무리 어려운 일도 다시 하고 싶고, 어렵지만 그 일을 계속하게 하는 큰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위대한 재산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칭찬의 도구입니다. <칭찬은 사용하면 할수록 부자가 되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전해주는 아내의 따뜻한 한마디의 칭찬은 남편의 상처 난 부분을 아물게 하는 놀라운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반대로 칭찬의 말 한 마디로 아내는 수고한 보람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느끼게 만듭니다.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갖게 만듭니다. 이처럼 칭찬은 무슨 일이든지 잘 할 수 있는 능력, 자신감을 갖게 만듭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분의 말을 들어보면 "집에 들어올 때 아내가 강아지처럼 반겨주기만 하면 정말 좋을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개가 말을 할 줄 안다면 개는 지상최대의 언어로 자기 주인을 마음껏 칭찬하고 성원할 것>입니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언어생활은 너무 지나칩니다. 

가끔 '개 같은 자식'이라고 욕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말을 개가 알아듣는다면 너무 기가 막혀서 웃을 것입니다.> 개들이 말할 수 있다면 오히려 나쁜 동료 개를 만날 때 <"사람 같은 자식"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칭찬은 누구든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입니다. 어떤 회사가 직원들을 상대로 ‘직장 상사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수고했어. 정말 잘 했어” “역시 자네야. 자네가 한 일이니 틀림없겠지” 등 칭찬의 말을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칭찬의 유형으로는 

1) 첫째, 언어적 수단의 유형이 있습니다. “참 잘한다”, “많이 좋아졌다” 등 “조금만 더 잘하면 정말 잘 하겠다” “너도 충분히 할 수 있음을 발견한 것은 정말 위대한 발견이다” 등입니다.

2) 두 번째, 행동적 수단의 유형으로서, 머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토닥거리거나, 고개를 끄덕거리는 경우입니다. 물론 미소도 칭찬에 포함됩니다. 

3) 세 번째, 물질적 수단의 유형의 칭찬은 칭찬 받을 말이나 행동에 대한 대가를 물질로서 지불하는 경우입니다. 심부름 잘했다고 심부름 값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유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칭찬만큼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를 가깝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자신을 칭찬하는 데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칭찬은 부메랑과 같습니다. 반드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칭찬한 상대방에게 한 번 더 관심이 가게 되고 그 칭찬의 말을 다시 돌려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합니까? <칭찬을 하는데 지독한 자린고비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칭찬하는 것은 왠지 쑥스러워 합니다. '아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듣고 싶어 하는 말이지만 쉽사리 하지 못하는 칭찬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습관이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한편 칭찬하고 싶어도 칭찬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소에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반드시 칭찬할 것이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칭찬하겠다는 결심이 없다면 칭찬할 거리가 생기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조금만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늘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칭찬거리는 무궁무진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칭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칭찬하기도 하고 책망하기도 하신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0:18절에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진정으로 옳다 인정받는 것은 하나님의 칭찬이 있을 때입니다.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하였도다.’라는 말씀을 듣는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10:22절 말씀에 보면 이탈리야 백부장인 고넬료를 가리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온 유대 사람들이 칭찬했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고 또한 구제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입술로 칭찬을 많이 해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로 부터 칭찬받는 삶을 목표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크리스천들이 불신자들로부터 말은 잘하는데 행동이 따라주지 못하여 칭찬을 제대로 듣지 못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이 시간 옆 사람을 통하여 칭찬거리를 발견하시고 칭찬을 한 마디씩 합시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런 칭찬을 드리고 싶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주일성수를 하신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시는 것을 보니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충분 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 칭찬은 우리 인생을 복되게 하며, 행복을 만들어 주며, 유익을 주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모두 칭찬의 은사를 잘 활용하여 복된 삶을 만들어가며,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 영광 돌리는 귀한 삶의 열매를 맺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칭찬을 잘 활용하며 살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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