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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본으로 돌아가자 (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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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으로 돌아가자 (전 5:1~7)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혜로운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라 하셨고, 어리석은 자는 모래 위해 집을 짓는 자라 하셨다. 평상시에는 외형상 달라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그 결과가 나타난다. 어떻게 되는가? 반석 위에 세운 집은 비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모래 위에 세운 집은 쉽게 무너지고 만다. 왜 그렇게 되는가? 기초가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기초가 견고한 사람은 어떤 시련과 풍파가 닥쳐와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초가 약한 사람은 작은 시련에도 무너지고 많다. 그러나 말년에는 모두가 다 허약해지고 무너진다. 그래서 이구동성 ‘인생은 허무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말년에 양노원에서 지내는 어르신들을 보면 무너지기 직전에 있는 시골 초가집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안좋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권사님들을 보면 당당하다. 왜 그런가? 육신의 장막은 무너지나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결코 무너지지 않는 하늘 집을 바라보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전도서 기자인 솔로몬이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 1:2-3,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그는 온갖 부귀영화를 누려본 사람이다. 그런데 왜 헛되다고 말하고 있는가? 전도서 마지막 부분에서 그 답을 말하고 있다.

전 12:13, 일이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인생이 헛된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사람의 본본인데 그 본분을 망각하고 살았기에 헛되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 본래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인 것이다. 물을 떠난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메마르고 척박한 광야를 걷는 것처럼 고달픈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며 삶의 의미와 행복을 회복하기 원한다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멧세지가 아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는 메시지다. 그런데 이 내용은 교훈의 차원을 넘어서 경고성 메시지라는 점에서 유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경고 다음에는 바로 징계, 심판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도자는 왜 이렇게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은혜가 말랐기 때문이다. 처음 믿을 때의 감격이 사라졌다.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생을 선물로 받은 것에 너무 너무 감사하고 그래서 찬송과 기도가 끊이지 않더니 시간이 지나니까 식어진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형식주의자’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말로 해선 안된다. 그것이 전도자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몽둥이를 준비한 것이다. 정신차리라고... 그렇다면 전도자는 무엇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는가? 


1. 예배자의 마음 자세

전 5:1,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1) 성전에 들어갈 때

먼저 ‘네 발을 삼갈지어다’라고 말하고 있다. 왜 삼가라고 말하고 있는가? 그가 가고 있는 장소가 거룩한 곳이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예배드리러 가는 예배자에게 주의를 주고 있는 것이다. 생각 없이 막 가지 말고 네 자신을 살피며 조심하라는 것이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뵈올 때 음성을 들었다.

출 3: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예배자가 예배하는 곳에서 거룩하신 자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 형식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것인가? 나는 청년시절 처음 교회당에 나왔을 때 경험을 잊지 못한다. 성도들의 거룩한 무리 속에 더러운 죄인 하나가 끼어든 것 같은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 성전 발치에 서서 감히 얼굴을 들지도 못한 채 가슴을 치며 회개한 세리와 같이 뒷자리 끝에 앉아 조용히 앉아 예배드렸다. 

‘삼가한다’는 말은 조심스럽게 자신을 살피는 것을 말한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 없이 예배에 참석할 때 회중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어렵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드려주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선지자를 통하여 형식주의에 빠진 이스라엘을 책망하셨다.

사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예배에 실패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이 앉았다가 가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삼가며 경외하는 마음으로 참예한 자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 적합지 않은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그 사람은 예배에 성공한 사람이다. 그것이 자신의 일상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일날은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는 날이다. 아침에도 받고 저녁에도 받고 이렇게 저렇게 봉사하면서 받으라. 주일다운 주일이 되려면 미리 준비해야 한다. 토요일 일찍 자야 한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깨끗게 하고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나오라. 예배 중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2) 말씀을 들는 자세

가까이 하여 들어야 한다. ‘가까이 하여 들으라’는 말의 의미는 순종으로 이어지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순종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외식적인 믿음이다. 진실한 믿음이 아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사울왕을 책망하였다.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왕이라 할지라도 불순종하는 것은 책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불순종의 원인은 말씀을 잘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다시 보자(1절하)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우매자는 말씀을 듣기는 하되 순종하지 않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순종하지 않는 자의 예배(제사)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자의 예배를 받으신다는 뜻이다. 우매자의 예배를 받으시지 않는 이유는 모양만 예배자의 모습을 갖췄지 자기 마음대로 예배드리는 것이다. 가관인 것은 그렇게 행하면서도 그것이 악인 줄도 모른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정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자기 만족을 위해 드리는 것은 아닌가? 예배자로서 기본 자세 - 회개한 심령과 은혜를 사모하는 심령으로 나오고 있는가? 지각이 왠말이며, 예배 도중에 나가기도 하고, 다른 일로 빠지기도 하고... 뭐가 안되어 있는가? 기본이 안되어 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고, 앞에서 두려움이 없는 예배자의 예배를 거부하신다. 오늘날 이 시대에 하나님은 사람을 찾고 계신다. 어떤 사람? 정말 신령과 진정으로 은혜를 사모하며 예배에 참여하는 심령들을 찾고 계신다. 


2. 두번째 경고 -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자세


전 5: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전 5:3,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느니라.
 
1) 올바른 기도

대화의 상대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대화의 자세와 내용도 다르다. 전도자는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기도하는 자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살펴보라고 주의하고 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다’ 

하나님에 대하여 잘 모를 때 우리는 이방인과 같은 기도를 하게 된다.
마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친히 가르쳐 주셨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조심스럽게 한 마디 한 마디 음미하면서 기도해보라. 성도가 드릴 기도 중의 기도가 바로 이것이다. 


2) 기도해야 할 이유

전 5:3,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느니라.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열거하고 있다. 걱정이 많고, 꿈 잘 꾸고, 말이 많아지고,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기도’라는 놀라운 특권을 주셨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무엇이 문제인가?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기도하지 않으니까 걱정에 매이게 되고, 걱정이 커지니 잠자면 꿈만꾸고, 꿈 얘기로 시간 다 보내고...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꿈꿀 시간이 없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그냥 잔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기도만 하면 존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모임에서 말을 많이 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게 되고 사람의 생각대로 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혼자 망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망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특별히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기도해야 한다. 왜 기도해야 하는가?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기도해야 한다. 기도 없이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펑크난 리어카에 잔뜩 짐을 싣고 끌고 가는 사람과 같다. 자기 힘으로 하려니 얼마나 힘이 드는가? 그러니 불평이 나오는 것이다. 성도들에게 주어진 기도의 특권을 잘 활용하라.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3. 세번째 경고 - 서원한 것을 갚으라 

전 5:4,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전 5:5,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전 5:6,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말소리를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서원’이란 하나님 앞에 무엇을 하겠다거나 지키겠다는 것을 자원하여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샆비라 부부가 하나님 앞에 헌금을 작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약속한대로 드리지 않고 그 중의 일부를 빼내었다. 그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 부부를 치심으로 죽게된 사건이 있었다. 왜 그렇게 됐는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은 것은 범죄라 했다(6절). 제사장 앞에서 ‘내가 실수로 서원했다’라고 변명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것이요, 자신의 쌓은 것을 스스로 허무는 어리석음인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전에 부모들은 은혜를 받으면 서원을 했다. 예)목사, 선교사로 헌신, 교회당 헌납.

그러나 근래에 와서 서원하는 경우를 좀 처럼 보기 어렵다. 심지어는 자신이 서원해 놓고도 지키지도 않을 뿐더라 아주 잊어버리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례 받은 분들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서원한 사람들이다. 학습, 세례 선서할 때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그 증인들이다. 

그렇다면 그 때 우리는 어떤 서원을 했는가? (학습교인서약)

1.저는 지금부터 죄인된 생활을 버리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홀로 주장하시는 하나님만 믿기로 서약합니다.
2.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생명의 구주이심을 확실히 믿습니다.
3.저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매일 공부하며 그 말씀대로 순복할 것을 서약합니다.
4.저는 주일을 거룩히 지키며 교회법을 배우고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예수님만 믿겠습니다. 

과연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 저는 27-8세 때 주일날 강원도 삼척 두타산이란 곳으로 등산갔다가 다음날 월요일 출근해서 회사에서 큰 사고를 당해 한달 동안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한 번도 주일을 그르친 적이 없다. 그 사고를 통해 하나님 앞에 약속했다. 온전한 주일을 지키겠습니다. 그 사건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게 했다. 

요즘 신자들은 5절의 말씀 앞에 잘 순종해서 서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믿음의 역사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성경은 함부로 서원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으나, 하나님께 대하여 더 깊은 헌신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여러분이 학습 받을 때, 세례 받을 때, 직분 받을 때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것들을 기억하고 잘 지키기 바란다. 

전도자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의 수고와 눈물이 헛되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쉬지 않고 벌은 것이 남의 손에 넘어가고, 지식과 지혜도 근심이 된다고 했다. 해 아래서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이 결국은 헛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 전도서의 주요 논거가 되고 있다. 이런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인 결말의 원인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관계의 실패라는 것이다.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약속 불이행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현실의 삶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진노를 알지 못한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달려보지만 헛된 수고의 반복일 뿐이다. 

전 5:7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갖춰야 할 기본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1)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경건의 마음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라. 
2)하나님 앞에 합당한 기도를 드려라.
3)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 그대로 지켜라.

기초가 약하면 무너진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점검하라. 그리고 오늘 솔로몬 왕을 통하여 경고하는 메시지를 마음에 두라.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온전한 예배를 회복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기도로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오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은 그대로 지켜라.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분복을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비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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