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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안식일 (막 2: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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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안식일 (막 2:23~28)


오래 전 욕심이 많은 한 왕이 덕망 있는 학자를 불러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되고 훌륭하게 사는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학자는 “너무 욕심 부리지 않고 착한 일을 많이 하는 겁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너무 간단한 이야기라 왕은 “아니, 그거야 세살 먹은 아이도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라고 말하며 피식 웃습니다. 그러자 학자도 웃음을 띠며 말합니다.
“폐하. 세 살 먹은 아이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여든 살 된 노인이라도 제대로 실천하기는 아주 어려운 문제랍니다.”

아무리 쉬운 일도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는 법입니다. 하면 쉬운데 하지를 못하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무엇이고 해서는 안 될 일은 또 무엇일까요? 흔히 우리가 계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명령으로서 크게 보면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면 흔히 지키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아주 지키기 쉬운 것이 바로 계명입니다. 그 이유는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면 되고 하라고 하는 것은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거야 누가 모르냐고 근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냐고 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말씀입니다. 해 보세요. 하라고 하는 것을 해 보세요. 그리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마세요. 근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사람들이 꼭 하지 말라는 하고 싶어서 안달이고 하라는 것은 괜히 꽤 부리고 안 하려고 들더란 말입니다. 꼭 아이들 같습니다. 밥 먹어라 하면 그냥 먹으면 되잖아요? 근데 꼭 아이들은 싫다고 합니다. 몸에 좋은 것이라고 먹으라 하면 싫다고 하고 몸에 좋지 않다고 먹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먹으려고 듭니다. 우리 인생들이 꼭 그렇습니다. 

애초에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까지 하셨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굳이 따 먹는 것은 뭡니까? 그냥 그건 내 사전에 없는 것이라고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그건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남의 불행은 나의 기쁨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남의 불행이 왜 내 기쁨이 됩니까? 그게 나에게 어떤 또 다른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까? 남의 불행이 나의 안타까움이 될 때 나의 불행을 보는 남도 안타까워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남들이 다 하는 일을 너는 왜 못하느냐고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일 수도 있음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킨다고 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 역시 힘들 수 있다고 하겠죠? 하지만 하나님이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에 우리가 어렵지 않게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로 하여금 감당할 수 있게 해 주신다는 생각으로 우리의 생각을 바꾸세요. 그러면 아무리 힘든 일도 한결 쉽고 수월하게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먼저 안식일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봅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이 가장 크게 부딪친 일이 있다면 바로 이 안식일에 대한 논쟁입니다. 여기 본문에서는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가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는 것을 보고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만 그 외에도 유독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는 일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째서 당신은 병자들을 고치는 일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천지를 만드셨고 그리고 일곱 째 날에 안식하셨다 다시 말해서 쉬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모세를 통해서 십계명을 주실 때 넷째 계명으로 이 안식일에 대한 규례를 정해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는 것입니다. 먼저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해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으신 다음 마지막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것을 마음껏 즐기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것은 우리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으셨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많으면 별 상관이 없겠지만 꼭 있어야 할 것들이 부족하게 될 때 우리들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마땅히 있어야 되는데 부족하다는 것은 그만큼 필요한 것을 쓸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먹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과식은 해롭지만 그렇다고 해도 먹을 만큼은 먹어야 합니다. 요즘의 문제는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가 됩니다. 먹는 것만큼 움직이고 그것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몸이 불어나고 그로인해서 미용상의 문제뿐 아니라 건강상의 문제도 생긴다고 하는데 그 문제의 심각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것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다고 할 때는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서는 기본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더 큰 문제는 실직이 되겠습니다. 

실직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을 벌 수 없다는 뜻이기에 돈이 없이는 아무런 활동도 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 아닙니까? 하지만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우리들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신다고 하는 기본적인 믿음에서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신다고 믿을 때 우리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들에게 마땅히 있어야할 것이 부족하다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염려입니다. 

염려는 근본적으로 우리들을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있어야 할 것이 없기에 염려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염려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당연히 염려해야 되겠지만 염려는 그로 인해서 우리의 마음과 몸을 다 망가뜨리기에 오히려 더 큰 문제를 가져올 뿐입니다. 그러기에 염려하기보다는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감사함으로 기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에는 평안이 오고 그 삶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안식일 오늘의 주일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닌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물론 예배는 날마다 드려야 하지만 특히 주일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여기에는 다른 계획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이 주일에 할 가장 큰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일을 하면 안 되겠죠. 

그래서 그날에는 온 가족은 물론 수하에 있는 사람까지도 아무 일도 하지 않도록 하고 오직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온 마음을 쏟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날을 복되게 하셨다는 것은 그럼으로써 우리의 육신은 쉼을 얻어 새로운 활기를 얻게 되고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의 삶이 복되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약속이 거기에 또한 함께 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하나의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머지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조금도 게으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엿새 동안은 생업에 온 힘을 다하고 주일에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온 마음을 다 쏟을 때 우리는 건강도 얻고 삶에 활력도 얻으며 우리 심령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하고 거기에 더하여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으로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한데 문제는 여기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것은 아주 세밀하게 분석을 하고 기록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밥도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제자들이 하는 것처럼 밀밭 사이로 지나가기 위해서 이삭을 자르는 것은 당연히 안식에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아니다 안식일에도 해야 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긍휼을 이루기 위한 일들은 안식일에도 반드시 해야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일이라면 그건 당연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든 것이 다윗이 자기와 또한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이 멋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을 때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가서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했지만 그때 성전에서 물려낸 진설병 밖에 먹을 것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성전에서 물려낸 진설병은 오직 제사장들만이 먹도록 규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다윗이나 그 부하들은 먹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아비아달 제사장은 그들이 굶주리는 것을 볼 수가 없어서 그 진설병을 주어 허기를 면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것을 예로 들어서 예수님은 규정을 지키는데 있어서도 예외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이 이와 같이 긍휼을 이루는 것 즉 다른 사람을 동정해서 하는 일이라든가 생명을 구하는 일과 같은 것은 조금도 지체해서는 안 될 주일에도 꼭 해야 될 일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우리들의 어떤 편의나 또는 즐기기 위해서나 생활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주일 성수에 어긋나지만 주를 위해서 생명을 건져 구원하기 위해서 하는 일들 또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하는 일들은 오히려 주일에도 꼭 해야 됨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먼저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인지를 분별해서 먼저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며 주일을 거룩하게 지킴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엿새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어야 할까요? 
사람들은 기계와 달리 쉬지 않고 일할 수 없기에 적절한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며칠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연구했습니다. 건강도 유지하고 능률도 최고로 올릴 수 있기 위해서는 며칠 만에 하루를 쉬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이미 하나님께서 다 결론을 내려 주셨지만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그걸 꼭 자기들이 확인해 봐야 하는가 봅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가장 능률적이고 또 건강 유지에도 좋은 것은 엿새를 일하고 하루를 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안식일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은 바로 사람들을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주 5일 근무제를 직장들마다 많이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근본 취지는 단지 노동 시간을 줄여서 푹 쉬고 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엿새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다보니 그 쉬는 하루는 교회에서 거의 보내다 보니 신실한 사람들은 여가시간을 보낼 틈이 거의 없었기에 그렇다면 토요일에는 여가 시간을 보내도록 하고 주일은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로 삼자고 하는 취지에서 주 5일 근무제가 시작되었는데 우리는 이틀 동안 마음껏 놀고 즐기는 날로 생각들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원리는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하나님께 경배하며 쉼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곧 예배 자체가 사람들에게는 휴식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분주하고 조금도 쉴 틈조차 찾기 힘든 때 오히려 새벽 해뜨기 전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시는 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잠이나 자고 빈둥거리고 있으면 쉼이 되는 줄로 알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예배하며 섬기는 그 일이 우리 육신에 더 큰 휴식이 되고 더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 하나님이 힘이 되어주시느냐 하면 예배하는 자에게 입니다. 누구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더하시느냐 기쁨으로 예배하는 자에게 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단잠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안식일의 주인은 인자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을 주인 되시는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시도록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예배를 통해서 그리고 이웃 사랑은 공동 식사를 통해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섬기며 함께 하는 시간들이 우리들에게 참으로 유익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정말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복된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일에 예배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과 성도들과의 아름다운 교제의 시간을 반드시 가지십시오. 그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바 은혜 가운데 우리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우시고 우리 심령 가운데는 성령으로 충만해서 모든 은혜로 넘쳐나고 우리의 몸도 더 건강해서 활력이 넘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플라스틱 물통과 함석 물통이 우물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플라스틱이 입을 열었습니다. 
“얘, 함석아! 우리가 날마다 우물에 와서 물을 담아 가면 무슨 소용이 있니? 돌아가면 다시 빈 통이 되잖아?” 
이렇게 플라스틱은 이 하나마나한 짓거리에 신물이 난다는 듯이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함석이 말했습니다. 
“플라스틱아, 네 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그러나 왜 그렇게만 생각하니? 내 경우는 늘 빈 통으로 물에 오지만 그러나 돌아갈 때는 가득 채워져서 돌아가니 얼마나 흐뭇하고 즐거운지 모른단다.” 
함석은 자신에게 넘치는 행복의 즐거움을 가지고 대답했습니다. 
이 글은 『폴 J. 와튼』의 글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주일은 우물가에 나와 물을 가득 채우듯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와 기쁨과 평강과 능력을 가득 채우는 날입니다. 그러기에 즐거운 날입니다. 세상에 나가 그 충만함을 다 쏟아놓으며 살다가 다시 주일이라는 우물가에 와서 새로운 충만함으로 채우는 즐거운 날이 주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을 즐거운 날로 맞이하여야 합니다. 주일을 바로 지킴으로 하나님의 충만하심 안에서의 영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사58:13,14)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에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시는 은혜로운 삶을 이루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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