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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하보다 더 소중한 사명 (마 16: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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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보다 더 소중한 사명 (마 16:21~27) 


천하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인터넷 검색창에다 이 제목을 쳐 넣었더니 이렇게 나왔다.‘천하의 모든 물건 중에는 내 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맞는 말이다.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그런데 26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목숨은 단순한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영혼의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풀어본다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었다해도 자기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라는 뜻이 된다. 

눅 12장에 예수께서 어리석은 부자에 대하여 비유로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 비유의 말씀을 통해 사람들이 자기 영혼보다는 육신의 복락에 매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은 태도에 대하여 예수님을 이렇게 책망하신다.

눅12:20-21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예)군포여대생 납치살인범 강모씨 - 보험금 7억원. 통일부장관으로 내정된 고려대 교수(현모씨)가 학술진흥원에 등록된 논문 삭제 사건.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거짓으로 꾸민 일들이 결국 부메랑처럼 자기에게 돌아와 자기를 치는대도 불구하고 그런 일들에 매여 있는가?

약 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리라.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호되게 꾸지람을 듣게 된 모습을 보게 된다.
마 16:23상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16장 전반부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현상으로 인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예수님에 대하여 정확한 신앙고백을 통해 칭찬을 받았던 사람이다. 
마 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와 같은 고백에 대하여 기뻐하시며 축복하셨다.
마 16:17-18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바로 조금 전에 이런 복된 말씀을 받은 사람이 어찌 이렇게 큰 책망을 받게 되었는가? 그 이유에 대하여 23절 하반절에서 말씀하셨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말은 생각에서 나온다. 예수님과 함께 지냈으나 평소에도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기 보다는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교회 옆에 산다고 믿음 좋은 것 아니다. 교회 다닌지 오래됐다고 주의 일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님 옆에 있었어도 인간적인 생각에 매여 있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무엇이며 사람의 일은 무엇인가?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하나님의 일은, 예수께서 고난 받으시는 것이었다. 유대교의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리는 일이었다.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제삼일에 일으키시는 승리의 사건도 포함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이 일을 제자들에게 알리셨다. 그 때가 바로 제자들로부터 신앙고백을 받으신 후였다. 그간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 알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의심 없이 예수를 그리스도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고백을 인해 기뻐하셨고, 당신이 감당해야 할 일들을 나눌 필요를 느끼셨던 것이다. 그래서 고난 당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의 태도와 말을 통해 그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만류했는가를 알 수 있다. ‘붙들고, 항변하여, 결코...’ 통속적으로 표현한다면,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세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가 목숨 걸고 막겠습니다.’ 인간적 측면에서 보면 베드로는 의리 있는 제자라 할 수 있다. 선생님이 수난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없었기에 자기 몸으로라도 막겠다는 용기 있는 태도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의 행동 속에서 두 가지 오류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영적무지요 둘째는 자기 욕심이다. 첫째는 십자가에서 이루실 속죄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이 기대하고 있는 주의 나라에서의 받을 영광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이와 같은 행동에 대하여 예수님을 즉시 철퇴를 가하셨다. 자신을 붙들고 있는 베드로의 손을 세차게 뿌리치시면서, 그를 주목하셨다. 주님의 눈의 광채가 인간적 생각과 탐욕으로 가득찬 베드로의 눈을 녹여 버릴듯 바라보셨다. 그리고 큰 소리로 책망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겉으로는 주님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를 위한 것이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자기가 조금이라도 손해 보고 불편할 것 같으면 주님이 틀렸다고 거부하고 불순종하고 불평한다.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냉정하게 생각해보라.

여러분! 우리의 생각은 나의 지식과 경험에서 나온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진정한 구원자로 믿고 고백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결코 예수님을 떠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감동적인 고백 이후에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위해서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된 것이다. 우리의 선한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이후의 삶은 우리의 의지적 노력 여하에 따라 성장과 성숙이 이뤄지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앉은뱅이 어린아이 신앙이 되는 것이다. 정신적 성인아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성인아이도 많다. 오늘 말씀을 보라.

마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이 말씀을 다시 풀면, ‘누구든지 자기 욕심을 따라 살면 결국 멸망당할 것이요, 누구든지 자기를 포기하면 구원함을 얻으리라.’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를 위해 순종하고, 예수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복된 삶이요, 자신이 사는 비결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승리의 삶이요 영광의 삶이다. 그러나 나의 모습은 과연 그런가? 당장 눈 앞에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주님을 거역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실패하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인격을 낳고, 인격은 인생을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누구를 생각하며 무엇을 생각하는가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결국 주님의 책망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결국 그 일로 인해 자신의 삶을 무기력한 실패의 인생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인간적인 생각에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마 16:2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1.자기를 부인하는 것

“자기” - “자아”, “이기적 본성”, “죄성”, 육신의 일(롬13:13), 옛사람의 습관(골3:10),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대로 행하려는 성향(엡2:3).

육신의 일 - 방탕, 술 취함, 음란, 호색, 쟁투, 시기(롬13:13),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갈5:19-21). - 자연인의 생활에서 나타나는 현상들.

“부인” - deny, 거절하다. 
deny himself, 자기를 억제하다, 자제하다. 육체적 욕구를 거절하는 자세.
“must deny himself”, 반드시 자기를 억제해야 한다.

이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첫 번째 자세이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육신적 생각을 제어해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게 된다. 자기 일에 매여 있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못한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도리어 자기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일을 혼란하게 만든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제직으로 직분자로 부름을 받은 분들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생활 습관을 익혀야 한다. 항상 이 일에 유념하지 아니하면 종교인의 모습을 보일 수는 있으나 제자로서의 삶은 불가능하다. 그는 항상 자신의 삶 속에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면서 늘 불평과 원망을 떨치지 못할 것이다. 
예)은근히 즐기는 재미들 - 술, 담배, 오락, 도박, 취미생활. 인터넷 등등 끊어내야 한다. 배설물처럼 버려야 한다.


2.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

“십자가” - 로마제국 당시 사형수들에게 내려지는 형벌, 처형장소까지 자신이 메고 감.

그러나 십자가의 의미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달라졌다.
-죄없는 자가 죄 있는 자를 위해 대신 형벌을 받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리스도 이후 십자가는 희생과 사랑의 상징이 된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고생, 수치, 박해를 기꺼이 참아내야 한다. 예수님 때문에 미움, 손해, 자존심, 욕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이었고, 제자들의 모습이었다. 주님의 제자는 고난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진실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진정한 주님의 제자가 되길 원한다면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희생적 삶을 살기로 결단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길은 고난의 길이지만 그 뒤에는 영광이 있기 때문이다. 예)김연아의 영광이 저절로 됐겠는가?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십자가를 타고 가지 말고 십자가를 지고 가라. 시험에 드는 이유,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작은 십자가를 들고 교회당 주위를 돌며 기도하는 사람.

그러면 그 십자가가 무엇인가? 교회적으로는 장로의 직분, 권사의 직분, 목자, 교사의 직분이 될 수 있다. 가정적으로는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 가족들이 될 수 있다. 직장인이나 사업하는 분들은 온갖 부정한 수법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피하면 편하고 손해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져야하기 때문에 고통이 따르는 것이다. 제자들은 십자가를 피하지 않는다. 
눅9:23,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지라.


3.나를 좇을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신 곳은 골고다 언덕이다. 가다가 적당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골고다의 언덕까지 죽음의 현장까지 가야 한다. 

마10:38,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않다. 

오늘날 십자가는 졌으나 주님을 좇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주님께서 원하는 길을 가지 않고 자기 가고 싶은 길로만 가려고 한다. 
자기 신앙 - 휴학, 자퇴, 결석 자기 마음대로 가다가 쉬기도 하고 짊어졌다 내려놨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기 임의대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십자가를 졌으나 주님게 합당치 않은 것이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나를 좇을 것 - 주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 제자는 주님을 따라 가는 자. 비 바람이 불어도 가리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벧전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은 24절에서 끝나지 않고 있다. 만약 여기서 끝이 났다면 절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25-27절의 말씀은 제자의 도를 가는 성도들에게 주실 보상이 기록되어 있다. 
참된 제자의 보상
마16:25-27,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무리.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거하였다.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5-8,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 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여러분, 성령으로 거듭났는가? 여러분의 고백이 진실한가? 그렇다면 올해는 생각이 바뀌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신자에서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성도로.. 자기를 기쁘게 하기보다는 주님을 기쁘게 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그 방법을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1)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2)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3)주님을 끝까지 따라 가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후 제자들은 작은 예수가 되어 있었다. 유대교의 강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의해 세워진 예루살렘교회는 시대를 초월한 모델 교회가 되었다. 그 속에는 예수의 제자도가 그대로 스며 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발적으로 모이기를 힘쓰고, 열심히 섬기고, 나누고, 전도하는 일에 힘썼던 것이다. 그래서 로마제국을 변화시켰고,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시작이 바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단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여러분 개인의 삶이 중요한 것 나도 안다. 여러분의 가정이 중요한 것 나도 안다. 여러분의 직장과 사업이 중요한 것 나도 안다. 여러분의 몸이 중요한 것 나도 안다. 그러나 천하보다 더 귀한 것,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 그것은 사명이다. 주님을 위해 먼저 여러분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만져 주실 것이다. 회복은 먼저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여러분의 시간을 드리라. 여러분의 손과 발을 드리라. 여러분의 재능을 드리라. 여러분의 물질을 주를 위해 드리라. 적당히 드리지 말고 힘에 겹게 드리라. 

마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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