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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이 마르십니까? (사 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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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마르십니까? (사 55:1~5)

우리나라 기독교 초창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어느 마을에 들어갔는데 청어장수 아저씨가 청어를 한 판 지고 “싱싱하고 물 좋은 청어 사려! 청어 사려!” 하고 외칩니다. 그때 그 선교사님이 “그 청어 한 마리에 얼맙니까?”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결국 한 마리에 한 냥이라 대답하자 27마리 전부를 27냥에 샀습니다. 그리고는 청어장수에게“나는 두 마리만 필요하오. 그래서 내가 두 마리 가지고 갈 테니 25마리는 그냥 돈이 없어서 청어를 먹고 싶지만 못 사먹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시오”라고 말하고는 가버렸습니다. 
청어 장수가 정직한 분이라 그걸 다시 팔지 않고 동네 사람들이 듣도록 외쳤습니다. “물 좋고 싱싱한 청어 공짜로 줍니다. 가져 가세오” 
그런데 한 사람도 그 말에 믿지 않고 내다보지도 않더랍니다. 
  
이사야 55장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청하는 ‘초청의 장’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성경입니다. 우상숭배에 빠졌던 이스라엘을 용서하시며 돌아오라고 초청하는 초청장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시는 풍성한 구원을 받으라고 초청하시는 내용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은 마치 청어장수의 외침을 듣고도 믿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를 믿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우리를 부르시고 있습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부르시고 계십니까? 
  
1. 하나님은 누구를 부르시고 계십니까? 
  
1) 목마른 자를 부르십니다(1절). 
옛날 중동 지방에서 사막을 여행할 때에 낙타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간혹 낙타를 타고 가던 행상 가운데는 사슴 한 마리를 데리고 다녔답니다. 그러다가 길을 잃거나 물을 찾아야 할 때 사슴을 풀어놓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사슴은 물 냄새를 낙타보다 더 잘 맛아 그리로 방향을 잡고 달려간답니다. 결국 뒤따라 가보면 그 사슴은 물속에 코를 박고 죽어 있답니다. 
그래서 시편 42:1절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 이다.” 라고 했답니다.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메이듯이 
  
오늘의 이 시대를 저는 영적 기갈의 시대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마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목마름을 해결해 보려고 이것저것 다 동원해 보지만 목마름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목마름을 돈으로 해결해 보려 하고 어떤 이는 명예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목마름이 해결 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육체적 쾌락으로 해결하려고 쾌락에 빠져 있고 또 어떤 이는 마약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그 목마름을 해결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소금물과 같아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죄에 빠진 인생의 갈증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나 명에나 쾌락으로 풀려고 하면 그것들은 오히려 사람을 더 지치고 허덕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런 목마름을 느끼는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갈시켜주실 수 있는 분임을 성경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인생의 갈증으로 목마른 한 여인이 나옵니다. 남편이 다섯이었고 지금 사는 남자도 자기 남편이 아닌 불행한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목마른 인생을 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여인에게 주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4:14을 보세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할렐루야! 

또 요한복음7장에 보면 주님께서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요 7:37절 하반부부터 보세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혹시 이 목마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초청에 응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속이 시원하도록 생수의 강이 터질 것이고 흘러넘칠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도 사44:3~4에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했습니다. 
  
2) 은혜를 갚을 수 없는 자를 부르십니다(1절). 1절에 보니 돈 없는 자들에게도 오라 하시고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포도주와 젖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인생을 참으로 만족케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을 참으로 만족케 하는 것을 돈도 없이 거저주시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오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싸구려이기 때문에 돈도 없이 값도 없이 주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갚을 수 없을 만큼 큰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은혜로 거저주시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엄밀히 말하면 공짜가 아닙니다. 왜냐면 주님이 핏값을 대신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보답할 것이 없기에 공짜입니다. 절대 싸구려기에 공짜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 누구도 그 은혜를 갚을 수 없는 큰 은혜기에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대가를 치루고 받는 것은 선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매매나 보상입니다. 선물은 그냥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됩니다. 
선물을 주면 받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선물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받아드리면 됩니다. 할렐루야! 
  
3) 헛된 수고를 하는 사람을 부르십니다(2절) 
2절에 보면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고 묻습니다. 

여기서 양식 아닌 것, 배부르게 못할 것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만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참 만족이 아닌 거짓 만족을 위하여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이는 돈을 위해 목숨을 겁니다. 돈이 내게 만족함을 줄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이는 명예를 위해 목숨을 겁니다. 그런데 그 명예가 만족을 주지 못하는데 죽도록 그것을 위해 수고합니다. 
  
연예인들은 무대에서 박수를 위해 목숨을 겁니다. 그런데 무대 아래로 내려오면 그 허전함을 아무도 채워주지 못하기에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박에, 마약에, 육체적 쾌락에 빠지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전혀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에 사람들이 인생을 걸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헛된 일을 참된 일인지 알고, 그 헛된 만족을 참된 만족인지 알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은 모든 것을 누려 보았습니다. 부귀영화, 명예권세 모든 것을 다 누려 보았는데 그가 말년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전도서1:2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서는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십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큰 부자 이야기 아시죠? 풍년이 들었습니다. 수확을 해보니 너무 많이 거두었습니다. 결국 창고가 부족해서 창고를 하나 더 짓고 곡식을 쌓아놓고 만족해합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그 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20에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오직 재물을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던 사람입니다. 
재물이 많아지는 것, 그것이 그 영혼을 만족케 하는 줄 아는 것입니다. 소유가 사람의 영혼을 만족케 하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속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데려가시면 다 헛수고입니다. 
여러분이 아멘을 안 해도 이것은 진리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만족하는 것은 속는 것임을 알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합니까? 
  
1)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2절). 
주님께 나와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1절에 오라 했고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라고 강조해서 말씀합니다. 

3절에 보면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말씀을 들을 때 육신의 귀가 아닌 마음의 귀, 믿음의 귀를 기울여 들으라는 말입니다. ‘귀를 기울이고’라는 말을 히브리어 성경에는 신기하게도 ‘너희들의 한 귀를 펼치고’라고 나옵니다. 이 한귀는 얼굴에 달린 귀가 아닙니다. 
인간의 내면세계 속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준비된 귀를 말합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들을 때 이 귀로 집중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기울이고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로 말씀을 들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55:8,9절에 보면 하나님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보다 위대합니다.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나님은 생각과 말씀이 일치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위대하신 하나님의 생각이 내 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롬8:5에 보면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들으십시오. 마음을 집중하시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생각 속에서 씨앗이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게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6절). 
6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큰 축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가장 가까운데 서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성전이 있었고 그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에 나아갔다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거기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기에 임재하십니다. 예배가 그 비법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다 같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왔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심각한 것입니다. 왜 못 만날까요? 그분의 살아계심과 말씀하심이 여러분 속에 실재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눈에 사람만 보입니까?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고 설교를 들을 때에 아무생각 없이 앉아있지 마세요. 목사의 설교를 단지 윤리적인 교훈을 얻거나 감동을 받는 수준으로 나오지 마세요. 
마치 사슴이 목이 말라 헐떡이며 물을 찾듯 하나님을 사모하고 찾으십시오. 그러면 한마디의 진리가 생수가 되어 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십시오. 
  
그래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6절에 보면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합니다. 
입으로 소리쳐 부르짖으라는 말입니다. 렘 29:12에서는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라고 약속합니다. 무엇을 부르짖어야 할까요? 목마름을 부르짖어야 합니다. 
자신이 극도의 목마름에 쳐해 있음을 깨닫게 해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정말 심각한 것은 자신의 목마름이 극에 달해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 목마름을 깨닫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르짖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3)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7절). 
7절에 보면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합니다. 물을 마시려면 물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갈증을 해갈하고 참된 만족 속에서 살려면 인생의 갈증을 풀어주시는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조건이 있다면 “악한 길”을 버리고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목욕을 하려면 옷을 벗어야 하고, 수술을 하려면 옷을 벗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씻김을 받고 고침을 받고 참된 만족이 보장된 인생을 살려면 악한 길과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버릴 것을 버리지 않고 생수를 마시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포기하고 악한 생각을 버릴 때 주님의 생수는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목마름을 느낍니까?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면 생수를 체험하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그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몇 마디의 진리로 그의 목마름을 해결하십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에게 영적인 목마름이 없다면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 목마름이 있다면 주님을 부지런히 찾아야 합니다. 
  
이런 목마름이 있는 자에게 어떤 은혜가 임하나요? 
1)하나님은 생수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성령으로 좋은 것을 먹게 하십니다. 
2)차별하지 않고 채워 주십니다. 자격 없는 자도, 돈 없는 자도 모두에게 채워주십니다. 
3)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영혼이 살게 하십니다. 영원한 언약을 누리게 하십니다. 
4)용서 받은 자로 살게 하십니다.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할렐루야!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해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맛보고 있는 복음에 대해 갈급함을 느끼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경찰서 앞에 이런 포스터가 있었습니다. 
“불법미아 보호자 자수기간” 

이 말이 뭡니까? 미아를 보호하는데 왜 자수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왜 그것이 불법이란 말인가요? 미아발생 건수는 2003년 5천15건, 2004년 9천260건, 2005년 1만1천763건, 2006년 1만7천470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결국 찾지 못하는 어린이 숫자가 2003년 15명, 2004년 48명, 2005년 78명, 2006년 164명으로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길 잃은 어린아이를 위해 최고의 선행은 잠재워 주고 밥 먹여 주고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길을 잃은 미아에게 최고의 선물은 잠 안 재워 주어도 됩니다. 밥 안 먹여 주어도 됩니다. 진정은 선행은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 품안에는 모든 것 다 있기 때문입니다. 
뭔 말인지 이해되는 분만 아멘하세요. 길 잃은 어린아이에게 잘 보호해주고 사랑해 주고 장난감 사 주고 재미나게 놀아주었다고 하면서 1년 2년 데리고 있는 사람은 범죄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길 잃은 영혼에게 아버지를 찾아주지 않고 배불리게 하고 육신적 요구나 채워주면서 사랑하고 도와주기만 한다면 그것은 범죄입니다. 
  
우리는 “영혼의 불법미아 보호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최고의 사랑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영적 목마름에 고통을 당하는 미아들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미아에게 부모 찾아 주듯 잃어버린 영혼에게 아버지를 찾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왜요? 그분 안에는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복음이면 충분합니다.” “하나님 한분이면 충분합니다.” 
  
복음 가진 자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의 최고 선물은 생수이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의 목마름은 다 해결됩니다. 
그 목마름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해답입니다 요4:14을 보세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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