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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깨어 항상 기도합시다 (엡 6: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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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항상 기도합시다 (엡 6:18~24)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22 우리 사정을 알리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2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1. 시작하면서

우리는 지금 에베소서를 마치면서 마지막 고별사를 대합니다. 부탁과 함께 축복을 남기고 있습니다. 고별사는 항상 무게를 가진 말로 이루어집니다. 안해도 될 말은 하지 않습니다. 다시 할 수 없는 말만 합니다. 지난 주간에 선종하신 고 김수한 추기경의 묘비에 세겨진 글귀가 매스컴을 통하여 소개되었습니다. 둘 이었는데 하나는 사목표어인 “모든 이를 위하여”이고 또 하나는 그가 가장 애송했던 성구로 시 23편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아쉬울 것 없으라!”(공동번역) 였습니다. 잘 알려진 성구이고 명구였지만, 송별사와 같은 것으로 읽혀질 때 사람들 마음에 깊이 세겨졌는데, 그처럼 에베소서의 마지막 부분도 그렇습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마지막 송별사로 남긴 말씀의 중심은 곧 “깨어 항상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2. 기도합시다

1)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종교적인 선택행위가 아닙니다. 많이 하면 고승이 되고 적게 하면 돌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더 근본적인 것입니다. 기도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경고하셨습니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기도는 성도의 영혼의 호흡입니다. 기도가 멈추면 영혼의 호흡도 끊어집니다. 기도 없이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산 것 같으나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 영혼의 호흡이 그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생기가 우리 코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육체로 전략했다고 합니다. 노아 시대의 하나님의 아들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하고 계십니까? 기도가 없으면 육체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육체의 삶은 곧 죽음입니다. 일전에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유적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사데 교회를 찾았었는데 작은 시골 마을 교회당 같이 그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가리우고 있는 엄청나게 큰 규모의 신전이 사데 교회 예배당 앞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기도 없는 사데 교회 성도들이 자기들 앞에 이방 신전이 세워져도 감각이 마비된 사람처럼 저항도 하지 못하고 만 것입니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이방 문화를 받아들이고 흡수합병된 모양을 보인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부활의 주님이 요한을 통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데 교회를 이렇게 지적한 바가 있지 않습니까? -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그런데 그렇게 된 이유를 그 다음 말씀에서 찾게 해줍니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계3:2-3)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단어가 바로 “일깨라!”(wake up)는 말입니다. 이 말은 마치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지 않고 잠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막 14:37-38)
그렇습니다. 기도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지금은 건강하고 지금은 부유하고 지금은 유명하나 기도를 하지 않으면 건강도, 물질도, 이름도 곧 잃게 됩니다. 이 경고를 무시하지 마셔야 합니다. 

2) 성령안에서 기도하라(18b)

바울은 기도에 관한 진리를 하나 가르치고 있습니다. 곧 성령안에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사람의 말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지만, 그 본질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영적 교통입니다. 영적 교통은 성령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기도 신학의 고전인 “기도”를 쓴 오 할레스비는 기도 전에 기도의 영을 기다리라고 매우 강조합니다. 그래서 기도의 영을 통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기도는 허공을 치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대표적으로 예배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3-24)

예배처럼 기도도 영이신 하나님께 드리기에 영과 진리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기도의 영이신 성령안에서 기도하도록 기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처럼 중언부언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중언부언은 많은 말로 하나님을 설득시키려는 작위적 기도입니다. 그런 기도는 전혀 영의 기도가 아닙니다. 곧 육체의 억지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영의 기도를 방언이나 신비한 그 무엇으로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그래서 소수의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도 안됩니다. 영의 기도는 성령을 의식하면서 성령의 도움을 겸손히 받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기도하면 됩니다. 이것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곧 성령께서 이미 말씀하신 성경 말씀안에서 묵상하면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이런 기도법을 일컬어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라고 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중에 주의 영과 일치하는 기도입니다. 그 유명한 어그스틴도 성경 읽기가 기도의 준비이자 동시에 기도 행위 자체라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읽기 중에 이미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시며 우리는 기도 중에 그 분과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박노권, 렉시오 디비나, p.16 참고)

그래서 바울은 이런 기도를 “깨어 구하는 기도”(18)라고 했습니다. 즉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영의 기도일수록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기도는 몽롱한 상태의 기도가 아닙니다. 성령안에서의 기도는 무엇을 기도하며 왜 기도하며 어떻게 기도하는 지를 알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의 기도는 성경 말씀을 많이 읽고 깊이 묵상할수록 큰 도움을 얻습니다. 개혁자 칼빈도 시편을 엄청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시편을 읽으면서 기도가 나왔고 기도 중에 주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3) 여러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라(18c)

바울은 송별사에서 여러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를 일컬어 중보기도 혹은 대도라고 합니다. 우리는 다른 이를 위하여 기도할 줄 아는 사랑의 기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를 못박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도 기도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우리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보혜사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기도할 바를 몰라 헤매이는 연약한 우리들을 위하여 탄식하시며 대신 기도하고 계십니다(롬 8:26), 그러니 우리도 주님을 배워 다른 이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제자 3기생 남자 분들이 지난 년 말부터 40일 작정 특새를 자발적으로 가지면서 새벽기도회에 불이 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둠가운데서 손전등을 비추고 수첩에 적인 기도제목들을 보면서 중보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교회가 사는 길이 바로 이것입니다. 중보기도가 살아있으면 교회는 부흥합니다. 이웃을 위하여 기도할 때 나라와 우리 사회도 새로워집니다.

여러분! 특히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 기도가 주님의 응답 창고에 쌓일 것입니다. 근래 우리 교회에 등록하고 신앙생활을 새롭게 시작하는 새가족을 심방했습니다. 40대 부인인데, 10대까지는 교회 다니며 학습까지 받았지만, 믿어지지 않는 것을 억지로 교회 다닐 수 없다고 하여 20년 더 넘게 교회를 떠나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최 근래에 우리교회를 통하여 믿음이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에는 그분의 친정 어머님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자매님이 스스로 고백하기를 어머님의 기도가 하늘에 쌓였다가 지금 한몫에 응답되는 것 같다고 그러며 어머님께 고마움을 표하였습니다. 그 친정 어머님의 기도가 딸인 자기 뿐 아니라 자기 남편에게도 그리고 두 딸에게도 모두에게 큰 응답이 되어 요즘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이를 위하여 기도하면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때에 맞게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이를 위하여 무슨 봉사를 할 때 기도보다 더 중요하거나 앞서는 것은 없습니다, 중보기도가 모든 사역의 출발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건축이 어려웠던 중에도 형통하게 진행되고 있음은 모두 여러분들께서 교회를 위하여 금식하며 예배당에서 그리고 산에 올라 기도하신 그 덕분인줄로 믿습니다.

특히 바울 사도는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줄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19절)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 제자들을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들에게 자기 마음을 고백하면서 이렇게 부탁하셨습니다. 

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막 14:32-34)

저도 여러분들에게 부탁합니다. 늘 대표기도하실 때마다 저와 우리 목회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변치 마시고 늘 위하여 기도해주세요. 저와 우리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이런 중보기도의 힘으로 사역할 것입니다. 

3. 마무리 하면서
바울 사도의 축복의 기도로 이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2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23-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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