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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과거와 현재가 다른 사람들 (행 4: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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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다른 사람들 (행 4:13~22)
  

1976년 6월 27일, 이스라엘을 출발해서 프랑스로 향하던 프랑스 여객기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에게 공중 납치되었고, 비행기는 아프리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강제 착륙했습니다. 약 일주일 후 이스라엘은 7월 3일 전 세계가 놀랄 인질 구출 작전을 펼쳤습니다. 무려 4천 킬로를 비행하여 특공대원들을 엔테베 공항에 투입했고, 한 시간만에 인질들을 구출했습니다. 이 작전은 아무도 생각지 못한 치밀하고 정교한 구출 작전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세계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이스라엘의 정보 기관인 <모사드>입니다.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사드의 정보력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모사드는 미국의 CIA나 소련의 KGB를 능가하는 정보력을 가지고 있음을 여러 차례 입증해 왔습니다. 

어느 사회나 체제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보 조직을 운영합니다. 이것은 비단 오늘만의 일은 아닙니다. 역사 드라마를 보면 소위 <세작>이라고 불리는 정보원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성경이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때도 분명히 정보원들이 개입되었을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세력과 예수님 공동체는 상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인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바로 접촉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 사이를 연결시켜 만나게 해 주고, 예수님을 팔도록 주선한 누군가가 있었을 것입니다. 

한번 상상의 날개를 펴서 당시로 가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대제사장 무리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죽었으므로 더 이상 자신들을 비판하고 성전을 뒤집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제자들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겠지요. 그래서 명령했을 것입니다. <예수 추종자들을 잘 감시해서 동향을 보고하라!> 정보원들의 보고가 올라옵니다. <아무 걱정 마십시오. 그들은 지금 숨어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겁에 질려 문까지 걸어 잠그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예수님의 무덤문이 활짝 열리고, 시신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도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정신을 차려 보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은 당황해서 비상 회의를 소집하고 군인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돈을 주어 입을 막았습니다. <누가 묻거든 너희가 잠든 동안에 예수의 제자들이 와서 시신을 훔쳐 갔다고 해라>

그리고 큰 소란 없이 몇 일이 지났습니다. 정보원들을 시켜 예수의 제자들을 더 철저히 살피게 했지만, 예수가 부활했다는 말들이 떠도는 것 외에는 별 이상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죽은 사람이 부활했을 리가 없으니, 시간만 지나면 다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예수의 제자들에 대한 추가 보고서를 보고는 더욱 안심했습니다. <걱정 할 게 없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큰 일을 벌일 사람들이 못됩니다. 그들은 예수만 없으면 힘을 못씁니다. 더구나 그들은 출신이 보잘것없습니다. 그들은 대부분이 어부였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리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들은 고등 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좀 배운 사람은 예수를 판 유다인데, 그도 자살했으니 이제 그 무리를 이끌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알아보니, 그 수제자인 베드로라는 사람은 지난 번 예수가 죽기 전 대제사장님 관저에서 재판을 받을 때 거기 있었는데, 자기는 ‘예수를 전혀 알지도 못한다’고까지 말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후 오십 일 쯤 지났을 때, 이상한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는 오순절 절기였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절기가 되면 여러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 때문에 예루살렘이 발 디딜 틈도 없게 됩니다. 그 때 무슨 일이 생기면 통제가 힘듭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치안 책임자들은 바싹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우려했던 일이 생겼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니라, 한꺼번에 모두 등장했고, 예루살렘의 그 많은 순례자들 앞에서 예수가 부활했고, 자신들이 증인이라고 외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놀라 달려가 보니, 수많은 사람이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울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려 3천명 정도가 예수를 믿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당황하기도 하고, 화가 치밀었지만, 너무 많은 순례자들의 눈 때문에 제자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후에는 성전 미문 앞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 장애인이 두 다리로 멀쩡하게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 장애인은 자신들도 늘 보아 알던 사람이었습니다. 가보니 정말 거지가 보이지 않았고, 그가 두 다리로 성전 뜰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할 수 없이 또 모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 걱정스런 빛으로 왔습니다.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결과 일단 잡아오게 했습니다. 한번 그들을 만나보고 판단하자고 생각했습니다. 4장 1절 이하를 보세요.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드디어 회합이 열리고 사도들을 그 앞에 끌고 왔습니다. 5절 이하를 보면 이렇습니다.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그 다음 어떻게 되었나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서기관들을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대답을 시작했는데, 정보 보고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눈앞의 사람들은 결코 무식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겁에 질려 문을 닫고 숨어 있던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조금도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도 담대했습니다.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라고 했습니다. 배운 게 없는 평범한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너무 당당해서 이 사람들이 예수의 추종자가 맞는지, 실수로 딴 사람들을 데려온 게 아닌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분명히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13절 후반부를 보세요.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라고 했습니다. 

더구나 눈앞의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까지 있었습니다. 그 증거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 장애인 거지였습니다. 그가 지금은 성전 미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눈앞에 건강한 모습으로, 천사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온 예루살렘 주민들이 다 아는 일이었습니다. 14절을 보면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고 했지요. 그들은 할말을 잃었습니다. 

당황한 그들은 제자들을 내보내고 의논했습니다. 그들은 우선 어찌할 수 없으니, 다시는 예수 부활의 복음을 전하지 말도록 위협하고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데려와서 위협을 했습니다. 18절을 보세요.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이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19-20절을 다 같이 읽어봅시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그 날 대제사장 무리들은 눈앞의 분명한 증거와 제자들의 당당한 말 앞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한 번 더 위협하고 놓아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날 수많은 예루살렘의 순례자들의 이목이 집중된 이 사건에서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어떻게 할 수 없어 놓아주었다는 소문이 퍼지지 수많은 사람들, 무려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제자들을 보낸 후, 대제사장 무리들은 허탈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정보 보고서가 잘못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정보 보고서는 틀린 게 아니었습니다. 13절의 말씀에 보면 <본래>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본래, 원래 제자들은 배운 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평범한, 저 북쪽 갈릴리 변방의 어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더구나 모든 것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는 연고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 무리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보고서가 과거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변했습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대제사장들은 그들이 과거에 예수와 함께 있었고, 그 예수 덕을 본 사람들이지만, 예수가 죽은 후에는 아무 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심각한 오해였습니다.

물론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성령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며, 예수님의 영입니다. 결국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죽임으로 제자들이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주님은 영으로 제자들고 함께 하는 분임을 몰랐습니다. 이게 그들의 오산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이 하는 말도 모두 성령님 안에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8절을 보세요.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은 과거지만, 성령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현재진행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미래에도 계속 진행될 미래진행형입니다. 주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같이 계십니다. 주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분입니다. 

수많은 예루살렘 주민들, 그리고 오순절에 방문한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에 비하면 예수님의 사람들은 정말 몇 명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루살렘을 뒤흔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거룩한 충격으로 몰고 갔습니다.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게 오늘 본문이 전해주는 내용입니다. 만약 당시에 신문이 있었다면, 1면 머릿기사로 대문짝만하게 실렸을 것입니다. 연일 뉴스 시간마다 집중 보도되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손을 놓고 이 일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베드로, 요한 등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앉은뱅이 장애인이었다가 나음을 입은 사람은 날마다 인터뷰에 응하느라고 바빴을 것입니다. TV방송마다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했을 것입니다. 반면에 성전 담당자들은 기자 회견을 열어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려고 애를 썼을 것입니다. <얼마 전 성전 뜰에서 소란이 있었지만, 관계 당국에서 조사하고 있다. 현재로선 더 발표할 게 없다> 이렇게 끝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눈을 돌리기 위해 오순절 축제에 관해 길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방법으로 막을 수 있나요?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는 예루살렘 안의 일이었지만, 조만간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로, 그리고 로마 제국 전역으로, 장차 땅 끝까지 퍼져갈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13절의 <담대하게>란 말이 이전 번역에서는 <기탄 없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꺼릴 기>와 <꺼릴 탄>이 합친 말입니다. 그래서 기탄은 두려워하고 꺼리면서 뒤로 후퇴하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 조금만 앞을 가로막아도 뒤로 도망갑니다. 그게 기탄입니다. 그런데 <기탄 없다>는 것은 아무 것도 꺼리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거칠 것 없이>, <막힘 없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제자들은 막힘이 없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의 그 무시무시한 모임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위세도 제자들의 입을 막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조금도 막힘 없이>, <거칠 것이 없이>,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이 되길 원합니다.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막힘 없이, 기탄 없이 살았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막히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막히지 않았습니다. 거칠 게 없었습니다. 골리앗도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 후 군대 장관으로서 무수한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강한 적들이 그를 막았지만, 그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무슨 힘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시편 18편 29절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할렐루야! 그 수많은 적을 향해 질풍노도처럼 달려갈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을 의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사울의 세력도,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블레셋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후편의 사람들, 사도행전의 사람들, 성령의 사람들은 전혀 다른 과거와 현재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과거엔 무능했으나, 이제는 성령 안에서 강해집니다. 과거엔 슬퍼했으나, 이제는 성령 안에서 기뻐합니다. 과거엔 패배했으나, 이제는 성령님 안에서 승리합니다. 과거엔 뒤로 물러갔으나, 이제는 성령님 안에서 전진합니다. 이렇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성령님의 사람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 주님의 성령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거침없이 살게 하시고, 막힘 없이 살게 하시고, 춤추며 살게 하시길 기원합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쌀쌀맞은 사람들의 시선도 복음을 증거하는 여러분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찾아오는 질병도 천국으로 나아가는 우리 걸음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의 오락과 달콤한 쾌락의 유혹들도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우리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사단의 그 어떤 시험도 여러분 가정의 화목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이곳의 열악한 영적 환경들도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길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온 세계를 덮친 경제 공황도 바르게 살고자 하는 우리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뚫고 나가십시오. 성령님과 함께 하십시오. 홍해도 이스라엘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난공불락의 요새인 여리고성도 이스라엘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공산주의 소련의 철의 장막도, 문화혁명의 죽의 장막인 중국도 복음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지금 러시아와 중국은 놀라운 복음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휴전선도, 두만강과 압록강도 복음을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북한 땅에도 복음의 꽃이 필 날이 올 줄 믿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유명한 <존 맥스웰> 목사님이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복면 괴인이 가는 길을 막고 하는 일을 방해하며 계속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그의 복면을 벗겨보니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여러분,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은 승리하지 못하게 만드는 적일 뿐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우리의 두려움이 우리 길을 막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 되면, 그 무엇도 우리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올해는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 탄생 200주년입니다. 온 세계에 링컨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특히 링컨을 가장 닮고 싶다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미국은 더합니다. 오바마는 모든 것을 링컨처럼 하고 있습니다. 그는 링컨이 대통령 선서 때 사용한 바로 그 성경, 링컨이 가장 좋아하던 역대하 7장 14절 말씀이 펼쳐진 그 성경 위에 손을 얹고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 취임 후 첫 식사 메뉴도 링컨이 먹었던 것으로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링컨은 막힘이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가난과 시련, 숱한 낙선과 실패도 그를 막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전쟁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흑인을 해방하겠다는 그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의 승리는 주님이 주신 승리였습니다. 성령님 안에서 그가 거둔 승리를 우리도 거두게 되길 기원합니다. 이 한 주간도 기쁨과 감격으로 좁은 삶의 길일지라도 펄펄 뛰며 살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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