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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억하라 (신 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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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하라 (신 8:11~18)


지난 3주 전, 안식년을 갖기 위해 미국에 도착하였다. 모든 성도들께서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배려해주셨다. 그동안에도 남가주사랑의교회를 benchmarking하고 copy도 하여 우리교회에 많이 적용 하였다. 지금부터 1년동안에는 더 많이 배울 것이다. 여러분들로부터 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가장 좋은 설교를 전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본문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사실 이 설교는 3주 전에 한국을 떠나오기 전에 우리교회에서 전했던 말씀이다. 그런데 벌써 internet으로 이 설교를 들은 분이 있다고 들었다. 왜 남의 교회 설교를 듣는지 모르겠다.(웃음) 그래서 조금 고민을 했는데, 3주 전에 들은 설교를 기억하는 분이 있겠는가? 그래서 용기를 내어 이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사상가이며 저술가이신 C. S. Lewis라는 분을 알 것이다. 그 분은 참으로 주옥 같은 글을 쓰시는 이 시대 가장 큰 지성인이다. 그가 8 세가 되던 해에 그의 어머지가 돌아가셨다. 그 일은 어린 그에게는 참으로 큰 상처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두 가지의 결정을 하게 된다. 지금부터는 어머니의 생각을 하지 말 것과 사람들 앞에서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는 일이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너무도 커서 그는 마침내 마음을 닫아 버리게 되었다. 그는 냉냉한 사람이 되었고 사랑과 정이 없는 사람이 되어 갔다. 

그런 C. S. Lewis가 60세가 되던 해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Joy라는 여인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Joy는 당시에 말기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인생은 고작 1년 뿐이었다. 그러나 C. S. Lewis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하였던지, 그는 Joy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으로 Joy는 3년 2개월을 더 살게 되었다. 마침내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사람들은 그가 지지리도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각이었다. 그는 3년 2개월 동안 참으로 진실한 사랑을 하였고, 그의 남은 인생 동안 그 사랑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살았던 것이다. 누군가 그의 인생 중에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물을 때에 그는 주저함 없이 아내와 함께 했던 그 3년 2개월이라고 대답했다. 그 이후에 그는 ‘네 가지의 사랑’이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에 대한 과거 추억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것이다. 여러분들은 그런 사랑의 추억을 가지고 사는가? 우리 인생의 어려운 일들을 단숨에 치유할 수 있는 뜨거운 사랑을 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아무리 부유하고 풍요로운 삶을 산다고 해도 이 질문에 ‘Yes’라고 대답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꿈은 추억보다도 커야 한다. 그리고 매일 추억만 하고 있는 사람은 행복이 적은 사람이다. 

또한 과거에 누렸던 추억 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미래에 대한 꿈을 꾸기가 어렵다. 그러나 과거의 추억이 많아야 미래의 꿈이 가능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나를 도와 주었던 많은 분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가주사랑의교회에 처음 강사로 오던 때에 나는 이 교회를 통해서 참으로 큰 은혜를 누렸다. 그 사랑이 내 안에 귀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 사랑 때문에 안식년을 이곳 LA로 오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지치고 힘들었던 때에도 여러분들의 사랑이 참으로 큰 힘이 되었다. 1년 동안의 짧은 기간이지만 정착하는 과정은 이민자의 경우와 다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도 많은 도움과 사랑을 받았다. 개척할 때에 오래 기다리고 참아주었던 성도들에 대한 추억도 귀하게 간직하고 있다. 이런 추억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으로 인한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기를 축원한다. 나 자신도 시카고에서 처음 이민 생활을 시작할 때에 하나님이 만나주셨고 만져주셨던 추억이 평생의 재산으로 남았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주일학교 때에 부르던 찬양이 기억나곤 한다. ‘하나님과 푸른 초장을 한없이 거니네 손을 잡고 기쁨을 나누면서 단 둘이서 한없이 걸었네’ 내 삶 속에서 고비가 있을 때마다, 그리고 외로울 때마다 친구가 되어주신 하나님과 초장을 거닐던 추억이 있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문제를 이기는 능력이 된다. 

본문에서 모세는 임종을 앞두고 있다. 그의 마음은 참으로 복잡했을 것이다. 아직 가나안에 도착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는 백성 만을 남기고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아직도 백성들은 참으로 위태 위태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세 편의 설교를 남기게 되었고 그 글이 바로 신명기가 되었다. 신명기의 주제는 한 마디로 ‘기억하라’이다. 신명기에는 이 말이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모른다. 

백성들에게는 참으로 큰 위기가 찾아온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과 같이 느껴지던 모세가 아니었던가? 탁월한 지도력과 믿음으로 그들을 여기까지 인도한 모세가 아니었던가? 그런 모세가 이제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이었다. 앞이 캄캄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모세는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다. 현실의 문제 앞에서 과거의 문제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christian들은 참으로 불행하다. 지금보다 더 어려울 때에 우리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는 추억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억하고 추억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1) 그 분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본문 11절을 다시 보자.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분의 사진을 보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진은 가짜이며 가공의 인물을 그려 놓은 것이다. 십자가 목걸이도 가짜이다. 주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내가 이 교회를 자주 오기 때문에 어쩌면 식상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올 때마다, ‘어떻게 이런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이렇듯 찬양이 은혜로울 수 있는가?’라는 감동을 받는다. 여러분들은 아마도 이 예배의 은혜에 중독이 되어서 다른 교회를 갈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하여 아무런 삶의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은 그 분의 명령을 기억하고 그것을 지키는 행위를 의미한다. 추억이라는 말은 ‘자카르’라는 단어에 의미를 두고 있다. 그것은 머리 속으로 회고한다는 뜻이 아니다. 

창8:1을 읽어보자.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하나님은 노아를 기억하고 계셨다. 노아에 대한 하나님의 기억과 추억에는 임박한 구원활동이 연결되어 있다. 노아를 기억하신다는 뜻은 연상 정도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서 건져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행동이 포함되어 있다. 

삼상1:19을 보자. ‘그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남편과 동침하니 하나님이 한나를 생각했다고 한다. 주님이 생각했다는 것은 아기를 갖지 못하는 자의 소원을 기억하고 이를 이루어주실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도 우리의 행위가 포함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예배를 통해서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우리의 노력과 행위를 뜻한다.

(2) 겸손하라는 뜻이다.

본문 13-14절을 보자.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주님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인간의 모든 연약한 모습을 잘 표현한 말씀이다. 이민자로서의 우리 모습이기도 하다. 이민 초기에 우리는 참으로 겸손하였다. 많은 도움을 받아야만 했기에 우리는 누구에게나 겸손할 수 있었고 자세를 낮출 수 있었다. 

그러나 10년 정도 지나게 되고 우리의 힘으로 스스로 일어서게 되면서부터 우리는 한없이 교만해진다. 하나님은 바로 그 때에 자신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그 상황 속에서 바로 겸손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왜 안식년을 가져야 하는지 의문이 있었다. 한 일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아직 힘들고 지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개척한 교회에 내가 없어도 문제가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안식년을 결정하고 모든 것을 부교역자들에게 일임해 버렸다. 전화도 하지 말고 연락도 하지 말라고 했다. 1년 이후에, 우리교회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라는 것을 깨닫고 싶었고 또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인생 중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고 교만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인생을 축복하실 것이다.

(3) 과거에 주신 은혜를 기억하라는 뜻이다.

본문 15절을 보자.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이 말씀은 특별히 이민자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신11:4-5절도 보자. ‘또 여호와께서 애굽 군대와 그 말과 그 병거에 행하신 일 곧 그들이 너희를 따를 때에 홍해 물로 그들을 덮어 멸하사 오늘까지 이른 것과 또 너희가 이곳에 이르기까지 광야에서 너희에게 행하신 일과’  X-ray 사진 한 장 넣은 노란 색 봉투를 들고 입국 서류 심사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된 이민생활이었다.하지만 하나님은 필요할 때에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이 시간에 영상 하나를 함께 보기를 원한다. 이 영상은 한국이 너무도 힘들었을 당시에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보여주는 영상이다. 

한국을 아십니까? / 불과 50여 년 전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막 벗어난 그들에게
전쟁은 너무도 가혹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미래나 내일 같은
섣부른 희망의 말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내일이란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또 다른 오늘이었고
그들에게 허락된 것이라고는 생존을 위한 작은 기도뿐이었습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이 나라보다 못사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꿈이라고는
오직 굶지 않고 하루를 넘기는 것이었으며
이 배고픔이 대물림 되지 않기만을 바랬습니다.
이들에게 삶은 너무도 가혹했고
이들이 곧 주저않아 삶을 포기했다 해도
전혀 놀랍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포기하거나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비록 자신들에게는 내일이 없을지라도
자식들에게 있을 내일을 기도했습니다.

당시 유엔에 등록된 나라는 모두 120여 개국
한국의 국민소득은
태국이 220불 필리핀이 120불인데 비해 고작 76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인도 다음으로 못사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습니다.

1962년 한국은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같은 분단국인 서독에서 1억 4천만 마르크의 차관을 얻는데 겨우 성공했습니다.
서독이 필요로 하는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은 차관의 담보로 잡혔습니다.
낯선 땅 서독으로 간 어린 간호사들이 실력을 인정받기 전, 맨 처음 한 일은 거즈에 알코올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들을 이리저리 굴리며 닦는 것이었습니다.
광부들은 지하 천 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뜨거운 지열을 참으며 죽어라 일했습니다.
이들이 너무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감동하여 서독은 한국 대통령을 초청하였고, 고국의 대통령을 보기위해 한국인들이 강당에 모였습니다. 
연설에 앞서 애국가를 부르던 사람들은 목이 메어 끝까지 노래를 부를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은 준비해간 연설문을 접고 같은 말을 되풀이 하여 외쳤습니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우리 후손들만큼은 결단코 타국에 팔려 나오지 않도록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광부들은 서독 대통령에게 큰 절을 올리며 울면서 부탁했습니다. “우리나라를 좀 도와 주십시오. 우리 대통령을 도와 주십시오.”
목 놓아 우는 광부 간호사를 두고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대통령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뤼브케 서독 대통령은 손수건을 꺼내 주며 위로 했습니다. “우리가 돕겠습니다. 서독 국민이 돕겠습니다.”

그렇게 한국의 근대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와 광부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월남전 파병은 한국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고
참전 용사들의 전투수당으로 고속도로가 건설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태양이 작렬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도 피 같은 눈물과 땀을 흘리며 밤낮으로 달러를 벌어 들였습니다.
어린 소녀들은 가발 공장, 봉제 공장, 신발 공장, 섬유 공장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수출 상품을 만들며 어린 동생들의 학비를 벌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민주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1950년, 그로부터 50년 후 나의 조국 대한민국

건설 산업 규모 세계 3위
단일 원자력 발전소 이용률 세계 5위
철강 제조 산업 세계 5위
조선 산업 세계 1위
세계 무역 규모 12위권
외환 보유 세계 4위
컴퓨터 보급률 세계 1위
초고속 통신망 보급률 세계 1위
학교 정보화 시설 세계 1위
디지털 기회지수 세계 1위
기적을 믿으십니까?
이제 우리는 약속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좋은 나라를 물려주겠다고
너희들 또한 충분히 자랑스러워 할 만한 그런 나라를 만들겠다고

나는 이 영상을 처음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대한민국을 돌아보고, 교회를 돌아보고, 가정과 개인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우리 모두가 이루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영상은 우리의 2세들이 보아야 한다. 그들은 부모들이 흘린 눈물과 땀을 보아야 하고 이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보아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모든 것을 이길 힘을 주실 것이다. ‘베드로의 고백’이라는 찬양이 있다. 

특별히 2절을 보자. 이 가사에는 사명을 가지고 주님께로 달려가는 추억이 있다. ‘지난 유월절 저녁 성찬 때 주님과 함께 마시던 핏 잔 그 일이 문득 생각이 나면 어느 새 내 뺨에 주르르 눈물만이 흐릅니다. 많은 사람들 위해 당신이 바친 고귀한 희생 영원히 당신과 함께 있고파 사랑의 십자가를 맞이하네’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 우리가 추억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 찬양의 3절을 부를 때에 참 많이 울었다. 베드로에게는 실패한 자신의 모습만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두렵지 않다고 고백한다. 이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순간에 가능했다. 그리고 순교 당할 때에, 자신은 주님과 동일한 모습으로 죽을 수 없다며 거꾸로 십자가에 달렸던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을 어찌 알 수 있는가? 이보다 더 힘들고 더 절망될 때에도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셨다. 지금보다 더 낙심될 때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자. 이것을 추억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아멘. 
(이찬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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