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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교제 (행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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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건강한 교제 (행 2:42)


바울이 위대해진 것은 좋은 사귐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크게 3가지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주님과의 교제입니다. 그는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깊은 영성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는 믿는 자들과의 교제입니다. 바울의 사역의 현장에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교제하므로 하나님의 일을 더 크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불신자들과의 교제입니다. 바울은 불신자들과 교제하는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그는 불신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불신자들과 적극적으로 교제하였습니다. 우리도 한 영혼이라도 전도하기 위하여 천 번 기도하고 백 번 전화하고 십 번 만남 운동으로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시간마다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믿음을 요약한 것으로 우리 신앙의 뼈대와 같은 것입니다. 만약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과 일치하지 않는 다른 믿음의 내용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단입니다. 그런데 사도신경 가운데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교제를 말합니다. 사도신경에 성도들의 교제가 들어있다는 것은 교제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에 보면 모범적인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귀하게 쓰신 사람들이 사도 즉 목사입니다. 또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사용하신 도구는 사도의 가르침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피고자 하는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생활입니다. 그 가운데 ‘서로 교제하고’라는 부분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통해서 주시는 몇 가지 교훈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한 영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성도의 교제가 필수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담이 독처하는 것 즉 혼자 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시고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신자들이 신앙생활 하는데 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셔서 교회를 만드신 것입니다.
 
사람은 삼위일체로 공동체를 이루고 사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그런지 홀로 살 때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타인과 담을 쌓고 혼자 사는 사람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절대 건강하게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타인과의 교제를 원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챙이 큰 모자를 쓰고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뒤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분이 이 분 모자 때문에 강대상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뒤의 성도가 몇 주일을 망설이다가 상대방이 화를 내면 어떻게 하나 마음을 졸이며 아주 조심스럽게 이런 사정을 말하고 모자를 벗거나 챙이 좀 좁은 것으로 바꿔 쓰고 오면 좋겠다고 당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큰 모자를 쓰신 분이 아주 좋아하면서 “나는 이 교회에 나온 지 반년이 되었는데 선생님이 나에게 처음 말을 건 분입니다. 다음 주일부터는 제가 모자 안 쓰고 올게요” 하더랍니다. 뒤의 성도는 이 말에 자극을 받아 그 다음부터는 낯선 성도들 찾아다니며 말 걸기에 힘썼다고 합니다. 그 만큼 성도의 교제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무에게도 간섭 받지 않고 조용히 교회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다른 성도들과 교제하지 않고 조용히 예배만 드리고 돌아갑니다. 예배 외에 사역이나 헌금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이런 현대인들의 특징 때문에 큰 교회는 사람의 숫자는 많아지지만 일꾼은 많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1년에 2천개의 개척교회가 문을 열지만 이런 현대인들의 특징 때문에 1년에 3천개의 개척교회가 문을 닫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려면 건강한 가정생활이 필수인 것처럼 영적으로 건강하려면 그리고 진정한 하나님의 복을 누리려면 교회 안에서의 영적인 교제가 필수적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애틀로 가는 도로변에 레드우드 스테이트 파크(Red Wood State Park)라는 유명한 공원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엄청 큰 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어떤 나무에는 그 밑둥에 터널을 뚫어 놓았는데, 2차선 도로 정도의 폭이 됩니다. 심지어 그곳에 있는 나무 중에는 장정 20명이 손을 잡고 둘러서야 겨우 두를 만큼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그곳의 나무들이 이렇게 굵고 큰 이유가 무엇인가를 연구했습니다. 그 뿌리를 파헤쳐 보기 시작했습니다. 보통은 나무의 높이만큼 뿌리가 깊이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레드우드는 뿌리가 전혀 깊이 내려지지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각각의 레드우드의 뿌리가 서로 옆의 나무와 굳건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옆의 나무와 서로 뿌리가 연결되어 있으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수가 있었고, 그 큰 덩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나무들 중에는 죽어 있는 나무들도 있었는데 왜 죽었는지 연구를 해보니까 다른 나무들과 뿌리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쓰러져 뿌리가 뽑혀 죽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레드우드처럼 서로 믿음의 뿌리가 연결되어 믿음의 거목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언제 어디서 보아도 잎이 청청하고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긍정적이고 신앙적인 사람과 교제하라

사람은 누군가에겐가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긍정적이고 신앙적인 사람과 사귀면 긍정적이고 신앙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반대로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사람과 사귀면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담임목사님에게 “목사님, 참 희한한 일이 있습니다.”라고 하시며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집사님의 앞집에 정신이 조금 이상한 남자분이 이사를 왔는데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같은 노래만 부른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들려오는 “타향살이 몇 해던고 손꼽아 헤어보니...”라는 노랫소리 때문에 집사님이 스트레스가 쌓여 얼마나 힘든지 몰랐답니다. 그래서 ‘어쩌다 우리 앞집에 저런 이상한 남자가 이사 와서 이렇게 어렵게 하나?’ 하며 불평했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집사님이 자기도 모르게 “타향살이 몇 해던고 손꼽아 헤어보니” 하면서 같이 그 노래를 부르고 있더랍니다. 빨래하면서도, 음식을 만들면서도, 청소를 하면서도 ‘타향살이……’ 하고 있더랍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축복 받기가 불가능합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축복을 받으려면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과 저주는 생각의 결과요 말의 결과로 찾아옵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사람은 그 생각이 부정적이고, 말하는 것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그에게 찾아오는 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이상하게 늘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면 그 일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지 못하고 늘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예를 들어 여선교회 사업부에서 물건을 팝니다. 그건 복음서에서 성전에서 장사하던 사람들과 다른 것입니다. 그들은 그 일을 통해서 자신들의 욕심을 채웠고 불의한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주님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여선교회 사업부에서는 성도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팔아서 선교나 구제에 사용하기 때문에 목적 자체가 다른 것입니다. 

사업부에서 판매하는 물건은 세일을 하는 곳에서 파는 것보다는 비싸겠지만 일반적인 가격보다는 비싸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보편적인 가격을 생각하지 않고 가장 가격이 싼 곳보다 더 받는다고 물건 값이 비싸다는 등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공동체 생활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싸다고 생각하면 사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힘을 뺄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부정적으로 보면 한 없이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뭐든지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훈련을 하십시오. 그래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긍정적인 사람과 교제하십시오. 롯을 보세요. 믿음이 좋은 아브라함과 함께 살 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 옆에 있다가 덩달아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브라함과 헤어지고 난 후에 믿음이 없고 패역한 소돔성 사람들과 살다가 소돔성의 멸망과 함께 모든 재산 다 잃고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고, 술을 먹고 두 딸과 동침해서 모압과 암몬 족속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공부도 안하고 학교도 안가고 말썽만 피우는 친구들하고 같이 다니면 얼마나 속상합니까? 얼마나 답답합니까? 그 심정이 목사의 심정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부디 믿음의 사람, 긍정적인 사람과 교제하셔서 하나님의 복을 넘치게 받기를 축원합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

성경은 심고 거두는 법칙을 가르칩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은 대인관계에도 적용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상대방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해야 합니다. 상대를 바라보는 시각, 생대를 향한 생각, 상대를 향한 말, 생대를 행한 행동 하나하나를 좋은 것으로 주려고 하십시오. 

한 젊은 농부가 어떤 나이든 농부와 나란히 이웃하여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어느 날 나이 많은 농부로부터 참기 어려운 모독을 당하였습니다. 아주 분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화가 난 농부는 복수할 양으로 존슨쵸라고 하는 잡초 씨를 이웃 농부의 밭에 뿌렸습니다. 당연히 그 밭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얼마 후에 그 농부의 딸과 이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장인이 그 밭을 이 사람에게 결혼 선물로 주었습니다. 농부는 그 밭의 잡초를 없애느라고 무려 30년 동안을 고생했답니다.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형제에게 선을 행한 것은 주님에게 선을 행한 것이고, 우리가 믿음의 형제에게 악을 행한 것은 주님에게 악을 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는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을 심어야합니다.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지 말라

아기 들이 걸음마를 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이 넘어져야하는지 모릅니다.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의 건강한 몸으로 세움 받기 위하여 끊임없이 넘어졌다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합시다. 그리고 상처 받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다 허물이 있습니다. “그러려니”하고 이해하고 넘어가십시오.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자신만 손해입니다. 특히 교회에서 상처를 받으면 신앙에 마이너스가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사랑스러운 사람도 있지만 미운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 중에 “여러분들 중에 미워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으신 분, 손들어 보세요” 아무 반응이 없자, 다시 물으셨습니다. “아무도 없습니까? 손들어 보세요” 그때, 저 뒤에서 한 할아버지가 손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할아버님,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우리에게 말씀해주세요” 라고 물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힘없는 목소리로 할아버진 말씀하셨습니다. “응, 있었는데… 다… 죽었어요” 


이용하려고 하지 말고 사랑하려 하라

목적이 잘 못되면 교회를 오래 다녀도 신앙이 성장하지 못합니다. 목적이 잘못되면 기도를 많이 해도 응답을 못 받습니다. 가룟유다는 주님의 제자로 3년 동안 주님과 교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주님을 팔아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목매달아 죽었습니다. 주님은 그가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주님을 이용하여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주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성경은 그를 도둑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제자들의 모임에서 회계를 보며 돈을 훔쳤습니다. 그는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을 따랐던 것이 아니라 주님을 이용하려고 따랐던 것입니다. 

요즘은 교회를 결정하는데 영적인 요소 즉 성령의 역사나, 예배의 역동성, 말씀의 능력 등을 보지 않고 교회의 규모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사업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큰 교회를 선호합니다. 이유는 교회나 성도를 사업에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결혼도 하나님이 붙여주신 배우자인가 혹은 내가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가를 보기 전에 상대의 조건을 보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초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하는 숙제를 냈습니다. 한 아이가 ‘독신자’라는 답을 써 왔습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왜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하냐?” “저는 몰라요. 아빠가 그렇게 써 줬어요.” 그 아이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얼마나 달달 볶았으면 그 아버지가 그런 답을 써 주었겠습니까? 그 어머니는 결혼의 의미를 잘 몰랐던 것입니다. 결혼은 상대를 통해서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우려고 하면 안 됩니다. 결혼은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사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은 이용당할 것입니다.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은 사랑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사랑하라 

세상은 우리들에게 남과 나를 비교하는 좋지 않은 습관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남과 나를 비교하다보면 열등감이나 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열등감과 교만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은 주님 안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한 자존감을 가질 때 다른 사람과 사랑의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마 22:39에 보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해야 합니다.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남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함께 해봅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을 따지지 않습니다. 왕자는 능력이나 지식이나 인물과 상관없이 귀한 존재입니다. 왕자가 귀한 것은 왕의 아들이라는 단 하나의 조건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귀한 존재이고, 사랑받을 조건을 갖춘 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조건,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 하나로 충분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판단하여 대우하지 말라

세상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동일한 가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영혼이든지 그 사람이 가진 사회적 조건과 상관없이 천하보다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되었든지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남편보다 사회적인 능력과 지위가 더 높은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뭘 아우?”하며 은근히 남편을 깔보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교통사고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여자가 병원으로 달려가니 의사선생님이 흰 천으로 남편을 덮고 있었습니다. “부인, 남편께서 조금 전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여자는 하늘이 캄캄해져 통곡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꿈틀꿈틀하더니 흰 천을 확 제치고 일어나면서 “나 살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당신이 뭘 아우? 의사선생님이 죽었다면 죽은 거예요. 빨리 누워요.”라고 했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성도들이 시험에 드는 가장 큰 이유는 인정받지 못한 섭섭함입니다. 마귀가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만들고 목사에 대해서, 사모에 대해서, 셀리더나 셀 가족들에 대해서 섭섭한 마음을 갖게 만들어 교회를 떠나고 신앙을 버리게 만듭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하늘의 상이 줄어든다는 것을 잘 알지만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과거에 어느 권사님이 교회에 물건 하나를 해놓고 시험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라고 당부를 해서 저는 그분의 말씀대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그 권사님이 성도들에게 불평을 한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기가 그런 봉사를 했는데 목사가 인정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분이 좋은 일을 해놓고 죄를 짓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서 할 수 없이 사람들에게 그분이 해 놓은 물건에 대해서 칭찬을 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행 13:36에 보면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라고 말씀합니다. 현재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은 30년 전에 사도행전 13장을 읽다가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라는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릭 워렌 목사님은 그때 자신이 뜨거운 불도장에 찍힌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윗은 왕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대로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았구나. 다윗은 성전을 짓도록 준비하는 일에, 솔로몬은 성전을 완공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구나. 아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목적을 주셨고 뜻을 주셨구나” 그때부터 그는 목회를 새롭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따라 하니 목회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을 펴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살면 상처를 받고 섭섭한 마음이 들고 시험에 들고 신앙이 엉망이 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힘을 쓰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진리로 반응하라

교인끼리의 관계에서 인간적인 감정으로 반응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방법입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 중에서도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대로 말하고 행동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기고 항상 명분을 따라 행동합니다. 

성경은 원수를 쳐 죽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원수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감정대로 하면 쳐 죽일 사람도 진리대로 하면 축복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위대한 점이 이것입니다. 그는 보통 사람 같으면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상대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에게도, 자신을 저주하는 시므이에게도 감정을 따라 행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어떤 것이 옳은가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반응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하라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안 볼 생각을 하지 말고 그 사람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나에게 좋게 하는 사람 때문에 감사하듯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때문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나를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만드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때문에 나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제과 사장 다케다 씨는 제과점의 왕으로 불리는데 과자를 만들 때 반드시 유정란만 사용했습니다. 그는 일본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최고의 빵과 과자를 만든다는 철학으로 처음부터 일반 계란보다 세 배나 비싼 유정란만 고집한 것입니다. 손님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맛의 차이도 분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그 제과점의 빵과 과자를 찾으니 그 제과가 일본 제과 시장의 60%를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직원들에게 빵과 과자를 만들고 포장할 때 “감사합니다.”라고 3,000번 말하게 한답니다. 일할 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분위기가 달라지고, 감사의 회사가 되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실험한 결과에 의하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 입김을 시험관에 담고 거기에 모기를 넣으면 모기가 오래 오래 사는데, “제기랄!”하고 욕할 때 그 입김을 받아 시험관에 담고 모기를 넣으면 모기가 금방 죽는다고 합니다. 따라 합시다. “감사하면 공기도 복을 받고, 저주하면 공기도 저주를 받는다.” 그러니 감사가 얼마나 좋습니까? 무조건 감사해 보십시오. 살맛이 납니다. 원수도 사랑하게 됩니다.  

건강한 교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교제하고 적극적으로 사랑합시다. 그래서 우리가 섬기는 교회를 초대교회처럼 아름다운 교회 건강한 교회로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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