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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온전한 예배 (요 4:4: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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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예배 (요 4:4:19~26)


우리는 지금 어떻게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할 것인가? 특히 어떻게 신앙생활을 보다 더 새롭게 하며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개인이나 가정 그리고 교회가 무엇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살펴보고 바른 자세를 가다듬고 새출발 하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부터는 그렇게 개인이나 가정 그리고 교회가 진정한 새출발을 잘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서 예배의 새출발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개인이나 가정 그리고 교회가 신앙적으로 바르게 새출발을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배가 바르게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 우리에게 진정한 예배가 있는가? 

다같이 23절 말씀을 읽읍시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 

참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참되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찾으신다는 말은 ‘제테오’로서 ‘열망하다, 소망하다’라는 의미인데 그만큼 예배하는 자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오히려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많은 일을 하시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 당시에도 정말 예배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절기마다 시간마다 제사장들이 제사를 끊이지 않았고 제물도 많이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되게 예배하는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능하시고 불꽃같은 눈을 가지시고 온 우주를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찾으셔야 할 정도였던 것입니다. 

일찌기 이사야가 사1:11-15에서 말한 것처럼 수많은 제물과 희생이 헛된 것이요 오히려 내게 무거운 짐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도 요2장에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보니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바뀌어서 성전을 헐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모습은 거룩하기보다 너무도 가식적이어서 회칠한 무덤(마23:27)이라고 하시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마3:7,  12:34, 24:33) 

오늘날도 수많은 교회에서 예배를 수없이 많이 드리고 있는데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말씀을 준비하는데 “하나님이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는 이 말씀이 마음에 부딪히며 너무 송구스럽고 죄송하여 한참이나 울었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이 당연히 하나님을 찾으며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얼마나 예배자가 없었으면 하나님이 예배자를 찾아야 할까? 하는 것입니다. 

옛말에 “엎드려 절받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른이 엎드려 먼저 절하고 아이들에게 절을 받는 것처럼 하나님이 지금 그렇게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왜 이렇게 사람들을 찾아다니십니까? 
왜 그렇게 무시를 당하고 고생을 하시고 결국 십자가에 죽으셨습니까? 
그것은 죄 가운데 빠져 사탄을 예배하고 있는 자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고 마침내 천국으로 인도하여 영원토록 하나님을 예배하며 영광 돌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주님을 예배하기는커녕 무시하고 욕하고 때리고 죽였습니다. 

오늘날도 과연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가 얼마나 있을까요?(롬3:10)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어느 교회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드려질까요? 
모두들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구하고 부르짖고 거창하게 많은 일들을 하는데 정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드려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아버지 저부터 바른 예배를 드리지 못함을 용서하옵소서! 
저부터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정말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가 찾으시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예배드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게 하옵소서 기도하는 것입니다.(히11:6)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1. 우리는 예배의 장소성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20-21절에 “우리 조상들은...... 때가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배는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임을 말해 줍니다. 
우리의 마음에 정말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있느냐?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실재로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시기에 장소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마음에 모시고 산다면 언제 어디서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무엇을 만들고 장소를 꾸며야만 예배드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배의 장소의 변화를 보면 태초에는 에덴동산 그 자체가 예배처였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범죄하고 난 후에는 추방함을 당하고 아무데서나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고 하나님이 정해 주시는 곳에서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돌단을 쌓아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모세 시대에는 성막을 통해 그리고 솔로몬 시대에는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셨을 당시에는 그 성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도둑의 소굴과 같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요2:19절에 주님은 그 성전을 헐라고 책망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실망하시고 책망을 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이 사마리아 땅으로 오신 것입니다. 
거기서 한 여인을 만났는데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였던 것입니다. 
사실 이 사마리아 땅은 유대인들이 저주하고 욕하는 곳이고 이 여자도 이름도 없고 성도 없고 남편이 다섯이나 있는 불행한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예배에 대해서 물었고 주님은 그 마음을 보시고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일러주시며 지금 친히 예배를 받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때에 교회 바깥으로 쫓겨나 울고 있는 흑인소녀의 예화가 생각납니다. 
화려하고 거창한 교회에 소위 높으신 분들이 모여 예배드리는데 곳에 주님이 들어가시려 하자 못들어 가게 해서 결국 쫓겨나 교회 모퉁이를 돌아서자 거기에 흑인 거지 소녀가 울고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우느냐?"고 물으시니까 교회에 예배드리러 갔다가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얘야! 나도 쫓겨났단다. 울지말라"고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배는 장소나 건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고전3:16에서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건물이나 장식품이나 겉치레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만나고 영광을 드리고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믿고 언제 어디서나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고 예배를 잘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2. 그리고 예배의 대상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22절에서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 남이니라”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을 통해 구원을 주시는 분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을 원래 하나님의 예배자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하나님이 주신 일을 감당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자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의 참된 행복이고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범죄함으로 예배의 대상이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는데 자신을 예배하고 물질을 예배하고 심지어 사탄을 숭배하는 자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의 대상을 알지도 못하면서 예배하는 것을 미신이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상징물이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예배하는 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자본주의라고 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 보다 돈을 더 믿고 의지하는 것은 바로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고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인본주의적인 모습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같지만 자기를 예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분이 "자기가 은혜받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돈 벌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나 꼭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배는 내가 은혜를 받고 아니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제물로 번제로 태워드리고 전재로 피를 뿌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받는다 안받는다고 생각하는 자는 아직도 자신을 다 드리지 못한 것이고 올바른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올바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정말 좋은 것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지금도 우리를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하기위해 천국을 예비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손길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사 마침내 천국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이러한 하나님 아버지께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우리는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예배의 방편) 

23절 /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24절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 

이것은 우리에게 참된 예배의 자세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영이란 거듭난 우리의 영혼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드리는 것이고 진리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요14:6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드리려면 예수님을 통해서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정말 언제 어디서나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특히 교회에서 다같이 드리는 공예배에 지각하거나 조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결석하면 더욱 안 됩니다. 
그리고 복장도 단정하게 하시고 예배드리는 자세도 좀 가다듬으시기 바랍니다. 

코이노니아 란의 이야기를 보시면 어떻게 예배를 잘 준비하고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할 것인지를 말해줍니다.(주보 코이노니아란  참조) 
마22:37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정성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의 핵심은 예배입니다. 
토마스 칼라일은 "사람에게 내리는 재앙 중에서 예배의 손실보다 더 큰 재앙이 없다."고 했습니다. 
정말 우리 개인이나 가정 그리고 교회가 새 출발을 하되 올바른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부터 새출발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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