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방언의 유익 (고전 14:18)

  • 잡초 잡초
  • 1001
  • 0

첨부 1


방언의 유익 (고전 14: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린도전서 14장 18절)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120여 명의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일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오순절이 이르매 갑자기 방안에 큰 소리가 나면서 바람이 가득한 것 같더니 각 사람의 머리 위에 불길이 임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서로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현대 오순절 사건은 1901년 미국의 벧엘성서학교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학장이었던 찰스 팔함 목사가 학생들에게 성령을 받은 증거가 무엇인지 성경을 연구해서 발표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사도행전을 열심히 공부했는데 연구한 것을 발표할 때 보니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령을 받으면 방언을 말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면 오늘날도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방언을 할 것이 아닌가. 우리 방언할 때까지 기도하자” 이래서 전교생들이 하나님 앞에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했는데 그 중에 오스만이라는 여학생이 제일 먼저 성령 충만을 받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머지 학생들도 더욱 뜨겁게 기도하여 결국 모두가 방언을 하고 성령 충만의 뜨거운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5년 후인 1906년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거리에서 시무어 목사님이 설교하던 중 갑자기 성령이 임하여 많은 사람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는 아주사 집회의 불길은 그 이후에 유럽, 남미,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로 퍼져 오늘날 성령운동의 시금석이 됐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때와 같이 성령 충만을 체험하면 대개 방언을 말합니다. 방언의 유익을 깨닫고 난 다음에 방언을 적절히 사용하면 우리 신앙에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1. 방언 기도는 성령님이 우리의 입을 통해 기도해 주시는 보혜사의 역할

보혜사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곁에 계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눈에 안 보이지만 바람 같이 항상 우리 곁에 있어서 우리를 도우려고 애를 쓰시는 것입니다. 이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직접 기도해 주는 것이 방언 기도입니다. 이는 기도할 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손을 모으고 있으나 말을 잘 못해서 더듬더듬 할 때 어머니가 어린 아이의 손을 덥석 잡고 대신 기도해주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린 아이가 기도하는 것보다 어머니가 유창하게 대신 기도해주는 것이 하나님 앞에 훨씬 빨리 상달되는 것처럼 우리가 더듬거리고 기도를 잘 못하는데 성령께서 보혜사가 되셔서 직접 우리의 입을 통하여 방언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신속히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절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방언은 사람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방언하는 것을 자랑하려고 사람들이 있는 데서 고함을 치고 방언을 하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방언은 하나님 들으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언은 비밀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심지어 마귀들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방언은 오직 내 속에 있는 성령님이 나를 위해서 하나님께 비밀로 기도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비밀 통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언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2. 큰 시련과 고난으로 기도하지 못할 때 방언으로 기도함


우리가 어지간한 고난을 당할 때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엎드려서 “하나님, 고통스럽고 괴롭습니다. 도와주시옵소서”라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너무 기가 차면 기도가 안 나옵니다. 정신이 아득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기도는 해야 되겠는데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숨이 넘어가는 것 같고 사람이 돌아 버릴 것 같습니다. 그때 성령님을 의지하면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방언을 통해 직접 기도해 주시므로 그 어려운 고난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이 철야 기도할 때 보면 초저녁에는 기도를 열심히 하다가 초저녁이 지나가면 꾸벅꾸벅 졸고 할 말이 없어서 기도를 못합니다. 저도 50년을 목회했지만 1시간만 우리말로 기도하고 나면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오래 기도하려고 해도 할 말이 있어야 기도를 하지 할 말이 없는데 어떻게 기도합니까? 

그러나 방언 기도를 하면 다릅니다. 우리가 우리말로 기도하다가 말이 끊어지고 할 말이 없으면 그 다음에는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방언은 내가 노력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직접 내 입을 통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방언으로 잔뜩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내 말로 기도할 수 있으면 방언을 그치고 우리말로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또 기도가 막히면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이 말하기를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나는 말로써 기도하고 영으로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또한 말로써 찬송하고 방언으로 찬송합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큰 시련과 고난에 처했을 때 영과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송하면 위로와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버스 운전기사를 남편으로 둔 우리 교회 자매님 한 분이 성경 공부에 참석했습니다. 강사님이 한참 말씀을 전하는데 마음이 막 갈급해서 기도가 나옵니다. 지금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 혼자서 고함치고 기도할 수가 없어서 입을 다물고 엎드려서 조그마한 소리로 방언 기도를 억세게 했습니다. 방언을 한참하고 나니까 마음이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집에 돌아갔는데 저녁에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하는 말이 “오늘 누가 나를 위해서 기도했을 것이다. 안 그랬으면 내가 죽었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시외버스를 운전하고 경사진 곳으로 올라가는데 버스가 고장이 났습니다. 그래서 승객들을 다 내려놓고 혼자서 버스를 고치는데 그만 버스가 뒷걸음치면서 벼랑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거기에 떨어졌으면 틀림없이 죽었을 것인데 벼랑으로 밀려나가던 차의 앞바퀴가 벼랑 끝에 달랑달랑 달렸습니다. 그래서 살살 기어서 차에서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앞바퀴가 떨어지면서 벼랑으로 차는 추락했습니다. 순식간에 죽을 수도 있었는데 누가 꼭 떨어지는 차를 막아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알아보니까 아내가 성경 공부하던 시간에 기도가 하고 싶어서 기도했던 바로 그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 부인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간절히 기도를 안 했더라면 그 남편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남편의 위급을 아시고 그 부인을 통해서 기도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성령이 마음속에 강하게 충격을 주시면서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고 하시거든 미루지 마시고 곧장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가족이나 친척, 아니면 이웃이라도 우리의 기도가 필요해서 하나님이 기도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 기도를 통해서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3. 마음을 다스릴 수 없을 때 방언으로 기도하면 마귀가 쫓겨나감

우리가 살다보면 마음이 다스릴 수 없이 슬퍼지고 비정상적일 때가 있습니다. 저도 이런 일을 종종 체험합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미운 사람도 없고 싸운 적도 없고 그렇게 답답한 일도 별로 없는데 마음이 이상하게 답답하고 슬프고 우울하고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고 마음이 싱숭생숭 하고 꼭 미쳐 버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내 마음이 왜 이렇습니까?’하고 기도하는데 방언 기도가 나옵니다. 방언 기도를 한참 하니까 귀신이 튀어 나가고 그 다음에 마음이 완전히 쾌활해지고 편안해지고 기뻐지고 즐거워지는 것을 여러 번 체험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정상적으로 마음이 슬퍼지고 괴로워지고 억압이 다가오고 고통이 다가오고 ‘이럴 리가 없는데, 답답한 일이 없는데 왜 이럴까?’하게 되는 것은 마귀가 누르는 것입니다. 그때 그대로 두면 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기도하면 무슨 마귀든지 쫓겨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사람의 심리는 90%가 잠재의식이라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으로 돼있고 우리가 의식하는 마음은 10%밖에 없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을 견디지 못하면 전부 잠재의식 속에 집어넣어 버립니다. 옛날에 얻어맞았던 것, 옛날에 미웠던 것, 옛날에 박대 받았던 것, 자랄 때 부모에게 사랑을 못 받았던 것, 원한이 있는 것은 다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만 실제로는 마음속에 다 가라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내가 어려운 고통을 당하면 이것이 떠올라서 온갖 정신적인, 육체적인 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강물이 평소에 흘러갈 때 죽은 강아지도 던져 놓고 새도 던져 놓고 돌멩이도 던져 놓고 거름더미도 던져 놓으면 강물바닥에 전부 가라앉기 때문에 안 보이고 위에는 맑은 물이 흘러서 강이 전부 맑아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홍수가 나서 강이 한번 뒤엎어지면 밑에 있는 쓰레기와 죽은 짐승의 시체와 더러운 것들이 다 위로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는 여러 가지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생각이 들어있습니다. 평소에는 안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렵고 고통당할 때 이것들이 다 떠올라서 우리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우리가 청소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의 잠재의식을 청소해 주는 것입니다. 어릴 때 고통당한 것, 상처 입은 것, 해를 입은 것, 원한, 슬픔, 괴로움, 마음 밑에 숨어 있는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방언을 할 때 청소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언 기도하면 마음이 건강한 마음이 되고 치료받은 마음이 됩니다. 성령이 청소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고침 받고 평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이 다스릴 수 없이 슬퍼지고 비정상적일 때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럴 때 마귀는 쫓겨나가고 마음속에 있는 모든 쓰레기 더미는 청소되고 우리 마음이 치료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우리가 방언을 못하게 합니다. 방언 기도하면 “야, 그것은 네가 하는 기도지 성령이 하는 기도가 아니다”라고 자꾸 우리를 협박하는 것입니다. 그 협박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방언은 성령이 우리를 통해서 하는 것이지 우리가 만들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4.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잃었을 때 방언으로 기도함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에 기쁨이 안 생길 때가 있습니다. 밥도 먹고 옷도 입고 집도 편안한데도 마음이 기쁘지 않고 우울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기뻐하는데 왜 나는 기쁘지 않을까?’ 마음이 평안하지 않고 늘 불안합니다. 그렇게 그 마음에 기쁨이 없고 불안할 때 치료하는 것이 방언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기도해 주시면서 불안과 슬픔을 없애버리고 안식과 기쁨을 갖다 주는 역사가 방언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교회든지 가보면 방언을 많이 하는 교회는 교인들이 다 활기차고 생기가 넘칩니다. 마음에 안식과 기쁨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교인 중에 한 사람이 이런 간증을 제게 했습니다. 쌍둥이를 낳았는데 둘째 애가 밤에 잠을 자다가 깨면 밤새도록 웁니다. 말을 겨우 배우기 시작했는데 더듬거리며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무서운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무서운 꿈을 꾸기 때문에 자다가 일어나서 새벽까지 벌벌 떨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매달리는 것입니다.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를 해도 안 되고 정신적으로 어린아이가 완전히 위축됐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어느 날 저녁에 아이가 또 일어나서 막 울부짖기에 머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 나는 왜 이런 일이 우리 아이에게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성령께서 아시니 고쳐 주십시오”하고 기도하면서 방언으로 한 시간쯤 기도하니 애가 그냥 조용히 가라앉더니 잠을 잘 잤습니다. 그 이후로는 다시는 밤에 깨어 일어나서 울지 않더랍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무서운 꿈을 꾸고 울었는데 방언으로 기도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평안과 기쁨을 주어서 어린아이가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건강하게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자리가 사납고 마음에 안식과 평안이 없으면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5. 개인적인 신앙의 덕으로 타인보다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함

방언을 하면 타인의 유익보다도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신앙의 덕이 생깁니다. 덕을 세운다는 것은 벽돌을 한 장씩 한 장씩 쌓아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덕이 되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신앙의 벽돌이 한 장씩 한 장씩 쌓아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신앙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4절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좋은 설교를 들으면 큰 은혜를 받고 덕을 얻는 것처럼 우리가 방언으로 유창하게 기도하고 나면 개인적으로 큰 은혜를 받고 신앙의 덕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면 좋습니다. 지역장, 구역장님들은 지역과 구역을 인도하러 가기 전에 한 시간쯤 방언 기도를 하고 가십시오. 그리고 나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은혜롭고 덕스럽고 놀라운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설교하기 전에 언제나 방언으로 기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방언으로 기도하면 제 혀에 기름이 부어지고 제 마음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여서 설교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 성령운동을 하고 방언을 하기 시작할 때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상한 말을 하는데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사이 우리 한국에 성령 운동하는 교회 치고 방언 안 하는 교회가 있습니까? 방언한다고 미쳤다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급속도로 부흥되고 120여 년만에 천만이 넘는 신자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주셔서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므로 믿음이 강해지고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은혜가 넘쳐나서 담대하게 전도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한 것도 성령을 받고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옛날에 서대문에서나 여의도 초창기에는 얼마나 방언으로 많이 기도했는지 교회에 들어가면 방언 기도 소리가 크게 들렸는데 요사이는 그런 게 없어졌습니다.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 번 방언을 하면 우리의 신앙이 새로워진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 우리 자신이 많은 유익을 얻고 상상을 초월한 신앙의 힘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너무 과식하면 몸에 해로운 것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은사인 방언도 질서 있고 절도 있게 해야 정말로 귀한 축복이 됩니다. 목사님이 설교하시는데 혼자서 고함을 치고 방언을 하면 그것은 절도가 없는 것입니다. 찬송하는데 자기는 찬송을 안 하고 방언만 하면 절도가 없습니다. 

방언은 사람들 들으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통성 기도할 때나 집에서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할 때, 산기도 갈 때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들에게 시험이 안 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질서하게 자기 과시를 위해서 하면 교회와 하나님께 누를 끼치게 되지만 질서 있게 하면 굉장한 축복이 됩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로 제일 많이 주신 것이 방언 기도인 것입니다. 

다른 은사는 선택적으로 받지만 방언의 은사는 누구든지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9절로 40절에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한때 하다가 안 하는 사람은 오늘부터 새로운 각오로 방언을 하십시오.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십시오. ‘꼭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오늘날은 성령을 선물로 주는 시대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해야 우리가 기초 무장이 돼서 마귀와 싸우고 세상과 싸워서 이기는 승리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이겨 나갈 수가 없습니다. 보혜사가 와 계셔도 와 계신 줄도 모르고 도움도 못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기도하면 보혜사의 도움을 끊임없이 받을 수 있습니다. 방언을 통해서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믿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꼭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 기도 -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무장시키기 위해서 성령을 주시고 그 무장 중에 가장 보편적인 무장으로써 방언을 주셨습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다 방언을 말했습니다. 오늘날도 성령 운동하는 사람들은 다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하고 방언을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열심을 내어 기도해서 성령 충만하고 방언을 말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방언을 했다가 안 하는 사람은 새롭게 불 일 듯이 하여 방언기도를 생활화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조용기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