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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능력을 회복하자 (겔 3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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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능력을 회복하자 (겔 37:1~10)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거기서 살았던 선지자다. 포로가 된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상을 보고, 포로 된 자기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예언자다.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선지자 에스겔에게 임재 하셔서, 어떤 골짜기로 인도하셨다. 그 골짜기에는 마른 뼈들이 가득했다. 

생명이 없는 마른 뼈를 살아나게 하기 위하여, 사망의 음침한 곳으로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잊혀 진 뼈들을 돌아보셨다. 그래서 버려진 마른 뼈들도 사랑하셔서, 다시 살아나게 만드시고, 하나님의 군대로 만드시는 분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마른 뼈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민족을 의미한다(11).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끌려가, 절망 중에 있었다. 하나님은 마른 뼈들처럼 버려진 그들이, 살겠느냐고 에스겔에게 물으셨다. 

(3)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죽은 지 오래된 마른 뼈들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는가? 인간의 생각과 방법으로는, 도저히 살아날 수 없다. 전혀 불가능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인간과는 다르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주여, 주님이 해답을 아신다. 주님만이 하실 수 있다!”라는 뜻으로 대답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이든지 하실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로 나왔을 때, 뒤에는 애굽 군사들이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향해서 원망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다. 

(출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고 외쳤다. 그 믿음대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를 무사히 건너가게 만들었다. 

우리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기 바란다. 이처럼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지만,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 가운데도, 언제나 함께 하시는 참 좋으신 분이다. 좋으신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1. 말씀으로 역사하신다. 
말씀은 능력이다. 하나님은 마른 뼈들을 살리시기 위해,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마른 뼈들을 행해 대언하라고 하신다. 

(4-6)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하나님의 명을 받아, 에스겔이 마른 뼈에게 대언할 때, 뼈들이 다시 소생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놀라운 능력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빛을 말씀하셨을 때, 빛이 창조되었고, 해와 달을 말씀하실 때, 해와 달이 그대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인 것처럼, 우리말에도 능력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대로 역사하신다. (민14:27-28) “…이스라엘 자손들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리는 대로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우리와 우리 자손을 위해 말을 잘해야 한다. 우리의 언어가 미래를 만든다. 왜냐하면 말은 방향설정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약3:3-4). 죽고 사는 것이 혀에 달려있다(잠18:21). 견인력과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마른 뼈와 같은 인생을 회복시키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마른 뼈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대언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홀로 행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고, 꼭 누군가를 통해 일하신다. 

대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전달함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셔서 먹게 하신다. (겔3:1-3)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받아먹어야, 말씀을 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다. 소생케 하는 능력이 있고, 연결시켜주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법칙을 따라, 질서와 절차를 따라 역사한다. 힘줄을 세우고, 살이 오르게 하고, 가죽을 입혀 준다. 또 말씀은 부흥의 씨앗이다. 평양 대부흥 운동은, 말씀 운동이었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중풍병자가 일어났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고,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이 살아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해야 한다. 

에스겔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뼈 저 뼈가 서로 들어맞아 서로 연결되었다.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실 때, 언제나 말씀을 통해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해 질 때,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다. 

(행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예수님은 말씀으로 오셨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계시고, 말씀이신 예수님을 전하고, 말씀이 역사하게 되면 교회는 부흥하고, 영혼은 살아 춤을 추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견고히 설 수 있는 힘줄을 얻게 된다. 힘줄은 근육과 같다. 우리를 견고하게 설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말씀은 은혜의 살이 오르게 한다. 영혼이 살찌게 된다. 풍성한 생명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을 수 있도록, 가죽을 제공해 준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마른 뼈들이 움직여, 서로 연결되고, 그 뼈에는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랐다. 그 위에 가죽이 덮였지만, 그 속에 생기는 없었다(7-8). 그때 다시 에스겔이 생기를 행해 대언하니, 생기가 사방에서 몰려와서 마른 뼈들에게 들어가, 결국 마른 뼈들이 큰 군대가 되었다. 

2. 성령의 능력이 임해야 한다(9-10). 
여기서 생기는 성령님을 의미한다. 말씀이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함께, 성령님이 더불어 일하신다. 마른 뼈와 같은 우리인생에 말씀이 필요하지만, 말씀만 가지고는 안 된다. 

성령님의 생기가 필요하다. 말씀은 그 자체가 능력이지만, 홀로 역사하지 않고 꼭 성령님과 함께 역사하신다. 구원자 예수님은 말씀으로 오셨다. 전능하신 말씀이요, 창조의 말씀이요, 치유의 말씀이요, 회복의 말씀으로 오셨다. 

그러나 예수님도 성령님과 더불어 일하셨다. 말씀은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 졌다. 성령님의 생기, 성령님의 숨결로 쓰여 졌다. 성령님과 말씀은 늘 함께 역사한다. 우리에겐 성령의 생기가 필요하다. 성령의 생기가 임하면, 모두 다 변하고, 모두 역전된다.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고, 하나님의 군대가 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이처럼 하나님의 숨결을 받을 때 생령, 즉 살아있는 영적 존재가 된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 생기였다. 

(요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제자들은 마른 뼈와 같았다. 그들의 꿈이 십자가 앞에서 무너졌다. 그들의 사명도 무너졌다. 그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그들의 침체된 영혼에 생기가 임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생기를 넣으셨다. 그런데 (겔37:3, 9, 11, 16) 에스겔에게 인자라고 하셨다. 신약에는 예수님을 통해, 성령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 성령의 생기를 마실 수 없다. 예수님을 통해 성령님의 생명에 접할 수 있다. 

성령님의 생기가 마른 뼈에 임했을 때, 마른 뼈들이 힘을 얻게 된다. 힘을 얻어 곧 살아 일어나 서게 된다. 그리고 큰 군대를 이루었다.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이처럼 생기는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힘이 없으면 설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누워 있기를 원치 않으신다. 일어나 빛을 발하시기 원하신다(사60:1). 성령을 받아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기 원하신다.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하면,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고,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없다.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안 된다. 제자들이 오순절 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완전히 변화되었다. 마른 뼈들이 군대가 된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군대가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연약하고 무력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꿈이 다시 살아났다. 사명의식이 투철한 사람들이 되었다. 

말씀을 전할 때, 사람들이 뒤집어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자.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그때 우리는 일어설 수 있다. 강하고 담대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수 있다. 흔들림 없고, 요동함 없는 군대가 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살기가 등등했던 사람이다. 그는 스테반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의 살기를 사랑의 기운으로 바꾸셨다. 성령을 충만히 받은 바울은, 사랑의 사람이 되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사랑의 기운이 충만했다. 

따라서 무력하다고 낙담하지 말고, 하나님의 시각을 갖자.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가지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불행의 때에도, 말씀과 성령님을 통해 은혜를 공급하신다. 생기가 임해야 활동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서, 귀하게 사용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간절히 원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없다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쇼에 불과할 뿐이다. 훌륭한 연주에 맞춰서, 찬양하고 손뼉 치고, 환호하는 기쁨은 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영혼이 변화되는 역사는 이뤄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하지만, 그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그 말씀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다면, 그 예배는 헛된 의식일 뿐이다. 요즘의 예배를 보면, 뛰어난 연주자들과 고가의 첨단 음향장비들이 동원된다. 

설교자들의 세련된 말투로,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지만, 막상 하나님의 능력은 전달하지 못한다. 예배 가운데 오직 나의 열심과 능력만 드러낼 뿐, 성령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은 없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려면, 예배 인도자들이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찬양을 인도하고 연주하는 자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기 시작하면, 회중은 하나님을 만나고, 눈물 흘리며 회개하고,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통해, 죄사함을 받게 된다. 영혼이 치유되고, 질병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나기 원한다면, 성령의 능력을 간절히 구해야 한다. 

3. 성령의 능력을 간절히 구하라. 
마른 뼈에 임하신 은혜는, 회복의 은혜였다. 하나님은 마른 뼈도 버리시지 않는다. 사람들은 버릴지 몰라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신다. 오히려 사람들이 버린 것을 통해, 더욱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 

하나님은 쓸모없어 보이는 쓰레기를, 보배로 만드시는 분이다. 쓰레기를 보배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마른 뼈들에게 일어나고 있다. 지금 골짜기의 마른 뼈들은, 쓸모없는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다. 그런데 그 마른 뼈들이, 보배로운 하나님의 군대가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다. 

마른 뼈들이 성령의 생기를 통해 변하고 있다. 쓸모없는 마른 뼈들이, 극히 큰 군대가 되었다. 마른 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형편없는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에게 흉물스런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마른 뼈가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로 보인다. 

마른 뼈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다. 포로는 인간쓰레기로 취급을 받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큰 군대로 만드신다. 하나님은 쓰레기를 거름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변화시킨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를 더욱 거룩하게 하시고, 더욱 존귀하게 만드신다. 

하나님은 마른 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만들어 사용하신다. 무력한 마른 뼈들이, 성령충만을 받으니 강한 군사가 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일어서니, 하나님이 존귀하게 사용하시는 군사가 된다. 마른 뼈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다.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으시면, 살아날 수도, 일어설 수도, 회복할 수도 없는 존재다. 하나님은 친히 찾아오셔서, 그 마른 뼈들이 존귀하게 만들어서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사모해야 한다. 성령이 임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성령이 임하면 모든 것이 변화된다. 

마른 뼈와 같은 인생이라고 낙망하지 말라. 하나님의 생기는 지금도 살아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생기는, 우리가 초청해 주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성령님의 생기를 초정하라. 하나님의 숨결을 받아 마시도록 하라. 하나님의 성령의 부어주심을 간절히 사모하자.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 예배 인도자는 고가의 첨단장비에 목숨 걸지 말고, 성령에 붙들리기를 기도해야 한다. 음악적 기교로 사람을 흥분시키고, 성령의 역사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성령께서 역사 하시고 기름 부으시면, 회중보다 인도자가 먼저 하나님 앞에 깨지게 된다. 

오늘날 교회에, 수많은 찬양 사역자들이 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성령에 붙들린 사람들은,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영혼을 섬기는 일에 피곤해 하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예배하는 자는, 다른 사역자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지지 않는다. 성령님께 붙들린 사람은 자신을 죽이고, 오직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만 사시게 한다. 성령에 붙들리고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성령에 붙들린 설교자는,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지 않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한다. 성령에 붙들린 설교자는, 듣는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거룩한 부담감과 거룩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게 만든다. 예배당에서 가르치고 설교하는 사람은, 성령 충만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역사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해야 한다. 훌륭한 설교를 하려면, 책을 읽고 공부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책 읽고 준비하는 시간보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성령의 역사는 기도를 통해 주어진다. 예배 중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한다. 성령의 능력을 증거 하는 통로는 기도뿐이다. 성령에 붙잡힌 설교자는, 설교 중에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설교자는, 자신이 무익한 종이고, 무능한 인간이기에, 자랑할 것이 없다. 인간의 칭찬이나 박수를 기대하지 않는다. 인간의 칭찬을 기대하는 이유는, 나를 높이고 싶은 교만이고, 그것이 인간의 죄성이다. 성령에 붙들린 사람은 나를 죽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설교자는 만담꾼이 아니다. 개그맨도 아니다. 설교자는 이 시대의 선지자다. 선지자의 입에 하나님의 불이 있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죄를 토해 내게 만든다. 요즘 강단에 서는 설교자는 많이 배웠음을 자랑한다. 그러나 석사, 박사 학위증이, 성령의 능력을 주지 않는다. 

베드로는 많이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베드로에게는 학력의 배경은 없지만, 그보다 강력한 성령의 능력이 있었다. 훌륭한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러나 석사, 박사학위 받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성령 받은 성도는, 재물을 자기 자시만을 위해 모으지 않는다. 함께 나누고 함께 쓰면서 기쁨으로 하나가 된다. 성령을 받은 성도는 남의 뒤에 서서, 흉을 보고 비난하지 않는다. 남을 비방하는 헛된 소문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행3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는,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행해 “우리를 보라”고 말한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명령하고는,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 걷게 만드는 이적을 행한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걷지 못하여 구걸하는 자에게, 은과 금은 줄 수 있지만,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지는 못한다. 은과 금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교회가 성령의 능력이 없음을 부끄러워하기보다, 돈 많음을 자랑한다. 이것이 기울어져 가는 한국교회다. 

세상을 고치고 치유하는 힘은, 변화시키는 능력은, 은과 금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성령의 능력,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으로부터 나온다. 교회의 능력은 건물의 크기나, 예산의 규모나, 교인의 숫자로 나타나지 않는다. 성령님께 붙들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해야만, 교회의 능력이 된다. 

학위가 사람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한, 교육학 박사라고 해서, 청소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초등학교만 나왔어도, 성령의 능력을 받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면,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보다, 더 크고 놀랍게 쓰임 받을 수 있다. 

무디가 바로 그런 분이다. 박사 학위가 있어도, 성령께서 기름 부어 주시지 않으면, 그 학위증서는 종이쪽지에 불과하다. 사단은 박사 학위 받은 사람, 명문대 나와서 여러 학위를 가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성령에 붙잡힌 사람을 두려워한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사단은 가장 두려워한다. 이런 사람만이 지옥문을 깨고, 원수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는다면, 성령 충만함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고 부르짖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이 시대는 마치, 마른 뼈들이 쌓여 있는 무덤 같다. 에스겔이 본 마른 뼈들처럼,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영적으로 죽어 있는 마른 뼈들이 모여서, 무덤을 이루고 있다. 죽어 있는 뼈들은, 반응하지 못한다.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런 뼈들이 살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 

성령 받은 우리에게는, 마른 뼈들에게 살이 붙게 하고, 힘줄이 생기게 하고,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다. 설교하는 자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마른 뼈들의 모습으로 서서 외치는, 처량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 뼈들이 외치는데, 뼈들이 반응할 리가 없다.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성령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신다. 성령은 보혜사이시다. 보혜사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라고 하는데, 우리를 돕기 위해 곁에 계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이라는 뜻이다. 성령님이 우리를 돕기 위해 와 계시는데,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그 능력을 구하지 않는다면,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저에게 성령님의 능력을 주십시오! 날마다 순간마다 성령의 역사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의 충만함으로, 승리하기 위해 매일 기도해야 한다. 차를 운전하고 다니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잠을 자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성령님께서 지배하시기를 기도하라. 

사람은 연약하지만, 성령이 붙들어 주시면, 두려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힘으로 안 되는 일이 너무도 많다. 내 힘으로 될 것 같은 일도, 하다보면 실수하고, 실패하게 된다. 그때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야 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성령을 구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간절한 기도를 해야 한다. 공부도 성령의 능력으로 해야 한다. 직장생활도, 사업도,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해야 한다.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돌보는 일도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 

매일 아침 성령을 구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해야 승리하는 날들이 될 수 있다. 세상에는 우리를 죄 짓게 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러한 것들을 이기는 방법은, 오직 성령의 도움을 받는 것뿐이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면, 거룩한 영이 세상의 죄를 모두 이길 수 있다. 

사람은 약한 존재며, 세상은 죄로 가득 차 있다. 내 힘으로 안 되는 일을 만날 때, 세상의 능력을 구하는 대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일이요,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만, 세상을 요동치게 할 수 있다. 

(행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우리에게 이런 역사가 있기를 소원한다. 기도할 때, 빌기를 다 하매, 모인 곳이 진동했다. 성령을 받아, 이 지역과 이 강산을 진동시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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