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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합니다 (롬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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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합니다 (롬 12:1~2)


I. 행복한 예배에의 열망

젊은 목사님이 목회를 하다가 큰 문제거리를 만났습니다. 통성 기도회 시간에 교인들끼리 다툼이 난 것입니다. 기도 시간에 절반 정도의 사람들은 일어섰고, 나머지 교인들은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맞은 편을 향하여 자기들이 교회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고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목사님이 아무리 설득하고 말려도 양측의 대립은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젊은 목사님은 이 교회의 창립 멤버인 99세 된 노신자 한 분을 만나기 위하여 양로원에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은 이 할아버지 교인에게 자신이 겪고 있는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할아버지, 통성 기도 시간에 회중들이 일어서는 것이 이 교회의 전통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기도 중에 앉아 있는 것이 전통이겠군요?" "그것도 아닙니다." "아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 교회의 전통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우리 교회의 전통은 절반은 서고 절반은 앉아서 서로 고함을 지르는 것이 전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익숙한 방식으로 예배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내 입맛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맛대로 드려야 합니다. 전통적인 예배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요즘 예배가 너무 시끄럽다고 비판합니다. 참여적인 예배 - 소위 열린 예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통적 예배는 죽은 예배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전통적 방법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는 예배를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 어느 교회 부흥회를 가든지 강사 접대를 가정에서 하지는 않습니다. 대개 이름난 식당들을 찾아 접대를 합니다. 언젠가 부흥회를 갔던 이 교회에도 강사 접대팀이 있어 유명한 식당에서 매끼 접대를 해 주었지요. 그런데 마지막 식사시간엔 팀장 가정에서 준비를 해 주었습니다. 용케도 모든 반찬, 과일, 차 한잔까지도 정확히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매끼 목사님 곁에서 목사님의 젓가락이 많이 가는 음식을 체크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살펴야겠다. 그리고 나도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 하나님의 기쁨의 사역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젓가락이 많이 가는 음식이 되어야 겠구나!'

오늘은 "공동체를 세우는 40일 캠페인" - 마지막 주간 "우리는 함께 예배하도록 지음받았다" 예배주간입니다. 공동체가 함께 해야 하는 일이 많이 있지만 예배야 말로 함께 서로 협력해야 가능한 일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고 설계되고 디자인 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눈길이 자주 가는 사람!
늘 하나님을 미소짓게 하는 사람!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는 사람이 되자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가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지음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날 때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내 가족들이 웃고 계셨던 것보다 더 많이 기뻐하시며 웃고 계시던 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나를 디자인하여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태어나 하나님 앞으로 다시 부름을 받는 그 순간까지 나를 통해 기뻐하길 원하시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을 「예배」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쁨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요4:23).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디자인하실 때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은 기쁨의 예배를 드려야 만이 살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인류학자들의 설명에 의하면 어느 문화 어느 종교권에 있는 사람이든지 예배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교회에 등록한 아무개 집사는 다른 지방에 살다가 일산 신도시로 이사를 왔습니다. 신도시에서 교회를 찾기 위해서 이 교회 저 교회 수도없이 방황하다가 우리교회에 와서 등록을 했답니다. 처음에 이 집사님을 만날 때는 '참 철없는 집사님이다'라는 생각도 들었고, 또 한편 '까다로운 분이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이분과 말씀을 나누다가 그 분의 가슴속에 있는 커다란 갈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분 가슴속에 은혜로운 예배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교회 선택이야 가깝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교회 규모의 크고 작음이 선택의 기준이 될 수야 없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는 where is a good preaching. 어디에 좋은 설교가 있을까? where is a good worship. 어디에 은혜로운 예배 좋은 예배가 있을까? 가슴마다 예배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서 애써야 한단 말인가? 교회 공동체는 무엇을 위해서 힘써야 한단 말인가? 그 무엇보다 첫째로 함께 힘쓸 일이 은혜로운 예배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장부터 11장까지는 믿음의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론편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하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오늘 본문 12장 1절부터 마지막 16장까지는 실천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접속사란 전반부와 후반부를 연결하는 고리입니다. 이론편과 실천편을 "그러므로"라는 한 단어로 연결해 주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은 제대로 살아야 한다." 이렇게 연결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하는가? 
실천편 첫째 절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며 살아간다" 라고 말합니다.
 

II. 몸으로 예배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예배하는 도구로 몸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마음에 있었던 것 아니었습니까?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언제나 중심으로 사람을 보시는 분 아니었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마음에 관심을 두시는 분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너희 몸으로 예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여기 몸은 나의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나 - 영, 혼, 육을 포함한 인격체를 말하지요.

어느날 여우, 원숭이, 토끼가 하나님에게 찾아가서 서로 자기가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고 자랑했답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하시는 겁니다. 여우는 재빨리 나가서 잉어와 새를 물어왔습니다. 원숭이는 도토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토끼는 빈손인 겁니다. 여우와 원숭이는 토끼의 빈손을 나무랍니다. "야, 너는 하나님이 배고프다고 하시는데 왜 모른척 하냐?" 하나님도 토끼에게 한 말씀하셨습니다. "모두들 나에게 좋은 것을 가져왔는데 너는 왜 빈손이냐?" 

그 때에 토끼는 얼굴을 붉히면서 모닥불을 지폈습니다.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자 토끼는 갑자기 불 속으로 뛰어들면서 말합니다. "하나님, 내 고기가 익거든 잡수세요." 그러고는 제물이 되어 죽어갔다는 거예요. 토끼의 마음을 알게 된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높이 평가해서 여러 사람들이 우러러보라고 달에다가 옮겨놓았답니다. 그래서 지금도 달 속에 토끼가 살고 있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원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몸으로 예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명절날 객지 생활하던 자녀들이 시골에 계신 어버이를 찾아갑니다. 손에 손에 선물 꾸러미를 들고 찾아가서 절을 올리지요. 그러면 뭘 싸왔니. 선물 보따리를 먼저 풀지 않습니다. 우리의 어버이들은 자녀들의 얼굴을 살펴봅니다. 객지생활에서 병이나 들지 않았는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며 고생을 하지는 않았는지. 아이들은 속을 썩이지 않는지. 자녀들의 얼굴을 살피는 것이 어버이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이게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집에 찾아나올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얼굴을 살펴 보십니다. 

때문에 하나님 집에 올 때 우리의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선 우리 얼굴이 예배하고 싶어합니다. 손을 들어 기도하고 찬송하므로 우리의 손도 예배하고 싶어합니다. 손뼉을 치며 찬송할 때 우리의 몸이 예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시간마다 성령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을 요청하며 우리의 몸이 예배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사실 대신 해 줄 수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나는 자동차를 만들 수 없지만 자동차를 몰고 다닐 수 있습니다. 컴퓨터에 들어가는 부품하나 만들 능력이 없지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만큼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대신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위해 대신 예배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어느 가정에서 남편은 주일만 되면 아내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대표로 예배당에 가구려." 이렇게 남편은 아내만 대표로 보내고 자신은 집에서 늘 쉬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남편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자기 아내와 함께 죽어 하늘나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천국문 앞에서 문지기가 말했습니다. "당신들 둘 중에 대표로 부인만 들어오십시오."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 할지라도 예배만큼은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직접 나아가 몸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III. 예배중심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저들의 삶의 중심에 누가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중심 축에는 예배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 축이 예배가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광야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광야 같은 인생 길을 가는 우리 삶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저들이 광야를 여행하는 모습을 보십시요. 법궤가 출발하면 온 백성들이 함께 출발했습니다. 법궤가 머물면 온 백성들이 함께 그 주변에 머물렀습니다. 동서남북 각각 세 지파씩 법궤를 향하여 텐트를 쳤습니다. 성도들 앞에 법궤가 있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 앞에는 언제나 우선순위 1번에 예배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에, 믿음의 공동체 중심에, 예배가 있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 사역이 많이 있지만 예배를 우선하는 사역은 그 어떤 것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그 첫 번째 목적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출애굽기를 연구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법궤를 지킨 것이 아니고 법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고 예배가 우리를 지켜 주는 것입니다. 예배가 험한 세상 영적인 전쟁터에서 승리하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선택이 아닙니다. 구원 얻은 삶의 본질입니다. 

저들은 예배하기 위하여 출애굽 했습니다. 우리는 예배하기 위하여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고 이 땅에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를 통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이 땅의 어떤 복을 받고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얻는 것입니다. 인간이 예배를 통해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기쁘게 예배하는 것입니다.


IV. 이미 짤라놓은 제물이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는 생명선입니다. 예배는 나무의 뿌리요 시계의 태엽이요 베터리입니다. 예배를 떠나면 생명줄이 막히기 때문에 실패하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예배,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날마다 영혼이 시들어 갑니다.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 죽어가는 꽃처럼 시들어 갑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도 짜증날 정도로 삶이 흐트러져 버립니다.

그러나 힘을 다하여 예배에 승리하는 사람들, 주님 전에 나올 때마다 영광스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인생의 짐을 짊어지고 왔으나 하나님이 맡아주는 통쾌함을 경험하고 돌아가는 사람들, 아픈 상처를 가지고 왔으나 피묻은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고 쓰다듬어 주시는 주님의 손길에 어루만짐 당하고 붙들림 당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그들의 영혼이 싱싱하게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배 잘해라! 이 말씀을 하는 성경 본문을 보십시오. 얼마나 강력한 단어를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여기 '권하노니' 라는 말을 어떤 슬랭 영어에서는 '팔을 비틀어서라도'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자비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하기 게을러 하고 예배로부터 멀어져 있을 때에 팔을 붙들어서라도 다리를 묶어서라도 다리를 꺾어서라도 예배하는 자리에서 은혜 받는 자녀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만큼 하나님은 우리와의 만남, 우리와의 관계를 원하십니다. 

왜요? 예배 안에 풍성한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내 삶이 거룩한 삶으로 바뀌어 지겠기 때문입니다. 예배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예배에 은혜가 되어야 가정 살이에 은혜가 됩니다. 예배에 성공자가 되어야 사업에 성공자가 됩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험한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 '드린다' 라고 되어 있는데 드린다라는 말은 제사장이 제물을 드릴 때 사용하던 바로 그 단어였습니다. 이미 짤라놓은 제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이 시간, 이미 하나님 앞에 예배하기로 짤라놓은 시간이었습니다. 예배하는 이 시간, 내 몸이 다른데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끝난 존재들이 천국의 백성들입니다. 다른 계획할 어떤 여지도 없습니다. 이미 짤라 놓은 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기로 준비된 예물, 십일조 - 다른데 쓸 수 있는 돈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짤라놓은 제물이었습니다. 비록 살기 어려워도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것으로 짤라 놓은 것입니다. 아니 어려울수록 내 믿음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시간 또한 이미 짤라 놓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날은 나의 날이 아닙니다. 이 날은 공일이 아니예요. 이 날은 머리도 꼬리도 없는 것 일요일이 아닙니다. 이 날은 주일입니다. Load's day 주님의 날, 주님이 원하는 대로 주님이 기뻐하는 대로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는 날이 주일 Lord's day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주일은 갈라지는 날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살아가는 사람들 보면 그냥 비슷하게 살아갑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에 돌아오고 또 밥 먹고 그저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일 아침이 되면 갈라집니다. 예배하러 가는 사람과 세상에 남는 사람들이 갈라집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사람들과 세상 일 하러 가는 사람들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 주일날은 갈라지는 날입니다. 영광스러운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영원한 낙원으로 갈 사람들과 영원한 멸망으로 가야될 사람들이 갈라지는 날이 주일인 것입니다. 주일은 갈라지는 연습을 하는 날인 것입니다. 문득 내 생명이 끝나는 날 영원한 낙원으로 갈 사람들과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질 사람이 갈라지는 날이 주님의 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서 "드린다"는 말은 참 중요한 본질입니다. 하나님께 교회를 통하여 헌금을 드리는 일은 예배의 중심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 37가지 가운데 약 절반 정도 17-18가지는 물질관리에 관한 교훈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이나 지옥에 대해 가르친 것보다 돈, 재물을 드리는 일에 대한 교훈을 훨씬 더 많이 가르치셨습니다. 성경에서 "드린다"라는 단어는 1500번이상 사용되어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기도라는 단어보다 훨씬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풍성히 드리고 풍성히 나눌 때에 우리는 풍성해 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시간 헌금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드리는 거룩한 헌신입니다. 
·나의 헌금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내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셨는가에 대한 감사요 고백입니다. 
·나의 헌금은 현재 나의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를 고백하는 나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는 그날부터 성도는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나의 헌금은 나의 미래를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의 표현입니다. 

때문에 헌금은 매주일 예배에 반드시 드려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6장에서 매주일 반드시 헌금을 드려 하나님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계획성 있게 헌금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1년 봉헌 봉투를 각자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리고 있습니다. 아직 준비하지 못하신 분들은 1년 묶음 봉헌 봉투를 꼭 준비하여 오늘 집으로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주일에 제물없는 빈손 예배를 드려 우리의 예배가 이기적 예배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요 예배의 본질입니다. 


V. 최상의 몸으로 예배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산제사로 드리라는 또 하나의 의미는 최상의 상태, 최상의 조건으로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내 몸의 컨디션을 내 마음의 컨디션을 내 영혼의 컨디션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냥 있는 몸 그대로 주님 앞에 달려나오기 보다는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을 단정하게 하고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토요일부터 몸과 영혼의 컨디션을 조절하고 정성스럽게 예물을 준비하고 돌보고 준비된 마음으로 예배에 나아와야 합니다.

주님 앞에 예배하는 이 한 시간만이라도 최상의 상태로, 내가 이 땅에 살아갈 때에 단 한번 예배드리는 것처럼 최상의 몸과 최상의 마음과 최고의 정성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예배가 내 생애 마지막 예배인 것처럼 종말론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가인이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제물이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드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성으로 드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절받았습니다. 제물이 거절을 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인이 버림을 받았습니다. 가인 혼자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가인의 자녀들과 자손들이 버림을 받았습니다. 아벨의 제사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어졌을 때에 제물만 열납된 것이 아니라 아벨이 열납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벨의 자식들과 그 자손들이 하나님 앞에 열납받게 된 것입니다. 

서로 함께 우리가 협력하여 공동체를 세워가지만 서로 함께 협력함으로 우리는 예배를 성공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때 최상의 예배, 최고의 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최고의 설교를 하기 위해서 일주일동안 자기 자신을 잘 준비해야 됩니다. 권투 선수가 챔피언벨트를 방어하기 위해서 그 챔피언벨트를 획득하기 위해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링에 오르는 것처럼 일주일동안 모든 관심이 주일 예배에 집중되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만이 성공적인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인들 가운데 60% 정도는 일주일에 한 번 예배를 드리고 일주일을 살아갑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여기서 말씀과 부딪히는 거룩한 사건을 경험하지 못하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면, 내 인생의 짐을 해결해 주시고 나를 받아주셨다는 확신, 지난 일주일동안 내 죄가 사함받고 새로워졌다는 존재에 대한 거듭남에 대한 확신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될 때에 어찌 이 험한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찬양대에서 찬양을 할 때 얼마나 은혜스러운 찬양을 합니까?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세미나를 하면서 찬양을 준비하고 기도를 하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입만 벌린다고 찬양이 되는 것 아닙니다. 예배를 위해서 중보기도 하고 성령의 임재와 기름부으심을 내가 경험하게 될 때에, 단에 섰을 때에 기름이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찬양 가운데 임재하는 하나님을 내가 먼저 만난 다음에 찬양하는 것입니다. 방송실에서는 오차없이 정확하게 준비합니다. 안내하는 사람들이 기도로 준비합니다. 정성껏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는 예배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입니다. 내 행동 - 구체적인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예배자로 잘 준비될 때에 건강한 예배자로 준비될 때에 행복한 예배자로 자기 자신의 영혼을 준비할 때에 여기 모인 사람들이 최고의 예배, 최상의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은 토요일부터 준비하는 것입니다. 6번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들어오고 나가고 예배시간 간격이 좁아서 쉽게 지각하지 않고 온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주차하기 위해서 주차 공간을 찾다 보면 보통 10분 20분 30분이 흘러갈 것입니다. 그러나 가능한 예배는 잘려진 예배를 드리면 안됩니다. 흠 있는 예배를 드리면 안됩니다. 처음부터 가능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지각하지 말고 오시는게 좋습니다. 

예배에 집중해야 됩니다. 가서 한 토막 한 토막 단어 하나 하나 토씨 하나까지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예배해 놓으신 은혜의 말씀이다 내가 받아먹겠다. 내 신앙고백이다.' 찬양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자가 기도할 때 한 말씀 한 말씀이 나의 기도를 대표로 드리는 것이다. 거기에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선포되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내게 들려주시는 사랑의 고백이다. 내가 말씀을 놓치지 말아야지.' 집중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끝까지 예배하기 위해서는 축도를 다 받으시고 마지막에 영혼의 그릇을 준비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축도 시간에 나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끝까지 온전하게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VI.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린 결과가 무엇입니까? 1절과 2절 사이에 우리말 성경에는 생략이 되었습니다만 원문에 보면 "카이" - "그래서"라는 말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되어라. 그러면 어떤 은혜를 주시느냐. 이 세상을 본받지 않는 하늘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2절은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프로타고라스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내 삶의 중심 축을 이루며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중심 축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에 승리하고 나면 중심 축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코페루니쿠스 이전에는 지구가 온 우주의 중심인줄 알았어요. 그래서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넘어가는 줄로 알았지요. 모든 별들이 다 지구를 중심으로 떠돌아 다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이 지구는 위성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아가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 손에 붙들려 이 한 주간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만난 하나님을 자손 만대에 물려 주며 자식들을 축복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손 끝에 주님의 임재가 있을 때 자식 머리에 손을 얹을 때 자식들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여 살아갈 때에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땅이 주님의 임재로 정복되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땅이 복을 받았듯이 주님의 임재를 경험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가는 곳곳마다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문학가인 영국 캠프리지 대학의 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을 겨냥하라. 그러면 땅은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땅을 겨냥하라. 그러면 어느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얻는 사람은 세상도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잃은 사람은 세상도 다 잃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최우선 순위에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것을 먼저 구하면 땅의 것은 덤으로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공적인 예배를 통해 내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면 언제나 하나님은 나의 기쁨이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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