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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의 하나님 (시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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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하나님 (시 18:1~6)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시편 18:1-6)

여러분 중에 결혼한 남자들은 예전에 아내 될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때를 한 번 회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벅찬 가슴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사랑하는 여자가 그 고백을 받아들였을 때의 감격은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결혼한 지 여러 해가 되었더라도 가끔 아내와 남편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해 보십시오. 사랑을 고백하고 그 고백을 받을 사람이 있을 때 우리 속에 힘이 생깁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고백을 하고 그 고백을 들으면 힘이 생깁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는 성부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우리도 종종 사랑의 표현을 하고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에는 다윗왕의 사랑 고백이 나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러분도 이런 고백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고백을 해 본 사람은 그 울림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종종 사랑의 고백을 하십시오. “제가 온전하다고도, 의롭게 산다고도 말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하나님께서 저를 먼저 사랑해주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도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이 고백을 할 때마다 감동이 있고, 고백을 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헌신합니다. 오늘 성가대의 찬양 중에 “주 위해 바치리”라는 가사의 마지막은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그 구절에 제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데 나도 주님을 위해 남은 인생을 바쳐야지!’ 제 사랑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몇 주에 걸쳐 구원에 관해 자세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이 생기면 어떤 본질적 변화가 나타나고 거듭난 증거는 무엇인지, 구원받은 사람의 모습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560여 개의 구원에 관한 구절을 분석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구약은 주로 이 땅의 현세적 구원을, 신약은 주로 영원한 하늘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는데, 기독교가 시작되는 복음서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소돔과 고모라가 완전히 타락해서 희망이 없어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도시들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는데,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롯과 그의 세 딸은 구원해주셨습니다. 죽음에서 구원한 것입니다. 현세적 구원입니다. 구약은 질병이나 애굽의 포로생활이나 나라의 위기에서 현세적으로 구원하신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지금 우리도 이 어려운 때에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현세적 구원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다윗이 이 시편의 고백을 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생각을 그저 시(詩)로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구원의 하나님을 현실에서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라고 고백 했습니다. 세상에는 바람이 강하게 불면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흔들려도 하나님만은 큰 바위와 같아서 꿈쩍하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거기 계시며 믿을 수 있고,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고,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분입니다. 다윗은 반석과 같은 그분을 경험한 것입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곳을 나갈 때는 이미 들어왔을 때의 여러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몸속에 피가 여러 번 돌았고 수많은 세포가 죽었고 새로운 세포들이 대신 생겼습니다. 세상에는 변치 않는 존재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 안에서 반석 같이 든든한 그분을 경험한 것입니다. 

다윗은 17살에 골리앗 장군을 죽이고 갑자기 국민영웅이 되었습니다. 몇 년 후에는 사울왕의 딸 미갈과 결혼을 했습니다. 미갈은 아름다운 여자였는데, 결혼을 하자 변하여 다윗을 무시하고 빈정거리기 시작합니다. 아내에게 무시당하고 욕먹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장인인 사울왕은 사위인 다윗을 죽이려고 자객을 보냈습니다. 다윗은 미리 알고 침대에 모형을 만들어놓고 도망을 갔는데 자객이 그것을 찔렀습니다. 사울왕은 군대를 이끌고 다니며 다윗을 계속 죽이려 하였습니다. 다윗은 7년 동안 동굴과 바위 밑에 숨고 광야로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그 때 다윗의 나이가 23세 정도 되었을 것 같은데,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겠습니까! 

다윗이 광야에서 도망 다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탈세로 붙잡혔던 사람, 사기치고 쫓기는 사람 등 다윗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 4백 여 명이 몰려왔습니다. 다윗도 먹고 살 길이 없는데 그 사람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요. 남자가 4백 명이면 여자와 아이들을 합쳐 적어도 1천명 이상은 되었을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아비가일의 남편 나발을 찾아가 구걸하다가 멸시도 당했습니다. 6.25때 굶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배고플 때 먹을 것이 없으면 그 슬픔이 얼마나 큽니까!

제겐 고등학교 3년이 제 인생에 가장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가방을 들고 학교는 다니는데 잘 집이 없어요. 하루는 밤 10시쯤 남산에 올라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남산 꼭대기에서 서울을 한 눈에 내려다보는데 수많은 집의 불빛들이 반짝거리며 쫙 깔려있습니다. ‘아, 집이 저렇게 많은데 내가 잘 집은 없구나!’ 이런 고난을 하나님을 통해 극복했을 때,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밤 12시가 다 되었는데도 갈 데가 없어서 터벅터벅 걸어 내려와 제가 다니는 교회에 들어가 한쪽 방구석에서 잤습니다. 며칠을 그렇게 지냈는데 먹을 것이 있어야지요. 하루는 새벽에 일어나니 방문 밖에 도시락 두 개가 있어요. 먹으라고 갖다 준 줄 알고 하나는 먹고 하나는 학교에 가져갔습니다. 빈 그릇을 잘 씻어 문 밖에 두었더니 그 다음날 새벽에도 도시락이 놓여있었습니다. 그렇게 사흘을 먹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누가 내 형편을 알고 그렇게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보다 한 해 후배인 여학생 둘이 그렇게 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몰래 들어가서 자고 몰래 나갔는데 그 아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자기들 도시락을 아침 일찍 놓고 학교에 간 것입니다. 자존심 강한 김상복이가 여학생들의 점심을 먹었으니 어떻게 합니까! 얼굴이 붉어지고 견딜 수가 없어서 그날로 도망을 갔습니다. 지금도 그 여학생들에게 감사합니다. 이름은 알지만 찾을 길이 없어서 그 이후 만나보질 못했어요. 

다윗과 같은 경험을 하고 나면 하나님이 좋아집니다.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요, 나의 요새요, 나를 건지시는 자요, 나의 하나님이다.” 위대하신 창조자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우주의 창조자시요, 맞습니다. 만물의 실체시요, 맞아요. 인류의 아버지시요, 맞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가 여러분에게 나의 하나님이길 원합니다.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여러분의 가슴과 입술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인생을 돌봐주셨습니다. “나의 바위요, 나의 방패요.” 적이 나를 향하여 돌진해 와도, 화살이 날아와도, 칼이 날아와도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어 다 막아주십니다. “나의 구원의 뿔이요” 나를 구원하시는 왕이시다. 7년 동안의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를 돌봐주셨는지 경험한 다윗의 고백입니다. 이런 고백을 현실의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심으로 하나님께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움 받고 쫓기던 불쌍한 젊은이가 군사 4백 명을 모아 용병을 만들었습니다. 용병은 400명에서 600명으로 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가서 도와주고 식량을 받아먹고 살았습니다. 부잣집 양을 누군가 훔쳐 가면 가서 도로 찾아주고 먹을 것을 얻어 7년을 살았습니다.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겠습니까? 그 많은 어려움을 뚫고 하나님이 반석이시요 요새시요 건지시는 자요 바위요 방패요 구원자요 산성이신 것을 현실의 삶에서 체험한 것입니다. 20대의 청년은 극심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30세에 드디어 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과 시련과 고난이 있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분을 통해 해결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방패요 우리의 요새십니다. 그분이 나서시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종 우상을 믿고 도움을 청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동맹 국가들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고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도움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와서 겸손히 간구하며 도움을 청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시고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요셉처럼 구덩이에 빠질 수 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깊은 구덩이에 던져 넣었을 때 요셉은 살아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를 건지시는 자” 하나님께서 요셉을 살려주셨습니다. 요셉도 역시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살려주셨고 하나님이 죽음의 구덩이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이런 인생의 현실적인 구원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인생을 평탄하게 사신 분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분의 능력이 어떠한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이나 사업이나 경제문제나 자녀의 문제나 대인관계로 극심한 어려움을 당하면서 모든 소망을 하나님께만 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경험합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 땅의 문제들로부터 구원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입술에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이 절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지금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이 있으면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구원자가 되실 것입니다. 

다윗은 어떤 상황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까? 3~5절을 보면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3절)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 죽이려는 사람, 망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때문에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윗을 사랑했다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체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께로 오셔서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시는 구원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4절). 여러분이 죽을 지경을 당했으면 다윗처럼 하나님을 찬양할 기회가 온 것입니다. “불의의 창수가.” 폭풍이 몰아치고 거친 물결이 일어납니다. 정의(正義)가 보이지 않습니다. 억울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내 인생에 일어날 수 있나?’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런 때 여러분이 하나님을 통해서 구원의 체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4절). 두려움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두렵고 긴장되고 초조합니다. 견딜 수 없이 불안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다가오십시오. 다윗이 체험한 하나님을 우리도 지금 현실에서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두려움에서 건져주시고 구원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죽음의 길로 끌고 가는 사슬이 나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5절). 견딜 수 없고, 감당할 수 없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죽음의 단계까지 왔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물 마시는 것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실까요?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손과 입과 물을 주셔서 내가 마시기만 하면 되니까요. “오, 주여, 제가 물을 마시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는 필요 없습니다. 그저 감사드리고 마시면 됩니다. 어디에도 마실 물이 없을 때, 어디를 봐도 사막이요, 나를 도와줄 손이 전혀 없을 때, 피할 길이 없는 그 때야말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 할 때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알게 될 때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런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려움은 하나님의 경험할 기회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요?

3절에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라고 했습니다. 

첫째로,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있었습니다. 반석이요 요새요 방패이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많은 도움을 체험한 다윗은 하나님을 압니다. 그 분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또 구원의 은총을 베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모든 어려움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먼저 찬양합니다. 

우리 교회에 와 보신 목사님들이 가끔 저에게 묻습니다. “김 목사님, 수고 많이 하셨네요. 어떻게 이런 큰 일을 하셨습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했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손길을 쳐다 본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위대한 일을 이루셨다라는 한마디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내가 했습니다”, “우리가 했습니다”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런 위대한 역사(役事)를 혼자서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은 무능해도 하나님은 가능하십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리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찬양을 받으시고 기뻐하며 여러분을 사랑하실 것입니다. 

둘째로, 다윗은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자기의 형편과 처지와 원수와 죽음의 위협 등, 이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다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것들을 혼자 가슴에 끌어안고 살면 절대로 위험 합니다. 혈압이 올라가고 잠을 잘 수 없고 밥을 먹을 수도 없습니다. 정신이 산란하고 우울증에 빠집니다. 감당할 수 없는 문제는 모두 하나님께 가져와서 일일이 아뢰십시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정말 견딜 수 없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문제들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께 가져와서 그분께 다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속상하면 울고 한탄하면서, 원망스러우면 그 원망마저 하나님께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내 속을 하나님께 다 털어놓는 그 때 문제부터 해결됩니다. 여러분이 실컷 울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하고 일어나는 순간, 사람이 말로 표현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에 나타납니다. 상황은 어렵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데 이상한 평화가 가슴속에 생깁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지! 하나님께 아뢰었기 때문입니다. 얼굴에는 빛이 나고 아무일 없는 사람 같은 모습이 보입니다. 하나님께 다 아뢰었으니까요. 이제부터는 그 분의 책임입니다. 구원의 하나님 책임이지요.

셋째로,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소리를 질러도 하나님께서는 그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6절). 여러분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문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구덩이가 깊으면 깊을수록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더 체험하게 되며 그분이 나의 힘이요 나의 생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 우리 입에서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정말로 사랑합니다. 나를 이렇게 돌봐주신 하나님, 정말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내 입술을 통하여 찬양받기를 원합니다!” 이런 고백이 절로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의 입술에도 이 찬양과 사랑의 고백이 있기를 원합니다. 

다윗은 자기의 아픈 마음, 슬픈 마음, 고통스런 마음, 기쁨과 감격을 전부 하나님 앞에 아뢰고 다 글로 남겼습니다. 시편의 절반 이상이 다윗의 것입니다. 여러분이 왜 시편을 좋아합니까? 시편이 바로 여러분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을 읽으면 우리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고, 소리 내어 읽을 때 내 마음을 대신해줍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시편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께 아뢰는지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도 꾸준히 자신을 하나님께 일일이 말씀드리며 위대하신 구원의 하나님을 여러분의 삶 속에서 현실적으로 체험하십시오. 현실적 구원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체험하면 할수록 우리는 다윗과 함께 사랑의 고백을 할 것입니다. “나의 힘이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런 고백을 하며 사십시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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