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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유기체적 통치(2) (고전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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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유기체적 통치(2) (고전 14: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리라”(고전 14:33). 

예수 그리스도는 유기체적인 공동체인 교회의 머리로서 그 몸인 교회를 통치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섬기면서 겪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Ⅰ. 들어가는 말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로 영적인 은사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많은 분쟁도 있었습니다. 특히 저마다 은사를 받은 것을 내세워 교회는 예전에 바울이 목회하던 때의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상실해 버렸습니다. 이런 혼란과 무질서 가운데 사도 바울이 근심하며 책망의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고린도전서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화평의 하나님이시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교회의 운영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짝을 이루는 두 구절에서 사도는 어지러움에 대비해 질서의 하나님을 말하지 않고 이상하게도 화평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이것은 곧 어지러움이 모든 불화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런 질서의 상실이야말로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의 통치에 굴복하지 않는 대표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는 왕으로서의 통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왕은 어떤 종류의 왕입니까? 허수아비가 아니라 실권을 지니신 왕이십니다. 

그래서 입교할 때 성도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왕이심을 고백하며 동시에 그 왕께 복종하겠다고 고백합니다. 게다가 주님께서 왕권을 사용하여 통치하실 때 그분의 의지는 명확하고 권한은 무한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 예수의 왕권은 보이는 교회의 질서를 통해 행사되니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교리에서 치리(治理)의 권세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제정하신 법이 있고, 법의 표명이 있고, 그 법을 어긴다면 제제를 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치리의 권세에는 대표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권세와 순결을 유지하는 권세 두 가지가 있습니다. 


Ⅱ. 질서 유지권(고전 14:33)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A. 그리스도의 법을 시행하는 권세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그리스도의 법을 시행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법은 성경의 계시의 형태로 명백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중요한 임무는 성경을 연구하여 그리스도의 법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드러내어, 해석을 통해 모든 성도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믿음의 규칙과 생활의 교훈이 제시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구조와 제도도 이 궁극적인 목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합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법은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명령이므로, 그로부터 나온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을 힘입어 멋대로 살았던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예수를 위해 사는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교회는 새로운 가르침을 만들 필요가 없고 성경 속에서 그리스도의 법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가르침과 교리의 형태로 제시하고 삶과 지식을 아우르는 통일적인 신앙이 될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이 그 사명이고 권세라고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법을 보다 잘 구체적으로 시행할 수 있기 위해서 교회는 규칙을 제정할 수 있는 권세를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B. 교회의 규칙을 정할 수 있는 권세 

사도는 은사의 문제 때문에 교회가 혼란에 빠졌을 때 사랑이 없음을 문제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가지도록 교훈하는 한편, 엄격한 규칙을 만들어서 예언이 있을 때는 이렇게, 방언은 저렇게, 어떤 용도로 하라고 명백히 가르쳤습니다. 그리하여 믿지 않는 사람이 교회에 들어와도 종교적인 황홀경에 빠진 집단이 아니라 진리에 의해 단정한 집단으로 보일 수 있을 만큼 그리스도의 몸을 가꾸도록 가르친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성경과 상반되지 않는 한 교회와 노회, 총회에 의해 제정된 규칙을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으로 알고 복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질서를 따르는 행동입니다. 물론 이러한 교회의 규칙은 성령에 의해 영감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가질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의 잘못된 결정 때문에 오류를 남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목사와 교사와 장로와 집사를 세우라고 말했지만 각 사람의 임기와, 자격요건, 관리, 유지 등의 구체적인 조항들은 교회에 주신 권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법을 온전히 실행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한 이렇게 규칙을 제정하는 일은 쉼 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생활과 교회의 운영에 관한 규칙은 물론이거니와 무엇을 믿어야 할지에 관한 구체적인 규칙들이 작성되는 것이니 이것이 ‘교리’입니다. 이렇게 적법한 절차에 따라 채택된 규칙들에 항거하는 것은 교회의 질서에 항거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 규칙들이 성경에 위배된다면 적절히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여 반영되도록 하면 됩니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의 상식에 의지해서 사람이 세운 규칙이 무엇이냐고 따질 때, 교회는 적절한 징벌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에도 하나님이 당신 자신의 왕권을 통치하고 다스리는데 목회자와 교회에 세우신 합법적인 일꾼에게 통치의 권한을 실행하게 하셨으니 이것이 순결을 유지할 수 있는 권세입니다. 


Ⅲ. 순결 유지권(마 18:15-17)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형제가 악에 빠지면 그에게 개인적으로 충고하여 바로잡고, 두세 사람의 증인으로 이 일을 하게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정식으로 치리를 받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법이 있는데 상도 없고 벌도 없다면 있으나마나한 법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권징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징벌을 통해 순결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가 잘못된 교리를 믿을 때, 사랑으로 타이르되 끝까지 고집을 하면 징벌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에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 때, 사랑으로 기도하고 충고하지만, 끝까지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지 않을 때 마음 아프지만 징벌함으로 교회에 이런 죄가 누룩처럼 번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 권세는 원래 목회자가 아니라 교회 전체에 준 것으로 대리적으로 일꾼들에게 위임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A. 권징의 목적 

죄에 연루되지 않은 자들에게 이러한 죄에 연루된 자의 징벌을 통해 경각심을 갖게 하여 성찰의 기회를 갖게 해주고, 당사자에게 참회하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를 통해 교회는 질서 있는 교회가 됩니다. 실제적으로 권징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따라 시행됩니다. 

B. 권징의 시행 

어떤 사람이 악에 빠지게 되면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고발이 있고, 교회가 자체적으로 찾아내야 합니다. 사실 성경적으로 볼 때 장로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이런저런 일을 맡아서 몸으로 봉사하는 것이라기보다 교회 속에서 성도들을 심방하고 돌보며 목회자와 함께 성도들의 생활을 성찰함으로써 잘못된 것을 믿고 있다면 바로잡아주고 양육하는 것, 그릇된 것에 대한 경고 등입니다. 그리고 영혼의 상처를 헤아려 목회자와 함께 고쳐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사숙고해서 장로를 위해 기도하고, 그 사람의 인격과 생활태도들이 적합한지 물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질서를 따르기 위해서 장로들이 권징을 시행할 일꾼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물론 이런 권징은 오직 교회의 당회에 의해서만 세워지지 개인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당회에 의해 적절한 징계를 받기 전까지는 모든 성도들을 그리스도 예수의 지체로 생각하고, 성도가 누릴 수 있는 모든 분깃과 교제를 누리게 해야 합니다. 

이 권징은 크게 둘로 나누어지는데 작은 출교와 커다란 출교입니다. 작은 출교는 excommunion입니다. ex는 떼어내는 것이고 communion은 성도의 교통입니다. 작은 출교는 몸은 교회에 내버려두고 성도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유익, 예배의 참여 그리고 회의, 성도의 모든 교통 등은 허락하되 성찬에서 떼어내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이렇게 옳지 않은 교리를 믿거나, 그릇되게 행동하였으니 네가 정말 그리스도의 지체인지 좀 더 두고 봐야겠다는 것입니다. 그가 만약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십자가를 알고, 그가 못 박혀 죽으신 대속을 이해하고 있다면 성찬에서 제외된 순간에 얼마나 통절하게 자신의 무질서한 믿음과 행위에 대해 회개하겠습니까? 

커다란 출교는 어떤 사람이 잘못된 교리를 믿거나 교회의 질서에 현저히 항거하고 잘못된 생활을 돌이키고 회개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을 교회의 모든 모임에서 물리적인 끊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를 지은 당사자와 남아 있는 성도들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교회에서 출교된 사람과는 교제할 수 없습니다. 출교는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병적인 존재를 끊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는 순결을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완전하기 때문에 죄를 지은 성도를 출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만약 아주 큰 죄를 지었더라도, 그가 통절하게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다면 그는 출교할 수 없습니다. 간음한 여자도 주님께서는 용서해주시고 다시 가서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회개가 물리적인 출교보다도 더 그리스도 예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교회를 이처럼 순결하고 깨끗하게 만들기 원하셨던 것은 봉사의 권세를 교회로 하여금 바르게 이행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Ⅳ. 봉사권(생 4:34-35) 

봉사의 권세는 성경에 기록된 바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행 4:34-35)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있을 때 하신 봉사의 일을 할 권세를 교회에 주셨습니다. 교회는 대표적으로 섬겨야 할 세 대상이 있습니다. 

A. 섬김의 대상 

첫 번째는 하나님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분을 믿고 의지하며 높여드립니다. 또 하나는 교회 자신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혼자 신앙의 결단을 하고 예수를 믿은 것 같지만 사실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주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여러분을 돌보고 씻겨주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은혜를 받았다면 이제 여러분들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합니까? 답답한 것은 이러한 교회의 모든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교회는 출석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봉사는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권위로 성도들에게 봉사를 명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명령을 내렸는데 그것을 걷어차는 것과 같이 교회의 봉사를 걷어차는 것이 성경의 정신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어디서 하나님을 섬기십니까?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머리 둘 곳 없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가장 곤고한 자들과 연약한 자들 가난하고 병든 자들, 어둠 가운데 있어 무지한 자들의 이웃이며 아버지셨습니다. 그 분의 생애는 고단했지만 아낌없이 주시는 생애였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섬기며 살아간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많은 위로와 넘치는 재물과 세상의 부귀함으로 채워주신 생애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B. 연약한 자들을 돌봄 

그러므로 주님을 섬기려는 사람들은 이 봉사의 권세가 무엇을 누리고 주관하고 호령하는 권세가 아니라 예수와 똑같이 고난의 길을 걸으며, 핍박을 받고, 수고하며, 많이 헌신하는 길임을 기억하여야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교회를 위해 동참한다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며 이 부활의 경험 속에서 우리의 속사람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길을 모르던 날들 우리에게 다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 앞에 진실하게 뉘우치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충만한 왕이 되시도록 그래서 목회자로부터 주일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 신앙 안에서 이 그리스도의 유기체적 통치에 복종하며, 살아 있는 날 동안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모든 섬김을 마치고 주님이 부르실 때 우리의 후손들과 방황한 영혼들이 우리가 변화되었던 것처럼 변화될 수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남긴다면 우리가 바람처럼 살다가 많은 날들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교회의 질서를 기뻐하십시오. 온전히 그분의 통치에 복종하며 그 안에서 행복한 성도들이 되십시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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