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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련을 이기고 성전을 완공하다 (스 6: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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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이기고 성전을 완공하다 (스 6:13~18)


- 세상의 급행료

여러분 혹시 ‘급행료’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이 말이 국어사전에도 나옵니다. 사전에 두 가지 말뜻이 나오는데 첫 번째 뜻은 “급행료 : 급행 교통수단을 타기 위한 요금”이라고 나와 있고 두 번째 뜻은 “일을 빨리 처리해 달라는 뜻에서 비공식적으로 담당자에게 건네주는 돈”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저는 지금 첫 번째 뜻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 뜻, 즉 일을 빨리 처리해달라고 몰래 주머니에 넣어주는 비공식적인 돈, 뇌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뜻에서 ‘급행료’를 아십니까? 혹시 내보신 일 있습니까? 받아 보신 적은요? 물론 내본 일도 받아본 일도 없어야 정상이지요. 후진국으로 갈수록 이 급행료가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아직도 무슨 일을 할 때 공무원이나 담당자에게 급행료를 내야하는 일이 남아있다면 우리나라는 후진국입니다.

몇 해 전 제가 싱가포르를 거쳐 인도네시아의 빈탄이라는 작은 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는 딱 붙어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싱가포르는 작은 나라지만 아주 잘 삽니다.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질서가 잡혀 있습니다.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버리거나 침을 뱉다 적발되면 우리나라 돈으로 50만 원 넘는 벌금을 내야 합니다. 길거리가 더러워진다고 아예 껌을 안파는 나라입니다.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범죄를 저지르면 눕혀놓고 볼기에 곤장을 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길거리가 얼마나 깨끗하고 질서가 잡혀있는지 몰라요. 

그런데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인도네시아로 넘어가니 분위기가 아주 달라집니다. 목사님들 몇 십 명과 함께 갔는데 입국수속을 밟는데 자그마치 3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 더운 날씨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입국수속을 담당하는 직원은 정말 여유만만입니다. 한 사람 들여보내고는 한참 딴 짓 하고, 옆 사람하고 이야기하고, 가서 담배도 한 대 피며 질질 끄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안 가는 일이지만 정말 속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서너 시간이 걸려서야 겨우 입국수속을 마치고 들어가는데 안내하는 가이드가 이런 말을 합니다. “원래 이 동네 사람들이 저렇게 느립니다. 그런데 아마 오늘은 뭘 좀 달라고 더 질질 끈 모양이네요.” 뭘 달라는 것입니까? ‘급행료’지요. 

한국사람 돈 잘 쓴다고 소문이 나서 그런지 뭔가 부스러기를 원했던 모양인데 본디 목사들이 이런 눈치가 좀 없잖아요? 우리가 눈치가 없어서 안 주니까 심술이 나서 더 느리게 일을 한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후진국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급행료를 주지도 받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서지요. 안 주면 나만 답답하다고요? 안 주면 나만 손해라고요?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정말 좋은 급행료가 있습니다. ‘기도’라는 급행료입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해결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돈 주고 뇌물 쓰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일을 잘되게 하려 들지 말고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세상 방법에 의지하고 잘못된 방법이라도 좋으니 빨리만 되게 해달라는 그런 생각 버리고 기도로 하나님께 다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직접 일을 추진해 주시고 빨리 되도록 도와주십니다. 믿으십니까? 이런 현상을 성경은 뭐라고 부르느냐? ‘형통’(亨通)입니다. 형통할 형(亨), 통할 통(通), 하나님이 형통케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님보다 힘 있고 능력 있는 분이 없습니다. 세상에 기도보다 더 좋은 급행료는 없습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의 급행료

지난주일 우리는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다시 지으려고 할 때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공사가 중단된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악의에 찬 대적들, 사마리아인들이 갖은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성전공사를 방해하고 또 왕에게 글을 올려 거짓말과 중상모략을 한 결과 성전재건 공사는 자그마치 16년 동안이나 중단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나온 에스라 5장에 보면 겨울철에 땅속에 죽은 듯 잠들어있던 식물이 봄이 되면 겨울잠을 깨로 땅위로 새싹을 내는 것처럼 16년 동안이나 중단되었던 성전공사가 서서히 다시 기지개를 켜고 시작되려는 조짐을 보입니다.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전건축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반드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예언하자 스룹바벨 총독과 대제사장 예수아를 중심으로 성전재건공사가 서서히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뜻을 모으고 시작하자고 해봐야 바사의 왕이 허락 안 하고,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바사의 관리들이 허락 안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성전공사가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공사가 시작되자 이 지역을 다스리던 바사의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관리들이 찾아와 “누구 맘대로 중단된 성전공사를 다시 시작했느냐?”고 따집니다. 자칫하면 애써 시작된 공사가 다시 중단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5장 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아뢰고 그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총독과 관리들이 공사를 중단시키지 않은 것입니다. 유다 장로들이 관리들에게 급행료를 주었을까요? 한번만 눈감아 달라고 주머니에 돈푼께나 찔러주어서 관리들이 입을 다문 것일까요? 하나님 안 믿었으면 그렇게 했겠지요.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누굽니까? 하나님의 백성 아닙니까? 그런 방법 쓰면 안 되지요. 그래서 성경은 왜 총독과 관리들이 성전공사를 중단시키지 않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렇습니다. 이 사람들은 급행료나 뇌물 같은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분에게 의지한 것입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급행료를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셔서 총독과 관리들이 공사를 막지 못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나아가 당시 바사 왕인 다리오 임금에게 편지를 보내서 왕의 명령을 기다리게까지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써야 할 방법입니다.

이랜드 그룹을 국내 굴지의 그룹으로 키운 박성수 회장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몸이 아파서 다른 일은 못하고 이화여대 앞에 작은 보세옷가게를 내고 시작한 사업이 이렇게 컸습니다. 이분에게 일화가 있습니다. 회사가 성장해서 드디어 빌딩 하나를 사옥으로 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이런 일이 많았나봅니다. 동네 소방서에서 소방점검을 한다고 찾아와서 괜히 이 트집 저 트집 잡더랍니다. 사흘이 멀다고 찾아와 소화기도 분명히 비치했는데 위치를 옮기라고 하고, 소방시설에 문제가 있으니 시정하라더랍니다. 
그래서 박 회장은 군말 없이 옮겼다네요. 그들이 시키는 대로만 했답니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오던 소방서 사람들이 안 찾아오기 시작하더랍니다. 그러더니 나중에 이런 말이 들려 오더라네요. 소방서에서 직원들끼리 하는 말이 “그 회사 참 지독하다. 그렇게 말해도 꿈쩍도 안 한다. 그 회사는 절대 가지 마라.” 뭘 좀 바라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자주 찾아오고 이런 저런 시비를 건 모양입니다. 그런데 전혀 꿈쩍도 안 하니까, 들은 척도 안 하고 계속 시키는 대로만 하니까 포기한 것입니다. 이 분은 크리스천이고 장로님입니다. 아마 세상에서 요구하는 급행료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급행료를 택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세상 물정 모르고 고지식한 사람은 손해도 보고 문제도 생겨야 정상인데 오히려 더 잘되는 것입니다. 더 형통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요구하는 사람이 부끄러워지는 것입니다. 왜냐? 우리는 본질을 잡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도(正道)로만 가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

자,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도우시니까, 하나님이 추진하시니까 별 일이 다 생깁니다. 바사의 총독과 관리들이 성전공사를 중단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바사 왕 다리오에게 편지를 보내서 이런 말을 합니다. 5장 17절을 보실까요?

이제 왕께서 좋게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보물전각에서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예루살렘에 다시 건축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

참 이상한 일입니다. 총독이 왕에게 편지를 보내서 “임금님,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단되었던 성전재건 공사를 시작했는데 그 이유를 물어보니 옛날 고레스 임금님이 성전을 재건하라고 시켰답니다. 그러니 왕께서 보물전각에 보관된 공문들을 조사해서 정말 고레스 왕이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있는지 조사해 보소서.” 한 것입니다. 공사를 중단시켜야 마땅할 바사의 총독과 관리들이 되레 왕을 설득해 그런 조서를 정말 내린 적이 있는지 조사해보라고 설득하고 있으니 정말 이상한 일 아닙니까? 그런데 총독과 관리들이 다리오 임금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 5장 7절에서 17절까지 나오는데 그 내용 중에 주목할 만한 말이 나옵니다. 바로 8절입니다. 함께 읽을까요?
 

왕께 아뢰옵나이다 우리가 유다 도에 가서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가 본즉 성전을 큰 돌로 세우며 벽에 나무를 얹고 부지런히 일하므로 공사가 그 손에서 형통하옵기에
 

바사의 총독과 관리들이 공사현장에서 뭘 본 것입니까? 큰 돌을 세우고 벽에 나무를 얹고 부지런히 성전공사를 하는데 공사가 형통한 것을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는 그들이 성전재건 공사가 형통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39장 3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제가 읽어볼까요?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하나님을 모르던 애굽의 보디발 장군이 요셉에게서 본 것처럼 바사의 관리들도 똑같은 현상을 목격한 것입니다. 보디발 집에 노예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 수많은 종들 가운데 요셉은 정말 별 볼 일 없는 노예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데 주인의 눈에,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주인의 눈에 이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한 것이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보디발은 요셉을 일약 자기 집의 모든 일을 맡아 주관하는 가정총무로 삼은 것입니다. 무엇을 보았다고요?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범사에 형통한 것”을 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던 바사의 관리들 눈에 그 짧은 시간에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셔서 모든 공사가 형통케 되는 모습이 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 이거 뭔가 특별하다.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다른 건축과는 뭔가 다르구나.” 하고 직감한 것입니다. 그래서 관리들은 공사를 하는 백성들에게 묻습니다. “누가 너희들의 우두머리냐? 누가 다시 공사를 시작하라고 시켰냐는 말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 장로들이 전혀 다른 대답을 합니다. 5장 11절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건축하여 완공한 것이었으나

우문현답(愚問賢答)입니다. 누가 주도해서 이런 일을 시켰냐고 물으니까 “누가 시키기는요? 하나님이 시키셨지요.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명령만 듣습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명령하시니까 우리는 순종할 뿐입니다.”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총독과 관리들은 뭔가 특별한 느낌이 든 모양입니다. 그래서 공사를 중단시키지도 않았고 나아가 다리오 왕에게 편지까지 보내 왕께서 직접 조사해보라고 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믿으십니까? 바로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뜻대로 행하는 자들을 이렇게 도우시고 형통케 하십니다. 이런 우리의 형통한 모습을 보면 하나님 믿는 사람들뿐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불신자와 이 동네 사는 사람들까지도 “이건 뭔가 특별하다. 어떻게 저렇게 형통할 수 있느냔 말이다. 뭔가 누군가가 저들과 함께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 성전을 완성하다

자, 그 다음에는 일이 정말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하나님의 급행료가 지불되었기 때문입니다. 6장 1절부터 보면 다리오 왕이 총독의 편지를 받고 정말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전각을 조사합니다. 이 보물들과 함께 예전에 왕들이 보낸 중요한 편지나 문서가 보관되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5장 17절에 총독과 관리들이 다리오 왕에게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이제 왕께서 좋게 여기시거든” 조사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아무리 총독과 관리들이 편지를 올려도 왕이 싫으면 끝입니다. 왕이 “내 얼마나 바쁜데 그깟 저 변방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까지 조사하나?” 하면 끝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웬일인지 다리오 왕이 정말 문서를 조사하게 합니다. 이 모든 일이 우연처럼 보이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 눈에 우연처럼 보이고 재수가 좋은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만도 이런 일을 너무나 많이 겪으며 살아갑니다. 다만 몰라서, 못 깨달아서 감사하지 않을 뿐이지요.

문서를 조사하던 다리오 왕이 정말 고레스 할아버지가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령한 조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성전을 쌓는 경비까지 왕실에서 다 대주라는 내용까지 거기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왕은 즉시 총독과 관리들에게 명령합니다. 당장 성전재건을 허락하라! 그리고 그 경비까지 왕의 재산, 곧 그 지역에서 거두는 세금 중에서 대줘라! 또 그들이 하나님께 드릴 제물까지 다 공급해주라고 명령합니다. 
누구든지 이 명령을 어기거나 변조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추상같은 명령까지 내립니다. 사실 고레스의 조서를 발견했어도 다리오 임금이 얼마든지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다 지나간 옛일이라고,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는데 왜 굳이 내 돈 들여가며 이런 일을 해야 하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조서를 발견하자마자 다리오 임금이 이렇게 엄청난 명령을 내리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형통케 하시는 손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17년 전 포로귀환과 성전재건을 위해서는 바사의 첫 번째 임금 고레스를 사용하시더니 이번에 중단되었던 성전공사를 재개해서 완성하는 일에는 다리오 왕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이 다리오 왕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오늘 본문인 6장 13절을 봅시다.

다리오 왕의 조서가 내리매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신속히 준행하니라

어떻게 준행했습니까? “신속히 준행하니라.” 왕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바사의 관리들이 초스피드로 일을 진행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16년 동안이나 답답하게 중단되었던 성전공사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마치 거짓말처럼 다시 시작되고 다리오 왕의 조서 한 장에 인근 관리들이 총동원되어 돕게 되니 순식간에 완공됩니다. 그래서 15절에 보면 “다리오 왕 제 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하고 아주 간단하게 결론이 나와 있습니다. 너무 쉽게,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성전이 완공됩니다. 그리고 16절에 보면 성전 봉헌식까지 다 마칩니다. 주전 515년 4월의 일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떻게 이렇게 일이 신속하게 빨리 진행되었지요? 물론 다리오 왕의 조서를 받고 모든 바사 관리가 총동원되어 도왔기 때문이지만 그것만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이유가 14절에 두 가지 나옵니다. 하나는 모든 백성이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갑니다. 국론이 분열되면 될 일도 안 됩니다. 모든 백성이 하나 되어 지도자의 리더십을 따르니 일이 잘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지금 저를 비롯해 건축위원들이 정말 애쓰고 있습니다. 그들의 수고와 노력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전적으로 이분들을 신뢰하고 따라주십시오. 건축위원이나 대표들을 못 믿어서,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해서 건축이 어려운 교회들도 많습니다만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뿐 아니라 그 다음에 더 중요한 이유가 나옵니다.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함께 하시니 뭘 하든지 형통한 것입니다. 성전 건축을 위해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준비를 해보니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일을 착오 없이 문제없이 해낼 수 있을까 정말 막연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가능합니다. 형통의 하나님의 우리의 모든 과정을 형통케 하시면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깁시다. 여러분의 사업도 직장도 가정도 다 맡기십시오. 세상의 그 어떤 방법도 아닌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시고 기도라는 하나님의 급행료를 넉넉히 지불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진행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형통케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고 준비하는 성전건축도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깁시다. 하나님이 정말 놀라운 일로,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일들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실 것입니다. 사람을 움직이고, 환경을 바꾸어주시고,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믿고 다만 순종할 뿐입니다.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형통의 역사가 여러분과 우리 교회 위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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