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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전을 건축하여 크게 도약하자 (스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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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건축하여 크게 도약하자 (스 1:1~11)

 
❚그 분이 마음만 먹으면...

군대라는 곳이 지금은 많이 민주화 되었다고 합니다만 누가 뭐래도 아직 군대는 명령에 죽고 사는 특수한 조직이기에 윗사람의 권위가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군대 가면 어떤 상관을 만나느냐, 어떤 지휘관을 만나느냐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군대 가는 자녀들 위해 기도할 때 꼭 빠뜨리지 않는 기도가 있지요? “좋은 부대 만나게 해주시고 좋은 지휘관과 좋은 상관 만나게 해 주세요.” 

제가 군목으로 있으면서 누구보다 뼈저리게 경험한 바가 있어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군대라는 곳이 지휘관이나 상관 하나 잘 만나냐 못 만나냐에 따라 군 생활 전체가 달라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좀 편하게 쉽게 군 생활을 할 수도 있고, 군대말로 ‘꼬였다’고 하는데 군 생활 전체가 피곤하고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군대에서 지휘관이 어떤 종교를 믿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일반 사회에서는 상상이 잘 안 가는 일이지만 군대에서는 상관의 종교에 따라 이리 저리 종교를 옮기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군 생활을 하면서 만난 지휘관은 모두 세 분이었습니다. 첫 번째 만난 연대장은 불교신자였는데 상당히 엄하면서도 고집이 세고 독선적인 분이었습니다. 저와는 그리 불편하지 않았지만 제 전임 목사님만 해도 이 분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많았습니다. 심한 욕도 먹고, 군목으로 활동하는 데도 적지 않은 불편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워낙 이분이 엄한데다가 조금만 아랫사람들이 마음에 안 들면 심하게 야단 치고 심지어 두들겨 패기까지 해서 부대 전체 분위기도 살벌했습니다. 세 번째 만난 지휘관은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 대해서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저를 못살게 굴거나 기독교 활동을 방해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도와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난 지휘관은 180도 달랐습니다. 안수집사님입니다.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군대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신앙생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아주 신실한 믿음을 가진 분이라 저는 이 분 때문에 도움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특혜를 많이 누렸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면 안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다른 장교들은 다 안 된다고 해도 연대장 안수집사님만 한 번 찾아가면 다 해결됩니다. 그래서 이 분과 지낸 기간이 1년 반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기간에 저는 하고 싶은 것 다 했습니다. 심지어 저에게 3박 4일 휴가증도 여러 장 주어서 교회 잘 나오는 병사들 휴가도 보내주었습니다. 

군인에게 휴가증은 인생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휴가증까지 제가 마음대로 할 정도였으니 알만 하시지요? 게다가 군대에서 지휘관이 종교가 없는 부하는 물론이고 불교 신자나 천주교 신자 부하에게 “너 이번 주 일요일에 교회에서 보자”고 하면 끝입니다. 나와야 합니다. 내가 무신론자든, 종교가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부작용도 있습니다. 하지만 군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 때 제가 깨달은 것이 이것입니다. “군대에서 지휘관이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지금은 군대도 달라졌다고 합니다. 지휘관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못 한답니다. 특히 종교 문제는 지휘관 뜻대로 강요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군대 안에서 지휘관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군 선교에 있어 병사 한 사람을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휘관을 전도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요? 그 분이 마음먹으면 안 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방법을 즐겨 사용하십니다. 어떤 나라든지, 어떤 집단이든지 가장 위에 있는 사람 하나를 움직여 전체를 변화시키시는 방법입니다. 어떤 선교사는 인도네시아 오지에 가서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안 먹히더니 그 마을 추장 딸의 열병을 기도해서 고쳐주자 추장이 마을 사람 다 모아 놓고 “오늘부터 우리 마을은 다 예수 믿는다”고 선언하더랍니다. 한 기업의 최고 경영자를 하나님 믿게 하시거나 한 나라의 통치자를 예수 믿게 하시는 일도 자주 하나님이 쓰시는 방법이고, 특히 가장이 예수 믿게 하셔서 그 집안 전체가 예수 믿는 집안으로 만드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참 지혜로우신 분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포로로 끌려온 지도 벌써 70년이 다 되어 갑니다.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별 가능성은 없지만 혹시나 예루살렘에 돌아간다 해도 문제는 더 복잡합니다. 지금 예루살렘 성은 다 파괴되고 황폐화되어 성전은 불타 무너지고 성벽도 다 무너져 버렸는데 돌아가 봐야 살 집도 없고 예배드릴 성전도 없습니다. 그러니 돌아가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놀라운 일을 일으키십니다. 감히 상상도 못할 놀라운 일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희망을 포기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곳 예루살렘에 성전을 다시 건축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놀라운 일을 이루실 뿐 아니라 사람들이 기대하고 상상하던 것을 뛰어넘는 일들까지 이루신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요? 바로 고레스라는 사람을 사용하셔서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오늘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것만 같던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위해 하나님이 세 가지를 주셔서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 세 가지를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 교회의 성전건축과 신앙공동체 재건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레스를 보내신 하나님(1~4절)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위해 첫 번째는 주신 것은 바로 ‘고레스’라는 사람입니다. 고레스는 ‘키루스’라고도 읽는데 영어식으로 부르면 사이러스(Cyrus)입니다. 고레스는 바사, 즉 페르시아 왕국을 세운 첫 번째 왕입니다. 고레스의 아버지는 동부 엘람의 작은 나라인 안산의 왕 캄비세스 1세(주전 600-539년)인데 아버지가 죽고 그 나라를 이어 받습니다. 그는 왕에 오른 즉시 주변 나라들을 통합하고 힘을 키우다가 주전 539년 당시 최대의 강대국 바벨론까지 멸망시키고 중동 전체를 통일합니다. 하루아침에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나라가 바벨론에서 바사로 바뀐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 나온 것처럼 이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하고 바사 왕위에 오른 원년, 주전 538년에 고레스 왕은 뜻밖의 칙령을 내립니다. 바벨론에 멸망당해 바벨론 땅에 끌려와 있던 모든 포로들은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칙령입니다. 게다가 고향에 돌아가 그들이 섬기던 신을 위해 신전도 세우고 각자의 신을 잘 섬기도록 허락할 뿐 아니라 나아가 그런 종교행위를 위해 적극적으로 후원까지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고 그곳에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에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라고,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약속까지 합니다. 정말 깜짝 놀랄만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역사학자들은 이런 일들이 고레스의 정치적인 계산 때문이라고 봅니다. 바벨론은 그들이 점령한 국가들에 대해 철저하게 통제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그래서 종교도 억압하고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죄다 잡아다가 자기네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아놓고 감시한 것입니다. 하지만 고레스의 정책은 전혀 달랐습니다. 반란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최대한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고향땅으로 돌아가 얼마든지 자기 신을 섬기며 살라고 했습니다.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종교 관용정책을 쓴 것이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1절에 보시면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매”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바사 왕 고레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귀환시키고 성전도 다시 짓도록 칙령을 내린 것은 다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 즉 예레미야 25장 11절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이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할 것이라고 예언한 것과 29장 10절에 칠십 년이 차면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예언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하셨다는 것입니까? 성령의 감동을 고레스에게 주셔서 그 마음을 움직여 이 놀라운 포로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할 마음을 먹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설교 첫머리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은 참 지혜로운 분이십니다. 어떤 나라나 단체나 가정에서 제일 윗사람, 최고 지도자를 움직여 그 전체를 하나님 뜻대로 움직이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이 사람들이 가진 권력 때문에 이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 사람들에게 그 권력과 힘을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13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래서 하나님은 이 권세를 가진 사람을 움직여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이루십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시다면,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시면 그 일에 꼭 필요한 사람을 보내주시고 채워주십니다. 나라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도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는 오늘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자, 하나님이 원하시는 역사를 일으키고자 보내신 분들임을 믿으시면 아멘하기 바랍니다. 

여러분과 저는 모두 하나님이 우리교회의 부흥과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 예비하고 보내 주신 분이란 말입니다. 우리교회에 꼭 필요한 목회자로 저를 보내주셨고, 여러분을 우리교회에 꼭 필요한 지도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나님이 우리교회에 꼭 필요해서 보내신 성도들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교회에 담임목사로 오고 싶어서 이력서 내고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우리교회에 보내신 것이고 여러분도 내가 오고 싶어서 내가 택해서 우리교회에 온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이 필요하셔서 꼭 쓰실 데가 있어서 보내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는 성전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가 평생 목회하면서 교회 한 번 지어보는 일이 결코 쉬운 일 아닙니다. 아무리 내가 하고 싶어도 하나님이 허락 안 하시면 평생 목회해도 성전건축 한 번도 못 해보는 목회자가 많습니다. 그러니 목회자에게도 성전건축이 힘든 일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이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생일대의 영광이요 특별한 은혜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일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전을 한 번 건축해보는 것이 결코 쉬운 일 아닙니다. 아무나 못합니다. 부담은 되지요. 힘들지요. 하지만 “하필 왜 내가 여기 다닐 때 부담되게 건축하나?”가 아니라 하필 이 때, 내가 이 교회 다닐 때, 하나님이 나에게 교회 건축할 기회를 주시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특별한 은혜요 특혜입니다. 일생일대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이 다 뜻이 있어 우리를 우리교회에 보내신 것처럼 다 뜻이 있어서 내 대(代)에 내가 신앙생활 하는 이때에 이 성전건축을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나를 택하시고 이곳에 보내셔서 사용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우리가 못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감동을 주시는 하나님(5~6절)

두 번째로, 하나님은 이렇게 고레스와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사람을 택하여 사용하실 뿐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 성령의 감동을 주시는 분입니다.

보십시오. 1절에서도 하나님은 바사 왕 고레스를 택하여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려보내고 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할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나아가 그 성전 재건을 내가 저적으로 후원하겠다는 마음까지 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5절에 보면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감동을 주십니다. 5절과 6절 보세요.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그 사면 사람들이 은 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 

사람은 감동을 받으면 못 할 일이 없는 존재들입니다. 억지로 시켜도 하긴 하지만 기쁘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감동을 주면 뭐든지 다 하게 됩니다. 요즘 기업들이 고객감동이니 뭐니 하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한번이라도 아랫사람을 다뤄본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그들을 감동시키면 물불을 안 가립니다. 뭐든지 다 합니다. 목숨을 내놓으라면 내놓을 정도로 충성합니다.

하나님도 오늘 고레스와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여 성전 건축을 시키실 뿐 아니라 그들 마음에 성령의 감동을 주십니다. 이 ‘감동’이라는 말이 영어성경에 ‘moved the heart’ 즉 가슴을 움직이신다고 나옵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고레스의 가슴을 움직이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도자들의 가슴에 불을 붙이신 것입니다. 그러니 가슴이 뜨거워져서 하나님께 충성하고 모든 것을 다 바칩니다. 못 할 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억지로가 아니라 스스로 기쁨으로 그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동을 받아 은 그릇과 금과 물품과 짐승과 보물을 드리고 헌물을 ‘기쁘게’(6절) 드려서 성전 건축이 가능해 진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 성령의 감동을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 사람의 의지나 결심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굳게 결심해 봐야 오래 못 갑니다. 조금만 힘들거나 어려움이 생기면 곧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직접 시키시고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고 우리 가슴에 불을 붙이시면 못 할 일이 없게 됩니다. 다 할 수 있습니다. 성전건축도 누가 하자고 해서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내 직분 때문에 의무감으로도 아니고 오직 성령이 주시는 감동을 따라 기쁨으로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물을 돌려주시는 하나님(7~11절)

마지막 세 번째로, 본문 7절부터 보면 고레스 왕이 예루살렘 성전건축을 명령한 후 성전에서 약탈해 온 거룩한 그릇들, 제사 때 쓰던 금 접시, 은 접시, 칼, 금은 대접 오천 사백 개를 다 돌려주게 합니다. 이 거룩한 그릇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성전을 불태울 때 그 성전에서 약탈 해다가 자기 신들의 신당에 보관해 두던 것인데 고레스가 이 그릇들을 다 돌려준 것입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성전을 다시 지으라고 허락한 것만도 대단한 일인데 이렇게 귀한 그릇까지 돌려주다니요. 돈으로 따지면 얼마인데 그걸 다 돌려줍니까?

다 하나님이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가능해진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4절에 보면 고레스는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할 때 ‘그 남아 있는 백성들’ 즉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남아서 살던 백성들도 모두 남의 일처럼 여기지 말고 마땅히 은과 금과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라고 명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할 때 자기들이 낸 헌물로만 건축한 것이 아니라 고레스가 돌려준 그릇과 예루살렘 땅에 남아있던 백성들이 도와주는 물질까지 합해서 쉽게 건축이 가능해 진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계획하고 세밀하게 간섭하셔서 가능해진 일입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하나님이 마음먹으시면,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면, 그래서 우리가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주변 모든 사람과 환경을 다 움직여서라도 우리를 도우신다는 사실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성전 기물을 돌려받은 것처럼 우리에게 물질이나 환경을 통해 도우시고, 때로는 우리가 생각지도 기대하지도 못한 일까지 일어나게 해서 우리를 깜짝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받게 하십니다. 많은 분들이 성전건축을 시작하면 주변 주민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걱정들 하십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기 전에 한 번 우리 기억을 더듬어 보십시오. 우리가 성전건축 허가를 받으려고 할 때 이곳은 1종 주거지역으로 건물의 층수나 평수가 제한되어 도저히 우리가 계획한 건물을 지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해주셨습니다. 물론 시의원인 이 집사님 같은 분들이 애를 많이 쓰셨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이번에 포항시에서 5억이나 되는 예산을 들여 앞으로 2년 정도면 교회 앞으로 길이 새로 나서 저 지곡 단지와 성모병원 쪽으로 직통 연결하기로 결정했답니다. 그렇게만 되면 우리가 새 성전을 완공하는 시기쯤 되어 교회 앞으로 큰 길이 나서 교회 오기가 너무 편해지는 것입니다. 저나 우리 교회가 해달라고 조른 적 없습니다. 그런데 알아서 해주겠다니 참 신기한 일입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그러니 주변 주민들의 반대나 그 어떤 환경적인 문제도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오히려 주변 주민들이 우리를 돕고, 포항시가 돕고, 기대도 못한 사람들을 통해 우리를 돕게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귀환할 수 있었던 것도, 또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뜻하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뜻하시니 고레스도 보내주시고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성령의 감동도 주시고 주변 모든 사람과 환경에서도 도움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기도하며 계획하는 성전건축도, 그리고 교회를 새롭게 재건하고 건강하고 성장하는 교회 공동체로 만들려는 일도 사실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왜? 성전건축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잘되는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해 집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모든 사람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을 책임져 주시고 주변 사람과 모든 환경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의 뜻에 순종해서 시키시는 대로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쪼록 이번 성전건축을 통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뜻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힘들겠지만 어려움도 있겠지만 이 성전건축을 무사히 이루는 그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발견하고 우리와 함께 하신 임마누엘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 손길을 발견하는 놀라운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우리 교회도 한 단계, 아니 두 단계 세 단계 더 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이요, 우리들 자신의 신앙도 몇 단계 뛰어오르는 성장하는 귀한 기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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