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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된 성공은? (창 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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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성공은? (창 45:1~8)
 

1. 성공을 향하여

성도 여러분, 성공하고 싶으시죠? 사람은 누구나 성공을 꿈꾸고 그것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도대체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사실, 성공이라는 것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말이며, 또 상당히 주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를 성공이라고 말하면서 자기 나름의 성공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죠. 그래서 성공의 정의가 다 다른 것입니다. 

그래도 굳이 성공의 정의를 내려야 한다면, 아마 다음의 정의가 타당하지 않을까요? “모든 생물은 태어나면서부터 경쟁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 원하는 것을 얻기에는 자원과 기회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성공의 욕구는 모든 사람에게 있지만 성공하기 위한 자원과 기회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경쟁을 통하여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을 “성공”이라고 부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사람들이 말하는 이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지난 해 말, 어느 기관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 누구냐?’를 묻는 설문조사가 있었습니다. 2008년도, 우리나라 각 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누구였을 것 같습니까? 1위는 김연아 선수였습니다. “세계피겨요정”이라는 명예도 대단하고, 또 19세의 소녀가 지난 한 해 동안 약 50억 원의 돈을 벌었다는 것도 대단한데요, 앞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많은 사람으로도 꼽혔습니다. 두 번째는 이명박 대통령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네 번째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다섯 번째는 가수 ‘비’ 순(順)이었습니다. 이 분들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아마 여러분들도 이의(異議)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성공하여 이 이름의 반열에 여러분의 이름을 올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성공에 대한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의 방법을 알려주는 유명 인사들의 경험담이나 성공 관련 책들이 여전히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것이죠.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공하려면 지금부터 아이스링크에 나가서 피겨스케이트를 배워라!’ ‘성공하려면 정치인이 되어라!’ ‘성공하려면 파머 머리를 하고, 모피 목도리를 한 외투를 입어라!(F4)’ 좀 더 구체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목표를 정하라.” “성공하기 위해 마음을 굳게 먹으라.” “성공하기 위한 방법, 노하우를 배워라.” 

그러나 오늘 본문이 말하는 성공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말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2. 성공한 사람 요셉

1) 노예, 성추행범이 총리가 되다!

요셉은 세상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것도 최악의 조건을 이겨내고 이룬 성공이었지요. 요셉의 생애는 정말 감동적이고, 가슴 뭉클한, 인간 승리 그 자체였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로 야곱이 자신의 정실 부인으로 여겼던 라헬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장남 르우벤이 있었지만 요셉을 장남처럼 사랑했습니다. 게다가 라헬이 둘째를 낳다가 죽자 야곱의 사랑은 더 극진했습니다. 그런 사랑 때문인지,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 받으면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신앙 좋고, 게다가 큰 꿈까지 품은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열 명의 형들이 이런 요셉을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형들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자신들이 양을 치는 곳을 찾은 요셉을 처음엔 죽이려다가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버렸습니다. 그렇게 노예가 되어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다 했습니다. 온갖 고생을 다 하던 중,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보디발의 모든 재산을 맡고, 그 온 집의 살림을 책임지는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성공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지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여러 차례 끈질기게 유혹하다가 전혀 유혹을 받지 않는 요셉에게 분노하여 도리어 요셉이 자신을 성추행했다는 추접하고 수치스러운 죄를 뒤집어씌워 감옥에 들어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들어가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그 10년을 감옥에서 고생을 했습니다. 

어느 분이 그러더라고요. “요셉이 감옥에서 살아난 것은 기적이다!” 노예가 법을 어겼을 경우, 그것도 주인의 아내를 욕보이려 했다면 그 노예는 그 자리에서 목이 잘리거나 돌에 맞아 죽어도 모자라게 여긴 것이 당시 형편입니다. 그러니 죽지 않고 살아남은 그 자체부터가 기적이죠. 게다가 고대 감옥은 지하인데, 그 습한 지하 감옥에서 10년을 버텨낸 것도 기적입니다. 또한 언제 풀릴 지 소망도 없이 10년의 세월을 보내는 것 역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탈옥수의 대선배인 빠삐용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지요? “가장 큰 고통은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지하 감옥에서의 10년을 아무런 소망이 없이 살다보면 스스로 미쳐서 죽을 수도 있었지 않겠습니까? 아님 습기 찬 지하 감옥이 어둠의 세계이기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요셉은 그 10년을 무사히 보낸 후, 화려하게 성공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요셉을 그 지독한 어둠, 견딜 수 없는 고난과 시련 가운데 있던 그를 끌어올리셨기 때문이지요. 마침 죄를 짓고 들어온 애굽의 두 장관의 꿈을 하나님의 지혜로 풀어준 것이 계기가 되어 전무후무한 풍년과 그 뒤를 이은 지독한 자연 재앙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적인 꿈을 꾼 바로의 꿈을 해석한 것을 계기로 대(大) 애굽, 당시 세계를 통치하던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형들에게 버림 받고 노예가 된 지 20여 년, 성추행범이라는 치욕스러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지 10년, 그 지독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것도 기적인데, 애굽의 총리, 애굽 제국의 제2인자라는 놀라운 성공을 이룬 것입니다. 그야말로 기적적인 성공이었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인내한 사람은 요셉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과 번창과 크게 되고 높게 되는 복이 임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드디어 꿈이 이루어지다!

요셉의 성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흉년이 들어 모든 세계가 기근에 빠졌을 때, 온 세계가 양식을 구하려고 애굽으로 오기 시작했습니다. 애굽과 가까운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던 야곱의 가족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마 요셉은 형들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열 명의 형들이 양식을 구하려고 애굽으로 왔고, 총리인 요셉 앞에 섰습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동생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요셉은 그들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요셉에게 20 년 전의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로서 정말 어제 일같이 생생했기 때문입니다. 형들이 요셉 앞에 선 그 순간, 얼마나 가슴이 뛰고 떨렸겠습니까? 자기를 팔아 노예가 되게 한 지난 일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구치면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감정을 누르면서 형제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서 왔느냐?” “팔레스타인에서 왔습니다.” “너희 열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되느냐?” “예, 저희는 모두 한 사람의 아들들입니다.” “그래, 그러면 너희의 아버지는 누구시냐?” “우리 아버지는 야곱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요셉이 묻는 질문에 굽신굽신하면서 묻는 대로 대답을 했습니다. 형들이 요셉 앞에 부복하여 애굽의 제2인자, 그 온 땅의 주와 같은 자신들의 동생 앞에서 굽신거리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 순간이 요셉에게 어떠했겠습니까? 그 순간은 옛날 자신들이 무시했고, 그 꿈 때문에 요셉을 더 미워했던 요셉의 꿈이 그대로 이루어진 순간이었습니다. 요셉의 곡식 단이 일어섰더니 형들의 곡식단들이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는 절한다고 했던 바로 그 꿈,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신에게 절한다고 했던 바로 그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창37:5~11).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무수한 어려움을 당하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감옥에 가기도 하고, 또 억울한 누명을 덮어쓴다고 할지라도, 그를 반드시 이기게 하십니다. 악을 행한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악은 선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불의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죄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팔아먹은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그 어떤 경우에라도 승리하는 것입니다. 

물론 잠시잠간은 그들이 이기는 것처럼, 그들의 도모가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그렇게 살았던 요셉의 형들은 여전히 양의 노린내와 똥오줌 냄새가 그대로 베여있는 목동일 뿐이었습니다. 반면에 끝까지 하나님 편에 선 요셉, 말씀대로 살려고 애쓴 요셉,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 달콤하고 끈질긴 유혹을 뿌리친 요셉은 성공했습니다. “당신의 꿈만큼 당신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잡지에 실린 광고 카피입니다. 

그 광고의 사진은 한 아이가 미래를 바라보는 가운데 우주선이 발사되는 모습을 담고 있었습니다. 제목 밑에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당신이 가리키는 곳으로 성장은 따르게 마련입니다.”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꿈꾸었고, 실제로 그것을 만들었습니다. 왓트는 끓는 물주전자를 보다가 증기기관을 꿈꿨고, 그것을 만들었습니다. 점점 그 움직임이 사람과 비슷해져가는 로봇이 우연히 만들어졌을까요? 꿈이 만들었습니다. 사람의 꿈에는 그만큼 놀라운 힘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만약 그 꿈이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라면 성공의 확률은 그만큼 높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잡고 소망을 놓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되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 만 바라보는 자, 오직 하나님 만 의지하는 자, 오직 약속의 말씀만 붙드는 자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주변과 이 세상을 향하여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3) 이보다 더 중요한 성공

그런데 여러분, 요셉의 성공은 이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요셉의 성공의 진정한 모습은 따로 있었습니다. 형들을 만난 요셉은 형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나의 작업을 했습니다. 그들을 애굽을 정탐하러 온 간첩으로 몰아서 3일간 감옥에 집어넣습니다. 그러고는 “너희들의 부친이 기다린다고 하니까 고향으로 돌아가게는 해 주겠다. 양식을 가지고 가되, 너희 중 한 명을 인질로 남겨두고, 다시 올 때는 막내를 데리고 와라. 그래야 인질을 풀어주고 그 다음 양식도 주겠다.” 형들은 어쩔 수 없이 둘째인 시므온을 인질로 남겨 둔 뒤,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에게 보고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저희들을 정탐꾼으로 보고 우리 가정사와 옛날에 죽은 요셉에 대해서까지 자세히 물었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믿지 않았고, 결국 시므온을 인질로 붙잡아 놓고서는 다음에 올 때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아들들의 말을 들은 야곱은 이상한 예감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전에 아버지가 자신들에게 보냈던 요셉을 지켜주지 못했고, 믿을 수 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던 적이 있었기에 야곱으로서는 아들들이 미심쩍었습니다. 비록 인질로 붙잡혀 있는 시므온과 가장을 잃은 시므온의 가족들이 불쌍했지만 그렇다고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낼 수도 없었습니다. 

사랑했던 라헬의 유일한 아들인 베냐민을 어떻게 보냅니까? 그러나 ‘굶는 데 장사 없다’고 먹을 양식이 다 떨어졌고, 어린 손자손녀들이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데는 야곱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참다 참다 안 되어서 아들들에게 베냐민을 딸려 보내면서 가나안 지역의 특산물과 두 배의 돈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요셉 앞에 나머지 11명의 형제, 자신까지 12명이 함께 모이게 되었습니다(43:15). 그리고 20여 년 만에 동생 베냐민을 만난 요셉은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급히 안방으로 들어가 실컷 울었습니다. 한 어머니, 한 배에서 나온 동생이니 그 감격이 오죽 했겠습니까? 그리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그들을 다시 가나안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의 곡식 자루에다 자신이 귀중히 여기는 은잔을 집어넣어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군인들을 보내어 자신의 잔을 도둑맞았다면서 그들의 짐을 풀어헤치도록 했습니다. ‘총리께서 소중하게 쓰시던 은잔이 없어졌으니까 찾아보아야 되겠다.’하면서 뒤져보니까 베냐민의 곡식 자루에서 그 은잔이 나왔습니다. 

군인들은 베냐민에게 ‘너는 우리와 함께 가야한다. 어떻게 그렇게 큰 은혜를 입고서도 은잔을 훔칠 수가 있었느냐?’고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열 한 명의 형제들은 벌벌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베냐민만 애굽으로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베냐민 없이 자신들만 가나안으로 가는 것은 아버지 야곱을 두 번째 죽이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 한 명의 형제가 몽땅 다시 요셉 앞에 섰습니다. 그 자리에서 유다가 나서서 아주 감동적인 변호를 했습니다. ‘총리 각하, 우리 아버지는 열 두 형제를 두셨는데 그 중 하나가 없어졌습니다. 그 후로 아버지는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막내 베냐민을 통해 위로를 얻으셨는데, 만약 이 베냐민을 여기에 두면 우리는 가나마나 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는 돌아가실 겁니다. 아버지의 생명과 이 아이의 안전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우리를 다 결박하십시오. 아니면 저라도 결박하십시오. 그리고 막내동생을 보내서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유다의 달라진 모습, 진심으로 지난 과거를 회개하고, 또 진심으로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염려하는 모습으로 변화된 것을 본 요셉은 형제들 외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나가라고 하고는, “내가 요셉입니다.” 하면서 자신을 밝혔습니다. 아마 형제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죽이려다가, 마른 우물에 던져 넣었고, 그리고 상인들의 손에 노예로 팔아버렸던 그 동생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지금 자신들 앞에 있으니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놀랄 뿐 아니라 두려워했습니다. 자신들의 소행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형제들을 향하여 요셉이 한 말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형님들, 가까이 오셔서 저를 보시고 확인해 보세요. 제가 형들이 인신매매하듯이 팔아버린 바로 그 요셉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난 세월 동안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고, 또 복을 받아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형님들이 저를 팔았지만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형님들이 판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다 애굽으로 인도하려고 저를 먼저 보내셨고, 하나님이 이 가난과 흉년을 대비하여 우리 식구들을 다 구하시려고 나를 이곳에 보내어서 이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놓으시고, 속히 가셔서 아버지를 모시고 이리로 오십시오. 아직도 기근이 5년이나 남았습니다(4~8).” 

여러분, 정말 가슴 뭉클한 장면이지 않습니까? 

미국의 학자들이 ‘가정이 왜 불행하게 되고, 왜 무너지느냐?’를 조사하여 그 답을 두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하나는 과거를 물고 늘어지는 과거 집착형의 사람과 그 가정이 불행하게 되고 쉽게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상대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고 늘 들추어내는 사람의 가정이 불행한 가정이요 무너지기 쉬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자주 불러야 하는 노래는 “과거를 묻지 마세요.”입니다. 아픈 상처를 서로 싸매어 줄 생각은 안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 들추어낼 때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런 가족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낫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는 모든 것을 다 덮어주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덮어주고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은혜 받았으니 은혜 베풀고, 내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고, 내가 죄사함 받았으니 나에게 지은 죄를 용서해 주고, 내가 긍휼을 받았으니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 요셉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또 요셉에게 있어서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요셉은 원수와 같은 그 형제들에게 보복을 해도 시원찮을 것인데, 도리어 그들을 위로해 주면서 형들의 못된 짓과 자신이 형들로 인하여 죽을 고생을 한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한 성공이 무엇입니까? 삶의 시련기를 이겨낸 것, 아픔을 극복한 것, 실패를 이겨낸 것, 그리고 자신이 원하고 꿈꾼 것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성공은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리고 그 가운데서 자신을 힘들게 하고 괴롭힌 그 모두를 주님의 눈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렵게 성공했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엉망인 사람, 돈은 벌었지만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사람, 혹독한 시련기를 지내면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닮은 것이 전혀 없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실패자입니다. 하나님을 더 많이 알게 되는 것, 하나님을 더 닮게 되는 것, 하나님의 눈과 주님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3. 진정한 성공은?

설교 중 잠시 언급했던 <빠삐용>은 ‘앙리 샤르에르’라는 사람으로서 실제 인물이며, 아무도 탈옥할 수 없다던 지옥의 섬에서의 탈출은 실화입니다. 

끝까지 자유에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빠삐용은 수 십 미터의 절벽 아래 바다로 야자열매를 채운 자루와 함께 뛰어듭니다. 그리고 높은 파도 가운데서 그의 머리가 가라앉았다가 떠올랐다가를 반복하면서 그는 점점 푸른 바다로 멀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끝없는 수평선으로 빠삐용의 모습이 작아져가는 가운데 스크린에는 끝을 알리는 자막이 나오면서 영화는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수용소 섬을 탈출 한 앙리는 남미 곳곳을 전전하면서 온갖 일을 다 하면서 돈을 모았습니다. 당시 프랑스 형법상 30년이 지나면 범죄시효가 만료되는데, 시효가 만료된 1967년에 앙리는 파리로 돌아갔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자신에게 살인죄 누명을 씌웠던 검사와 거짓 증인들을 죽이기 위해서였습니다. 1930년, 당시 스무 살이던 앙리는 파리 시내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 근처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실적에 눈이 먼 검사는 앙리를 살인자로 체포했습니다. 그리고 거짓 증인을 내세워 앙리에게 유죄판결을 내려 지옥섬의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파리로 돌아온 앙리는 자기가 젊었을 때에 다녔던 거리, 부모와 함께 걸었던 길, 친구들과 놀던 장소를 거닐면서 서서히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살인범 누명을 쓰고 체포되었던 바로 그 장소에서 마음을 바꿉니다. 거기서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복수를 포기한 대가로 다시는 저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시겠습니까?” 
그러자 그의 내면 깊은 데서 다음과 같은 말이 들렸습니다. 
“앙리 샤르에르야, 너는 이겼다! 너는 자유롭고 사랑받는 미래의 주인공으로 여기에 있다. 네 원수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라. 그들은 과거의 한 부분일 뿐이다. 너는 여기에 있다. 마치 기적처럼! 그리고 지금 네가 그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이 비극적 일에 관계된 사람 중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너 자신이다.”
앙리 샤르에르는 악을 악으로 갚기 위해 간 그곳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37년 동안 분노와 저주와 복수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가 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이지요. 그리고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셨던 진정한 성공이며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성공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이 누구시며,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 성공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자신의 삶에서 늘 함께 해 주신 그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성공입니다. 자신의 어떠함, 즉 자신의 뜻이나 감정이나 주장 모두 포기하고 오직 주님의 말씀 만 드러내고 거기에 순종하는 것이 성공입니다. 그리고 아프게 했고 괴롭고 힘들었던 과거를 주님의 선물로 알고 감사하는 것이 성공입니다. 또한 주님의 눈과 주님의 심장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성공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과 태도를 가진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님을 닮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성공이지요. 

여러분, 이 정도는 되어야 성공한 성도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돈으로 성공하기보다, 명예로 성공하기보다, 그 어떤 것으로 성공하기보다, 바로 이와 같은 성공의 자리에 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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