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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악에서 떠나 선에 속하라 (벧전 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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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서 떠나 선에 속하라 (벧전 3:8~12)


우리 목회자들이 목회하는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은 처음으로 교회에 나온 분들의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첫 발을 내딛을 때에는 믿음이 없었지만, 교회에 나온 뒤부터 믿음이 나날이 자라나 새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는 것이 목회의 기쁨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들 중에는 아직 믿음이 없어서, 성품이 좋지 못하고 성질이 사납고 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꼭 마귀의 성품을 닮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 이렇게 계속 교회에 나오다 보면, 해가 갈수록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열심히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말씀을 듣는 가운데 은혜를 받아 변화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악한 성품이 다 사라지고 예수님의 성품을 가진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가 계속 부흥이 되고 좋은 소문이 나는 것은, 예수 믿고 변화된 성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변화된 성도들에게는 여러 가지 특징이 나타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언어의 변화입니다. 말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변화입니다. 믿음이 없을 때는 악한 말, 거짓말을 하던 사람이 믿음이 자라 변화되고 나면 이런 말을 하지 않고, 좋은 말만 골라서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악을 악으로 갚거나 욕을 욕으로 갚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복을 비는 말을 하는 것을 봅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이 말은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예수님께 들었던 말씀을 생각하면서 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전도하러 내어 보내실 때에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마10:12)』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집이 복 받을 집이든지, 복 받지 못할 집이든지 상관하지 말고 무조건 복을 빌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 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왜 항상 우리가 복을 빌어야 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복 받을 사람에게 복을 빌면 그 사람에게 복이 임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복 받지 못할 사람에게는 복을 빌면, 그 복이 우리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복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열심히 복을 비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데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친절이나 도움에도 ‘God bless you!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축복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합니다. 얼마나 좋은 전통인지 모릅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도 이런 축복의 말이 내 삶 속에서 흘러나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든지 복을 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남에게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을 보면,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 이니라』고 했습니다. 

비판을 받아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비판을 받고 싶지 않으면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누구도 남을 비판을 할 권리는 없습니다. 남을 비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비판한다는 것은 남이 ‘옳다’, ‘그르다’라고 말하면서 남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런 심판할 권리가 계신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고, 지혜와 지식이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일을 정확하 게 아시고, 분별하실 수 있는 참된 심판주이십니다. 

우리 인간은 남을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모든 일을 똑바로 알지도 못하고, 지혜와 지식도 없습니다. 이런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남을 심판할 수가 있을까요?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한 평생을 같이 살아 온 부부사이라도 알 수가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 우리가 남을 함부로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큰 죄악인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모든 사람에게 복을 비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할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복을 빌면서 살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우리 모두가 마음을 같이 하여 동정해야 합니다.

비판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고 동정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느냐, 비판하는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말이 달라집니다. 그 사람을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면, 동정하는 말이 나오게 되고 이해하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비판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의 허물을 들추어 안 좋은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느 편에 서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면, 예배시간에 큰 소리로 우는 아이가 장차 커서 훌륭한 찬양대원이 될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가 마친 뒤에 그 아이의 부모가 찾아와서, “목사님, 죄송해요. 제 아이가 울어서 예배를 방해했네요.” 이렇게 사과의 말을 합니다. 그러면 전 그 부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뭘요? 우리 교회에 세계적인 성악가가 나왔네요. 이 아이는 자라서 훌륭한 성악가가 되고, 찬양대원이 될 것입니다.” 라고 축복을 비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판하는 마음을 가지고 보면, “그 녀석, 부모 속께나 썩이겠구나! 누가 그 부모인지 모르지만 자식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했구나!” 이런 좋지 못한 말과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가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2. 형제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3. 겸손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남의 허물을 보기 전에 자신의 허물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을 함부로 비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고 복을 비는 것입니다.

4.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세상은 악한 사람들로만 가득 찰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달라야 합니다. 예수 믿고 은혜 받아 변화 된 우리 성도들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아니하고, 욕을 욕으로 갚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사람의 복을 비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우리가 이렇게 언제나 복을 빌어야 할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만세 전에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복을 비는 자가 되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이 나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은 복이 되기 위해서이고, 또 하나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아브라함처럼 복이 되어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복을 빌면서 살고, 좋은 말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남을 비판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말은 어떤 유익도 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항상 남의 나쁜 점만을 꼬집어 말하게 되면, 말하는 그 사람도 나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사람이 나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은 더욱 더 악한 마음을 가지게 되어, 더욱 나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그 사람의 좋은 점만을 말해 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남의 좋은 점은 생각하지 않고, 나쁜 점만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자식이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그 아이의 좋은 점만을 찾아서 칭찬하고 격려해 줍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이 자녀가 점점 더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련한 부모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식이 공부 못하는 것만 생각하고 지적을 합니다. “그 성적으로 네가 사람 노릇이나 제대로 하겠니!”, “이런 네가 참 한심하구나!”, “잘 될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더니, 넌 싹이 노랗구나!” 이와 같은 악담을 서슴없이 자녀들에게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며 자라는 자녀들은 더욱 더 어긋난 길로 갈 뿐입니다. 얼마나 불행한 아이들입니까! 잘못된 점만 지적하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복을 비는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세계적인 미국태생의 가수 마돈나는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무용반에 들어갔는데, 키도 작고 말도 잘 못하고 얼굴도 못생겼다고 반 아이들은 마돈나를 흉보며 놀려 댔습니?! ?. 마돈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러나 무용반 선생님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너는 참 예쁘게 생겼구나! 어쩌면 무용도 노래도 그렇게 잘하니? 넌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구나!” 하고 선생님은 마돈나를 칭찬했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칭찬을 받은 마돈나는 아이들이 아무리 놀려대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칭찬과 격려로 그녀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녀는 더욱더 무용과 노래를 열심히 하여 결국 세계적인 가수가 되었습니다. 이 마돈나는 가수로 성공한 뒤에 “어릴 적 선생님의 칭찬으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라고 말을 하면서 항상 선생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돈나는 그 선생님이 가난한 것을 알고 생활비도 주며, 병이 들었을 때는 병원비도 대주었습니다. 선생님의 장례식까지 다 치러 주며, 선생님의 죽음을 슬퍼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인정을 해주는 말, 칭찬을 해주는 말이 놀라운 축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언론의 대부분이 사회의 문제점만을 보도합니다. 그래서 신문을 읽으면, 이 나라가 절망적으로 보입니다. 소망이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걱정과 염려만 늘어납니다. 성도 여러분, 언론이 사회의 문제점만을 지적해이 나라가 살기 좋은 사회가 되었습니까? 오히려 이 사회는 더 황폐해져 갔습니다. 언론이 사회에 유익을 주려고 하면, 문제점만을 지적할 것이 아니라 좋은 미담기사도 보도해야 합니다. 바르게 사는 지도자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 좋은 일 하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이야기로 신문이 가득 채워진다면, 신문을 볼 때 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마음이 곱구나!’, ‘우리나라는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이 많구나!’ 하며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인격이 훌륭한 사람은 좋은 말만 합니다. 이런 사람의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만나고 싶고 가까이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인격이 비뚤어진 사람은 나쁜 말만 합니다. 이런 사람의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 사람의 말을 듣기도 싫고 영원히 안 만나길 바랄뿐입니다. 이런 사람들과 만나면 내 삶에 유익이 없고 해롭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나에 대해서도 나쁜 말만 할 것이 분명합니다.?? 

본문 9절을 보면,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 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왜 복을 빌라고 했을까요? 우리가 이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고, 복을 빌 때 복을 유업으로 받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복을 비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일평생 복된 삶을 살려면,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말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0~11절을 보면,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사람을 악하게 만들려고 쉽게 사용하는 도구가 바로 사람의 혀입니다. 사탄이 이 사람의 혀를 이용하여, 세상을 어지럽히고, 살기 어려운 어둠의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동물 가운데 사람에게 가장 해가 되는 동물은 호랑이나 사자가 아니라 모기입니다. 그 작은 모기가 일 년에 이백만명 이상의 사람 목숨을 거두어 간다고 합니다. 말라리아에 걸리게 하여 매년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그렇게 작! 은 모기가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작은 혀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는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고, 억울하게 하고, 슬프게 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말이나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선한 말과 사람을 화평케 하는 말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길이고 복 받는 길입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의인과 악인의 운명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시편 34편 12~16절을 보면,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 지어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이 시편의 말씀을 인용한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왜 악에서 떠나라고 하시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어주지만, 악을 행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 끊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좋은 말만 하는 의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잠언 18장 20~21절을 보면,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말을 하면 축복을 받지만 악한 말을 하면 그 말에 대한 대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고 사는 것이 혀에 달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실된 말만하고, 거짓된 말을 하지 마십시오. 축복하는 말만 하고 저주하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칭찬하는 말만하고 비판하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감사하는 말만 하고 불평하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긍정적인 말만 하고 부정적인 말은 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말만 하고, 믿음이 없는 불신앙적인 말을 하지 마십시오. 화평케 하는 말만 하고, 화평을 깨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덕을 세우는 좋은 말만 하고, 덕을 잃게 하는 나쁜 말을 하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말만 하고, 한 사람이라도 불행하게 만드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사람들에게 복 받게 하는 말만 하고 살면, 우리도 복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도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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